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어느새 쟤는 내 이름을 이렇게 친근하게 부르게 되었을까, 하고 딴 생각을 해본다.

…….”

입을 다문 나와 달리 의민아저씨는 본제에 들어온 게 반가운 듯 미소를 짓는다.

위화감이 있는 기억이 생각났지? 잘못하면 기존 기억까지 부정확해지니까, 나와 심리 상담을 하자.”

……마치 당신한테 심리학 자격증이 있는 것 같은 말인데.”

아동심리학 들었어.”

의민아저씨는 날 뭘로 보냐라는 눈빛으로 연우아저씨의 딴지를 무시했다.

그런 종류는 전부 그 아가씨한테 맡긴 거 아냐?”

……그 아가씨라는 말 좀……, 아서라. 그만 두자. 암튼, 전문가는 더 전문분야에 깊이 파고들어야 하고, 이런 류를 담당하게 될 것 같아서 일단 수료는 했어.”

경찰은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구나.”

연우아저씨가 남의 일처럼 대꾸하긴 하지만, 사실 특히나 SPDU는 사람이 겨우 두 사람이다. 업무 과중에 분담도 거의 불가능.

……로테이션으로 업무지원 받으니까.”

SPDU는 초현실현상에 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 경찰을 로테이션 형식으로 지원받아 현장을 익히게 한다. 물론 자격조건은 좀 특별하다. 과거 초현실현상에 관련되었거나 접한 전적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실제로 겪은 사람 외에는 믿지 않을테니 어쩔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 그리고보니…….’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특수현상처리반, 설마 나도 모르게 내 미래가 어디로 딸려들어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둘이 아는 사이예요?”

집요한 놈. 나는 모른 척 시선을 피하고, 의민아저씨는 그런 나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일단 설명하게 해줘.”

도훈은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일단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무실로 올라가자.”

의민아저씨는 흘러내리는 파일들을 추켜세우고 외부계단을 향해 걸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도훈이 문득 나를 바라본다.

넌 안 가?”

, 안 가.”

표정은 그걸로 끝이냐 라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새삼 무시하기로 했다. 그는 뭔가 좀 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연우아저씨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난 바빠.

…….”

도훈이 나를 잠깐 지그시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사무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긴 다리가 뒤로 점프한 내 배 부근을 지나갔다.

정신 놓으면 아주 크게 먹을 거야.”

나는 긴장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연우아저씨를 노려봤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나에게 자신의 백분의 일의 힘도 쓰지 않는다는 걸. 그와의 대련은 아주 주의를 요한다. 다른 문제는 신경 쓸 틈도 없이.

 

외부계단 난간에 기대어 있는 내게 생수 한 병을 던져준다. 땀에 홀딱 젖은 나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물병을 익숙하게 받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내가 뚜껑을 틀어 열고 주둥이에 입을 댄 채 시선을 사무실 입구를 향했다.

……그 아이가 이해할까요?”

걱정 마, 저 자식은 이런 일에 익숙하니까. 의외로 논리적으로 상대를 잘 설득하더라. 그것도 재주야.”

그래요?”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앓고 난 후에 유령을 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은 상상의 친구로 주변사람들이 착각했고, 그게 뭔지 또한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점에서는 이들을 만났다. 논리적인 설명 따윈 필요 없었다. 진실은 언제나 보이고 있었으니까.

저라면 안 믿을 거예요.”

그러고도 잘도 바보 취급 했구나.”

나는 슬슬 시선을 피하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없었던 일로 하고 그냥 잘 살아가겠죠.”

그러게 쟤는 왜 집착할까~.”

이제 그만하세요.”

난 이제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래 이제 그만해!”

어느새 다가온 연하언니가 양 손을 허리에 짚고 연우아저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자애 마음은 섬세하단말야. 그렇데 대놓고 놀리면 반발심만 커져서 도훈이만 불쌍해지잖아!”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 이 언니야!

뭔가 알 수 없지만, 네가 더 적나라했던 것 같다.”

연우아저씨는 의외로 본능적인 감은 좋았다. 하지만 평소에 인간의 감정에 대해선 아주 둔감했기 때문에, 연하언니는 연우아저씨의 핀잔을 무시했다.

, 들어가서 차나 한 잔 해. 밤엔 추워.”

연하언니는 내게 마른 수건을 건네주었다. , 내겐 숨기고 싶은 마음 따윈 없다! 나는 아주 너덜너덜해진 기분을 늘어뜨린 어깨로 표현하며 연하언니에게 이끌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의민아저씨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즈음은 자정, 카페는 문을 닫고 뒷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연하 언니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정산을 하고 있었고, 적화아줌마는 속칭 마무리차라고 바 너머 낮은 의자에 앉아서 카모마일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바에 앉아있는 나도 고개를 쭉 빼야 보이는 자리에서 왜 마지막 차를 즐기는 건가 싶긴 하지만, 이게 아줌마의 취향이니 우리는 존중하고 있다.

의외로 이해도가 높아서 살았어.”

헤에, 유령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아니, 가능성은 인정했어. 굳이 유령 이외의 가능성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진짜요? 의외네요.”

정확히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니까, 가능성은 인정하겠습니다. 이러더라고.”

재수 없네요.”

재수 없어.”

사제가 똑같이 그러지 마.”

연하언니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의민아저씨는 바 위에 쌓아놓은 파일 무더기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건 언제 처리할 수 있습니까?”

? ‘그거라면 그거?”

바 안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온다.

