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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유희
1
“와.”
실루엣에 가까운 ‘등’이 말했다.
성위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나일 걸 알고 있는 말투였다. 나 역시 그런 그에게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그가 두드리는 샌드백 뒤로 다가갔다. 점심시간 도중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 그리 놀랍지 않았고, 같은 반 여자애들의 흡사 벌레를 보는 것 같은 시선도 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체육관은 땀 냄새로 가득했고 날 돌아보지도 않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남자의 몸에서도 뜨거운 열기를 품은 습한 냄새가 확 끼쳤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의 뒤로 다가서자 갑자기 휙 뒤로 돌아서 허리를 끌어당기는 커다란 손이 있었다. 난 그대로 비틀거리며 그와 몸을 닿는 거리까지 끌려갔다.
“벗어.”
라는 말조차 이제 하지 않는다. 꿀꺽 침을 삼키고 손을 올려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어봐야 옷을 찢기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않을 터였다. 교복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선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름이었다. 지난번처럼 두터운 재킷으로 찢어진 블라우스를 감출 수가 없는 계절인 것이다. 두 번 같은 일을 반복할 정도로 머리가 없지는 않다.
멋대로 해버려. 이를 악물고 그렇게 생각했다. 너한테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걸. 웃기게도 그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고, 내가 그의 소유가 아니라는 걸 곱씹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짓이다. 나 이외 모든 사람이 내가 그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
“으윽.”
너무 딱딱하다. 이종격투기 스파링을 하는 장소인 링 바닥은 여자인 내 등에는 지나치게 딱딱하고, 더럽고, 그리고 차가웠다. 하지만 링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그의 몸에서 내뿜는 열기로 인해 그대로 묻혀버렸다.
그리고 몸 중심부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통증.
“헉!”
저도 모르게 비명이 샌다.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채 몇 분이 남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전희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리고 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리를 벌리게 하고 바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섹스는 제대로 여물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나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아, 읏…….”
너무 아프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프다.
눈물이 나오다가 멎어버릴 정도로 아프다.
그가 다리를 들어 올리자 아까보다 한층 극심한 아픔이 자궁 끝을 찔러, 일순 정수리 끝까지 찌릿하고 고통의 전류가 흐른다. 그가 밀고 들어올 때마다 몸이 전후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린다. 삐걱, 삐걱, 삐걱. 일정한 간격을 두고 끈질기게 가해져 오는 고문. 마치 비웃음과도 같은.
그렇다, 이것은 필경 고문이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 아파…….
머릿속을 미칠 듯이 한 가지 생각이 달린다. 단 둘 뿐인 체육관의 무겁고 서늘한 공기 따위는 순식간에 데워버릴 듯,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강하고 탁하게 내 몸과 마음을 휩쓸어간다. 만신창이 된 몸과 마음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미처 아물지도 않은 살 위에 상흔이 새롭게 얼룩진다.
“으……."
이를 악물어 신음을 줄이는 건 쥐꼬리만큼 남은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내가 팔리다시피 그의 집안에 맡겨졌어도, 몸이라면 모르되 마음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으면 절대 반응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만은 절대 허락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는 듯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고통의 신음, 신음 소리. 그것은…….
유린당하는 짐승의 울음.
뼈를 벌리고, 살을 찢어발기고, 내부를 잔혹하게 침범해 고통을 새기고, 정신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창상(創傷)을 남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어쩌다가…….
그의 입 끝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행위가 절정으로 치닫지 않는 한, 성위는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에 고통으로 숨죽인 비명을 간간이 흘려대는 나를 즐기듯이 내려다보며 피스톤 질에 박차를 한층 가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느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치 않다는 것처럼.
“흣…….”
다리 사이의 뼈가 욱신욱신 아파 오며 점점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제발, 제발, 빨리, 빨리…….
성위의 체액으로 젖어 있는 내 속에서 질퍽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그 지독히도 단단한 긴 막대가 연약한 내부에 참혹한 멍 자국을 새기자, 내 머리는 점차 구겨지고 썩어 들어가, 쉰 냄샐 풍기는 뭔가로 변해간다. 밀려드는 수치감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바닥을 긁었다.
부딪치는 부분의 살이 멍든 것처럼 욱신거린다.
“……으음.”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음 속, 이제는 그의 것까지 합세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입에서 저 정도 음성이 흘러 나왔다는 건 그래, 조금 뒤면 끝날 거라는 공식이 성립되므로. 아프고, 괴롭고,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으면.
예상은 들어맞았다.
“악!"
온몸을 휘감는 마지막 삽입의 충격으로 내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것과 동시, 엄청난 기세로 뒤를 뚫고 들어오던 그 저주받을 물건이 일순 격렬하게 떨리다 활화산 같은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폭발의 부산물을 아무렇지 않게 뿜어 남겨 놓곤, 서서히 힘을 잃어 간다.
끝났다. 내 안을 점령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끈끈하고 흐릿한 액체를 느끼면서 나는 힘없이 몸을 떨어뜨렸다.
끝……났……다…….
*
먼저 나가는 건 당연히 성위 쪽이다. 나는 버려진 개처럼 더듬더듬 손바닥을 더듬어 교복을 찾고 치마 주머니에 미리 넣어놓은 티슈로 아래에 흥건하게 얼룩진 그의 체액을 가능한 한 빠른 손놀림으로 닦아냈다.
서둘러야 한다.
블라우스 단추를 정신없이 잠그는 손이 떨렸다. 학교 애들 모두가 내가 걸레인 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성위 외에 누구한테도 벗은 몸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역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것이다. 비틀거리면서 링에서 내려와 체육관을 벗어나려고 종종걸음으로 가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
처음 보는 애다. 부근의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이 학교 역시 시프트(Shift), 성위와 그 패거리들이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게다가 성위의 집안에 대해 전교생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체육관은 오직 그들만 들락거리며 심지어 선생들조차 이곳에 발을 디디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막 상대를 스쳐지나가 문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낮은 음성이 발목을 묶었다.
“잠깐.”
그 말에 반응해 발을 잠시 멈춘 찰나, 팔이 죽 뻗어와 내 손목을 잡았다.
“왜, 왜 이래.”
당황해서 팔목을 비틀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봤다. 성위 정도는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장신이라 목을 쭉 뻗어야 했다.
“앗!”
그러자 상대가 갑자기 손목을 놓는 바람에 난 볼썽사납게 비틀거리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허리를 받치는 손 덕분에 그것만은 어찌어찌 면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지만 허리에 감긴 손 때문에 마냥 좋지만은 않다.
“뭐야.”
손을 뿌리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여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가져다대더니 속삭였다.
“단, 추.”
굉장히 독특한 목소리다.
숨결조차 스칠만한 거리에 당황해, 한 걸음 물러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과연 블라우스 단추가 두 번째부터 죄다 맞지 않게 잠가져 있었다. 서둘러 맞게 고쳐 잠그면서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좋아서 하는 거야?”
다시 한 번 발목을 묶는 소리.
돌아보았지만 이미 보이는 것은 등판뿐이었다. 바닥에 팽개쳐 있는 글러브를 집어 끼고 샌드백을 후려치기 시작하는 남자를 보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예비종이 울리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저 녀석은 수업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걸까?
계속.
이번글은 앞으로 어케 될런지 참으로 무서웁네여..
저런넘은 아조 몽뎅이로 때찌해조야됨다~
지도 똑같은 꼴을 당해봐야지... 쯥 [0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