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주드 데브루
출판사/현대문화센타

1989년 발간된 주드 데브루의 "Wishes"를 현대문화센타에서 1995년 번역 출간한 소설이다.

난 사실 주드 데브루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번역탓일지 아니면 그녀 특유의 말도 안되는 설정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드 데브루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짜증이 난다. 물론 할리퀸이 아닌 장편 로맨스 소설이 있음을 알려주었던 <가슴에 핀 붉은 장미>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이를 알지 못 했다. 그때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 설정이고 문체고 개연성이고 뭐고 간에 전혀 개의치 않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많은 책을 읽고, 눈이 높아져 가면서 주드 데브루의 소설은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재미는 커녕 말도 안되는 설정과 캐릭터에 골치가 아팠다. 때문에 주드 데브루의 소설을 대부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책장을 정리하다가 <세 가지 소원>을 펼쳐들게 되었다. 사실 읽긴 읽었을 텐데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줄거리는 대략, 아름답지만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버디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후 천국도 지옥도 아닌 '주방'이라는 곳에 떨어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디는 천국이나 지옥 둘 중에 한 곳으로 가기 전 과제를 부여받는데, 그 과제가 바로 1896년 당시 콜로라로도에 살고 있는 넬리란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넬리는 아름답지만 이기적인 동생과 인색하고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 밑에서 혹사를 당하며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의 시각으로 볼 때 매우 뚱뚱했으며 스스로를 꾸밀줄 몰라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한 넬리 앞에 몽고메리 가문의 아들인 제이스가 나타난다.

제이스는 넬리의 외모 밑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한 눈에 짐작하고 아이를 낳다 죽은 아내로 인해 상심했던 마음을 치유하게 된다. 동시에 넬리와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그녀가 필요한 넬리의 아버지와 동생 테렐로 인해 넬리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버디는 넬리의 외모를 보고 그녀를 판단하여 제멋대로 소원 세 가지를 말하라는 마법을 건 채 방관한다. 아무것도 모른 넬리는 아버지와 테렐이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소원을 모두 그들을 위해 써버리고 만다. 하지만 테렐의 욕심은 끝이 없어 결국 제이스와 넬리는 헤어지게 된다.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된 버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넬리를 돕기 위해 주방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역시 버디였다. 아름답지만 이기적인,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진 않았으면서도 동시에 타인에게 그 무엇도 베풀어준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가 막 주방에 도착했을 때, 그녀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폴린이 이런 말을 한다.

「 예를 들면, 성경구절을 막힘없이 말하면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신앙심이 두텁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죠. 그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옥으로 보내져서는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해 너무나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바로 천국에 보내질 수도 없어요. 」

하하. 아마도 주드 데브루는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지도 모르겠다. 비록 주드 데브루를 몹시 좋아하는 편은 아닌 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동감하는 바이다.

어쩌면 책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는데, 때로 믿음만이 전부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폴린의 말처럼 그 사람들이 모두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오로지 그 자신들이 믿는 '믿음'이란 잣대로 재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세상은 흑백이 아닌 회색일 수도 있고, 더욱 선명한 다른 어떤 색일 수도 있다. 그것들의 개성이나 차이를 무시한 채 자신이 만든 상자 속에 꾹꾹 집어넣는다는 건, 자칫 편향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편향이나 편견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로 막는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막는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만이 만든 사상누각에서 살게 하도록 한다.

얼마전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고 나서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비록 '믿음'의 문제는 아니지만 나 역시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의문이 든다고 해서 그 행동을 고칠 수 있다고 단언은 절대 못 한다. 그렇지만 내가 무조건 옳아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보다는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결국 버디는 자신의 사고가 얼마나 좁았었던 건지 깨닫게 된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고 이젠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돕는다. 그로 인해 전엔 결코 알지 못했던 또다른 '행복'을 배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버디가 '주방'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버디가 맺어준지 1년 뒤 왁자지껄한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맛보고 있는 넬리를 보고 기뻐하던 그녀에게 폴린은 또다른 과제를 통보해주니 말이다. 불쌍한 버디. 그녀가 부디 성공하길 바란다 ★



댓글 '3'

여니

2004.10.12 00:33:52

'주방'이라는 곳 말야, 난 발상이 되게 신선하다고 생각했었거든.
물론 비슷한 설정은 꽤 많지만 그곳이 '주방'이라는 건 어쨌든 새롭잖아.

수룡

2004.10.12 06:36:14

저도 예전에 정말 재밌게 읽었던, 좋았던 책들을 요즘 읽으면 (주드 레브루, 주디스 크란츠 등등) 이전보다는 느낌이 별로더라고요. 눈이 높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취향이 달라져서 그런건지.. 어느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이런식으로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아쉽다고 생각..;

미루

2004.10.12 13:50:10

'넬리'도 참 좋아하고 주드 데브루 작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아끼는 책이에요.
몽고메리가 시리즈들을 보면서 어. 여기에 이 커플들이 나오네... 하면서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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