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極痛只緣君 뼈에 사무치도록 아픈 건 다만 님 탓




달도 흩어진 더운 밤이었다. 청석을 신었던 발끝으로 피곤함이 밀려왔다. 뜨거운 볕은 홍일산(日傘)아래로 쏟아져 내려왔고 정전에서 피우던 향내는 달아오른 면복을 감고 떨어질 줄 몰랐었다. 천천세를 외치던 신료들의 음성은 아직도 귓가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하루 동안 몇 겹의 옷을 입고, 벗고 몇 번의 절을 올리고, 내렸던가.


사내는 미간을 매만지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전하."


여인은 벚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인의 풍만하게 솟아오른 젖가슴 아래로 작은 땀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사내는 뒤를 돌아 여인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뜨거운 사내의 열기로 여인의 몸이 들떴다.


"숨고를 틈을 안주는 구나."


책망하는 듯 낮아진 음성과 달리 사내의 손끝은 여인의 허벅지를 따라 올랐다. 단단한 손은 부드러운 살갗을 간질였다. 여인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사내의 목을 끌어당겼다.


"편히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여인의 음성은 어쩐지 슬펐다. 아니, 기뻤다.


사내의 마음 깊은 곳에 묘한 불안감이 일렁였지만 사내는 뜨거운 숨결을 여인의 어깨에 묻었다. 입술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낙인은 피를 흘린 듯 떨어졌다. 젖가슴을 움켜쥐며 신음하는 사내의 등 뒤로 여인의 허연 손이 스쳐갔다. 여인은 장난을 치듯 웃음을 토해내며 몸을 돌려 사내를 타고 올랐다.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사내의 눈가가 어두워졌다.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꽃 향에 한껏 취해 사내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살기.!


사내가 반응을 채 하기도 전 견딜 수 없이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께를 휘어 챘다. 사내는 온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슴을 움켜쥔 채 사내는 비틀거렸다.


"어째서.."


옥음은 갈라졌다.


여인은 대답 대신 손에 쥔 칼을 목으로 가져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외치는 마음과 달리 입술은 가늘게 떨릴 뿐이었다. 처음 여인을 품었던 날처럼 여인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칼을 모아 쥔 두 손끝은 바들바들 떨렸다.


그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달라졌느냐.
그때 손을 뻗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면 이러지 않았느냐.
웃을 때마다 보이던 처연함이 무엇인지 짐작해 마음 썼다면 이러지 않았겠느냐.
지난 생각과 하고픈 말들이 어지럽게 늘어갔다.


"그러지..마라."


온 힘을 다해 간신히 한 말은 덧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금사 이불 위로 붉은 피는 꽃을 피웠다.



댓글 '1'

2010.01.14 04:55:49

이게 연이 아니였으면 하네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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