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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페널티
-Love Penalty-
벌칙 1. Birthday
ㅡ너 웬일이니? 생일 제대로 챙긴다? 간만에 고기 썰게도 해주고?
“하, 너네 정말 너무하다. 어째 놀리는 레퍼토리가 하나 같이 다 똑같냐?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냐?”
ㅡ히히, 그건 아니고, 너 회사 일에 두문불출이라 생일이고 뭐고 그냥 넘길 줄 알았지이. 웬일이냐, 오늘은 야근 안 해?
“야, 야. 야근이란 단어도 꺼내지 마. 현실화될까 겁난다.”
ㅡ그렇잖아. 너네 팀장이 오늘은 너 안 괴롭힌대?
“윽, 소름끼쳐. 대마왕 얘기도 하지 마. 암튼 오늘은 죽어도 제대로 할 거니까 맘 놔. 오늘 열심히 썰고 2차도 가는 거야. 알았지? 그러니까 선물 꼭 가져와?”
ㅡ알았어! 기집애, 챙기긴. 그럼 저녁에 보자. 씨유.
“응. 안…….”
‘……녕.’하고 말하려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사람을 보았다.
휴우.
다행스럽게도 내가 예상한 사람은 아니다. 지훈 선배가 의아하고, 조금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야. 너 여기서 뭐하냐. 팀장님이 너 보자는데.”
“예? 팀장님이요? 왜, 왜요?”
“너 또 무슨 실수했나 보던데? 야, 이제 그만 좀 꼬투리 잡힐 짓해라. 아주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다. 입사한 지가 벌써 여섯 달짼데 어째 변화가 없냐?”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배가 욱신욱신 쑤신다. 아아, 머잖아 난 위궤양, 혹은 장염에 걸릴 게 틀림없어.
“김현수 씨.”
사무실에 돌아가니 예상대로 바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긴장에 찬 가슴을 부여잡고 주춤주춤 나를 부른 사람 앞으로 향한다.
안경.
그리고 그 안경 너머의 맑은 눈.
이 눈만 보면 왜 주눅이 드는지 모르겠다.
“부르셨어요?”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예?”
“여기 틀렸잖아. 한 자리 수 계산은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순식간에 움츠러든다. 독이 묻은 혀로 나를 쫄아들게 만든 사람의 팀장의 이름은 강문우. 일 잘하고, 얼굴 잘생기고, 키 크고, 슈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사내의 베스트드레서다. 당연히 여사원들에게 인기는 엄청나다.
ㅡ안경이 금욕적이야.
ㅡ벗기면 왠지 장난 아닐 것 같지 않니?
ㅡ어우, 얘. 그것까지 벗으면 우린 살 떨려서 어떡하라고. 그건 방패야, 방패. 일종의 보호막이라고.
이게 대체적인 사내 여인네들의 평가인데, 나는 그런 그가 어렵다.
아니, 무섭다.
ㅡ오늘 아침 인사 못 받은 것 같은데, 김현수 씨?
ㅡ김현수 씨, 지금 이걸 보고서라고 써낸 거야? 어느 정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읽어보지. 대학 다닐 때 리포트도 안 써봤나?
ㅡ선배들이 남아 있는데 막내가 먼저 퇴근하다니 버릇이 없군, 김현수 씨.
그야말로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회사가 창살 없는 감옥이 될 거라고는 입사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건만, 나는 여자상사도 아닌 남자상사에게 매일처럼 간섭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있다. 치사하고 못된 인간아! 남자가 왜 그리 야박하냐! 잘해주면 생리라도 터지냐?
“계산은 부차적인 문제고 곳곳이 실수투성이야. 처음부터 다시 해와.”
“예? 아, 예……. 저기 언제까지요?”
“점심시간까지.”
“어, 이걸 다요?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있는데…….”
“지금 그걸 토라고 다는 거야?”
강 팀장이 안경 사이 미간을 문지르다 휙 쳐다본다. 악, 무서워. 서러움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위험경보! 위험경보! 이럴 때는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최고다.
“아, 알겠습니다! 점심시간까지 제출할게요. 저기, 여, 여러분. 커피 드실래요? 탕비실에 다녀오겠습니다!”
