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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미만은 돌아가주시지요-






<10>



莫悲深夜解汝身 긴한 밤 너의 몸을 푸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 나무문은 거친 손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어지러운 숨소리를 뱉으며 들어선 해단은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보고 있던 서책을 떨어뜨리며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여인은 연이 맞았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 벌떡 일어난 여인은 진정 연이 맞았다. 이마를 짚던 해단의 눈에 떨어진 서책의 제목이 보였다.


<궁중법도>


궁중법도라!
이곳을 거쳐 갔을 여인들의 손때가 묻은 서책을 연이 보고 있었다. 머리는 점점 어지러워지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입가에는 헛웃음이 번졌다.


“하! 연은 연이로다”


그제서 연은 앞에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연의 얼굴이 환하게 번졌다. 황주성의 별궁에 머물며 후비가 되려는 처지를 잠깐이나마 잊은 연의 양 볼은 미와산에서 사내와 보냈던 그날 밤처럼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연은 해단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서너 발자국의 거리는 이제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워져있었다.


“그 날...대체..”


물을 것이 넘쳐나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연은 한 걸음 다가서며 손을 들었다. 손끝을 조금 만 더 펴면 해단의 소매 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처럼 사내의 어깨에는 황금색 용무늬 띠가 넓은 가슴을 가로지르며 단단하게 매어져있었다. 막 깃을 잡으려는 순간 사내는 한 걸음 물러섰다.


“내가 누구냐?”


사내는 그날 미와산에서처럼 이상했다. 아직도 머리를 다친 사람처럼 구는 것이 그날과 꼭 같았다. 연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살짝 웃으며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밝고 맑았다.


“해단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마치 농을 받아 치는 가벼운 음성이었다.
그러나 해단은 연처럼 입가에 웃음이 서리지도, 눈매가 맑게 빛나지도 않았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깊은 눈동자는 까만 어둠처럼 아득해져만 갔다.


“그러하냐. 나를 해단이라 알고 있다?!”


차가운 말은 연을 향했다.
얼어붙은 강가로 달려 나가 신나게 놀다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달은 아이처럼 연은 그대로 굳어졌다.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가면 서있는 얼음이 갈라져 빠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유 없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연은 똑바로 고개를 들어 해단을 응시했다. 비켜남이 없는 시선은 뒤엉켰다.


“그리만 알고 있다!?”


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마음은 소리치고 있는데, 정작 입은 놀란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느냐?”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이라 연은 답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답을 아는 것은 연이 아니라 해단이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양 볼에 머금던 환한 미소 대신 연의 얼굴엔 낯선 두려움이 가득했다.


진정 모르고 있다.
그가 본 눈은 그렇게 믿으려 했다. 연은 진정 모르고 있다고...


확신으로 바뀌는 마음과 달리 머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는 열망은 그의 가슴을 저리게 파고들었다. 아니라면, 연이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짐짓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 진정 단단히 빠져들고 있노라고, 위험을 경고하는 날카로운 소리도 그만큼의 크기로 가슴을 울렸다. 금방이라도 태유소의 웃음이 귓가에 들릴 것 같았다. 해단은 긴 숨을 아리게 뱉었다.


“하. 이것이었나.”


태유소가 보낸 의외의 패가 이것이었나.!

태유소의 패를 받아보고 다 알겠다고 우습게 생각했던 성심이었다. 미색! 그깟 것은 한낱 유희를 돋우는 추임새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태유소의 낮은 꾀를 비웃었던 성심이었다. 그러나 별궁에 도착하여 연의 얼굴을 확인 한 순간 해단은 절대 비웃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태유소의 계략이었다면 그는 해단이 짐작했던 것보다 수 십 배, 아니 수 백 배 더 교묘하고 지독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략일 수 없다는 것은 앞에 서있는 연의 눈빛이, 둥둥거리며 깊게 울리는 가슴이 알고 있었다. 낙마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


우연..!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이었나.!
하필 태유소의 딸이 그 앞을 지나간 것이 우연이었나.
우연이라서 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태유소도 모르고 있다면 괜찮은 건가.

