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쏴아아.

풀잎이 부딪치는 소린가,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녹차를 마시던 하데스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같은 것을 느꼈는지 운영 역시 고개를 들어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바다가 밀려오네? 이어도에 무슨 문제라도?’

시간과 공간이 의미가 없는 장소, 경계의 땅. 이 땅은 끝이 없는 세계로 그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자 뿐이다. 일반적으로 신이나 정령들은 땅의 주인 운영을 안내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도 경계의 땅에 들어온 자는 그 부근에서 헤매다가 되돌아갈 뿐 경계의 땅을 통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시간도 공간도 인간도 령도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이 존재 할 수 없는 땅. 유일하게 지상과 지하를 잇는 길만이 죽은 자를 위해 개방되어 있을 뿐이다. 이어도의 사자는 바닷길을 통해 경계의 땅에 들어섰지만, 운영이 가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이 곳은 시간이 흐르는 장소가 아니지만, 살아있는 존재가 들어 온 이상 시간 또한 존재하기 시작했으니…….’

고작해야 몇 시간이 지난 시점, 하루에 가깝게 사자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좋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 시간 또한 흘러 지나가 사태를 악화시킬 여지가 있었다. 이어도는 운영이 경계의 주인이 되고 깊게 관계를 맺은 곳이라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소?”

하데스는 깊이 생각에 빠진 운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무슨 큰일이라도?”

하데스는 경계의 땅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땅의 주인이 굳이 시간에 쫓기는 상황은 좋지 않았다. 걱정스레 말하는 하데스에게 운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이 겹쳐서 그렇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문자가 생겼네요, 저 쪽이 급한 일인 것 같은데 시간이 겹쳤으니…….”

“상대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소.”

“객만 남기는 건 정말 죄송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운영은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녀는 장승대를 내려와 바로 바다가 밀려 온 이어도의 문을 향해 사라졌다.

“시간이 없는 경계의 땅에 시간이 겹치다니……, 조금 걸리는군.”

하데스는 불길한 예감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꼭 안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에우리디케는 무심히 말했다.

“바람 소리야.”

“그런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금세 잊어버렸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리는 에우리디케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말하면 소리가 떨리고 그 울림이 닿아있는 자신의 가슴을 통해 전해지니 너무 행복했다. 에우리디케는 행복감에 두근거리는 오르페우스의 심장소리를 포근한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그 때는 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지독한 남성혐오증인 자신이 남자를 사랑하는 일이 있을 줄도 몰랐다. 단지 다른 남자와 달리 좀 지나치게 기가 약한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폴론의 현신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음률을 다룬다는 미소년.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 그 아름다운 음악을 칭송하여 특별히 암브로시아(신들의 음식)를 먹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일컬어 졌다.

황금시대를 관통하는 신들의 행동은 하나하나 노래로 만들어지고, 칭송받는다. 머지않아 신들은 사라지고 인간들의 시대가 오겠지만, 최소한 여기서 인간은 신을 초월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분노를 살까 몸을 사리며 살아간다. 에우리디케는 상제, 제우스의 딸로 요정들과 신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숲 속에 은둔해 살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에우리디케의 지독한 인간불신과 남성혐오는 널리 알려져 제우스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다면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물론, 무지한 인간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고, 원래 하지 말라면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에우리디케는 더욱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알지 못했다. 요정들의 수다나 소문보다도 쫓아다니는 여자들한테 도망치기 바빴으니 사정을 알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에우리디케를 만날 즈음에는 여자면 기겁을 하는 오르페우스를 증오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특별히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모든 여자들한테 도망 다니는 그가 심술궂다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 입장에서야 여자 마음을 모른다 서운해 하는 것이지만, 오르페우스 입장에서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몰랐다. 반신의 신분으로도 소문이나 경고를 듣지 못하고 첫 눈에 반해버린 여자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면, 에우리디케는 눈치에 민감했고, 소문에도 민감했다. 주목받지 않는 삶을 살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귀 기울이며 살아왔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을 오르페우스라 밝혔을 때,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런 샌님 같은 남자가 도대체 어디가 좋아 여자들이 쫓아다니나 싶어서. 헤실헤실 웃으면 그 드러난 앞니를 쳐서 부러뜨리고 싶었고 토끼의 기척이라도 날라 치면 부들부들 겁을 집어먹기 일쑤라 그 다리를 쳐서 쓰러뜨리고 싶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동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여자들이 또 자신을 쫓아온 것이 아닌가 겁을 집어먹은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에우리디케의 상식상, 남자가 여자를 무서워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매일 그렇게 짐승을 무서워하면서 뭣 하러 산 속을 따라 오는 거야?”

