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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하록과 배태랑
번호 : 116 / 작성일 : 2004-02-20 [17:13]
작성자 : 청
나이를 넘나드는 예측 불허의 버전을 가지고 있는 터라,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킥킥대는 나를 가족들은 그러려니 하는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다.
중간중간 스며 나오는 작가의 재치에 난 책을 읽는 내내 입가의 웃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주범은 '하록과 배테랑.'
이제까지 출판된 선미님의 책들을 읽어왔고, 그 작품들 중엔 책을 덮으며 벅찬 감동에 한동안 먹먹한 가슴으로 생각에 잠기게 했던 작품도, 그리고 주인공들의 여정에 날 안타깝게 한 것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짜릿함을 준 작품도 있었지만, 킥킥대며 웃다 눈시울을 젖게 만든 책은 하록과 태랑의 이야기가 처음이었다.
태랑이가 록이의 아버지에게 보낸 사유서-
쓰다 쓰다 문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크레파스로 사과나무를 그린,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린 나무 아래 불조심 표어 쓰듯 '하록의 꿈'이라고 쓴, 거의 초등학교 수준의 그림.
그리고 태랑이가 쓴 사유서의 일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록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록이 그 꿈을 꼭 이룰 거라고 믿습니다."
란 대목에 이르러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늘 꿈 한자락을 가슴에 담고 사는 꿈꾸는 인간형이라서 그런지 하록이 읇은 태랑의 사유서 내용은 나를 만지고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이대로의 네가 좋다는 하록의 말.
어찌보면 참 흔한 말이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이긴 하지만 현실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실체이기도 한지라 더 가슴깊이 다가왔다.
태랑이 준 선물이며 태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낙서 하나 마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무뚝뚝한 하록이기에 더 그러했는지 모른다.
그런 인간 하록에게 뭉클함을 느꼈던 순간은,
수능을 보고 나온 태랑이 합격을 기원하는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의 모습에(참고로 태랑의 뷰모님은 두 분 모두다 사고로 돌아가셨다.)
잔뜩 풀이 죽은 태랑의 모습에
"아침에 너 봤어. 금방이라도 울것처럼 ..., 시험 치는데 네 얼굴이 걸려서 내내 시계만 봤어. 시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말해봐. 내가 너 외롭게 했니?"
진지하게 자신의 걱정으 드러내며 마지막에서 가서 '내가 너 외롭게 했니?'라고 묻던 대목에 있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갖고 있고, 친한 친구들이 많아도, 마음 한 켠에 외로움을 갖고 있는 게 사람인데, 그리고 그런 외로움을 무의식적이든 은연중이든 앎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 외롭게 했니?'라고 묻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질문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여서 놓치고 지나가 버린다고 생각한다.
말이 길었다.
다른 그 어떤 장르보다도 학원물에 버닝하던 내게~
그래서 역시 정신 세계는 10대 수준이라고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렸던 내게~ 오랫만에 읽는 과정과 읽고 난 후에도 가슴깊이 버닝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사해 주신 선미님께 감사드린다.
덧: 태랑이처럼 항상 웃어야 겠다. 슬플때나 기쁠때나의 꿋꿋한 캔디버전으로 ~,그럼 하록이 같은 남친을 만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