아니었다.
태유소의 계략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붉은 천을 집어 던지고 여기까지 달려온 마음은.
연을 보는 순간 이유 없이 화가 났던 마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고 간절히 외치는 마음은.
이대로 몸을 돌려 나가 연을 되돌려 보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미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그를 흔들 것 같다고 모른 척 외면하라 말하고 있었다. 해단은 연에게 머문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돌렸다. 안보면 괜찮을 터였다. 미와산에 두고 왔을 때처럼 안보면 될 일이었다. 마음이 어지럽게 제멋대로 구는 것은 그 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그녀를 남기고 왔기 때문이었다. 들판에 피어있어야 할 들꽃이 궁으로 잘못 꺾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뒤돌아 나가려는 해단의 뒷모습은 단단히 굳어져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었다. 아직 한발도 떼지 않았는데도 그는 벌써 문밖으로 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멀어지는 이유를 짐작하며 연은 해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복잡한 생각은 어떤 예감 앞에서 길을 잃었다.


별궁의 문을 박차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
왕의 후비가 될 여인을 사사롭게 쳐다볼 수 있는 사람.


“당신은 누구십니까.”


연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뗐다. 그는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연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눈이 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깊게 침묵했다. 예감은 두려웠다. 반가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상하게 겁이 났다.


“해단이라는 이름 말고, 낙마하여 제가 구한 목숨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


해단은 물러섰던 걸음을 다시 당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다가온 그는 연의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미와산에서 느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끝대신 연의 턱에 닿은 것은 불에 타는 듯 뜨겁고 험했다. 목뒤로 오한이 쓸고 내렸다.


“나는 서국의 왕이다.”


순간 연의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연의 허리를 해단은 거칠게 잡아 당겼다. 가는 허리는 단단한 옥체에 휘감겼다. 넓은 가슴과 감싸 안은 손길은 기억속의 그날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는 연의 온 몸을 타고 번졌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허면 너는 누구냐.”


연은 숨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내려다보는 사내의 짙은 눈동자를 보면 볼수록 숨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모든 감각이 아득히 멀어졌다. 해단이 한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하려 애를 쓰며 연은 입을 열었다.


“저는..”


연이라 하려던 말은 사내의 얼굴에 번지는 섬뜩한 웃음에 자취 없이 사라졌다.


“연이라고 할참이냐. 아니면 리라고 할참이냐. 둘 중 어느 것이라도 나는 상관없다. 허나, 너는 상관이 있겠지. 상관이 있으니 태유리로 여기에 와서 궁중법도나 읽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비틀림은 조롱에 가까웠다. 연은 해단의 가슴을 밀어내려 애를 썼다.


“놓아주십시오.”


“어차피 왕의 여인이 되려 온 것인데, 놓아달라니 뜻을 모르겠다. 황송해서 춤이라도 춰야 할 상황이다. 이 자리를 거쳐 간 여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성은을 주겠다지 않느냐. 과인이 친히 너를 품어 성은을 주겠다 그 말이다. 오호라! 너도 여인이라 궁중법도에 따라 납폐를 받아 화려하게 매달고, 책빈도 받아 비난 옷을 걸치고 입궁하기 전까진 사내 품은 안 된다는 그 뜻이냐.”


해단의 말이 길어질수록 연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갔다. 가까스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고 뒷걸음질 친 연은 해단을 쏘아보았다. 성이 난 연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서국의 왕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우냐.”


피식 웃는 해단의 입술은 가늘게 뒤틀렸다.


“그날 당신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은 진심을 담았다.