“어? 어, 그거야. 네가 있으니까. 난 네가 편해.”

“…….”

에우리디케는 속으로 난 네가 불편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오르페우스는 숲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숲에 숨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난 사냥을 하고, 넌 약초를 캐고…….”

“…….”

물론, 에우리디케는 누구 맘대로 막 계획을 짜?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여기는 요정들도 거의 없고 조용하네. 그래서 난 참 편한데, 넌 외롭지 않아?”

“……?”

에우리디케는 그를 상대하기 싫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때만은 호기심이 생겼다. 음악은 청중이 있어야만 성립 되는 것이다. 그런 음악가가 아무도 없는 것이 편하다니? 이곳에 요정들이 없는 건 에우리디케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제의 분노가 두려운 신들과 요정들이 에우리디케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자칫 가볍게 입이라도 놀릴 참이면 바로 저승으로 끌려가는 신세다.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죄를 지은 불멸의 신들을 가두는 지옥, 타르타로스로 끌려간다는 경고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어있으니 요정이고 신들이고 그녀 앞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에우리디케는 호기심에 입을 떼려다 그만두었다. 괜한 신경 쓰다가 얽히는 일은 삼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의외로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볼 때마다 하는 이야기는 이 숲이 아름답다니, 저 꽃이 예쁘다느니……, 더구나 에우리디케의 신상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 점에서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를 새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왕자병 같은데 의외로 진중한 점도 있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음악으로 유혹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론 음악을 사랑하고 그것이 자신의 큰 장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남들이 다 넘어오는 똑같은 장점으로 자신을 좋아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서로서로 은근히 거리감을 좁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든 사랑에 목숨 거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 오르페우스의 음악과 외모에 반한 한 요정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에우리디케에게 덤벼든 것이다.

탈리아는 뮤즈 중 한 요정이자, 여신이었다. 뮤즈는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요정들이었으니 그녀가 오르페우스를 사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뮤즈 중 오르페우스에게 호감을 보인 요정이 비단 그녀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무심한 오르페우스에게 질려 다 떨어져나가고 그녀만 남았다. 그래도 그녀는 좋았다. 아니, 오히려 오르페우스를 독점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주변의 여자들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마음의 깊이가 다르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어느 날 상제의 딸에게 한 눈에 반해 음악은 연주할 생각을 안 하고, 어디서 굴러먹다 나타난 천둥벌거숭이 같은 여자 뒤만 쫓아다니니 화가 날 만도 했다. 탈리아는 내심 에우리디케의 출신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상제 제우스의 바람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유독 에우리디케만이 그 출신이 모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제가 자기 딸이라 주장하니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물론, 에우리디케에게 신성(神性)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 부정할 도리 또한 없었다. 게다가 그 질투심 많은 상제의 비 헤라까지 묵인한 마당에 뒷담화라도 할라 치면 두 신들의 왕들이 지옥에 던질 테니 소문 좋아하는 요정들이라도 입을 닫고 침묵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에 손을 대는 상황이 오자 눈이 뒤집힌 탈리아는 에우리디케가 사는 산 아래 마을에 근거 없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사건에는 계기와 시발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황토빛 모래 위로 찰랑찰랑 바닷물이 밀려와 있다. 어느 날은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같다가도 이어도의 문이 열리면 아름답게 밀려오는 바다가 들어와 있다. 그 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어디선가 스르르 나타난 운영의 모습에 놀라지도 않고 곧바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빛바랜 하얀 도포자락을 날리며 서있는 남자는 시를 짓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는 김삿갓을 연상하게 만들었지만, 삿갓을 쓰고 있지도 않았고 희끗희끗 샌 머리카락을 뒷목근처에서 묶은 것이 도인 같기도 했다.

