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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예정 일주일 전에 세번째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 히로시는 물론 순신의
모습도 없었다. 순신은 망키사건 때문에 일주일 정학처분을 받았다. 체육 선생들은
강경하게 퇴학을 주장했다는데, 순신을 어여삐 여기는 문과계 선생딜이 일치단
결해 간신히 일주일 정학으로 매듭을 지었다. 물론 순신이 퇴학을 당했다면 더
좀비스는 총력을 다해 망키의 언행을 규탄할 작정이었다.
교실 안에 불온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아직도 묘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다른 멤버들은 히로시와 순신이 없어 빚어진 불안을 짜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들 모이자 잠시후에 무투파와 지성파의 말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나는 교단에
서서 치를 떨면서 양파의 입싸움을 바라보았다. 가끔가다 내가 "말싸움 해봐야
아무 소용 없잖아, 그만 해"라고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심했다. 히로시와 순신, 그리고 나 사이에 있는 차이는 대체 뭘까.
무투파의 박력이 지성파를 압고해 철거반 작전이 채택될 형세였다. 그러나 무투파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안이 실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성파와
옥신각신하다 보니 수습할 방법이 없었을 분이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권은 내게
돌아왔다. 나는 행여라도 야쿠자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채택할 마음은 없었다.
더 좀비스는 그렇게 야만스런 조직이 아니다.
"야, 어쩔 거냐구!"
결론을 재촉하는 멤버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작전은, 지나번 모임에서 오미트했잖아!"
나는 교단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나는 그때의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비데를 처음 보는 유치원생이, 이게 뭐지, 하고 바라보는
것처럼.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가노야가 모두를 대표해서 물었다.
"오, 오미트가 뭔데?"
그때서야 겨우 히로시, 순신과 내가 뭐가 다른지를 깨달았다. 나는 이러니 저러니
말하면서도 실은 우등생이었던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 입시 공부를 해
대학에 들어가려고 계획하는 그런 놈이었다. <시험에 나오는 영단어>니 하는 책에서
본 '오미트' 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놈이었다. 아무 묘안도 없으
면서 남들보다 한 단 높은 곳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우쭐하여 다른 친구들이 심각하
게 생각해 짜는 앤을 바보라서 바보같은 생각밖에 못한다고 무시하는 그런 놈이었
다. 나 같은 놈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도 뜻을 모르는 영어 단어를 슬쩍 대화에
흘리면서 자기만족에나 빠질 인간이다. 우라질.
교실 어디선가 중얼중얼 낮은 소리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토끼일 거야."
"토끼는 래비트잖아."
"그런가."
"이런 바보."
"시끄러."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녀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또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에 눈물이 다 고였다. 나는 뿌연 눈으로 모두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웃는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자, 신기하게도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얼굴에도 히죽 웃음이 번졌다.
============================== 가네시로 카즈키 작 <레볼루션 No.3> 中
아래 리체님의 글(17번 게시물)을 읽다가
예전에 제 홈에 이 부분을 적어 올렸던 기억이 나서 옮겨봅니다.
제 동생도 이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었죠. 흐흐흐
(역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 것인가 ;ㅁ;)
예전에 저거 다 두들기면서 내가 왜 이러지 했는데
여기에다 또 써먹다니(....)
인생은 알 수 없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