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나는 적화 아줌마 손에 이끌려 흥신소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아줌마 품에서 펑펑 울었다.

, , …….”

적화 아줌마는 너무 울어 딸꾹질까지 시작한 내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무말없이 내 등을 쓰다듬는 아줌마. 이렇게 약한 나는 싫은데……. 너무 울어서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이 시큰거린다.

똑똑!

누군가 침실 문을 두드린다. 난 깜짝 놀라서 아줌마 품에 꼭 붙어 고개를 숙였다.

잠깐만.”

아줌마는 몸을 둥글게 말아 움추린 내 등을 안심하라는 듯이 쓰다듬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일단 오늘은 먼저 돌아가렴.”

목소리는 문에 막혀 많이 안 들렸지만 너무 울어서 달아오른 내 귀는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잘 들렸다.

그 애는……, 가영이는 괜찮아요?”

그 아이의 육성으로 내 이름을 듣는 것은 심장이 떨리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화들짝 놀라 다시 몸을 말았다.

괜찮아……. 아니, 괜찮아요.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온 아줌마는 당황하지 않고 정정한다. 이것이 어른의 여유인가. 나는 도저히 도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는 아줌마가 부러웠다.

갔어요.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고, 몸 조리 잘 하라고 말하고.”

그래요?”

아줌마는 잠깐 침묵했다.

그럼 그쪽 이만 가요. 가영이는 우리가 잘 돌볼테니.”

? 하지만, 여긴…….”

괜찮아요, 우린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도훈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후후.”

아줌마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여기서 자고 갈래?”

……?”

넌 지금 자기 집도 아닌데 가영이 가게 사무실에 있는 게 걱정이 되는 거지? 가영이는 아는 사람들이라지만, 가족은 아닌 것 같고?”

나는 너무 놀라 문을 향해 달려갈 뻔 했지만, 자신이 울어서 엉망진창으로 부어있다는 걸 깨닫고 침대 아래로 내린 발을 다시 끌어올렸다.

아줌마 무슨 생각이세요!’

내 초조함은 무색하게 둘은 어쩐지 침묵하고 있었다.

…….”

…….”

어쩐지 분위기가 곤두서 있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잠시 후, 도훈이 말했다.

그럴게요.”

?!’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그래, 그럼 여기 소파 말고는 내줄게 없는데.”

집에 가고 싶어!’

나는 맹렬하게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사무실에 일이 있으니 나중에 올게. 다만 이 문 너머로 들어가는 건 금지! 지금 가영이는 널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알았어요.”

약간 불만이 섞여있었지만, 도훈은 순순히 대답했다.

너 학교는!’

나 혼자 안달복달하며 딴지를 걸었지만, 텔레파시도 아니고 그 딴지는 허무하게 내 안에서 거품이 되었다.

그럼 잠깐만, 가영이한테 얘기하고.”

아줌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는 소리죽여 속삭였다.

아줌마! 왜 쟤를!”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적화 아줌마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살짝 때리더니 나를 입 다물게 했다.

이제 고집 좀 그만 부려. 기억 혼란이 온 애를 내버려 둘 거야?”

…….”

보아하니, 잊어버렸다고 가만히 다 잊어먹고 있을 놈도 아닌 것 같은데.”

……?”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탐색하듯 아줌마를 쳐다보니 아줌마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니들 영화 찍었다며?”

……연우 아저씨죠. 죽여 버릴 거야.”

일단 이길 수 있어야겠지.”

매번 복부를 맞고 나가떨어지는 걸 보는 아줌마다.

연하언니한테 괴롭히라고 할 거에요.”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곧 사무실 쪽 문을 보고 멈췄다. 그런 내 등 뒤를 탁 치면서 아줌마를 말한다.

기특하잖아. 기억도 안 날 텐데, 너 혼자 두기 걱정된다고 집에도 안 가고.”

자기 집은 어쩔 거야. 저 바보.”

하지만, 여전히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은 없다. 나는 다시 침대로 숨어들었다. , 내일 하늘이 무너졌으면 좋겠다. 여기서 안 나가도 되게.

 

들어와.”

아무리 그래도 밥을 굶길 수는 없다고 결국 도훈을 침실로 들였다. 나는 결국 각오를 하고 적화 아줌마를 도와 식사를 준비했다. 결국 얼굴을 마주해야 했지만, 나는 끝끝내 시선을 피했다.

욕실은 왼쪽 방이야.”

나는 손끝으로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훈은 침대 옆에 가방과 재킷을 내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가영아 상 좀 펴줄래?”

