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

…….”

…….”

나와 연하언니가 멍하니 깨닫고 있을 즈음, 유일하게 무반응인 연우 아저씨. 그래, 아무래도 좋겠지.

그럼, 그 얘기 경찰에 해야 되는 거죠.”

…….”

적화 아줌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처음부터 그냥 아저씨한테 물어봤으면 간단했겠죠?”

나는 그녀의 시선을 견디며 시무룩하게 답했다. 그녀는 바를 들어 올려 나오더니 나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의민군에게 물어볼게. 관련이 없어도 정보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거야.”

…….”

괜찮아?”

?”

나는 누군가의 질문에 익숙하게 고개를 돌렸다. 세 명 중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세 명 중 누구도 이런 식으로 내게 되물을 사람은 없었다. 기묘한 위화감에 고개를 돌린 곳에 이 장소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 아니라 유령이 있었다.

!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머리털이 쭈삣 서는 경험을 했다. 내 상식을 완전히 부수고 나를 혼란상태로 만든 그는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적화 아줌마가 갑자기 변한 내 기세에 의아해한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그럼 죽은 애에 대한 정보 물어봐 주실거죠?”

? 으응.”

그럼 오늘은 이만! 생각해보니, 오늘은 언니한테 전화가 올 거예요. 집에 없으면 걱정하니까.”

그래?”

그럼, 연하언니! 연우아저씨! 적화아줌마! 저 먼저 갈게요.”

나는 꽁지에 불붙은 마냥 카페를 뛰쳐나왔다. 카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달려 나와서는 멈춰 섰다. 어느새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 있었다. 나는 아파트 구석에 있는 인적도 드물고 장소도 협소하지만, 벤치가 놓여있는 작은 쉼터에 가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너 어떻게 카페 안으로 들어왔어!”

그는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거기에 의문문?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다시 물었다.

혹시 너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아냐? 사실 유령도 아니고 뭔가 다른 생물체라든가.”

그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젓는다.

뭐가 있어야 거짓말을 하지. 네가 나보고 유령이 아니라고 하면 난 네 말을 믿는 수밖에 없어. 나 유령 아니야?”

, 머리 아파.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용량 초과야.”

이건 절대로 내 선에서 해결 되는 사항이 아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일단 잘래.”

어라? , 저기…….”

그가 당황해서 날 붙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머리 속을 비우기 위해 밥이고 뭐고 내일 쉬는 날이고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아마도 기력이 약해져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아이는 희미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아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싫어 움찔, 그 아이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나보다 언니가 좋아?”

…….”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아마도 내가 좀 더 컸다면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가영이는 나보다 언니가 좋구나?”

그 아이는 짓궂게 내 마음을 찔러온다.

속지 마!’

내가 어쩔 수 없는 장면이 멋대로 흘러간다. 진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언니는……, 언니니까.”

나랑 놀지 않을 거야?”

그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언니한테 혼날 거야.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이야.”

그 아이는 내 손을 잡는다. 어린 나는 그 아이의 손이 차갑다고 느껴졌지만, 그 아이가 싫어할까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그 아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자꾸 짜증나게 굴 거야?”

아이에게서는 아이답지 않은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였지만, 어린 나는 그저 움찔 좋아하는 그 아이가 자신을 싫어할까 몸을 움츠릴 뿐이다. 아이는 그런 내 모습에 살짝 당황하고는 다시 친근하게 말한다.

미안, 그럼 할 수 없지. 난 이만 갈게.”

살짝 토라진 표정이 따라온다. 어린 나는 조금 초조해진다. 멀어져가는 그 아이의 소매를 붙들고 만다.

잠깐이야?”

아이가 어린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럼! 잠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막 잠에서 깨어난 난 놀라서 격렬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가슴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난 그 아이의 비열한 미소 따윈 본 적 없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결과가 반영된 꿈이다.

…….”

그저 꿈일 뿐이다. 그런데 그때의 그 배신감이 꿈에 이어 현실에서 다시 되살아나버렸다. 나는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을 느끼며 숨죽여 흐느꼈다.

