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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雨後凉風 비온 후 차가운 바람 불어오고...





겨울비는 차가운 대지위로 떨어졌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향해 연은 가만히 손을 뻗어 보았다. 후드득하며 손등을 때리는 느낌은 이상하게 요동치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비가 오니?"


얇은 종이 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연은 젖은 손을 거두어 바지에 서둘러 닦았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자 두툼한 이불을 걷고 앉은 세화의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옷매무새를 매만진 후 세화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쓸어 다듬었다. 머리까지 정리하는 것을 보니 어머니의 단잠은 빗소리에 달아난 모양이었다.


"더 주무시지 않으시고요.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네요."


세화에게 다가간 연은 세화의 손길을 대신하여 머리를 올려주었다. 연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이내 세화의 뒷머리는 둥글게 땋여 정돈되었다. 세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또 빗물을 만졌구나. 손이 아주 차. 어릴 때도 비만 오면 뛰어나가더니..."


"이젠 안 그래요. 그냥 처마 밑에 물이 튀었나 봐요."


연은 머쓱해져 서둘러 답했다.


"그렇구나. 늘 곁에 있으니 잠시 잊고 있다가 가끔 이리 고운 손길로 내 머리를 만져줄 때면 우리 연이도 머리를 올릴 때가 되었구나 생각해."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세화와 달리 연의 얼굴은 어색하게 굳어졌다.


"그게 뭐..좋은가."


"그럼 좋지. 색고운 비단으로 붉은 치마를 입고 하늘 맑은 날, 좋은 님 만나 오래도록 서로를 귀히 여기며, 님의 따뜻한 손은 연이 머리를 매만지며 쓸어 올려주겠지."


세화는 더듬더듬 연의 손끝을 당겨 모아 쥐었다. 차가운 손끝으로 열기가 전해졌다. 연은 따듯한 세화의 손길을 따라 무릎을 베고 누웠다. 앙상한 나무처럼 마른 세화의 다리이지만 더 없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품이었다. 온기는 온몸으로 나른하게 번졌다.


"하얀 머리카락이 더 늘었어요."


나른한 표정으로 세화를 한참동안 보던 연이었다.


"그래? 앞이 안 보여서 좋은 점도 있구나. 기억 속의 내 머리는 항상 검기만 하니까.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을 안 봐도 되고 세월이 가도 예전 그대로다 생각하니...참, 연아... 묻는다 묻는다 하면서 잊고 있었네. 요즈음 아버지 뵈었니?"


아버지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연의 어깨가 굳어졌다. 불러본 적도 희미한 아버지라는 말인데 세화는 늘 그렇게 지칭했다.


"바쁘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가끔 뵈면 따뜻하게 인사도 받아주시고 어머니 안부도 물어보시곤 하세요."


애써 밝은 말투였다. 초점 없는 눈이지만 어쩐지 똑바로 볼 수 없어 연은 벽에 붙은 낡은 종이만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 안부 따위는 상관없지만, 딸인 너를 잊지 않고 챙겨주시니 참 다행이지. 이제 좋은 혼처를 잡아 주시면 더 바랄게 없으련만 아직 말씀이 없으시니 이리 조바심이 나는구나."


따뜻하게 어깨를 매만지는 세화의 목소리에 연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오래된 기억은 더 또렷해졌다. 역병이 지나고 깨어난 세화의 눈은 빛을 잃고 있었다. 초점 없이 흐릿해진 눈동자를 보며 그때 연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슴이 너무 먹먹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그날도 세화는 연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아주었었다.






"세화 안에 있느냐."


빗소리만 울리던 방안으로 낯선 음성이 섞여 들어왔다. 연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기억 속에 있는 태유소의 차가운 목소리와 꼭 같은 음색인데, 말투는 분명 부드러웠다.


"누구..?"


태유소가 올 리 없음을 잘 알기에 연은 되물었다. 얼버무린 뒷말을 이어가기도 전 문이 열렸다.


"아비의 목소리도 잊었느냐."


짐짓 책망하는 듯 중얼거린 태유소는 좁은 방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색실로 장식된 비단 옷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내며 태유소는 방을 훑어보았다. 굳어져 아무것도 못하는 연과 달리 세화는 더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화가 태유소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연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억지로 웃고 있는 입가와 달리 태유소의 눈매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 할 수 없는 연이었다.


