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가영이 의민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리고 너도 알거야.”

?”

사진을.”

가영이 의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민은 탁상 위에 덮어져 있던 파일을 펼쳤다. 파일 안에는 고등학생 남녀 커플이 찍혀 있었다.

얘들은…….”

사진에 찍혀 있는 인물들은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진서현, 민수영.”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 역시 너 한테는 그렇게 보이는 구나.”

?”

사진은 달라, 영능력자가 찍지 않는 한 사진은 실물이 찍히게 되어 있어. 너한테는 지금 얘들이 서현이와 수영이로 보였다면, 넌 학교에서 수영이의 얼굴을 실제 몸의 얼굴로 봤다는 얘기야.”

그게 무슨…….”

나한테는 지금 사진에 서현이와 네가 찍혀있거든.”

?”

나는 다시 사진을 들여다봤다.

이게 나라고?”

그러니까 의민아저씨가 확신한 거야. 네가 살아있다고.”

아니, 잠깐. 학교에서는 어떻게 된 거야. 넌 나와 수영이를 둘 다 동시에 봤잖아. 근데 넌 왜…….”

나한테는 너와 수영이가 다른 얼굴로 보였어.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도 다르게 봤을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영력이 있으니까, 수영이의 실제 혼의 얼굴이 보였던 거지만. 왜 애들까지 그렇게 봤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니면 50일 간격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계속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데 위화감을 못 느낄 리 없거든.”

……. 학교라는 건 좀 특수한 공간이니까. 가능했을 지도 모르지.”

정민이라는 여성이 말했다.

어쨌든, 그러니까 얘는 민수영이예요. 같은 이름을 계속 썼으니 본명이 맞을 거라 생각해요.”

가영은 정민을 향해 말했다.

민수영, 알았어. 준비 들어갈게. 당신은…….”

고등학생 실종자 및 사망자를 검색해 볼게. 자세한 인적 사항이 필요하겠지?”

. 생각보다 독특한 유령인 것 같아. 만일에 대비해서 조사해 줘.”

그럼 이제 어디로 유인해서 잡느냐인데…….”

외진 데로 유인했으면 좋겠어. 영혼을 바꾸는 진은 복잡하고 좀 커서 그냥 쫓아내거나 봉인하는 거랑은 틀리게 주목받기 쉬워.”

정민이 은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고민에 잠겼다.

불특정 다수의 혼 중에서 소환할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 단계가 줄어서 좋지만, 그래도 축소하기 어려울 거야.”

이쯤 되면 혼잣말이다. 혼자 주술에 관해 중얼거리기 시작한 그녀를 내버려두고 의민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9월인데 무슨 학교 행사 없니, 가영아?”

그리고 보니…….”

가영이는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고 생각에 잠겼다.

학교 축제 같은 거 있으면 소란스러울 때 잡으면 좋은데.”

수학여행이 있어요. 아마, 강원도였던 거 같은데, 나중에 안내문 찾아서 갖다 줄까요?”

그럼 고맙겠다. 날짜는 언제지?”

“2주 뒤에요.”

정민아, 혹시 이 지역에서 떨어지면 불가능하니?”

? 혼령 소환도 필요 없고, 장소는 강원도라도 상관없을 거야. 다만, 이 아이가 거기까지 이동할 수 있어야겠지만.”

정민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문제 없을 걸요?”

나는 살짝 의문형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여태 이동에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다. 특히 가영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가영이가 곁에 있다면 나는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단 한나절 떨어져있을 때 실감했다. 치밀어 오르는 산자에 대한 분노,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난 그 실감보다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이 아직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잠깐, 손 좀 줘 볼래?”

혼자 생각에 빠져있던 정민이 내 손을 잡았다.

……!!”

나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과 내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온기가 느껴지는 손은 척추를 따라 달리는 짜릿한 감동과 함께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자인에게 두들겨 맞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행이야, 아직은 안정적이야. 날짜를 봐서는 2주 정도는 괜찮을 것 같긴 한데……. 혹시, 따로 정신을 다잡는 방법이 있어?”

나는 조금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2주라는 시간이 너한테는 좀 길게 느껴지겠지만, 참아줘. 미안, 주술용품이라는 게 소비재라 다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거든. 장소도 강원도로 수학여행이라면 더 나은 것 같아, 도시보다는 영력을 쓰기 훨씬 편한 지역이고.”

그녀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처음으로 내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살고 싶어졌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괜찮아?”

회의가 끝나고 각자가 할 일을 위해 돌아갔을 때, 가영이 멍하니 계단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내가 앉은 다락방 계단 옆 침대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 손을 만진 건 처음이야.”

나는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하던데.”

……그건 만졌다고 하지 않지.”

나는 좀 화가 나서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가영은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기분 좋았어? 완전 정신이 나갔던데?”

, 엄마가 보고 싶었어.”

가영은 살짝 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시무룩하게 물었다.

엄마……, 기억 나?”

아니, 근데 엄마가 이런 느낌인 것 같다는 기분은 들어.”

에잇!”

가영이 갑자기 내 손을 쳤다. 물론, 그녀는 내 투명한 몸을 통과할 뿐이다. 나는 그녀의 무의미한 몸짓에 갸우뚱했다.