“아. 그 때문에 화가 난 게로구나. 과인의 목숨을 구했는데, 이런 별궁에 처박아 두니 화가 났구나. 너로 인해 왕이 살고 종사가 보존된 셈인데 이깟 대접이 다 뭐냐. 그리 말이냐? 어차피 네가 아니어도 과인의 군사들이 나를 구하거나, 아니면...어쩌면...! 네 아비가 직접 나를 구하지 않았겠느냐. 그날 말을 탄 이유는 무엇이지. 천기가 흐릿한데 홀로 말을 타고 나선 것은 누군가를 꼭 만나보라던 네 아비의 귀띔이 있기 때문이더냐. 마침 낙마까지 했으니 하늘이 돕는 다 생각했겠구나."


"아닙니다!"


연은 소리쳤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 말해야겠지.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말해야겠지. 나를 모르고, 만났다고 해야겠지. 조금 전에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고 말해야겠지. 옳다!그게 너에게 정해진 답이 아니더냐.”


“말마다 기가 차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 좋다. 아무려면 어떠하냐. 네 덕에 목숨을 구했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목숨 값은 치러야 나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느냐. 네게 금은보배를 내려주랴? 아니면, 너를 높이 올려 국모의 자리에 앉혀 주랴? 만일, 이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 또한 들어주마. 뭐든 원하는 바를 말해 보거라. 왜 셈이 복잡해지느냐? 가질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느냐?"


장사치를 두고 흥정하는 것처럼 뱉는 말은 모두 비웃음에 가까웠다. 어지러운 눈발 아래 그를 구하고자 애썼던 마음이 산산조각나 잘게 찢기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보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말을 하려던 순간 태유소의 쓴 음성이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연의 마음에 파도가 흘러 넘쳤다. 너울져 넘실대는 파도는 연을 뒤 흔들고 있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휩쓸려 왔기에 뒤를 볼 수 없었다. 연은 또렷하게 말을 꺼냈다.


"아들을 주십시오."


"뭐..?"


멍하니 연의 입술을 보던 해단은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아들을 달라 하였습니다."


"과인의 아들을 달라??"


"예."


단호한 답을 듣던 해단의 입으로 허한 웃음이 터졌다. 처음엔 그저 답답한 숨을 내쉬려던 숨결인데 어느 사이에 허리를 꺾으며 웃고 있었다.


"허울뿐인 곤전(坤殿)에 오르기보단 아들을 하나 낳는 것이 낫다는 것이냐! 과연 태유소의 딸이로다!! 오냐. 허면 네게 아들을 주마!"


무섭도록 번뜩이는 눈은 연을 향해 곧장 다가왔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려 애를 썼지만 연의 숨결은 엉키며 흐릿해졌다.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는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았다. 연은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흔들리며 미끌어지던 연의 발은 이내 침상의 나무다리에 걸렸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리도 빨리 아들을 얻고 싶으냐. 아무리 급해도 침상으로 이끄는 것은 사내의 몫이 아니냐. 긴하게 애가 타도 조금만 참거라. 제 아무리 계집을 보면 달려드는 것이 본디 사내라 하여도 헤픈 계집에게는 끌리지 않으니! "


경멸하는 옥음은 곧장 연을 향했다.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눈매는 연을 아래위로 훑어 내렸다.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진 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고름을 꽉 쥐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이제와 앙탈이라도 부려 사내의 흥분을 늘릴 작정이라면 굳이 애쓸 것 없다. 서로 피곤하게 마음 따위를 신경 쓰지 말고 원하는 것만 해결 하면 그뿐이 아니겠는가. 너는 아들을 얻고, 나는 너를 품어 욕정을 풀고.!"


한걸음에 달려와 연의 어깨를 움켜쥔 해단의 입술은 연의 아랫입술을 거칠게 빨아 당겼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려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연의 머리를 움켜쥔 해단의 손은 강했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그의 입술을, 혀를, 온전히 받은 연의 허리가 점점 뒤로 젖혀졌다. 찍어 누르는 힘은 연을 사로잡아 아무것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연의 입을 탐하던 입술은 조금씩 움직여 어느 사이에 귓불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몸을 휘감는 자리자리한 느낌에 연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살에 닿은 그의 열기로 온 몸이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의 입술 사이로 아련한 숨이 터져 나왔다.