"너무 오래간만이라 당황하였습니다."


시집을 온 첫 날 밤의 새색시처럼 세화의 양 볼은 붉어졌다. 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동안 세화를 위하는 마음에서 했던 말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될 터, 지금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연은 태유소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연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태유소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공사가 다망하여 자주 들르지 못해 미안하네."


거짓으로 꾸민 말투는 뱀처럼 소름끼치게 달라붙었다. 하얗게 질린 연의 얼굴과 달리 세화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떨리는 세화의 목소리에서는 기쁨이 묻어 나왔다.


"어찌 마음이 안 쓰였겠느냐. 허나 대부인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탓에 그리했으니 긴 세월을 너무 야속타 말게. 눈이 그리 되었다는 말에 내 항상 얼마나 마음 썼는지 모르네. 오가며 자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고 쓰려. 차라리 보지 않으면 덜 괴롭겠지 생각하기도 했어."


꿈인 듯 했다. 지독하게 더러운 꿈인 듯 했다. 잊고 있던 그 날처럼 더러운 꿈이라 믿고 싶었다.




그해는....
역병이 심하게 돌던 해였다. 저택의 가장 북쪽, 불조차 땔 수 없는 작은 방에서 세화는 끙끙 앓기만 했다. 불같이 뜨거운데도, 괜찮다고만 중얼거리는 세화를 두고 종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연에게 그 수군거림은 그동안 품은 수많은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다른 여종들이 어째서 연을 보며 아가씨라고 하는지, 왜 다른 종들처럼 대제관을 자유롭게 오갈 수가 없는지, 어쩌다 대부인을 우연히 마주칠 때면,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천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모든 것이 확실해졌었다.
세화가 아프지 않았다면 어쩌면 연은 그날, 자신의 아버지가 태유소라는 것에 화가 났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아니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태유소라는 것은 세화를 치료해 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었다. 한 번도 불러보지도, 본적도 없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린 연에게 너무나 친근하고 따듯했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연은 대제관의 내실로 갔었다. 화려하게 칠해진 나무기둥 사이로 보이는 나무 발은 다행히 반쯤 걷어져 있었다.


"아버지..!"


달려오면서 수 십 번 연습했지만 불러본 적 없는 말은 어색했다. 내실에 있던 아버지라는 사람은 고개를 들어 연을 쳐다보았다. 노려보는 것 같다고도 느껴졌지만 그럴 리 없었다.


"당장 나가거라."


그동안은 잊고 계셨던 것 같아서 조금 놀라셨겠지만 여기 딸이 왔다고 숨 가쁘게 말하려던 찰나였다. 믿을 수 없어서 연은 큰 눈을 가만히 깜박이며 서있었다.


"밖에 막이 없느냐. 몹쓸 놈 같으니라고! 대체 무얼 하기에 천한 것들이 함부로 찾아오게 만드느냐. 당장 저것을 끌어내라."


아버지를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상상했던 걸음이었다.
포근히 안아주시면서 많이 컸다고, 의원을 보내 어머니도 치료해 줄 것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받으며 더는 차가운 방에서 추위에 떨며 잠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유소의 차가운 말을 듣는 순간, 연의 가슴으로 무언가 날카로운 상처 하나가 깊이 생겼다.


"아..아버지. 그게 아니라. 저는 아버지의 딸 태유연입니다. 아! 제 어머니의 이름은 세화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저를 아실 텐데, 분명 기억하실 텐데... 처음이라 저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으셔도...상관없으니 아니, 오늘 이렇게 찾아 뵌 것은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의원을 불러 주십시오."


태유소의 차가운 눈빛에 연의 말은 자꾸만 흔들렸다.


"막이 뭐하느냐! 당장 끌어내래도!!"


난처하게 곁에 서있던 막이의 거친 손이 그제서 연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왜 이러십니까. 제발 의원을 보내주십시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정말 많이 아프셔서 그러니 의원을 불러주십시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나으리!! 제발..."


