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본체로 돌아와도 그 바보끼는 어디 안 가는 구나.”

가영은 유령인 주제에 고스트 헌터가 있냐고 묻는 그 천진함을 회상했다. 자신의 앞에서 전제를 무시한 삽질을 한 3번 하더니 어깨를 늘어뜨리고 실망하는 모습이 조금 가여웠다.

아니지, 아니지. 날 보다가 기억이라도 자극받으면 어떡해? 안 그래도 지금 우리학교 교복 생각 난 것 같은데.”

특히 서현이를.’

수영과 서현은 서로 사귀었다. 당연히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을 테고…….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난 쟤 안 좋아한다니까!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선다. 벌써 한 달, 언니는 또 어디론가 떠났다. 텅 빈 집에 들어오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도훈과 만나고 나니 쓸쓸했던 한 달이 생각난다. 언니는 최선을 다해 내 곁에 있어 주었지만, 그것도 길어야 2주였다. 그 이상은 아마도 언니의 상사가 기다려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언니는 화가 났지만 상사와 싸우지 않았다. 겉보기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가슴에 칼을 품은 언니의 강건한 심성은 그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지만, 그런 언니를 키워낸 상사다. 그녀에게는 이길 수 없나보다. 분노하는 언니의 등을 밀어 떠나보낸 것은 나다. 언제나와 같이.

옷걸이 봉 부러지겠다.”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옷장을 연다. 이번에 와서 구멍 난 옷과 피투성이 옷을 보자마자 언니는 말없이 10벌의 교복 상하의를 주문했다.

내가 사겠다니까.”

난 한숨을 쉬며 없는 언니에게 투덜거려본다. 옷장 문을 닿고 서랍에서 운동복을 꺼냈다. 카페에는 가지 않지만, 트레이닝을 빼먹을 수 없다. 그 날 이후로 매일 체력단련 하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여기저기 멍도 늘어나고.”

가을이라 긴팔이니 망정이지, 가정폭력을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특히 복부가 매번 걷어차여 멍이 사라질 날이 없다.

, 멍이 노래졌다.”

이제 없어지려나. 검은 스타킹을 벗으며 생각한다. 벌써 검은 스타킹 신고 다녀야 하다니. 싫으면 잘 피해봐라 등등의 약 올리기 기술이 점점 는다.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처 드셨는지.’

저래 뵈도 그 인간의 나이는……. 관두자, 실제 나이랑 얼굴이 안 맞아 패배감만 는다.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다 보니 Kiss the rain이 흐른다. 내 핸드폰 벨소리다. 나는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아 어깨와 귀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옷을 마저 갈아입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의민 아저씨?”

뒷조사 해달라는 데?”

하아?”

나는 옷을 갈아입다 말고 스마트폰을 고쳐 잡았다.

넌 분명히 자신의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너에 대해서 알아봐 달래.”

이 자식이 살려놨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네?’

살짝 분노를 누르고 대응한다.

그래서요?”

피해자가 요구한다고 개인정보를 덜컥 내놓을 수는 없지만, 또 단서라고 주장하니 조사 하는 척이라도 해야 되거든.”

그 사건 정식 종결 났죠?”

사실대로 말 할 순 없잖아. 게다가 당사자인데, 걔 안다고 5명이 살해당한 사건에 살아남은 피해자라는 거.”

그 사건 공식적으로는…….”

당연히 미결사건이지. SPDU에 정식 종결된 사건이지만 유령이 몸 바꿔 살다가 봉인되었다고 공식 발표 할 수는 없으니까.”

“17살 여자애를 범인 취급 하는 거예요, 그 자식?”

어떻게 잘 대응해봐,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아.”

진지하던 말투가 귀차니즘으로 변형되었다.

, 아저씨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죠?”

난 경찰이니까. 공식적으로 사건 관련된 건 말 할 수 없어.”

……치사하게.”

지금 저 말로 도훈에게 벽이 되겠다 주장하는 거다. 그럼 단서랍시고 나한테 들러붙을 텐데. , 그 물귀신! 살아서도 나한테 들러붙겠다고?

그렇게 부정적일 필요 없잖아. 그 아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야. 잃어버린 2달의 기억을 찾으려고.”

싫어요. 두 번 다시 이런 경험 겪게 할 순 없어요.”

…….”

의민 아저씨는 내 단호함에 입을 다물었다.

일단 사진만 갖고 뒷조사 할 수 없다고 경고는 해 두었어. 물론, 도촬하면 안된다고 타이르기도 했고.”

, 언제 찍었냐…….

조심할게요. 그리고…….”

나는 망설이며 뒷말을 이었다.

……전화해 주셔서 감사해요.”

, 별거 아냐. 그럼.”

.”