"아.."


"충분한가보군.?!"


차가웠다.
아니, 매서운 날이 서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연이 눈을 떠 해단을 바라보려하는 순간 그의 거친 손이 치마를 걷어 올렸다. 치마 속에 몇 겹으로 자리한 한삼을 들추던 해단은 힘을 주었다.


촤악!


그의 험한 손길을 따라 한삼은 한꺼번에 찢어져 흩어졌다. 거칠 것 없이 파고드는 움직임에 연은 몸을 피하려 애를 써보았지만 그의 한 손은 연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침상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 파묻혀 연은 앞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우의와 소의가 차례로 들리고 연의 하얀 다리를 감은 것은 이제 속치마와 속곳뿐이었다. 치욕스럽게 벌려진 다리를 모아 보려 애를 썼지만 사내가 막은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소의를 풀어 옆으로 내팽개친 해단은 연의 밑바대를 젖히고 손을 넣었다. 딱딱한 사내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여린 살갗은 뻘겋게 쓸려 부풀어 올랐다. 가까스로 얼굴을 뒤덮은 이불을 치운 연의 입으로 아린 비명이 터졌다.


그날...같았다.
연을 파고들던 노파의 메마른 검은 손처럼 봐주지 않는, 거칠 것 없는 그런 손길이었다. 수치스러웠던 그날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비참한 심정이 사무쳐 연은 몸을 비틀었다.


"제발.."


연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외쳤다. 아니 간신히 숨을 토하듯 뱉은 말이었다. 해단은 천천히 의대를 푸르며 연을 쏘아보았다. 희뜩이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연을 찌를 듯 날카로웠고 속의 안은 성내며 한껏 부풀어 올라 얇은 천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느리게 속의를 벗은 해단은 침상 위로 올라왔다. 빨갛게 달궈진 단단한 것은 해단의 하복부에 말뚝처럼 굵게 박혀 연을 향하고 있었다. 방안을 가득 채운 공기가 어디로 사라진 것처럼 연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해단은 연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사내의 뜨거운 열기에 벗은 연의 다리로 소름이 번졌다.


"제발..뭐라 하려느냐."


긴장감으로 굳어진 허벅지 위로 뜨겁고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낯선 느낌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연은 해단의 가슴을 밀어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바위처럼 단단하게 위에 엎드린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발..그만하라?"


연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연의 눈동자로 공포가 스쳐가는 것이 보였다. 해단의 입꼬리가 뒤틀려 올라갔다.


"여기서 그만하면 아들을 어찌 얻느냐."


조롱하는 듯 쓴 옥음은 차가웠지만 허벅지위에 머물던 옥봉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이 뭐라 답할 사이도 없이 검술로 다져진 단단한 사내의 손가락은 연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움켜쥐고 세게 당겼다. 사내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여인의 입구는 좁고 건조했지만 솟아오른 옥봉은 인내할 여유가 없었다. 무작정 허리를 밀며 들어온 옥봉에 연의 입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살이 베이는 듯 쓰린 고통에 연은 사내의 가슴을 때리며 저항하였지만 사내의 하복부는 더욱 집요하게 빨라졌다. 짓이기며 우겨 넣는 사내의 무두는 피하려 할수록 집요하게 파고들며 찧어댔다. 거칠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할 때마다 침상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하학..하학."


이를 악물고 성난 옥봉을 쑤셔 넣는 해단의 등줄기로 땀방울이 점점 또렷하게 맺혔다. 좁디 좁은 여인의 몸은 날이 설대로 선 사내의 물건을 넣으면 넣을수록 강하게 조여 그의 온 몸을 들뜰게 만들었다. 처음 교합을 하였을 때처럼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터져오는 신음이 그의 앙다문 이빨 사이로 터져 나와 짐짓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내실을 가득 울렸다.