횡설수설 핑계를 대고 나는 팀장의 책상 위에 있던 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른 탓에 그만 발을 헛디뎠고 다행히 컵은 놓치지 않았지만 팔꿈치로 그의 안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앗, 하는 사이 안경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
“너 봤니? 아무리 봐도 20대 초중반이야. 교복 입혀놓으면 살짝 성숙한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겠더라.”
“강 팀장님, 초 동안이셨구나. 완전 귀여워. 근데 왜 안경을 벗으셨대?”
“같은 팀 사람이 아작냈다더라.”
“우와, 누군지 큰일 했네? 덕택에 눈 보신도 하구 아이, 좋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변기에 앉아있으려니 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들이 사람 신경을 아주 박박 사포로 긁는구나. 그건 그렇고 한 번 밟았다고 깨지다니 무슨 안경이 그렇게 부실하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신이 들어보니 팀장의 안경은 내 구두 굽에 밟혀 박살이 나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팀장의 안경을 비틀거리던 내가 콱 밟아버렸기 때문에 - 어쩌면 순간적으로 감정이 실렸는지도 모르겠지만 - 안경은 그야말로 손쓸 수 없이 산뜻하게 두 동강이 나버렸다. 여분의 다른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팀장은 안경 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슬프게도 그 때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시력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죄송합니다. 안경…… 보상해드릴게요.’
‘됐어. 별로 비싼 것 아니니. 오늘 회의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군.’
이런 일에는 깐깐하지 않은 게 강 팀장의 의외성이다. 날 잡아 죽이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그건 그렇고 안경을 벗은 강 팀장은 단숨에 화제의 적으로 떠올랐다. 안경 속 단려한 얼굴이 예상 이상으로 동안이었던 탓이다. 화장실에 들어온 두 여자도 강문우 팬클럽 멤버겠지. 그녀들은 화장을 다 고쳤는지 이윽고 밖으로 나갔다.
으, 이렇게 앉아 있어봐야 뭐하냐. 일도 밀렸는데 돌아가자.
나는 재차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팀장이 연신 눈을 문지르며 일어나고 있는 참이었다. 정말 많이 힘들어 보인다. 눈이 안 보이니까 거동까지 불편한 지 몸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허둥거리는 모습이 약간은 우습기도 하다.
아, 진짜 엄청 부담주네. 안경 깬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해지잖아. 나는 가슴이 갑갑한 걸 느끼면서 문가에 선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팀원들도 좀 걱정스런 기색으로 한 마디씩 한다.
“어휴, 이래서야 버티실 수 있겠어요?”
“진짜 하나도 안 보이세요, 팀장님? 시력이 몇이신데요?”
“양쪽 다 0.1도 안 될 거야.”
“안 보이실 만하네요. 엇, 조심하……!”
진호가 소리 지르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강 팀장의 몸이 흔들리더니 벽에 손을 짚었다. 욱 하고 신음한다. 아무래도 책상에 걸린 모양이다.
“대체 어느 정도로 안 보이시는 거예요?”
“윤곽이 흐려. 누가 누군지 모르겠군. 대충 짐작만 할 뿐이고……. 거기 문가에 있는 거 김현수 씨야?”
“어, 현수 씨는 알아보시겠어요?”
긍정도 부정도 않는 팀장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아무래도 뭐라도 보상을 해야 할 것 같다.
“팀장님, 정말 죄송해요.”
“죄송한 거 알면 됐으니까, 나대신 오늘 중으로 이거 검토 해치워.”
“예?”
“못 들었어? 오늘 중으로 하라고.”
“예…….”
나는 팀장이 던져준 자료를 들고 속으로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점심시간도 지났고, 아까 하다만 것까지 포함 오늘 중으로 해치우려면 야근 필수다. 내일은 내 생일이고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하고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조촐한 파티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죄를 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팀장이 던져준 자료를 들고 맹렬하게 일 모드에 돌입했다.
“우와, 현수 씨 군기 바짝 들었어!”
“무서워서 말도 못 걸겠네?”
“아자아자! 강 팀장님 마수에 데미지가 크겠지만 잘 해내리라 믿어.”
얄밉게 한 마디씩 하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
“그나저나 이 자료를 읽어야 하는데, 골치 아프군요.”
“영문 자료라면 비서실 윤예지 씨한테 잠시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 유학파라 아마 단시간에 처리해줄 텐데.”
