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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퍼옴] 오리지랄리티의 생존가능성
번호 : 81 / 작성일 : 2004-01-06 [09:31]
작성자 : Junk
모 작가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쓰신 글입니다.
멋진 글이라고 생각해서 퍼 왔습니다.
1. 진짜
2. 진짜가 되려는 노력
3. 따라하기
4. 따라하기의 득세
5. 그래도 진짜가 좋다
진짜
시미즈 레이코의 만화 '월광천녀'에 이런 말이 있다.
다이아몬드와 큐빅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큐빅을 다이아몬드 옆에 데려다 놓으면, 둘의 광채는 확연히 구분되어 버린다.
닮은 가짜는 진짜를 따를수 없다거나 이길수 없다는 뜻이다.
('월광천녀'에서는 이 말이 '타고난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쓰겠다.)
친구 자취방에 놀러갔을 때, 열악한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 진짜를 만났다.
이수영.
숱한 발라드와 뽕짝을 들으면서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나지만, 그들(가수, 작곡가)이 지향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한 줄기 보았다.
진짜는 찬란하더라. 와서 가슴에 꽂히더라.
(정모박사는 이수영 즐;을 외치지만) 나는 이수영에게서 진짜를 보았다.
가수 이수영의 목소리는, 다가와서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무엇을 건네주는 종류였다.
(너무 세련된 파판 o.s.t 는 별 느낌이 없었고, 이수영이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 것은 거칠거칠한 한국 가요였다.)
진짜를 만나면 한동안 삶이 즐거워진다.
살아가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 따위가, 아무 설명 없이 납득되어 버린다.
마음속의 장벽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진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진짜가 되려는 노력
천진난만한 독자(청자, 감상자)로서 무한히 습득하고, 나름대로 창작이라고 주장하며 유사품들을 뱉어내는 유년기를 지나, 창작자로서 자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 창작자는 진짜를 추구하게 된다.
성과 없는 무한한 삽질과 헛된 방황 끝에 손에 넣는것은, 좁쌀만한 모래알이다.
그렇지만 그게 진짜다. 그 모래알이 모여 진짜가 된다.
사람들이 많이들 착각하는데, 재능이란 남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남보다 더 많이 사랑한적도 집중한적도 노력한적도 없는 주제에,
"나와 달리, ㅇㅇ는 재능을 타고 났으니까."
라고 빈정거리는 자는 결국 워너비에 머무르고 말것이다.
진짜가 되려 하는 사람들도 습작 단계에서 고전을 숱하게 따라한다. 그러나 그들은 '따라하여 만든 것'을 가지고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따라하기
: ~~류와 표절 사이를 모호하게 왔다갔다 하는 일.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작품의 진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안목과, 따라가지 못하는 손이 빚어내는 질투와 절도행위들.
진짜는 사람의 마음에 힘을, 진짜가 되려는 노력은 격한 반발이나 격려를 불러 일으키는 반면, 따라하기는 시야를 온통 우중충한 회색으로 만들어버린다.
창작자의 자존심에 둔감함을 지나쳐, 표절에 이르를 때면, 역겨움까지 불러일으키는게 따라하기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은 이쪽이 주로 많다.
세상에 따라하기는 넘치고, 아직 포기하지 않은 진짜가 되려는 노력은 눈에 띄지 않거나 결점에 파묻히며, 진짜는 너무나 드물다.
압도적인 물량공세에 힘입어, 그들 따라하기에서 대중에 영합하는 것들이 나오는 일은 흔하다.
그들은…… 창작자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라고 불러야 옳다.
창작자와 엔터테이너.
둘의 차이는, 진짜가 되려는 노력을 여전히 하고 있는가, 혹은 오래전에 그쳐버렸나에 있다.
따라하기의 득세
2003년 대한민국 만화 대상인가 어느 만화 관련 대상을 마린ㅇㅇㅇ가 수상했다는 소식은 날 매우 꿀꿀하거나 암울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만화계 현실이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대상을 마린ㅇㅇㅇ가 차지하는구나."
매우 꿀꿀했다.
예전 마린ㅇㅇㅇ를 봤을 때도, <아마추어 만화가가 인터넷 상에서나 올리고 즐길만한 만화>라고 생각하던 중, 그 출판소식에 놀랐던 일도 있으니.
내가 마린ㅇㅇㅇ를 <그저 그런 아마추어적인 만화>라고 생각한 이유는 두가지이다.
1. 만화체의 4컷 만화임에도, 클리세의 뭉텅이 빼고는, 내용상의 창작가다운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2. 그림이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 미키 타카하시의 '코게빵(탄빵)'을 "너무나 닮았다."
문구 팬시로도 유명한 코게빵은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다. '따라하고 싶을 만큼'.