궁극은 멀지 않았다. 해단은 양 손으로 연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더 깊게, 더 깊게, 마지막을 향했다. 옥봉으로 여인의 몸을 찌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깊디 깊게 뚫으며 포효하던 사내의 움직임은 천상의 쾌락 앞에 더운 진액을 여인의 몸에 쏟아 부으며 끝이 났다. 여인의 몸 위에 허탈한 숨을 내쉬며 쓰러진 해단의 등줄기는 땀으로 번들거렸다. 한참 만에 해단은 굵은 숨결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교합하는 내내 보지 않았던 연의 얼굴이 그제서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것을 한껏 받아낸 몸인데, 여인의 얼굴은 하얗게 식어 인형처럼 굳어있었다. 들뜬 숨을 내쉬지도, 흩어진 호흡을 다잡을 필요도 없는 듯 누워있던 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엉망이 된 검은 머리카락은 여인의 어깨위에서 아무렇게나 굽이쳤다. 굳이 교합의 흔적을 찾자면 그 뿐이었다.


홀로 절정을 맞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연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반짝이던 달빛을 머금던 미와산의 까만 눈동자는 꿈결인 듯 사라져 있었다. 해단의 뒷머리가 세차게 얻어맞은 듯 아득했다.


"끝이 난 것입니까."


건조한 연의 목소리는 경멸에 가까웠다. 침상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속의를 줍는 연의 뒤로 빨갛게 번진 혈흔이 보였다. 하얀 침의에 묻은 검붉은 흔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아는 해단은 가만히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처럼 욱씬거렸다. 짐승 같은 교합이었다. 고름조차 푸르지 않고, 치마만 들춰내고 옥봉을 우겨넣은 야만적인 행위였다. 처음이라 무척 아팠을 연을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전혀 없는 겁탈에 가까운 아니, 겁탈이었다. 해단은 일어나 연의 팔목을 당겨 잡았다. 잡초처럼 휘어져 들어온 가는 손목은 지나치게 가늘었다.


"아팠을 것이다."


해단은 쓰게 중얼거렸다. 그가 하는 데로 그의 품으로 끌려온 연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 사이에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는 붉게 번져있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쉬이 정하지 못한 해단의 입술은 침묵을 머금었다.


"좋았습니다."


수선스럽게 뒤엉킨 마음을 가다듬으며 미안하다 하려는 순간이었다.


"뭐라..?"


"이 정도라면 참을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답한 연은 어깨를 쥐고 있는 해단의 손을 털어냈다. 멍하니 서있던 해단의 눈빛이 차츰 서늘하게 번져갔다.


"하! 하하! 참을 수 있다?? 참을 수 있다?! 그렇겠지. 참아야겠지. 그래야 그토록 원하는 아들을 얻을 것이니 아니냐. 대단타! 진정 대단하다!!"


감탄을 마지않는 옥음엔 비틀린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연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찢어진 한삼 조각들을 주워 올렸다. 물끄러미 여인을 쏘아보던 해단의 주먹에 힘이 실렸다. 손에 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부셔버릴 수 있을 만큼 꽉 쥔 손아귀는 뜨거운 열기로 부르르 떨렸다.
먼저 이성을 잃고 덤빈 것도, 쾌락에 젖어 몸부림 친 것도, 여인을 품은 이유를 잃고 마음이 동한 것도, 그가 먼저였다. 먼저 돌아선 여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바로 그였다.