내 인간관계는 협소하다. 표면적인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와 달리 레드 플라워 관계자들은 내게 있어 소중한 동료이다. 그들은 날 막내 동생 취급하긴 하지만(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내게 있어 유일하게 내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그들은 소중하다. 고작 3,4년 밖에 안 돼서 아직 어색한 점도 있어, 이렇게 새삼스럽게 예를 표하는 건 쑥스럽다. 나는 살짝 달아오른 열기를 가라앉히며 지그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제 평범하게 살면 되는데, 왜 그러는 거야.’

 

, 가영아! , 도훈이래. 우리랑 같은 학년!”

…….”

왜 거기서 남의 이름을 맘대로 밝히는 거야. 나는 교문 앞에서 노란 재킷의 도훈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서현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서현은 내 눈빛을 뒤늦게 눈치 챘는지 내 기세에 밀려 움찔 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도훈에게서 슬쩍 떨어지더니 내 귓가에 속삭인다. 득의양양한 도훈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난처해하는 내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맘대로 남의 이름을…….”

수상해 보이지 않는 걸. 게다가 주문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잖아.”

거기가 외고라 유명하긴 하다. 하지만 사실 그 학교는 신생 학교에 배경이 종교단체라 그닥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외고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돈 많은 수상한 단체의 학교라는 이미지랄까.

외고라는 것만으로 인성이 결정되지 않거든?”

가영인 꽤 깐깐하구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너처럼 예쁜 애가 이렇게 무방비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새침하게 날 흘기는 모습마저도 귀여운 서현을 보면서 난 한숨을 쉬었다.

맘대로 해라. 난 집에 갈 거야.”

, 그럼 내가 가져도 돼?”

…….”

갖긴 뭘 가져. 얘가 이렇게 적극적인 애였나. 아니 이렇게 가벼운 성격이었나. 내가 놀라서 서현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현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 왠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가게로 가자.”

둘만 같이 있게 하는 위험을 범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둘을 데리고 레드 플라워 카페로 향했다.

…….”

도훈이 카페 앞에 서서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

서현이 갑자기 서서 움직이지 않는 도훈을 향해 물었다.

어디서 본 가게 같은데.”

그럴 리가.”

도훈이 내게 시선을 향했다.

왜 그렇게 단정하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강렬하다. 그 눈에는 의문과 의혹이 강하게 담겨있었다. 아차…….

거의 매일 여기 있거든. 널 본 기억이 없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평온하게 되돌려준다.

네가 무슨 24시간 감시체재로 여기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강한 의혹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일단 흘려버리기로 생각한 모양이다. 가볍게 핀잔을 주고는 카페 문을 연다.

딸랑.

어서오세요.”

문이 열리고 바 너머에 서 있던 연하언니가 손님을 맞이한다. 도훈을 보고 그 뒤에 나와 서현을 보고 미소가 짙어진다.

어머, 가영아! 친구들하고 같이 온 거야?”

연하언니는 도훈이 얼굴도, 서현이 얼굴도, 물론 수영의 얼굴도 모른다. 살짝 굳은 내 표정을 보고 조금 의아함을 표시했지만, 미소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수영인 둘째 치고 도훈의 실제 육체를 본 연우 아저씨의 표정은 달랐다. 여전히 바에 있는 의자에 홀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는 도훈의 얼굴뿐 아니라 서현의 얼굴도 알고 있다. 그는 완전히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즐겁냐! ?

!

그런 그의 뒤통수에 연하언니가 손목의 스냅을 날렸다.

가영이가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언니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 서비스다! 뭐 마시고 싶어?”

나는 손을 흔들었지만, 도훈과 서현이 신나게 메뉴를 주문했다.

전 녹차라떼요!”

, ……, 레드 플라워 브랜드 이건 뭐죠?”

연하언니는 싱긋 웃으며 메뉴를 설명했다.

허브차를 우리 카페 특제 브랜딩 한 거야.

, 그럼 전 그걸로 주세요.”

그래! 그럼 자리 잡고 기다려줄래? 갖다 줄게.”

먼저 가. 내가 갖고 갈게.”

난 도훈과 서현에게 손을 흔들고 그들이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한숨을 쉬었다.

기억 자극 주는 게 싫다며?”

연우 아저씨가 눈앞에서 깐족거린다.

수영이가 우리 카페에 온 적은 없으니까, 자극될 기억이 없어요.”

호오, 그건 그렇네.”

연우 아저씨가 새삼 감탄한 눈으로 날 보는데, 여전히 그 눈은 장난끼 가득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연하언니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핀잔을 준다.

그만해!”

연하언니는 도훈과 서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흐응, 그러니까 쟤가 도훈이구나? 생각보다 괜찮게 생겼네.”