이젠 아버지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어머니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다. 끌려 나가는 연의 외침은 고요한 대제관을 울렸다. 무슨 일인지 놀라 뛰어나온 이들 사이에는 대부인과 붉은 비단옷을 입은 연 또래의 아이도 있었다. 경멸하는 표정으로 연을 노려보던 대부인은 혀를 차며 차갑게 돌아 섰다. 그 소리 때문이었을까. 내실 안에 있던 태유소는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연에게 다가왔다. 한걸음에 달려오는 태유소를 향해 연은 힘껏 애원했다.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옷자락을 잡은 연의 작은 손을 거칠게 떼어낸 태유소는 손을 들었다. 매서운 손끝은 연의 볼에 사정없이 닿았다. 양 볼이 꽃처럼 붉어져도 그칠 줄 모르는 따귀소리만 대제관을 울렸다.






연은 오랜 기억을 밀어 넣으며 가까스로 숨을 가다듬었다.


"며칠 전에 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한 숨, 한 숨, 끊어진 음색은 마구 떨렸다. 태유소는 느린 손길로 수염을 한번 쓰다듬으며 연을 바라보았다. 가늘게 흔들리는 어깨는 비 맞은 새처럼 가냘 펐다. 미색도 미색이지만 사내를 못 견뎌, 안달라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저런 애처로움이었다. 품으면 품을수록 더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 여인은 흔치 않았다.


'그렇지. 저 정도면 되지.'


입가엔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비가 딸을 찾는 데 이유가 있겠느냐."


조롱이었다. 세화와 자신을 지독한 조롱거리로 여기고 놀리고 있었다. 비웃는 듯 비릿한 얼굴로 누추한 방안을 둘러보는 태유소의 표정은 짐작조차 못하고 그저 지아비의 방문에 반가워 부끄러워하는 세화의 붉어진 양 볼을 번갈아 보고 있는 연의 눈가로 참아왔던 눈물이 차올랐다. 걷잡을 수 없는 아픈 마음이 흘러 넘쳤다.


"어찌...이러십니까."


간신히 내뱉은 말이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처연한 음성에도 태유소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점점 더 재미있다는 듯 입가의 수염이 살짝 흔들렸을 뿐이었다.


"연아. 아버지께 무슨 말을 그리하느냐."


"되었네. 세화는 마음 쓰지 마시게. 근래 들어 우리 연이가 내게 불만이 있긴 있지. 그 때문에 세화의 도움을 받을까 하여 이리 온 것이네. 연이 너도 어머니 곁에 앉아서 듣거라."


태유소의 말에 세화는 손을 내저으며 황망해했다.


"딸이 되어 감히 아비에게 무슨 불만을 가지겠습니까. 소첩이 눈이 이리되어 함부로 날뛰는 여식의 마음을 미처 알이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않도록 조심시키겠습니다."


세화의 음성은 엄해지기 까지 했다.


"하하하. 진작 왔으면 세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을 괜히 연이와 마음만 틀어졌구려."


태유소의 큰 웃음에 세화의 당황했던 얼굴이 활짝 풀렸다. 세화의 초점 없는 눈은 태유소를 향해 멈춰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기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연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화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참담하게 거짓을 꾸미는 태유소의 검은 속내를 차마 알릴 수도 없었다. 얼굴 가득 담긴 웃음을 봤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연아. 올 해 네가 몇이지?"


태유소는 며칠 전 물었던 것을 다시 물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다시 묻는 까닭을 연을 알지 못했다. 대신 긴 침묵으로 응대했다. 세화는 곁에 있는 연을 더듬었다.


"아버지가 물으시는 데, 답을 해야지."


세화는 재촉했다.


"열여섯입니다."


연의 답에 태유소의 가는 입술이 비틀어졌다. 세화의 마음을 생각해서 연이 따라 오리라는 것을 태유소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열여섯. 우리 연이도 이제 다 커서 슬슬 혼인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오가다 그 꺼내면 연이가 아주 손사래를 치니 아비가 되어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이제는 자네 생각도 물어 봐야 할 것 같았네."


찾아온 이유는 그것에 있었다. 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소첩은 그것도 모르고 괜스레 남몰래 마음만 조급해 하였습니다. 나리께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실 것을... 어디 마땅한 혼처가 나왔는지요. 연이가 마음은 곱고, 예쁘지만 천한 제 몸에서 난지라."