기획부 방 부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강 팀장은 응접실에서 비서실 윤예지 씨와 같이 영문 자료를 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둘이 같이 있으니까 진짜 그림 된다. 그지?”
옆자리에 있는 소영 선배가 말했다. 나는 왠지 속이 거북해져서 무언으로 동조하고 일에 열중했다. 물론 중간에 친구들에게 못 간다는 전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들은 아쉬워했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내가 못 나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나는 본인의 한계치에 도전하는 미친 집중력을 발휘하며 일을 해나갔다. 너무 집중해서인지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느 덧 퇴근시간이 왔고 팀원들이 하나씩 퇴근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나만 빼고 하나같이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다들 홀가분한 표정이다.
“현수 씨, 먼저 미안하네? 그럼 조금만 더 수고해.”
“네, 조심해서 가세요.”
나는 그들의 인사에 고개를 숙여 반응하고 다시 앉아 일을 계속했다. 집중력이 투혼을 발휘했는지 예상보다 진도가 잘 나가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생각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린 것은.
“김현수입니다.”
ㅡ강문우야.
“어? 팀장님?”
아직 퇴근 안 하셨나? 검토 작업을 아직까지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무심결에 일어나 팀장의 데스크를 돌아보았다. 팀장은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옆에 있던 자료철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ㅡ어이, 자료는 일의 생명이다. 잘 챙겨.
“아, 예.”
대답하면서 나는 눈이 댕그래졌다. 저 남자, 지금 뭐하는 거야?
사무실 밖 창문 앞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강 팀장이 보인다. 못 본 새 새로 안경을 맞춰온 모양이다. 마치 일 때문에 전화하는 것 같은 진중한 표정……인데…….
“갑자기 왜 전화를……?”
ㅡ오늘 저녁 한가해?
“아시다시피 일이 남았는데요.”
제 실수이긴 하지만 덕분에 스케줄에 멋들어지게 펑크가 났거든요. 아기다리 고기다린 생일 모임도 못 가게 됐거든요.
ㅡ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너무 시간 잡아먹지 마.
“네, 저 괜찮은데요.”
ㅡ그게 아냐, 바보. 내일 생일이잖아. 축하해주려고.
“아……, 알고 계셨어요?”
그런 것도 알고 있었나? 전혀 관심 없지 않으신가요? 여자 팀원의 개인적인 프로필 같은 건 말이죠.
ㅡ당연히. 그래서 일을 준 거야.
“예……?”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팀장의 뒷모습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ㅡ첫 축하는 내가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거, 무슨 뜻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일순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 때문에. 분함과, 얄미움과, 그걸 다 합친 것 이상의 달콤함. 심장에 초콜릿을 발라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럼 일 좀 도와주세요.”
그 때 팀장이 빙글 몸을 돌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시선이 스치듯 나를 지나친다. 찰나 보인 것은,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것은 놀랄 만큼 다정한 눈빛.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야.”
사디스트.
나는 푸, 하고 숨을 내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베실배실 웃음기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은 아마도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정한 눈빛과 엇갈린 냉정한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들은 순간, 바로 이 남자에게 반해버렸다는 사실, 말이다.
벌칙 1. Birthday [完]
그간 너무 죄송해서 하나 올려봤습니다. 사과 치곤 참 시시하죠?
원래 이벤트용이었는데 이벤트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서용.
일단 올려놓고 도망갑니다~
댓글 '23'
버져비터
꺅ㄲ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우와 벗기는 즐거움이 있는 사디스트 팀장님이시라니
괴롭힘을 당하고 싶기도 하지만 괴롭히고도 싶(...) 생일 축하 첫번째로 하고 싶단 말은 너무 귀엽잖아요! 뭔가 솔직하지 못한듯 솔직하다는 점이 또 매력포인트S2 밀당에 리듬이 있어 팀장님의 밀당에선 소울이 느껴져여ㅠㅠㅠㅠㅠ현수씨 좋겠다..... 뭐 되게 맥락없이 중얼거리네요ㅠㅠㅠㅠㅠ아 정크님의 오피스물 단편 너무 좋음요 ㅠㅠㅠㅠㅠㅠㅠ [01][01][01]
게다가 [연재] 표시라니, 계속 이어지는 건가요?
공사가 분명하신 팀장님이라니, 언젠가 이 분이 몸이 달아 여주의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0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