……제발 언니까지 그러지 말아주세요.”

언니는 내 지친 목소리에 금세 목소리의 기세를 꺾으며 속삭였다.

아니, , 살아있고, 잘 생겼고, 호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연하언니까지……. 다들 왜 그렇게 도훈을 이 세계로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 난거지?

뼈는 잘 붙었나보네. 역시 아직 십대라 회복 속도는 발군이야.”

이 인간은 뭘 보고 있는 거야.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연우 아저씨를 바라봤다.

요샌 투시도 하세요?”

원래 했는데?”

!

바로 언니의 스냅이 날아온다. 요즘은 연우아저씨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만 놀고 일해. , 레드 플라워 브랜드야.”

! 거긴 또 언제 앉아계셨어요, 적화 아줌마! 요즘 기척 없애는 기술을 배우시나. 어느새 옆에서 특제 브랜드를 만드신 아줌마는 바 위에 차를 내려놓았다. 우리와 잡담을 나누면서도 어느새 녹차라떼를 휙휙 만든 언니가 그 옆에 내려놓았다.

전 그냥 민트차로 주세요.”

나는 쟁반에 두 컵을 옮겨 담으며 메뉴를 주문했다.

 

…….”

…….”

도훈은 손가락 장난을 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고, 서현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것들은 뭐 하는 거지?’

난 쟁반을 든 채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를 발견한 도훈이 반가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서 와.”

쟁반을 받아들고는 숨 막힌 분위기에서 빠져나온 한숨을 쉬었다. 겉보기엔 둘 다 적극적으로 보였지만, 내가 빠지자마자 둘은 대화가 막힌 모양이다. ……날 갖고 놀지 않으면 얘기가 안 되는 거냐. 솔직히 나도 서현이도 도훈이 옆에 없었으면 한다. 둘 다 도훈이의 잠재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나는 진짜 도훈을 알고 있기에 솔직히 살짝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계심이 옅어지지만, 나 역시 수영이가 움직인 도훈의 육체의 기억에 남아있다.

알아, 이건 좋지 않다는 걸.’

그래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분명히, 서현은 수영이 일으켰다고 생각되는 최면의 일부였다. 그녀 역시 수영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수영을 협박하는 재료가 되었다. 서현은 진짜 도훈의 모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현은 도훈에게 끌리고 있다. 분위기가 그렇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도훈과 서현이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둘만 남긴다면 그 분위기에 수영이 남긴 잠재기억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나까지 가세하면 나와 관련된 기억까지 되살아나는 건 아닐까. 둘이 있는 게 싫다고 카페까지 끌고 와서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저 바리스타 언니랑도 되게 친한가 봐. 친언니?”

, 아냐. 그냥 동네 언니?”

그렇구나.”

서현이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얘는 도훈이보다 나한테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은데.

,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

화장실은 네 뒤쪽이야.”

, 그렇구나. 고마워.”

서현은 도훈과 나를 남겨두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

…….”

나와 도훈은 아까 도훈과 서현이 하던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둘이 되니 대화가 좀처럼 쉽게 터지지 않는구나.

이 동네 살아?”

? .”

아까 연하언니를 동네 언니라고 말한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 본 적 정말 없어?”

……그 말, 서현이한테도 했었지?”

처음, 그러니까 어제 교문 앞에 만났을 때도 말했지? 내 기억이 좀 없다고.”

, 그랬었지.”

나는 짐짓 흥미가 없다는 듯이 애매하게 대답했다.

근데 꼭 기억해내야 하는 거야?”

나는 그가 없어진 기억에 집착하는 게 답답해서 덧붙였다. 그러자 도훈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

왜 기억이 없냐고는 묻지 않네.”

왜 기억이 없어?”

…….”

이쯤 되면 뻔뻔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도훈은 틈을 봐 내게서 정보를 끌어내고 싶어 했던 것 같지만, 나 역시 도훈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이 정도 뻔뻔함은 얼마든지 철판 깔 수 있다.

민트차 왔어요.”

도훈의 침묵을 깨고 연하언니가 발랄하게 서빙을 해온다.

그럼 재밌게 놀아?”

언니는 나와 도훈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작업대로 돌아갔다.

나 한강대교를 걷는 꿈을 꿔.”

……?”

내가 조용히 의문을 표시하자, 도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짙은 안개가 낀 밤에 한강대교를 걷는데, 늘 물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

…….”

……그리고 그건 너무 생생해서 꿈이 아닌 것 같아.”

설마…….’

그러니까 난 기억을 되찾고 싶어.”

…….”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이미 늦었다. 도훈은 이미 시체를 버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 짓지 말라니까.”

도훈의 손가락이 내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다. 내 뻔뻔함은 그 아이의 괴로운 기억과 함께 덧없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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