그 캐릭터를 기본 형태로 하여, 빵 시리즈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소품이라도 새로이 창작해 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 자체의 인기도 좋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키 타카하시가 코게빵 캐릭터를 다른 소품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단순히 '자기복제에 그칠 뿐이기 싫어서' 일 것이다.
마린ㅇㅇㅇ의 지은이가, 코게빵과 상관없이 캐릭터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코게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적어도 연재 시작 이후에 만화나 미술관련한 지인의 누군가가 지적해 줬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코게빵과 상관 없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 없다."
라고 계속 나아갔을 수도 있지만…… 독자인 나의 눈에는 그 여러 캐릭터들이 단지 코게빵2, 코게빵3……로 보였다.
이 점은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까?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적어도, 작품에서 큰 문제가 될만한 '독특한' 부분이, (아무리 자기 혼자 독창적으로 지어냈다 하더라도) 이미 다른 사람의 창작품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쓰린 속이 뒤짚어지든 말든 그걸 덮어버려야 좋다고 생각하는데ㅡ 이것이 잘못된 생각일까?
(완전히 버리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독특한' 것으로 존재하는 부분만 고칠수도 있지 않나.)
이미 아차 하는 사이에 출판이 되었거나 한다면 모를까, 한동안 계속 '아마추어' 였을텐데, 되돌이킬 시기도 충분했을텐데…… 왜?
그럴 때는, 다른 인간적인 이유ㅡ경제적 상황이 어려웠다거나 하는ㅡ를 떠올리고, 한숨 한 번 짓고 말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엔터테이너와 창작가는 다르다고 고집하는 독자가 바보일 지도.
그래도 진짜가 좋다
오리가 지랄해도 날지 못한다.
그래도 지랄거리는 오리들은 어딘가 항상 있을 것이고, 가끔 진짜를 뱉어내서 사람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엔터테인을 배격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대중독자로서, 무수한 엔터테이너들의 혜택을 입고 있다.
그저 내가 독자로서 바라는 바는, 엔터테인 틈틈이, 세상이 회색으로만 칠해져 있다고 느끼기 전에, 진짜가 와서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답답한 속에 상쾌한 바람이 불어, 또다시 땅파며 지랄거릴 힘을 얻게 되니까.
꽥꽥.
읽고서 참으로 여러가지 의미에서 부끄러웠던 글이었습니다.
오리지날리티(오리지랄리티;)를 찾으려는 노력을 나는 하고 있는 것일까. 또, 나 자신, 스스로 오리지날리티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던 부분이 실은 클리쉐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오만과 쓸데없는 자존심, 그리고 착각을 벗어던지고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클리쉐를 넘어서거나 클리쉐를 한 단계 승격시킨 새로운 차원의 '진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까뒤집을 줄 알아야겠죠.
이 글을 쓰신 작가님은 (제 사견입니다만) 확실히 이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랬기에, 이 글이 더욱 공감이 갔던 거구요.
어딘가에서 묵묵히 진짜를 만드는 노력을 하시는 분이 있겠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것을 헤집는 사람, 그리고 비난과 구설수가 난무하는 와중에 초연히 구석에서 홀로 자기 세계를 찾고 있는 분이 말입니다. 그것은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자만심이 아닌, '진짜' 자부심과 자기 존중에서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요는 작가들 스스로 각성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2모 ㅎㅎㅎ 사실 저도 클리셰 뭉텅이를 사랑한다고요; 그리고 단지 소재가 닮았다고 애써 짜놓은 글을 뒤엎어버린 J모 언니도 진짜를 추구한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음... 어쨌거나, 제가 유일하게 자랑할수 있다면, 삽질로 바늘구멍(모래알도 아닌;) 쪼만하게 뚫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진짜가 될지도 모르죠. ^^;;;;; 그런 희망으로 한글을 켭니다. 2004-01-06 X
'코코' 오리지랄티라...절묘하군. 큭큭큭 2004-01-06 X
댜냠 다른부분도 물론 그렇지만, 마린블루스를 집어 줘서 속이 시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캐릭터상이라면 모를까, 만화상은 정말 아니라구요 그건. 아무리 만화계가 힘들다지만~~ ㅠ_ㅠ 엉엉 2004-01-06 X
Miney 아름다운 글이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나 자신이 저 글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깨닫곤, 답답해져 버렸습니다. 저도 지랄(;;)을 하고 있기는 한 걸까요. --; 2004-01-06 X
J모 소재가 같아서 엎은 건 아니었음; 풀어나가는 스타일이 흡사해서 엎은 거지; 아무리 특수소재라도 그 정도로 겹치면 이건 너무한단 생각이 들어서... 2004-01-06 X
김선하 와아, 배우고 가는 중......입니다. 2004-01-06 X
Lian 지랄이라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사명감이 드네요. ; 깊은 반성에 빠지게 하는 글이군요. -_-~~휘유 2004-01-07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