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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이 완전히 터진다. 바람이 밀고 들어온다. 큰 눈발이 밀어닥친다. 하얗고 긴 털을 가진 늑대 두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들어온다. 바람에 촛불이 꺼지고 곧바로 벽난로의 불마저 꺼진다. 하얗게 쌓인 눈이 반사하는 희미한 빛, 짐승의 눈이 내뿜는 붉은 빛만이 비추는 문, 그 빛을 막아 선 길고 긴 어둠.
예나는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엄마가 이상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그 어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가 뭔가?”
어둠이 말을 했을 때, 예나는 그 형체가 남자의 형상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과 바람과 늑대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사람이 아닐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무시무시한 어둠 앞에서도 조금 전 소리를 지를 때처럼 악을 쓰려고 했지만,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어둠 앞에서 목소리가 점점 줄었다.
“그럼 당신이 하라는 대로 곱게 계속 있을 줄 알았어? 당신 혼자 부리는 욕심에 언제까지 놀아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내 호의를 이용해서 나한테 이런 짓을 시키고도 내가 오냐오냐 예예 하니까 그냥 그런 줄 알았어?”
“그러니까 이유를 말하라.”
예나는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인데도 그 남자의 목소리와 말투가 귀에 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에 들은 것처럼 기억이 아련하고, 도대체 언제 들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 그저 당신이 혼자 손에 틀어쥐고 있는 게 미워서, 당신 혼자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할 뿐이야.”
“생각이 짧군.”
“웃기지 마! 그런 말로 이제 와서 위협해 봤자 소용없어! 난 당신만 아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야!”
“그렇다고 더 아는 사람이란 뻔하지 않나. 정말 그쪽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말하면서 어둠이 집 안으로 조금 더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희미한 빛 속에서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예나는 그의 머리 뒤로 흐르는 달빛을 보았다. 금속으로 된 것을 어깨에 걸친 듯 무언가가 반짝였다. 만약 머리에 뭔가 쓴 게 아니라면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사람인 것 같았다.
갑자기 예나는 그게 영주님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의 몸은 열두 살짜리였지만, 분명히 영주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을 듣지 않던 몸이, 영주님이 들어오면서 완전히 옴짝달싹못하게 굳어 버렸다.
“가,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이 아이를 바로 넘겨 버리겠어!”
말은 위협이었지만 예나 귀에는 그것이 엄마의 비명으로 들렸다. 공포에서 우러나오는 절규로 들렸다.
“너를 위해서라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반면에, 끝이라고 말했으면서도 다가서는 영주님의 말투는 조용하고 침착했다. 정말로 엄마가 그 말을 듣고 뉘우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주님의 목소리가 낮을수록, 말투가 조용할수록 엄마는 더 공포에 떠는 것 같았다. 예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다른 소리를 듣는 것처럼. 엄마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려는 듯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쳐들고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이여! 밤의 제왕이며 낮의 잔재여! 타락한 당신의……!”
갑자기 엄마의 입에서 붉은 것이 터져 나왔다. 마치 바위에 구멍이 뚫리고 그 좁은 사이로 세차게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폭포를 이루듯이,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예나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하는 몸으로 허리를 굽힌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영주님이 무언가를 하려고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엄마가 예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예나는 얼굴에 무언가 뜨거운 게 확 끼얹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무언가가 많이 조각조각 날아간 것 같았다. 그 다음에야 무언가 단단한 것이 무시무시하게 쩍 갈라지는 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 남은 까만 재, 예나의 이마로부터 내려와 눈앞을 빨갛게 물들이는 뜨거운 붉은 것, 장작에 부딪쳐서 또르륵 굴러 내려오는 엄마의 옷을 입은 살덩어리……. 거기에 소리가 덧붙여지면서 예나는 그제야 자신이 본 광경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토록 지르고 싶던 비명을 그제야 질렀다. 비웃는 듯, 씁쓸한 듯 입술이 비틀리게 미소를 머금고 서 있던 영주님이 예나 쪽을 바라보았다.
“아악! 아악! 아아악!!”
마치 말을 하고 싶은데 모음으로만 말이 나오는 것처럼, 예나는 영주님을 바라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다른 곳은 볼 수가 없었다. 어느 곳을 보아도 엄마의 시체가, 시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잔해가, 엄마의 잔해가 흩뿌린 피가 온 집 안을 물들이고 있었다. 예나는 눈앞을 가리는 뜨거운 피를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아까는 그렇게 몸이 안 움직이더니 이제는 어찌나 몸이 잘 움직여지는지, 엄마의 몸에서 튄 피가 닦이고 예나가 문질러서 나온 피가 묻어 나올 때까지 예나는 이마를 닦고 또 닦았다. 갑자기 어떤 강한 팔이 예나의 팔을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아악!”
문질러 닦느라고 눈을 감은 사이에 영주님이 앞까지 와 있었다. 예나는 항의하듯이, 무서워하듯이, 말을 하나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저능아처럼,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상대는 너무 강하고 위압적이어서 팔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도록 얽어맸기에, 울부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울부짖는 것마저 시끄럽다고 멈출 법도 하건만, 영주님은 그저 예나의 팔을 잡고, 다른 팔도 잡고, 두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버리고 예나의 이마에 난 상처에 손을 얹을 뿐이었다. 그 손이 다가왔을 때 예나는 다시 한 번 빽빽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워 댔지만, 막상 그 손이 정말로 얹혔을 때는 얌전해졌다. 뜨겁고 쓰라린 이마에 시원하고 매끄러운 손이 기분 좋았다.
“바보 같은 여자로군,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영주님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예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 일 때문에 도대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하루만 더 있었으면…….”
예나는 눈을 떴다. 영주님의 얼굴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말은 멈추었지만 영주님의 얼굴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영주님은 무언가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일을 그르친 데 대한 안타까움? 엄마가 죽은 데 대한 안타까움? 자신의 손으로 엄마를 죽인 데 대한 안타까움? 영주님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도대체 누구를? 어둠으로 무장하고 하얀 늑대를 다스리는 자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하지만 예나는, 지금 열두 살이면서 열두 살이 아닌 예나는, 영주님을 처음 보면서 처음 보지 않는 예나는 어렴풋이 영주님이 무엇을 안타까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기억을 찾을까 봐 무서워요?”
영주님의 얼굴이 앞에서 고정되었다.
“엄마가 죽은 게 그렇게 안타까워요?”
영주님의 얼굴이 물에 흐트러지듯 흔들렸다.
“내가 당신을 기억할까 봐, 두려워요?”
영주님의 얼굴이 파도처럼 부서졌다. 그리고 차갑고 독한 물이 되어서 예나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예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불타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어째서 이다지도 추운 것일까? 주위는 온통 철썩철썩 몸을 때리는 물살뿐이었고, 희미하게 뜬 눈에는 영주님의 얼굴이 어른어른 비쳤다. 예나는 언젠가처럼 허리와 등 뒤로 강한 팔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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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야근에 이어 주말 출근까지 하고 있는 자하입니다.
다행히(?) 이번 편은 짧아서 제때 올릴 수 있었네요.
더 다행한 건 다음 편도 짧아서 제때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겁니다.(이게 아닌가!)
제목에 (1)이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연결된 장이거든요.
그럼 목요일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