해단은 그대로 발을 돌렸다. 남아있는 내실의 나무문들이 파져있는 골로 밀려들어갈 틈도 주지 않는 거친 걸음이었다. 떨어져나간 문이 서로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별궁 밖에 서 기다리던 궁인들의 얼굴로 팽팽한 긴장감이 퍼졌다. 별궁을 나설 때까지 단 한 번도 숨을 고르지 않던 왕은 곧장 활터로 길을 잡았다. 따른 것은 인규 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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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10편을 안올리면 절단신공의 대가를 제대로 받을 것 같아서 서둘러 왔어요.
내용상 10편을 올리고나면 서둘러 도망가려 합니다. ㅎㅎ
해단이도 저도 오래 살 듯 합니다. ^^



댓글 '10'

줌마

2009.12.02 00:03:27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봤지만.....이건 그중 어느것보다도 슬픕니다...ㅜㅜ 하루를 넘기는 시간에 혹여나 싶은 마음에 발견하고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만.....도무지....무거운 마음뿐이네요. 쉬이 풀리지도 않을 사태이고....어찌 연의 순정한 마음을 이리도 짓밟으시는지..작가님이여.

꿀물보스

2009.12.02 00:41:00

아, 연에게 얼마나 아리고 아픈 날이될지....해단, 자신이 상처받고 믿음을 잃었다고해도 한나라의 왕이라고해도 다른이에게 상처주고 괴로움으로 되돌려줄 권리는 없지... 에잉~ 본인이 앞으로 얼마나 힘들어질지도 모르고 저러지... 된통 고생시켜주세욧. 하긴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더 힘들테지요.

위니

2009.12.02 02:01:52

왜..왜...두사람 이렇게 오해로 시작해야하는가요..ㅜㅠ...잉....어떡해요...

마가렛

2009.12.02 03:17:34

ㅎㅎ 이 정도면 뭐 도망치실 정도는 아닙니다..가지 마셔욧!!!!!!!! 그리고 다음편!!!!
어쨋든 만났잖아요..해단이 해선 안될 행동을 했지만 연이 도발한 면도 있으니..
앞으로 지현님께서 어떻게 풀어 나가실지무척 궁금하옵니다..단이 고생 좀 시켜주실거죠?? 호되게..ㅋㅋ
하루종일 밖에서도 단과 연이 생각만 하느라고 손도 다쳤어요..엉엉..

쁘띠디아블

2009.12.02 12:06:10

맨 앞 프롤로그를 읽고오니 한편 한편 읽을때마다 처연하고 슬프네요,,,, 프롤로그가 결말과 같지 않으리라 기대해도 될지요? 두사람의 첫잠이 이리 되버렸으니,,,언제나 해단의 오해가 풀릴까요~

베로베로

2009.12.03 17:36:53

와우. 전 그래도 해단이 좋은 이유가 뭘까요...? (뭐지...저의 성향이란; 헉!)

신지현

2009.12.03 18:40:24

전 인규가 좋더라고요 ㅎㅎ
뭔가 제가 품어주고싶다랄까~

마가렛

2009.12.04 03:41:05

사실 한 겨울에 서책보다는 따스한 여인의 품이 더 좋다는 해단보다는 인규가 바람직하지만..
이 남주사랑 취향은 역사물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니..고로 해단이 더 좋답니다..저도요..ㅎㅎㅎ
저 철없어 보이는 해단을 더 품어주고 싶은데요..전..ㅋㅋㅋ

진하

2009.12.04 11:43:37

아아~~~ 어서어서.. 맘도 통해야할것을....

2010.01.14 02:44:17

어떻게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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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붉은 탈-&lt;12&gt; [7] 신지현 200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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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일요일로 가는 길목 04 [7] 버져비터 2009-11-30
221 붉은 탈-&lt;9&gt; [10] 신지현 2009-11-30
220 붉은 탈-&lt;8&gt; [3] 신지현 2009-11-26
219 붉은 탈-&lt;7&gt; [6] 신지현 2009-11-23
218 일요일로 가는 길목 03 [6] 버져비터 2009-11-20
217 붉은 탈-&lt;6&gt; [4] 신지현 2009-11-19
216 붉은 탈-&lt;5&gt; [5] 신지현 2009-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