흐린 말끝에는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그런 것 따위는 마음 쓰지 말게. 누가 뭐라 해도 연이는 이 태유소의 딸 아닌가. 부서부의 수장 태유소의 딸 태유연! 내 이름이 높으니, 좋은 혼처가 들어오긴 하였는데, 연이가 자네를 두고 떨어질 수 없다고 마다하기만 하니.."


"마다하긴요. 괜히 저를 위한다는 마음에 철없이 그리했나봅니다. 어떠한 혼처입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연과 달리 세화는 신이 났다.


"그것이... 궁으로 가야하네."


궁이라는 말에 연은 손을 힘주어 잡았다. 태유소가 찾아온 이유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궁이라 하시면, 궁녀로 들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세화의 음성엔 원망이 섞였다.


"당치도 않은 소리. 어디 내 딸을 궁녀 따위로 보내겠는가. 자네는 나를 대체 뭘로 보고 그리 말하는 게야. 연이는 서국의 왕의 후비가 되는 것이네. 아! 그리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 서국의 왕에게는 아직 적처가 없어 연이가 가서 아들 하나만 낳으면 천하에 부러울 것 없는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네. 아니지. 아들을 낳기 전이라도 서국 왕의 마음에만 들면 되니 많이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러나 멀리 서국으로 보낸다는 것이..."


"어리석음이 어찌 연이와 똑 같은가. 떨어지기 싫다는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 연이의 앞날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보게. 내가 아무리 권세가 높다 하여도, 이곳에서야 연이의 출신을 다들 알 터 인데, 혼처가 들어와 머리를 올린다 한들 그 집에서 마냥 어여쁘다 하겠는가. 겉으론 나를 봐서 좋다 하겠지만 긴 세월 연이가 할 마음고생이 얼마나 깊고 깊겠어. 아니 그런가? 자네가 그렇게 연이를 끼고 있으니 연이가 그 좋은 자리를 마다 할 수밖에 없지. 좀 오래 못 보면 어떠한가.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을 거느리며 살 텐데. 고운 옷에 고운 장식에 온갖 세상의 진미는 다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궁 아닌가."


태유소의 말이 길어질 수 록 세화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자네가 정히 내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단번에 잘라내는 말에 당황한 세화는 손을 휘저었다.


"소첩이 아둔하여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리의 말씀이 백번, 천 번 옳으신데, 연이를 떠나보낸 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아 그리하였습니다. 소첩 나리 뜻에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하였네. 잘하였어. 자네의 뜻을 연이도 따라 주겠지?"


태유소는 끝내 연을 끌어들였다.
연은 태유소를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했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이 그의 얼굴로 가득 번져있었다.


"연아. 아직도 엄마 곁을 떠나는 것이 힘들어도 너무 근심치 말거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편하게 해줄 터이니. 네가 여기 있으면 여러 사정상 그리 하기 힘들어도, 네가 가고 나면 부인도 홀로된 세화에게 크게 마음 쓰겠느냐. 그저 앞 못 보는 여인이니 안쓰럽다 여기겠지."


뻔뻔한 말은 끝없이 이어졌다. 바꾸어 말하면 여기 있으면 힘들어 질 것이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연은 잠자코 세화를 바라보았다. 기대에 찬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연의 눈동자가 서늘해 졌다.


"역시, 이리 찾아오길 정말 잘했군. 떠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준비를 해야겠군. 내 아랫것들에게 일러 자네의 거처도 옮길 테니, 바로 짐을 꾸려놓게. 떠나는 날까지 모녀가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보게나."



태유소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댓글 '4'

위니

2009.11.12 05:01:57

아아..이기적인 아버지,,,,태유소는 정말....
새벽온님이시더군요...저는 전혀 몰랐지 뭡니까..^^ 기다리고 있을께요 어서 오세요..

진하

2009.11.12 15:31:02

저도 기다릴께요.^^

2010.01.14 01:44:08

이런 씨이..

큐리

2010.01.20 14:34:00

저건 아비가 아니라 그냥 '정자제공자'일 뿐이죠.. 아비란 아비로서의 도리를 할때 '아비'라 칭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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