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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할 점 : 줄거리 세세함. 그렇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무리는 없겠다 싶음;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던 현우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쳐 마음에도 없는 학원 강사를 하던 도중 옛사랑 연희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자포자기로 강원도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된 그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해산해야만 하는 그곳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꿈을 보게 된다.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리고 조그만 마을 약국의 수연과의 인연으로 인해 그에게도 멀게만 보였던 봄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현실에 고달픈 한 사람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과 함께 희망을 찾는다는 이런 이야기를 난 정말 좋아한다. 비슷한 소재의 외국영화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 홀랜드 오퍼스(Mr. Holland's Opus), 엠퍼러스 클럽(The Emperor's Club, 2002) 등이 있다. 하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은 죽은 시인의 사회나 홀랜드 오퍼스와는 그 풀어가는 스토리에서 매우 큰 차이점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은 권위와 엄격한 제재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스승이다. 영화의 초점은 키팅 선생보다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닐, 녹스, 토드 등 7명의 아이들에 맞추고 있다. 학생들과 선생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야기 하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홀랜드 오퍼스>는 글랜 홀랜드라는 한 선생이 자신의 꿈을 접고 교직에 몸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써 영화 상의 초점은 글랜이다. 그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 교직을 선택했으나 결국 그의 삶을 가치있게 만든 것은 그에게 음악을 배운 아이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차이가 있으나, 두 영화 다 '선생과 제자'에 주안점을 뒀다고 할 수 있겠다.

<꽃피는 봄이 오면>도 '선생과 제자'를 소재로 삼고 있으나 영화상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이현우'라는 한 인간에게 맞춰져 있다. 트레일러를 봤을 때만해도 이 영화도 외국의 비슷한 소재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 확실히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다.

<홀랜드 오퍼스>의 글랜처럼 생활을 위해 가르침을 선택하게 된 현우. 그러나 현우는 음악으로 아이들을 교화시키려는 목적도 없고,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처럼 그들의 꿈과 자유를 맛보게 하고 싶은 열망도 없다. 초반만이 아니고 영화 내내 그렇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건 이현우란 한 인간의 변화에 나 자신이 깊이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실력은 없고 단지 꿈만으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그 꿈을 좇기 위해 전력을 다 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함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그의 삶은 지금 겨울이었고, 봄을 기다릴 힘도 없었다.

그에게 봄은 아주 뜻밖에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멋으로, 폼으로 음악을 하는 아이들 - 한때 전국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선배들을 두고 있지만 지금은 거의 내둘림 당하는 도계 중학교 관악부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꿈'. 그것이 현우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선생으로써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슈퍼맨처럼 해결해주지 못하고 그들이 방황할 때 기꺼이 손 내밀지도 못한다. 그 자신도 음악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실력 있는 제자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음악에 빠져 생을 허비하게 할 수 없다고 나오자 그 아버지를 설득하기는 커녕 되려 그것도 나쁘지 않다며 제자를 설득한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한 제자를 아끼게 되지만,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현우도 아이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저 지켜만 본다. 이렇게 보면 현우는 결코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선생상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상적이 될 수 없는, 그걸 하려고 노력할 생각조차 없는 그는 그렇기에 더 현실적으로 비춰진다.

아들을 위해 강원도까지 반찬이며 음식거리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고생하냐고 화를 내는 장면이라던가, 옛 애인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무산시켰다는 말을 듣고 웃음을 참기 위해 씰룩이는 입가라든가... 지극히 무능력하면서도 이상하게 정이 가는 '이현우'라는 사람을 배우 최민식은 굉장히 잘 연기해내고 있었다(역시 최민식이었다T^T).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음악을 못하게 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그 아버지가 일하는 탄광촌에 가서 정원도 채우지 못한 관악부와 함께 연주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저 그냥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가 비록 고단한 삶이라할지라도 아이들의 작은 꿈을 이루어주고 싶어 비가 오는 탄광 앞에서 지휘를 한다. 그의 얼굴엔 한껏 웃음이 묻어나 있었다.

영화의 종반에가서 관악부는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승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러한 시간들을 거쳐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된 '이현우'란 사람이니까.

현우에게 <홀랜드 오퍼스>의 글랜처럼 극적인 반전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처럼 아이들과의 진한 유대감도 없다. 임시직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는 옛사랑의 집앞 벤치에 앉아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전화를 한다. 그녀의 피아노 학원에 트렘펫 강사 한 명 채용할 생각 없냐며 능글맞게 웃는다. 멀게만 느껴졌던 봄이 현우에게도 찾아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일상이 힘들고 지루하다 생각된다면 한번쯤 이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 올 그 봄을 미리 맛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댓글 '4'

리체

2004.10.03 20:08:50

아아아아...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ㅠㅠ
나 최민식 느무 사랑한담 말이지..ㅠㅠ

아우라

2004.10.03 22:02:10

개봉 첫날인가, 둘째날인가 보았죠.
보고 나오면서 떠오는 건 '구수하고 담백한 곰국' 이었죠.
다만 소금이 없어서 심심하다는 느낌. ^^*

Miney

2004.10.04 03:02:34

저도 이거 비됴; 나오면 꼭 챙겨 볼 거에요. 최민식... 보면 볼수록 멋진 남자죠.;; 처음 눈에 띄었던 넘버 3에서도 괜찮았지만, 제일 맛이 가버렸던 원인은 '파이란'이었다는...크윽. T^T 연예인을 별 좋아라하지 않는 제 입장에선 거의 '팬'이라 할 수 있는 배우에요.

코코

2004.10.04 03:24:29

리체/보쇼^^
아우라/전 그 밍밍한 맛이 더 마음에 들어버렸답니다;
최민식만이 낼 수 있는 맛입지요T^T
마이니/맞아요, 맞아.
크흐흑
참, 이 영화에 올드보이에 나왔던 눈에 띄는 인물도 한 명 등장합니다.
몇 컷 아니지만, 반갑더군요;;
꼭 찾아보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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