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3.살인의 기억

 

나는 어찌된 일인지 서현과 친구가 되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 혼란스러워하던 서현은 곧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의 그녀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수영 소실의 반발일 수도 있다. 그 일에 관해서 관련이 전혀 없지 않은 나는 그녀에게 휘둘리면서 그녀와의 관계에 질질 끌려들어갔다.

그게 네 나쁜 점이야.”

여느 때와 같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연하언니에게 핀잔을 들었다. 되돌려 줄 말이 없어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쉰다.

난 네 그 우유부단함이 딱 질색이야.”

……딱히 우유부단하지는.”

우유부단해.”

나는 연하언니에게 받은 민트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딱히 그녀가 내 태도에 화가 난 건 아니다. 다만, 아마도, 확실히, 100퍼센트 과거 누군가가 우유부단했겠지. 나는 여기 없는 연우 아저씨를 원망하며 속으로 또 하나의 한숨을 삭혔다.

그게 아니라,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그래요.”

뭐가?”

연하 언니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내게 대꾸했다. 나는 바 위에 턱을 괴고 반쯤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분명 수영은 서현이에게는 보였을 거예요. 생전 인연이 있지 않는 한 유령은 자신을 볼 수 있는 자에게 집착하죠.”

생전에 인연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그 아이가 뭘 보는 건 사실이에요. 근데……, 뭘 보는지 모르겠어요. 도훈이도 봤던 거 같긴 한데, 또 그게 애매하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아주 골치 아파 죽겠다.

…….”

잠시 대화가 멈춰 고개를 갸웃하다가 내가 도훈의 이름을 꺼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차했다. 그러나 연하언니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내놓았다.

“6번 테이블이야.”

나는 말없이 쟁반에 커피를 담아 6번 테이블에 날랐다. 도훈의 화제를 꺼내는 걸 싫어하는 건 나다. 그런 나를 눈치 챘으니까 말이 나왔어도 연하언니는 모른 척 내게 서빙을 시킨 것이리라.

생각하지 말자.’

마음에 뚜껑이 있다면 나는 그 기억을 통째로 뚜껑을 닫아 가장 깊숙이 처박아 두었다. 그것도 학교와 집, 심지어 카페까지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지울 순 없었지만, 어쨌든 난 최대한 노력해서 그 기억을 지웠다. 그 딴 자식! 그런 놈! 그런 애…….

맛있게 드세요.”

노트북을 켜고 작업 중이던 남자는 교복을 입은 내가 서빙을 하니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곧 살짝 목례를 하며 커피를 받았다. 나는 쟁반을 껴안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르바이트 비를 받을까.’

이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유령에게 단호할 수는 있지만, 사람에게는 단호할 수 없었다. 특히 그 아이에게서 남자친구를 빼앗은 것은 나나 다름없으니까. 서현은 마치 수영이 없는 자리를 메꾸듯 나에게 매달렸다. 그게 곧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난 눈치 채야 했다. 그 아이가 내게서 무언가를 탐색하려는 것이었음을 난 눈치 채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기에는 그 아이에 대한 부채감이 너무 컸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으니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내 과거를 보는 것 같은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 난 눈치 채는 것이 너무 늦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눈치 채기 전에 그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하교 중, 교문 앞에 수근거렸다. 교문 앞에서 시작한 수근거림이 교실까지 전달되었다. 내가 가방을 챙겨 교실 밖을 나오니 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중까지 같이 가자.”

……그래.”

나는 저항할 의지를 잃은 채 서현에게 붙들려 학교 건물을 나섰다. 그러자 교문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서현이 말했다.

글쎄?”

내가 답했다. 우리 둘은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려고 아이들 사이에 있는 화제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그 화제가 아이들을 제치고 우리들 앞에 섰다.

!”

그 아이는 나를 지나쳐 서현의 앞에 섰다.

강도훈.’

이 순간 그가 서현을 바라보는 게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혹시 너 나 아니?”

짙은 노란색 교복 재킷, 왼손 가슴팍에 화려한 검은색 자수가 주문이라 쓰여있다. 주문외국어고등학교, 참 화려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구나. 살아있는 도훈의 체격은 제법 컸다. 나는 머리 하나는 더 큰 도훈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거의 뒤에서. 그 아이의 눈에는 오로지 서현만이 비추고 있었다.

누구……?”

서현은 어리둥절하며 소년의 시선을 받았다.

, 역시?”

도훈은 실망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 신경 쓰지 마.”

도훈은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힘없이 발길을 돌려 나를 무심히 지나쳐 가버렸다. 내가 그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니, 서현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괜찮아?”

나는 여전히 도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

, 울 것 같은 표정이야.”

……괜찮아.”

내 목소리는 전혀 괜찮은 것 같지 않았지만, 서현은 굳이 추궁하지 않았다. 다만,

헌팅 치고는 좀 이상하지?”

170이 넘는 키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서현은 학교 밖에서도 인기가 제법 있는 소녀다. 이런 식의 헌팅은 드물지도 않은 듯. 물론 이건 헌팅이 아니었겠지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

난 서현에게 얼굴을 들지 않은 채 카페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아직 평정심이 돌아오지 못한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훈의 행동이 이상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제일 처음 의민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혹시 도훈이 뭐 이상한 거 있어요?”

다짜고짜 전화해서 무슨 말이야?”

우리 학교 앞에 서 있었어요. 도훈이, 뭔가 기억 난 거 아니에요?”

