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류진
출판사/신영미디어


마치 이국의 문양인듯 이채로운 표지에 風樺烟月 이란 제목은 옛스러움과 동시에 그윽한 향을 풍기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이 류진이라는 생소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뜻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읽고난 후의 서운함은 금할 길 없다.

패망한 나라 해동의 세자빈을 따라 볼모로 연 국으로 가게 된 휘현은 그녀의 운명인 야율을 만난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와 약조한 바가 있는 그녀에게는 야율의 눈길이 버겁기만 했다. 연 국 황제의 황숙인 야율은 권력의 한가운데 서 있음에도 그 자신은 아무것도 갖지 못 했다 한다. 그가 오로지 갖고 싶어진 것은 여린듯 강한 휘현이었다. 휘현은 과거의 인연을 끊기 위해 연 국으로 왔으며, 무거운 짐을 놓지 못한 야율은 그녀를 갖고자 하는 열망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용의 주요 갈등이 된다.

이 작품에는 '끊는다', '놓는다'가 유난히도 많이 쓰였다. 줄거리는 휘현과 야율의 과거의 매듭짐이라 볼 수 있다. 각각의 고뇌와 상처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요소가 되었으니, 서로를 갖기 위해 정리해야만 했다. 때문에 휘현은 과거를 끊었고, 야율은 짐을 내려놓았다. 그뿐이다.

처음 무엇인가 보여줄 듯 무겁게 시작한 이야기는 점차 빛을 바래버렸고, 그들 외의 중요한 조연들 역시 제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물론 휘현과 야율이란 인물들의 설정이 주요 갈등이긴 하지만, 끊어야한다 놓아야한다를 되풀이하며 지면을 채운다는 건 어쩐지 낭비다 싶다. 그토록 고민하고 번민하더니, 해결은 너무나 쉬워 풍선에 바람 빠지듯 허탈했다.

사실 휘현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불분명했다. 세간의 소문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그의 손을 잡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분명 야율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야율을 거부하던 휘현은 없다.

'피해 보리라, 피해 가리라, 또다시 운명이란 잔혹한 놀음에 휘둘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진 않으리라' 다짐하던 휘현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피해 보리라 했다면 피하려 노력해야 했다. 야율의 상처에 순응해 아무런 거부감없이 그를 덥썩 감싸 안지 말고 말이다. 차라리 애초부터 그에게 끌리고 있으나 적국의 황숙이란 자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없다 단도리함이 더 타당했을 듯 하다.

또한 휘현의 목숨을 위협하던 인물을 너무 드러내 긴장감이 없었다. 권력의 피바람 속에 서있게 되었다 말하면서도 막상 닥쳐온 피바람은 결코 피바람 같지 않았다.

뭔가 있을 듯, 있을 듯 애타게 해놓고 막상 판이 벌어지니 알맹이가 없는 그 결말에 허무할 뿐이었다. 갖가지 설정들은 평이했으며,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불이 나 휘현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장면이라던가 적국의 황제앞에 굴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모습이라던가. 이런 장면은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혹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의례 떠올릴만한 거다. 독자에게서 애절함과 비통함을 끌어내고 싶을 때 등에 의례 사용할만한 장면 설정이란 거다. 풍화연월은 대부분 그러하다.

물론 역사물이라고 해서, 혹은 판타지물이라 해서 반드시 거창한 서사성을 지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끝내야했다면 애초 그럴싸한 암시도 필요없었다.

황제 밑의 제1권력자가 되기 위해 암수를 쓰는 듯 하던 사황숙(아민)은 야율을 제거하기 위해 특별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저 휘현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으로 그친다. 황자를 위해 뒷배경이 필요했던 황후는 아민의 손을 잡지만 황제의 한 마디에 멈춘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살얼음기를 풍기는 무심이 크게 활약하는 장면도 없다. 야율의 동생 부용은 무심의 말에 미움을 접는다. 그럴거면 왜 굳이 오라비를 미워하는 장면을 만들어 후에 부용이 무엇인가를 할 것 같은 인상을 줬는지? 정말 이토록 거창하게 설정을 잡아놓고 흐지부지 끝을 내버리니, 허무하고 허무하다.

옛스러움을 반추하기 위해 우리옛말이나 북한말을 쓴 노력은 인정하겠으나, 아쉽게도 그러한 꾸밈보다 굵은 사건 하나가 더 보고 싶다. 작가가 '격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시작되었다', '골육상쟁의 피를 부르는 바람이 회오리가 되어 불어오고 있었다' 등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고 그것을 실제 사건으로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아니, 말했다면 실제로 골육상쟁의 회오리를 보여주던가. 대단히 대단히 아쉬운 글이다.



댓글 '3'

까만머리앤

2004.11.29 10:51:50

밤을 새어서 읽은 책인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하더군요..
어떻게든 끝이 났다는. 주인공들 얘기보다는 작가가 그들의 감정을 너무 애절하게 몰고가는 듯한느낌이... 하기야, 자꾸 자꾸 얘기하면 읽는 독자 세뇌당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예 뚜껑열리거나....

지니아

2004.11.29 22:59:11

'단도리'라는 말이 일본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후다닥~~~

코코

2004.11.30 00:04:46

까만머리앤/^^;;;
지니아/어딜 가시나이까. 흐흐흐
단도리가 일본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소리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전까지 저희 시골에서 왕왕 사용하기에 전 사투리인 줄로만 알았죠.
하여간에 이놈의 입버릇은 고쳐지질 않는 군요;;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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