, 역시 난 안 되네.”

그녀는 조금 침울해졌다.

유령한테 얽히기 싫어했잖아. 다행이지 않아?”

가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 기겁해서 뒤로 물러섰다.

……어중간한 것도 싫어.”

어쩌라는 건지.’

나는 침울한 가영의 모습이 싫었다.

이제 2준가?”

나는 몸을 쭉 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 이제 2주네.”

가영은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

“2주 후면 이제 너도 나 볼일 없겠네.”

보면 보는 거지, 왜 못 봐?”

, 이렇게 고생했으면 됐지, 뭐하러 봐.”

난 별로 고생한 것 같지 않은데.”

, 나 만나기 전까진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으니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었겠지.”

!”

, 사실이잖아.”

가영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난 널 꼭 보러 올 거야.”

난 이 아이가 웃는 모습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이 아이는 나를 굉장히 편하게 대한다. 나는 그게 괜히 화가 났다. 가영은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지? 그렇게 살아있는 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허상인 자신보다 살아있는 너의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그래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어. 나는……, 우리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게 좋아.”

안 잊어.”

…….”

가영은 내 단언에 놀랐는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 숨 더 자는 게 좋아.”

사각에서 다른 목소리가 날아온다. 우리 둘은 깜짝 놀라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우가 우리 둘을 바라보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녁에 깨어 줄게. 아직은 몸이 안 좋을 거야.”

나는 가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영은 몰래 먹을 거 먹다 걸린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 진작 말하지, 왜 나랑 얘기하고 있어?”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었으니까.”

가영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뭔가 중얼거렸지만, 나한텐 들리지 않았다. 다만, 연우가 하고 웃었고, 가영이 눈이 튀어나오게 그를 째려봤다. 나보다 먼데 그걸 들었단 말야?

 

월요일 아침, 가영은 같은 독서부 소속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죄와 벌> 다 읽었어? 낼 토론 뭐라고 할 거야?”

이 학교는 매 주 화요일 동아리 활동이 있다. 물론, 내가 보기엔 그렇게 적극적으로 학교 지원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가영이 활동 중인 독서부는 딱히 회지를 내는 것도 아니라 고문 선생의 출석 체크로 동아리 활동의 의무는 끝인 모양이었다. 물론, 운동부 영역은 또 다른 것 같았지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 더 낫지 않아? 읽어보니 이 소설 진짜 싫던데.”

가영은 조금 삐쭉하니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이번 독서 토론의 주제는 도스또예프스끼인가 보다.

이건 길잖아. 게다가 그 작가 다 안 쓰고 죽었고.”

그럼 짧은 거 읽지 그랬어.”

읽다가 만 거니까 더 쉬울 줄 알았지. 게다가 자유 선택이지만, 애들이 다 빌려가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럼 그냥 구립도서관에서 빌리면 될 걸.”

그건 싫어, 멀고 귀찮은 걸. 넌 자주 가니까 잘 모르겠지만, 사실 거긴 위치가 안 좋아.”

우리 집에서도 걸어서 두정거장 쯤 되거든?”

그러니까 용케 잘도 다녔다.”

학교보다 많으니까. 이용하다보면 편리해.”

둘은 당장 내일로 다가온 동아리 과제 때문에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다가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에 친구 쪽은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근데 이 학교 벨소리…….

주차하는 것도 아니고, ‘엘리제를 위하여는 뭐냐.”

수업 벨이 울렸기 때문에 가영은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은 지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살짝 화가 난 것 같은 게 아무래도 왜 하필 수업시간에 말 거냐 라는 표정이다. 쉬는 시간은 네가 네 친구랑 놀았잖아.

 

매일 들은 주제에 새삼스럽게 왜 딴지야.”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도서관에 온 가영은 서가를 서성이며 속삭였다.

여태는 귀에 안 들어왔어.”

가영은 나를 힐끗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끼익.

학교 도서관은 생각보다 책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이용학생도 많지 않다. 그리고 도서관 바닥은 나무가 아니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안 가영은 몸을 굳혔다.

끼이익.

책장은 천천히 가영을 향해 쓰러졌다. 가영은 천천히 쓰러지는 책장을 피해 바닥에 웅크렸다. 다행히 이 도서관은 책장 폭이 좁았고, 벽에 걸려 완전히 쓰러지지 않은 끝 책장과 함께 모든 책장이 각도가 크게 쓰러져 그 사이에 숨은 가영이는 깔리지 않았다. 다만, 엄청나게 쏟아지는 책들에 부딪쳐…….

가영아!”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데 신경 꺼. 이건 경고야.”

내가 고개를 들렸을 때, 그는 이미 몰려드는 학생과 선생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보이는 건 뒷모습뿐이었다.

애가 깔렸어요! 여기 도와주세요!”

남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책장을 하나하나 일으키면서 책무덤에 깔려있던 가영을 끌어냈다.

가영아, 너 머리가!”

가영은 내 말에 머리를 만져본다. 한줄기 피가 가영의 귓가를 따라 흘러내린다.

꺄아!”

우아아!”

흘러내리는 피에 당사자보다 주변사람들이 더 놀라서 호들갑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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