“현무, 정말 놀랄 일이군요. 사방신(四方神) 중 한 명인 그대가 여기에 직접 오다니?”

운영은 정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용왕께서 청하셨습니다, 무녀.”

운영은 내키지 않는 듯한 현무의 말투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또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나쁘신가요.”

“……청을 거절하기를 바랍니다.”

“후후, 그건 전령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운영은 현무가 자신을 걱정해 하는 말임을 알고 있었다. 무슨 문제만 일어나면 이룡(螭龍:이무기, 여기서는 성인이 되지 못한 신수(神獸)들을 일컫는다)들을 경계의 땅에 피신시키는 통에 현실세계에서 운영이 여러모로 문제거리를 끌어안게 된 걸 알고 있는 현무는 매번 용왕이 운영을 찾을 때면 퉁퉁거리게 된다. 현무와 운영, 그리고 용궁은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살고 있기에 경계의 땅의 사건이 운영의 실제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무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건 애들이 한 짓이잖아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현무.”

“몇 백 살 먹은 애죠.”

운영은 화가 난다는 듯이 대꾸하는 현무를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룡, 즉 이무기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인간세계에서 의무적으로 수련을 하게 되어 있다. 때론 일백년에서 수백년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살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이룡을 포함해서 신수들은 기본적으로 장난과 놀기를 좋아해서 종종……, 아니 자주 사고를 친다는 점이다. 게다가 신수들은 도사나 신선을 비롯해서 도력(道力:여기서는 이형의 힘, 신력, 영력을 일컫는다)을 높이는데 좋은 보양식이라……. 물론, 정도(正道)를 걷는 신들이 그런 짓을 하지 않지만, 사도(邪道)를 걷는 신이나 정령 혹은 어설프게 도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신수, 특히 아직 덜 자란 이무기들을 잡는 통에 용왕은 어린아이들을 관리하는데 굉장히 골치를 썩고 있었다. 거기에 같은 땅에 경계의 주인이 태어나자 곧바로 이룡들의 보호자로 운영을 청한 것이다. 종종 사고를 치거나 적에게 노려진 이룡이나 신수들을 경계의 땅에서 보호함으로 적들의 눈을 피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운영이 ‘그 적’들과 부딪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말하자면 운영은 현재 조선의 악의를 가진 도사나 신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약한 여인네에게 온갖 적을 만들어놓고 뻔뻔하게 매번 무녀를 찾는 용왕이 싫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엔 가지 마십시오! 특히 이번엔 더! 그 놈은 당해도 쌉니다!”

“그 놈?”

운영이 반문하자, 그제서야 흥분했던 현무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용왕께서 말하지 말라 했는데, 실수하신 거군요?”

운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무는 어차피 명을 어긴 참에 다 말할 참으로 입을 열었지만, 운영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럼 안 돼요. 자신의 왕의 명을 어기는 것은 죽을 죄. 난 현무가 무사했으면 좋겠어요.”

“…….”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더 이상은 말하지 마세요.”

“무녀!”

현무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운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초조한 듯 꽉 쥐어졌다. 운영은 슬쩍 그의 주먹을 바라보고는 싱긋 웃어보였다.

“세오를 보내겠습니다. 현재 경계의 땅은 개방 중이라 제가 떠날 수가 없네요.”

