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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동네 할인점에 갔다가 우연히 조카 녀석을 봤다.
나랑 8살밖에 차이가 안나는 늙은 조카인 녀석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폭주족 행세를 하고 다닌다.
꽁무니가 하늘로 치켜 올려진 바이크 뒷자리에 여친을 태우고 있던 녀석은 배가 고프다고 밥을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할 수 없이 부대찌게 집을 갔는데 전화가 오더니 친구가 한명 더 온단다. 뻔뻔하기까지 한 녀석.
게다가 나중에 온 녀석은 산적같았다. 시커먼 얼굴에 곰같은 몸집도 그렇지만 먹는 것도 살인적으로 많이 먹어서 진짜 산적이었다.
하도 짠하게 먹어서 지갑에 있던 돈 털어서 주머니에 넣어 줬더니 미안했나 보다. 녀석이 집까지 태워 준단다.
버스로 네정거장 정도의 거리라 걸어가긴 좀 그랬는데 태워준다니까 내심 잘됐다 했다. 근데 자신은 여친을 태워야 하니 그 산적 녀석 뒤에 타라는 것이다.

어쩐지 영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와 싫다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 시커먼 기계 있는데로 갔다. 나는 갑자기 엄청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타나 기계를 확인 못했는데 산적 녀석의 바이크 꽁무니 끝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내 키만큼이나 높았다.
경악한 내 표정도 못봤는지 먼저 올라탄 산적이 왜 안타고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어...이거 어떻게 타는 거냐. 발판도 없구..뒤는 너무 높은 거 아냐?"

다시 한심해하는 녀석의 표정.

"여기 밟고 내 어깨 짚으면 되잖아요."

산적이 시키는 대로 발판 비슷하게 생긴 거 밟고 어깨 짚고 뒤에 탔는데, 허걱, 아까 조카 놈 여친이 찰싹 들러 붙어 있던게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주르륵. 바로 산적 녀석 등에 껌같이 달라 붙게 되는 묘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아...빌어먹을 기계.

산적 녀석은 뭐가 우스운지 주르륵을 몇번 반복하는 나를 보고 큭큭 대다가 괜히 힘쓰지 말고 얌전히 있으란다. 정말 내리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잠깐 참으면 집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이윽고 출발한 그 시커먼 기계는 내가 타본 중에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였다.
급출발 급정거는 기본이고 누울 거 같은 코너링에 신호 무시는 예사였다.
손톱이 부러져라 산적 녀석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게 좀 아팠나 보다.
누구 살 뜯어 먹을 일 있냐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서 또 한번 기겁했다.
별 수 없이 녀석 등에 코를 박고 팔로 허리를 감으면서 든 생각.
'이러면 두리뭉실 뱃살이 다 느껴지겠다. 아...민망해."

진짜 슝하고 날아온 기분이 들게 금새 집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다리에 힘이 다 풀려 버렸다. 표정 관리도 못하고 얼빵한 얼굴로 고맙다고 했더니

"푹신한 거 가슴 아니죠?"

하고는 씽 가버린다.
나아쁜 놈. 지가 보태줬나.

처참한 기분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워 생각하니 조금 재미있었던 것도 같았다.
숑숑 빠져나가는 유연함이 괜히 좋아보인다고 할까 조금 더 탔으면 속도를 즐겼을지도 모르겠고. 내가 쫌만 어렸어도 조카 녀석 여친처럼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아서라 했다.
누구 타보신 분들 계실려나.....

soultj

2004.05.25 07:35:21

저요~아는 오빠한테 부탁해서 타봤어요~^-^

미루

2004.05.25 13:20:30

저 어릴적에 아빠랑? 오토바이를(바이크라고 부르기엔 좀 미니한거지만..^^;) 타본 적이 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빨리 달린것도 아닌데 그땐 그게 어찌나 무섭던지요.저도 타고나서 한동안 손발이 얼얼한 기억이 납니다.^^

꼬맹이

2004.05.25 15:42:51

어렸을적에 하교에 데릴러 오시는 아빠 뒤에 많이 타봤어요^^ 문제는 가끔 오빠가 마중나왔는데..그때는 오빠는 정말 믿을수 없다며 안탔다고 엄청 고집부렸죠 ^^ 그때 제게는 아빠가 안전적인 최고의 드라이버(?)였거든요..

Miney

2004.05.27 14:40:07

저도 역시 아버지께서 모시는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많습니다. 그거 자동차보다 속도감이 있어서 퍽 좋아했었어요. 아버지께서 좀 젊어보이는 축이셔서, 여중 때 교복을 입고 탔다가 날건달 같은 놈들에게 휘파람 세례도 받아본 적도 있다는...^^;

릴리

2004.05.27 23:03:03

로맨스소설의 한 장면을 읽은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저뿐일까요...?

Miney

2004.05.28 01:21:09

릴리/아, 저도 그랬어요. 그 말을 쓰려다가, 옛 생각에 젖어서 잊어버렸다는...^^;; 실은, 밍지님 동생분의 그 '산적'스러운 친구가, 등빨도 좋고 터프한 매력이 있는 연하남인데 밍지님에게 마음이 있어서 저 마지막 대사를 던지고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더랍니다. 고 장면들이 눈에 선해요... 우후~

밍지

2004.05.28 03:59:12

릴리/그런가요? 옮겨 적어서 그렇지 실제 상황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거든요.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기는 했나봅니다. 이젠 뭘 써도 그런 느낌이 나게 쓰는 걸 보니.
Miney/괜히 으쓱. 그러나 엄정한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그려. 비주얼 상 요새의 저는 극악스런 아줌마 모드여서 녀석은 도망가기 바빴을 거라는 생각. 뭐 남녀 주인공의 비주얼을 바꾸면 쫌 그림이 나올려나...

은어

2004.05.29 10:07:24

저두 타보고픈데.... ㅎㅎㅎ
근데 정말 썸씽 없었나요~ 어찌 인연이 닿아야 할듯한 글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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