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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희진
출판사/신영미디어

표지가 꽤 마음에 든다. 소포를 포장하는 포장지 같은 느낌인데 의외로 이런 게 더 비쌀지도 모른다. 표지의 캐릭터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꽤나 마음에 든다, 진짜. 확실히 표지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신영이 독보적인 듯 하다.
내용 역시 꽤 마음에 든다. 정말 한국적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고나 할까?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같이 구수하면서도 입맛 당기는 로맨스이다.
소재는 정형적이라 할 수 있다. 정략결혼. 이 얼마나 많이도 울궈먹었던 소재냔 말이다. 하지만! <사랑 느낌>은 정략 결혼은 정략 결혼이돼 극히 현실적이라 좋다. 일단 결혼까지 가는 과정이 내용의 주 줄거리다. 재벌가 두 집안이 짝짝꿍해서 주인공들을 결혼시켜 버리는 게 아니라, 일단 선을 보고 결혼하기까지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티격대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캐릭터도 자연스럽고. 연애라곤 잼병인 두 사람이 상대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알콩달콩하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상대가 아무 의미없이 한 말에 의미를 담는, 혹은 오해를 하는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또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안절부절하는 장면이라던가 말다툼을 하다보면 하찮은 말실수가 큰 오해를 불러일으켜 냉전 상태에 이른다던가 하는 장면 역시 좋았다.
여주 캐릭터는 그동안 많이 보아온, 천방지축 말괄량이지만 남주 캐릭터는 카리스마에 기댄 것보다는 집안의 기대에 동서분주하느라 인간관계에 미숙한 인물을 그리고 있어 이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카리스마를 목놓아 외치는 독자들에게는 밍밍한 맛을 던져주기는 하겠구나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원컨데 부디 카리스마있다고 표현되었으나 실제로 카리스마의 '카'도 제대로 표현 안된 인간들에 대한 환상을 잠시 접고 이 글을 접하길 바란다. 그럼 분명 작가가 그려낸 유진명이란 남자의 서툰 연애를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을 테니까.
계속 칭찬에 칭찬을 거듭한 것만 같아 여기서 잠시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첫째, 시점이 많이 흔들린다는 것, 둘째, 1인칭의 지나친 난발 등을 들 수 있겠다.
시점의 흔들림은 그동안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으므로 넘어가고, 둘째, 1인칭의 지니찬 난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차이는 있겠으나,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루어져있어도 완전히 3인칭은 아니고 간혹 1인칭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건 할리퀸-번역 로맨스에 길들여진 작가들의 잘못된 습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1인칭을 쓴다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절대 그래선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될 부분에 1인칭이 불쑥 튀어나와 작가가 캐릭터를 통해 독자에게 직접 설명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건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일이기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 느낌>에서 잠시 예를 들어보자.
[그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거리자 놀랍다는 듯 은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스물다섯 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서운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건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그냥 인사말만 주고받았던 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겠지만 명색이 약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내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그러겠는가!
그럼에도 아빠한테는 '아버님'이라고 닭살스럽게 불렀다 그 말이지? 나랑 결혼할 맘이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 내가 너와 결혼하는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을 거다!
은해는 이런 남자와 아무리 데이트를 한들 자신의 마음이 바뀔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이미 초장부터 글러먹은 남자였던 것이다. 보아하니 그도 부모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 결혼에 응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알지도 못하는 여자, 더구나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ㄴ 여자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흠, 그렇다면 나와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어지게끔 해야할 텐데. 나라면 진저리가 나도록 만들어서 떨쳐내는 수밖에 없겠지?
은해는 재빨리 이런 남자가 좋아할 만한 타입의 여자를 떠올려 보았다. - p.85]
위의 예문은 은애의 시점이다. 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이 혼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진하게 표시한 곳이 1인칭 시점이다.
1인칭으로만 이루어진 글은 3인칭보다는 주인공에게 집중적으로 주목할 수 있도록 하게 만드는 큰 장점이 있다. 때문에 1인칭 시점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또한 1인칭은 주인공 외 인물들에 대해서는 표면적인 시각-주인공의 시각-으로만 그 인물의 심리를 파악해야한다. 독자인 '내가' 주인공이 되어 글안에 들어가 타인에 대해서는 '내' 눈에서 보여지는 것만으로 그 인물의 심리를 추리해야한다는 거다. 이는 단점이 될수도 있으나 장점이 될수도 있다. 왜냐하면 글이라는 건, 작가가 모두 다 풀어내고 독자는 그저 눈으로 쫓아가는 것만으로 그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야 한번 쓱 읽고 말 작품이 되어버린다.
