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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먹으러 오면서 김군 왈.

알바생 김군 : 누님.

나 : 응?

알바생 김군 : 남가좌동이면 어디야?

나 : 에. 명지대가 거기 있을걸 아마.

알바생 김군 : 그럼 북가좌동은?

나 : 에... 연남동 부근인가 거기? 미안. 잘 모르겠어.

알바생 김군 : 연세대는?

나 : 연희동.

알바생 김군 : 그럼 홍대는?

나 : 어. 상수동.

알바생 김군 : 거기가 어딘데?

나 : 연남동에서 합정동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른편.

알바생 김군 : 호. 꽤 상세히 알고 있네?

나 : 요즘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알바생 김군 : 북가좌동에 가야 해.

나 : 그런데?

알바생 김군 : 그 근처 사는 친구 말이, 홍대 근처라더군.

나 : 흐음?

저희 집안에는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길치라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약한 길치입니다. 표지판이나 표식을 보고 길을 잘 찾기는 하는데, 문제는 비슷한 것이 많으면 감으로 때려맞추고 그 감을 너무 믿고 넘어가는 면이 있어서 나중에는 길을 엄청 헤맵니다. 그리고 김군의 경우에는... OTL

표지판을 읽어도 반대로 빠질 정도로의 길치입니다. 골목이 많으면 절대 못 찾아갑니다. 최악입니다. 출구가 딱 두 개 뿐인 신도림 역에서 2번 출구로 나오라고 했더니 1번 출구로 나와서 2시간을 헤매다가 집에 전화하는 걸요... OTL

그래서 어지간히 상세한 지도가 있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몇 번째 나오는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몇 번째 나오는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으라든지 하는 상세한 안내말도 필요하고요.

군대가서 나아졌나 했더니 저런 말을 중얼중얼...

좀 (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심각하게 걱정을 하긴 했지만, 출근 시간도 되었고 해서 그냥 넘겼습니다. 그리고 밤에 팩스를 넣고 있는데.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모 언니 : 뭐 찾으세요?

모 언니가 계산대에 계셨기 때문에, 상품권 손님이려니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나 : 왜 왔어?

알바생 김군 : 누님. T^T

나 : 또 왜 그래? 한 반년 3주일 5시간 22분 동안 길거리를 헤맨 듯한 얼굴을 하고.

알바생 김군 : 나 오늘... 오늘... 어쨌든 나 밥 좀...

나 : ヽ(`Д´)ノ


그리고 듣게 된 사정은 이랬습니다.

나 : 어떻게 된 거야? 북가좌동은 찾았어?

알바생 김군 : (끄덕)

나 : 그러니까 언제?

알바생 김군 : 한 시간 전에... 누님. 나 바본가봐... ㅠㅠ

나 : 그래 너 바보 맞어. 거긴 왜 갔어?

알바생 김군 : 빚 독촉 하러...

동생이 하는 수많은 은행 업무 (라 쓰고 시다바리라 읽습니다) 중에는 은행 대출자에게 점잖게 찾아가, 조용히 빌려간 돈을 돌려주십사 하는 업무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어쩌다 보니 오늘은 북가좌동. 게다가 같이 가서 도움을 주셔야 할 이 업계의 떠오르는 신성 조계장님께서는.

... 심한 독감으로 조퇴를 하셨다더군요....

나 : ┐('~`;)┌ 미친 거 아냐? 널 뭘 믿고 보내?

알바생 김군 : 사실 꼭 돈을 받는 건 아니고. 이 달 안에만 내 주셨으면 하는 뜻을 전하는 거니까.

나 : 그게 아니라. 너 그 동네 한 번도 안 가봤잖아. 도대체 너 어딜 믿고 그 동네에 혼자 보낸 게야?

알바생 김군 : 몰라. 흐. 흐. 흐. 흐어엉!

나 : 매장 안에서 오버하지 마! 손님들 다 나간단 말이야.

알바생 김군 : 그러니까 나 밥 좀...

나 : ヽ(`Д´)ノ 미안. 내가 지금 음료수값 500원 밖에 없구나...

지친 듯 해서 일단 편의점에 가서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사고 (200원은 김군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직장에 있는 커피포트로 따뜻하게 물을 데워 녹차를 우려내 주었습니다. 어쨌든 다 먹고 하는 말.

알바생 김군 : 도움을 청하려고 누님에게 핸드폰을 할까 했는데.

나 : 음?

알바생 김군 : 누님에게 걸어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 : 그건 생각 잘 했구나.

알바생 김군 : 그래서 근처에 산다는 M 군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지.

나 : 잠깐.

알바생 김군 : 응?

나 : 그 녀석, 니가 지난 불꽃축제 때 사기 쳐먹었다는 그 놈 아니야?

알바생 김군 : 아냐. S 는 부천에 살고.

나 : 그래서 연락을 했는데?

알바생 김군 : 그러니까 내가. '야. 나 지금 홍대입구야.' 라고 문자를 쳤지.

나 : ⊂( ̄(工) ̄)⊃ 야. 그게 연락이냐?

알바생 김군 : 전화비가 아까워서...

나 : 그랬더니?

알바생 김군 : 곧장 '어쩌라구?' 라는 문자가 날아오더군.

나 : 당연하지. 그래서?

알바생 김군 : '북가좌동 가는 방법 알고 있어?' 라고 문자를 쳤더니. '버스있음' 이라는 답이 왔어.

나 : 그리고는?

알바생 김군 : 응. 몇 번 버스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밧데리가 떨어져서...

나 : 그러니까 사흘에 한 번은 충전하라 그랬잖아.

알바생 김군 : 응. 그럴까 하고.

여기서.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두 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북가좌동을 찾기 위해 홍대에 도착해서 한 시간 전 까지.

계속해서 북가좌동을 찾기 위해 헤맸단 건가?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이면 일곱 시 반인데?

il||li _| ̄|● il||li

나 : 그래. 고생했구나.

알바생 김군 : 연대는 넓어 보이더군.

나 : 거기서 연대까지 간 것이 신기하다.

알바생 김군 : 명지대는 쪼매하던데.

나 : ... 명지대까지 갔었냐 너?

알바생 김군 : 근데 정말 억울한 게 하나 있어.

나 : 뭔데?

알바생 김군 : 당산역에서 버스 타고 그 쪽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버스 타고 홍대까지 왔거든.

나 : 그런데?

알바생 김군 : 내가 빚 독촉하러 간 집에서 약 2M 전방에 내가 홍대까지 타고온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있는 거야...

나 : 삽질했구나.

알바생 김군 : 응.

피곤에 지친 김군을 제 자리에 앉혀 쉬게 한 후. 오랜만에 남매가 손 꼭 붙잡고 집까지 함께 왔습니다.

불쌍한 녀석.

그리고 조계장님이 빨리 쾌유하시길 빕니다... (또 저 녀석에게 모르는 곳을 혼자 가라고 하시면 나쁩니다.)




노리코

2004.11.10 10:07:52

으하하하하하하하하.. 떼구르르르..
너무 웃겨요.. ㅎㅎㅎ   [01][01][01]

릴리

2004.11.10 14:36:58

큭큭큭.. 정말..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남매라는..크흐흑..ㅠㅠ   [01][01][01]

리체

2004.11.10 22:08:41

하아..그 옛날..남매 둘이 엄마 찾아 삼만리 할것 같은..그런 분위기네요.
길 잘 찾는 신부감 물색하셔야겠어요.^^   [01][01][01]

아라베스크

2004.11.11 20:57:39

ㅋㅋ 너무 웃겨요   [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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