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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아나
출판사/청어람

뒷카피를 보면 꼭 코믹물 같다. 연하와 노처녀가 벌이는 한판 승부 같지만, 솔직히 그건 아니다 싶다. 글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상,중,하로 등급을 매긴다면 이 글은 '중'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글이다. 그런데 뒷카피를 저렇게 해서 이 소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편견을 심어주다니, 출판사의 실수다.
절대 코믹하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인 고민을 과장되지 않게 담고 있다.
다들 사춘기 시절 한번 정도 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교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넌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래?" 두 사람 중에 누구와 평생을 함께 하겠냐는 질문은 나에게 있어 꽤나 난제였다.
살아가는데 돈은 중요하다. 뭐 굳이 돈뿐만이 아니고 배경, 생활 환경, 가치관, 직업 등등은 어디까지나 현실인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기도 그렇다. 한 사람과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해야하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과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없으니까 말이다. <내겐 너무 어린 그이>의 여주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희주는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덕목은 안정이라 결론내린 상태였다. 혼자 쭉 살아오면서 안정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고, 또한 적당히 속물적인 근성이 덧입혀져 있는 타입이라 남편감으로는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애를 해본 적은 없다. 막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그런 그녀 앞에 난데없이 어리고, 철없어 보이고, 막무가내인 남자가 나타나 버린 거다. 그의 어머니(혜은)에게 직업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건 오해임이 판명되었으나 게이머란 특수계층에게 인정받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내 애인이에요 하기엔 좀 곤란한 남자였다. 스물 아홉이란 나이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든다고 사람을 만날 수는 없는 일. 그런데 그 남자가 자꾸 거슬리는 거다. 게다가 남자는 그녀에게 사귀자라고 한다. 거절했지만 술에 취해 찾아오지 않나, 피곤함에 지쳐 돌아오는 길목을 막아서지 않나. 결국 일을 저지르고 없던 일로 치부하려 했지만 측은한 그를 보고 있자니 한번 사겨 볼까 싶어져 버렸다. 그렇게 둘이 만나기 시작한다.
희주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약간의 속물근성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우리도 그렇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왕지사 다홍치마라고 애인이라고 소개해야하는 남자가 될 수 있으면 잘 생겼고,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이길 원하지 않는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기는 커녕 노란 머리에 귀를 잔뜩 뚫은, 내 나이가 유난히 많이 보이게 만드는 사람과 사귀고 싶지는 않지 않냔 말이다. 비록 겉으로야 연하도 좋다, 능력 있어 보이지 않냐, 사랑이면 다 괜찮다, 좋아하는데 어떤 타입이든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한다고 해도 막상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고 그렇다면 과연 그걸 견딜 수 있겠는가?
희주 역시 그렇다. 일단 사귀기는 했지만, 대놓고 애인이라 말하기도 껄그러웠다. 그로 인해 남자의 자존심은 팍팍 무너져만 가고. 하지만 남자도 나름의 자기비하심리가 심각할 수준이라서 이래저래 둘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책이 나온 것은 작년 10월. 일단 평을 살펴보니 그렇게 좋다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대부분은 그저그렇다 수준. 별로다라고 한 사람들도 많고. 못 쓴 글도 아니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는데, 구성도 나쁘지 않은데 도대체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이 여주의 입장이 내 자신의 컴플렉스를 심히 건드리고 있어서는 아닐까 한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맞아, 맞아 싶었던 부분이 꽤 되더라. 연하를 사겨본 경험이 있는 나로써는 진짜 공감되는 심리가 쏠쏠찮게 등장하네 싶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내 스스로도 속물근성이 있음을 되짚는 셈이 되기도 했고.
타인의 속물근성을 욕하는 건 쉽다. 하지만 자신의 속물근성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책이란, 특히 로맨스란 여주에게 감정 이입을 해야 그 글의 제맛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내 속물근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여주라니, 이건 조금 곤란한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남주에게 독자들이 원하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죽은 형 때문에 갖게 된 콤플렉스. 그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비하가 엄청나다. 이 부분에서 조금 의아한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의 개연성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럼에도 카리스마-그 실제로 살아가는데 별 필요도 없는 것 때문에 책에 대한 평이 깎인 점도 없잖아 있을 거다.
코믹 아니고, 재미없는 글도 아니고,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로 저런 이유들 때문에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한 듯. 하지만 괜찮은 글이다. 약간은 밍숭맹숭하지만, 절대 허접하지는 않다. 정형의 껍질만을 갖고 있는 글보다는 차라리 이러한 글이 더 낫다싶다. 뒷마무리가 약간 허술하다 싶지만, 어쨌든 괜찮은 작품이다.
댜냠 아, 맞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글이지요~ 재미를 조금만 더 갖추었다면 정말 명작으로 남았을 글인데. 다음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님.^-^ 2004-01-06 X
정크 댜냠양.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노처녀의 심리에 공감하면 어떡해; 2004-01-06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