작가의 입장으로 독자들에게 도대체 '왜?'란 물음을 부여하는 건 꽤나 큰 숙제이다. 그게 없으면 다음 장에 대한, 책을 계속 읽고 싶은 욕구- 즉, 동기유발을 일으키지 못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고 싶어 미치게 만들만한 영향력이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전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모두 다 풀어 놓아버린다면 독자는 작가가 주저리 늘여놓은 수다를 듣는 것과 다름이 없어 그저 내용을 따라갈 뿐, 머리로 도대체 '왜?' 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게 된다. 말그대로 후르륵 읽고 아, 끝이구나 하고 책을 덮고 만다는 거다.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1인칭까지 간간이 넣어주어 주인공이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라며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더해서 더욱 더 친절하게도 여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남주인공 심리도 섭섭치 않게 넣어주고 또 근처에 조연이 있으면 조연들의 심리도 쏠쏠찮게 넣어준다. 완전히 개방하고 다 보여줘버리는 거다. 그래서야 동기부여는커녕 읽다가 잠시 쉬고 다시 읽어도 크게 서운치 않은 글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는 번역 로맨스 소설이 대부분 그런 형식으로 되어 있기에 그걸 읽어온 국내 작가들의 국내 로맨스 소설 역시 그런 형식에 치우치고 있는 거다. 이 점이 매우매우 아쉽다. 사실 외국 로맨스는 기본적으로 스릴러를 담고 있다. 주인공들만의 투닥거림이 아니라 내용 전체적으로 봐서 커다란 미스테리를 함께 추리해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주인공들의 심리를 일일이 설명하고 표현한다고 해도 무리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작은 대부분 주인공간의 오해와 반목이 주 줄거리다. 때문에 일일이 다 설명해주고 해석해주고 더 친절하게 조연까지 등장시켜 그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알려주게 된다면 이건 완전히 오픈된 글밖에 더 되겠느냔 말이다.
물론 심리를 짚어줘야할 경우엔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반드시 짚어주고 넘어가야 한다. 주인공들의 심리적 변화의 순간이나 혹은 갈등이 야기되었을 때의 순간 등에는 지금 얘네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라고 간략하나마 설명을 해줘야한다. 그렇지만 사소한, 별로 대단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독자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추리하고 따라가니 말이다.
또 1인칭의 지나친 난립은 때로 심각해야할 글이 전혀 심각하지 못한 상황에 봉착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글은 그 내용 전개에 따라 혹은 캐릭터에 따라 무겁거나 가볍거나가 느껴지는데, 어떤 진지한 장면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있던 한 캐릭터가 갑자기 1인칭으로 '어머낫! 나 이 남자 좋아하나봐!' 라고 해버리면...그처럼 부조화적인 것도 없으리라.
<사랑 느낌>은 그런 부분에서는 꽤나 절제를 가했다. 1인칭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용하는 것은 여주인공 은해일 뿐이니까. 남주인공 진명과 조연도 때로 1인칭 서술을 담당하고 있지만 캐릭터와 심각하게 부조화를 이루지는 않고 있다. 이점은 무척이나 다행이다 싶다.
...쓰다보니 또 길어졌다-_-;
아무튼! 재미있었다. 깔끔하고 담백했다. 아직은 조금 덜 여문듯 느껴지면서도 제법 맛깔난 과일을 하나 먹어치운 기분이다. 작가의 다음 작을 기대!
정크 럽펜 신간안내란에 보니 별로란 평이 꽤 있던데, 그런 평 10개보다 전, 코코님의 리뷰가 더 믿음이 간다는ㅡ 일단 신영미디어에서 나온 책은 이제까지 저한테 포만감과는 별개로 허탈감을 안겨 준 작품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출판사 브랜드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곳 중 하나야요. 정략결혼 이전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는군요. 전에 본 일본 드라마 <중매결혼>이랑 비교해서 봐도 재밌을 듯. 한 번 읽어볼까 결심했습니다. 2003-12-29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