운영은 다시 솟대를 꺼냈다. 그녀가 ‘세오’라는 이름을 부르자, 솟대 꼭대기에 만들어져있던 새 모형이 은은한 빛을 내더니 살아나 날아올랐다.

“잠시 통로를 닫을 테지만, 제가 지상으로 돌아가면 방문하겠습니다. 용왕께 그리 말씀드려 주세요. 길게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일단 돌아가세요, 현무. 그대가 계속 여기 있으면 ‘그 쪽’도 시간이 흘러 좋지 않아요.”

“그럼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그걸로 좋겠지요.”

“현무!”

운영은 곤란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 날아올랐던 털빛이 까맣고 은은하게 보랏빛으로 빛나던 새가 현무의 머리 꼭대기에 앉더니 그의 머리를 쪼아댔다.

“그럼 주인님이 수습해야 할 문제가 늘어나는 것뿐이야. 넌 우리 주인님 일을 늘릴 셈이냐?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닌데, 그런다고 주인님이 아무 일도 안할 듯 싶으냐? 자라라서 머리가 나쁜 거 아냐?”

속사포처럼 떠들어댄 까마귀 ‘세오’는 다시 현무의 정수리를 콕콕콕 찍어댔다. 현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세오의 목을 잡아채더니 꽉 쥐었다.

“새대가리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그건 편견이야! 이거 놔, 이 민대가리야!”

세오는 괴롭다는 듯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발버둥 쳤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팔을 들어 둘을 말렸다.

“둘 다 그만!”

그 짧은 사이에 현무의 손을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세오는 숨이 막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현무는 아쉽다는 듯이 세오를 놓아주었다.

“세오, 자꾸 그런 말투를 쓰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잖아요. 전령이니까 말을 더 조심해야지요.”

“아니, 얘가 자꾸!”

“세오!”

운영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운영은 자신의 수족인 까마귀 세오를 너무 아끼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오 역시 은혜를 입은 상대이며 또 주인인 운영을 너무 좋아했기에 고개를 숙이고 반성했다.

“세오도 이젠 신수예요. 그러니까 엄연히 연장자이며, 선배인 현무에게 그런 식의 말투는 실례라는 걸 모르겠어요?”

“…….”

현무는 운영이 화낼 것이 뻔했기에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지만, 고작 엊그제(수년이나 현무의 입장에서는 며칠이나 다름없었다) 도력을 얻고 신수의 반열에 들은 까마귀의 화신 ‘세오’가 무슨 신수냐는 아니꼬운 시선이 있었다. 경계의 주인인 무녀 운영은 존경하니 그녀의 수족으로 발탁되어 신수로 격상된 까마귀의 화신을 신수 대접은 해주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 시선을 눈치 챘는지 운영은 현무를 향해 몸을 돌려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현무, 세오는 엄연히 나의 전령이며 당신의 동족인 신수입니다. 나를 대하는 것처럼 그를 대할 수는 없는 건가요? 세오가 늘 당신에게 유독 반감을 가지고 험한 말투는 쓰는 건 당신의 그런 태도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무녀…….”

현무는 운영이 좀처럼 하지 않은 신랄한 말투로 자신을 책하자 고개를 숙였다. 운영은 다시 둘을 번갈아 가며 미소를 지었다.

“난 둘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둘 다 내가 좋죠?”

현무와 세오는 자신들을 향해 거침없이 솔직한 말을 내뱉는 운영을 보고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운영은 그런 그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둘은 서로를 좋아할 수 있을 거예요.”

현무와 세오는 순진하게 웃으며 말하는 운영을 바라보다 서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사이좋게 못 지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이좋게 못 지내는 거예요!’


댓글 '2'

Junk

2012.11.23 18:59:19

어 진짜 스케일이 크네요. 집중해서 읽어야지...

과객연가

2012.11.25 09:45:33

그렇게 스케일이 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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