뇌에 기록되지 않은 건 기억하지 못해. 그건 생리적인 이유로 확실해.”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럼……, 그럼 수영이로써 움직였던 기억은요?”

……딱히 뭔가 자극하지 않으면 그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을 텐데.”

우리학교 교복만 봐도 자극이 되겠죠.”

그것까지는 내가 막을 수 없잖아.”

아저씨! 수영이가 뭘 했는지 몰라서 그래요?”

……사람을 죽였지.”

…….”

넌 어떻게 하고 싶니? 걔가 뭔가 기억해내기 시작했다면, 그냥 데려와서 설명해주는 게 제일 간단한 일이야. 그 기억은 네 기억이 아니라고.”

난 그 아이를 두 번 다시 이쪽에 끌어들이기 싫어요.”

누군가를 죽였다는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

내가 입을 다무니, 수화기 저편에서 한숨이 들려온다.

조금 두고 보자. 다시 보면 어떻게 말이라도 걸어봐.”

난 더 자극될 걸요. 기억 안 나요? 수영인 날 공격했었고, 정면으로 치고받았다고요.”

, 어쨌든 두고 보자고. 나중에 꿈이라고 최면이라도 걸던가.”

의민 아저씨는 그다지 큰일은 아니라는 듯이 대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서둘러 카페를 향하던 다리를 멈추고 망연자실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날 아는구나?”

사각에서 날아온 목소리에 난 쭈삣 소름이 돋았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내 곁에 선 그 아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아려온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우물거렸다.

, 저기…….”

그러나 서슴없이 내 뺨에 손을 댄 도훈은 억지로 내 고개를 자신에게 향하게 힘을 줬다. 내 눈동자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그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나는 도훈의 손에서 내 얼굴을 빼 내 재빨리 눈 가를 훔쳤다.

난 쟬 안 좋아해. 난 쟬 안 좋아해. 부탁이야, 제발 내 심장아, 좀 멈춰!’

나는 마음속으로 내 심장을 쥐어짜며 감정을 죽이고 마음을 죽인다.

미안해.”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게 사과를 하는 거야? 도훈은 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웃어 보인다.

이제 내 얼굴을 보는 구나?”

…….”

난 도훈에게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어 여전히 우물거렸다.

이상하게 요 몇 달 간의 기억이 거의 안 나. 혹시 내가 널 모른 척 해서 상처 입혔다면 미안해.”

도훈은 쑥스럽다는 듯이 뒷목을 긁적인다. 살아있는 도훈은 유령과는 다른 압박감을 준다. 온기, 향기, 숨소리까지…….

심장에 나빠.’

나는 속으로 헉헉거리며 도훈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졌다.

, 저기……. 뭔가 잘못 안 것 같은데, 난 널 모르는데.”

도훈이 웃으며 대꾸한다.

거짓말.”

단칼에 잘라내는 말투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훈은 내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통화하면서 내 이름 말했잖아.”

유령 땐 바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딴지를 걸고 말았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그에게 묻는다.

너 이름이 뭔데?”

기분 탓인가 도훈의 미소가 순간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일순 답할 말을 잃어버렸는지 얼어붙은 도훈을 내버려두고 나는 그 옆을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가슴이 아렸는데, 오랜만에 가벼운 말다툼을 하고 나니 따뜻한 미소가 새어나온다.

이걸로 됐어.’

그래, 저 아이가 멀쩡히 살아서 걸어 다닐 수 있다면, 날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 나는 방금까지 아팠던 가슴을 달랠 수 있었다.

, 잠깐!”

도훈은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럼 통성명부터 하자.”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유령이든 아니든 넉살은 여전히 좋구나.’

나는 좀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물어보면 넌 네 하고 순순히 말할 거니?”

…….”

이제는 아주 쾌감마저 든다. 유령일 때 그한테는 어쩐지 당해내질 못했는데. 나는 속으로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번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형사님,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하셨죠?”

…….”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를 수상하게 여기는 여자애에게 신원보증을 해주세요.”

하아?”

, 받아봐.”

나는 도훈이 내민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주가영?”

왜 슬픔 예감은 틀리질 않나. 딱 의민 아저씨가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민 아저씨에게 걸어댔다. 방금까지 내 핸드폰으로 통화하던 상대를 이번엔 도훈이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다. 수초 전에 통화한 상대의 목소리를 잊을 리가 없지. 나는 모른 척 대응했다.

, ……. 저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이런 장난 전화 하지 말아 주세요.”

……니들 뭐하냐?”

내가 할 말이라고요! 나는 의민 아저씨의 반응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 뭐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전화를 받고 신원보증을 해준다면 아 그렇구나 할 것 같니?”

…….”

도훈은 다시 멈칫하고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의 지갑을 꺼내 명함 하나를 들이댄다. ……의민 아저씨 명함이다.

여기 있잖아. 서울시경 경감 권의민. 네가 직접 걸어봐.”

네가 만들어서 다른 사람하고 짜는 줄 어떻게 알아?”

소용없다, 강도훈. 나는 수상한 사람에게 절대 넘어가지 않아. 난 도훈의 행동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뭘 믿고 개인정보를 가르쳐주겠나 하는 심정이다.

넌 거기 딱 서서 나 따라오지 마. 나야말로 경찰에 신고해 버릴 테니까. 너처럼 명함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112.”

…….”

이번에야 말로 안 되겠는지 도훈은 내 뒤를 쫓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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