지금은 아직 카페 오픈 시간이다. 게다가 저녁 피크 시간대라서 아줌마는 바쁠텐데. 그래도 난 차마 나와 도훈이 둘만 남기고 가라고 할 순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아줌마가 시키는대로 상을 편다. 침대 밑, TV 앞에 상을 폈다.

도와줄까?”

반찬이랑 밥 날라줘.”

나는 도훈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말했다. 도훈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곧 부엌으로 가 식탁 위 반찬을 쟁반에 옮겨 나르기 시작했다.

?”

……?”

밥그릇이 두 개다.

아줌마?”

미안! 지금 바쁘잖아. 둘이서 먹고 치워줄래?”

, 잠깐만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아줌마는 우리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사무실 쪽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

물론 지금은 바쁜 시간대다. 하지만, 적화 아줌마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결국 도훈이랑 둘이 남긴 건 일부로다.

먹자.”

당황해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도훈은 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나는 침대 옆 작은 서랍장 위에 놓인 리모컨을 집었다. 이 조용한 공기가 싫어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뉴스 채널에 멈췄다.

넌 그거 먹고 집에 가. 나도 집에 갈 거야.”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흐르는 방 안,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도훈의 수저가 살짝 멈췄지만, 그는 계속 식사를 지속했다.

안 잡아먹어,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수저를 들었다.

…….”

켁켁!”

말없이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던 난 결국 목이 막혀 가슴을 두들겼고, 도훈은 후다닥 일어나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따라 주었다. 서둘러 도훈의 손에서 물컵을 빼앗아 간신히 숨이 돌아왔다.

그러다 체하겠다.”

……너 때문이야.”

…….”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거렸다. 상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 나 그만 좀 울자. 이런 건 내가 아닌데.

미안해.”

손가락이 망설이듯 내 머리카락을 붙잡는다. 나는 놀라서 움찔 몸을 굳혔다. 어깨근처에서 잘려나간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잘 모르겠는데……, 미안해.”

뭐가.”

난 조금 욱해서 퉁명스럽게 추궁한다.

……그러니까, 그것도 미안해.”

……배어나오던 눈물이 이젠 쏟아진다. 나 좀 그만 울려, 이 나쁜 놈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간신히 저녁을 끝마친 나는 설거지를 서둘러 끝내고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 집은 이쪽이야. 넌 니네집에 가.”

……알았어.”

도훈은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더니 망설이다 결국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난 도훈이 덧붙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겨우 한숨을 돌렸다.

집에 가야 아무도 없는데.’

이런 우울한 기분으로 텅 빈 집으로 가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나도 내일 학교 준비는 해야 한다. 쟤를 여기다 재우고 싶지도 않았다. 도훈의 일상에 지장을 주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바래다줄게.”

?!”

뒤에서 성큼 다가온 도훈은 내 팔을 잡더니 내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뭐야, 간다며! 나는 당황해서 저항할 틈도 없이 도훈의 손에 이끌려 우리집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니 도훈이 아파트 쪽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 너 어떻게 알…….”

!”

넓은 골목으로 나를 끌고 들어온 도훈은 나를 뒤에 물러서게 하고 벽에 붙어 카페 앞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나는 도훈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도훈의 시선을 따라 카페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숨을 들이켰다.

진서현.”

아까 돌아가지 않았나? 서현이 반대방향에서 나타나 카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쟤 날 몰라?”

그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방심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건?”

도훈이 뒤를 돌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쟤를 좋아해?”

…….”

도훈은 괴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내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때 나는 정말 싫다.

친밀한 기억이라도 생각났어?”

이토록 냉정해 질 수 있는 내가, 정말 싫다.

…….”

도훈은 입을 다물었다. 한껏 침묵하던 그는,

물어볼 사람이 너 밖에 없다는 게 정말 싫다.”

…….”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뭔 소리야. 내가 너 바보니? 라는 얼굴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으니, 도훈이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 한숨을 쉰다.

내일 얘기하자. 집 앞에 데려다 줄게.”

나는 골목 저편에 서현이 아직 있는 지 둘러봤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이쪽으로 올라가면 아파트가 있어.”

지금은 사라졌지만, 가다가 서현과 도훈이 마주치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서현은 도훈에 대해서 뭔가 감을 잡았을 수도 있다. 실제 기억은 애매해도 사라진 건 아니다. 반 친구들조차 가끔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데, 정작 서현이 완전히 잊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의 난 내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냉정하지 못했다. 도훈 이외의 요소에 대해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 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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