달랑 그거 하난데? 부르려면 부를 수 있지만, 일단 연락해 놓을까?”

빨리 처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랑 달리 서두르네?”

“5명이나 죽었으니까요. 5명 째는 아직도 신원을 모릅니다.”

그래, 전부 다 어린애들이기도 하고.”

적화아줌마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내가 연락하도록 할게, 이 사람도 연락이 잘 안 되서 회신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적화아줌마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고, 우리들도 모두 침묵했다.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들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계에 살고 있음을 때때로 화인처럼 뜨겁게 인식하곤 한다. 그저 그것이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님을 안도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그 놈은 어디 있대?”

가끔 생각하지만, 왜 연우아저씨는 전부 반말일까.

미국, 영국, 아님 유럽 어딘가에 있겠지.”

그 자식, 아직도 로밍 할 줄 모른대?”

본인도 할 줄 모르면서 남 말 하지 마!”

연하언니가 핀잔을 준다.

난 네가 해주잖아.”

자랑이다.”

연하언니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젓는다.

일단 음성 남겨 놓을게…….”

적화아줌마가 익숙한 듯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건다. 아마도 곧 음성메일로 넘어간 듯 용건을 남겨놓고 있다.

그 놈한테 제발 톡 좀 깔라고 그래. 그건 나도 할 줄 알거든?”

……그 사람 2G.”

…….”

연우아저씨는 결국 입을 다물긴 했지만, 분위기는 훨씬 밝아졌다. 그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동시에 우리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오늘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확 떨어진 기온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복재킷을 입고 등교한다. 나는 투명한 비닐우산을 통해 하늘에서 톡톡 두드리는 빗방울을 가끔 바라보며 걸어가는 중이었다.

, 역시 가영이구나!”

내 어깨를 툭치며 말을 걸어온 사람은 서현이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등굣길에서 얘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얘긴 다른 방향에서 등교한다는 의미이다. 그냥 놀러가느라 다른 길에 들리는 것과는 다르다.

오늘은 공동수업이지.”

체육?”

나는 영혼 없는 대꾸를 하며 적당히 그녀에게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혹시 그 뒤로 걔 만났니?”

이야기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누구, 도훈이?”

애써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다. 회피해봤자 의미도 없고.

이제 교문 앞에 안 오는 것 같고…….”

글세…….”

아무리 그래도 오작교가 되어 줄 순 없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서현의 얼굴을 보니 그녀가 나에게 뭘 바라는지는 일목요연했다.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는 소리와 어두운 시야. 서현은 내게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길을 걸었다.

요즘 많이 어울리네, 진서현.”

다경이 조금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온다. 나는 젖은 우산을 우산꽂이에 꽂아놓고 다경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내가 은둔형 외톨이마냥 어두운 분위기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최소한 보기엔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꽤 노력하는 편이다. 그 중 다경은 비록 아무것도 얘기하진 않지만 정말 좋아하는 친구다. 왠지 편한 공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다경의 장점이다.

내가 준비한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으면서?”

오늘 주번이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경의 수수께끼 섞인 농담을 넘겼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그래?”

다경이 주변을 신경 쓰며 속삭였다. 바깥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소음과 젖은 옷과 가방 때문에 어수선한 아침풍경 속에서 아무도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겠지만, 다경은 조심스러웠다.

싫은 건 아니야.”

내 미묘한 표정변화를 잡아낸 다경은 질책하듯 내게 말했다.

불편하잖아.”

.”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낸다.

상대방이 아무이유 없이 갑자기 달라붙으면 누구라도 불편해. 아니면 나 모르는데서 둘이 썸이라도 탔니?”

누가 뭘 타.”

반쯤 농담 섞어 내 우울한 기분을 살펴주는 다경이 난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령이랑 엮여서 어쩔 수 없어 라는 말은 때려죽여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겉보기엔 질질 끌려 다니는 게 맞고 속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맞지만, 수영이 사라지고 얼마 후 내게 집착하는 서현의 변화는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도훈에게 급속도록 관심을 보이는 서현.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기억이 되돌아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그것뿐이 아닌 것 같아.’

도서관에서 수영이 내게 상처를 입힌 것은 경고였다. 하지만 서현이 그것에 의문을 갖고 있다면 수영이 실제 이 학교에 있을 때 서현은 얼마나 관여한 것일까. 나는 다경의 농담을 맞장구치며 씁쓸하게 웃었다.

……싶어.”

으스스 냉기가 흐른다. 낯선 목소리가 잘못 찾은 주파수처럼 나의 귓등을 스쳤다. 유령들의 행보는 꽤 시계처럼 정확하다. 때문에 그 목소리는 갑자기 울린 사이렌처럼 내 머리를 깨웠다. 도훈 이후로 처음으로 학교에 추가된 새로운 유령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

내가 얼마나 안일했던가. 나는 내가 두 번째로 죽을 뻔 했던 그 사건 이후로 누군가의 의도로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5명의 학생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도훈은 살았다. 그러니까 난 안일했던 거다.

네가 그 아이구나.”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면서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교실바닥에 뚝뚝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아이.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라서 나타난 걸까. 아니면 그냥 비가 오는 날이라 아무도 그 물웅덩이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생겨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나타난 것일까. 소년은 내 시선을 느끼고 똑바로 날 바라본다. 그 눈이 이미 물고기에 뜯기고 몸이 물이 불어있었지만, 난 그 텅 빈 눈동자를 회피하지 않았다.

미안해.”

가영아?”

미안해, 잊고 있어서.”

이미 충분히 망각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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