 

다음날, 나는 등산화를 신고 버스를 탄다. 커다란 배낭에 물병과 에너지바 몇 개를 넣고 걷는다. 몇 정거장을 흔들리다 북한산 입구에 내리면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가벼운 기분으로 모여 웅성거린다. 살짝 들떠있으면서도 익숙한 공기가 세계 인구밀도 1,2위를 다투는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산답다. 평일에도 결코 한가하지 않는 서울의 북한산은 주말이 되면 더욱 바쁘다. 나는 신발 끝을 바닥에 툭툭 치며 적당히 조여져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익숙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반년만이구나.”

이 길은 초보자용 길이다. 물론 방심할 순 없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발을 옮길 수 있는 길이다. 입구는 여러 사람이 다녀 길이 나있고, 조금 오르기 시작하면 돌도 박혀있고, 중간 중간 쉴 수 있을 만한 좁은 공터도 있는 오르기 쉬운 길이다. 나는 오랜만에 온 길이지만 이미 꾸준히 다닌 길을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반년 만이라고 하지만, 내 몸과 다리는 내 머리에서 내리는 명령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

2년간 난 체력이 급격히 늘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느리게 산을 오르던 나는 정상을 남겨두고 멈췄다. 커다란 바위에 엉덩이를 걸터앉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스윽 시선을 돌린다. 등산로 옆 바위 위에 소원을 빌 듯 돌멩이가 쌓여있다.

그래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오지 않기를 빌었지.’

우리나라 산에는 흔히 있는 돌탑이다. 어느 곳에는 하늘에 닿을 듯이 쌓아올린 돌탑의 무리가 있지만, 어느 곳은 조약돌이 3단도 쌓이지 않고 무너지기를 반복한 장난 같은 수많은 작은 돌무덤이 늘어져 있는 곳도 있다. 지나가는 행인이 어느 순간 내켜서 쌓으면 그냥 생기는 것이 돌탑이다. 하지만, 저 곳에 있는 돌탑은 특별하다. 그 돌탑이 쌓여있는 그 커다란 바위 밑에는 악령이 봉인된 채 묻혀있다. 내가 묻었다. 나만이 알고 있다. 그것의 많은 피해자가 있었겠지만, 그것의 최후의 피해자는 나였다.

아주 질이 나쁘고 강한 힘을 가진…….”

지금의 그와는 차원이 다른 악령이었다. 내가 목숨을 건진 건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령과 인연을 끊지 못하는 나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지도 않았지만…….

돌아가자.”

나는 시리게 파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가 보면 그저 평범한 돌탑에 불과한 그 숲 속의 광경이 나에게는 음침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내 눈을 소독한다.

잊지 마, 주가영. 그건 너만의 상상이야.”

보이는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유령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지 못한 이유, 그러지 않은 이유…….

……잊지 말자, 그들은 이미 죽었어.’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되뇐다. 어쩔 수 없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결코 잊지 않겠다고.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신경 쓰지 않았다. 별로……, 신경 쓰기 싫었다. 나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이른 오후, 2시쯤에 카페에 도착했다.

늦었구나.”

?’

나는 의외의 인물에 문득 생각을 멈췄다.

아저씨?”

그는 바 위에 올려져있던 파일들을 집어 들더니 말했다.

사무실로 올라가자.”

왜 아저씨가?”

사건이 정식으로 우리부서로 넘어왔으니까.”

사건?”

나는 사태를 따라가지 못해 아저씨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저씨는 나를 다시 카페 입구로 몸을 돌려세우더니 등에 손을 대며 재촉했다. 투박하고 두꺼운, 커다란 손에 밀려 카페 밖으로 나오니 그가 말한다.

정식으로 SPDU로 사건이 넘어왔어.”

“SPDU로 넘어왔다니, 이게 유령사건이에요?”

연쇄 살인이야.”

순식간에 내 몸의 열을 주변 공기로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SPDU-Special Phenomenon Disposal Unit 특수현상처리반. 심령현상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의 모든 사건이 특수현상처리반에서 담당한다. 대체로 현상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게 주업무다. 특수현상처리반에 살인사건이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설사 진짜 심령현상에 의한 사건이 있더라도 심령현상을 긍정하는 경찰조직은 없다. 실제 일어나는 일이 있으니 정부라도 실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때문에 만들어진 부서가 특수현상처리반이다. 하지만, 고작 20년도 안된 부서다.

어떻게…….”

아마도……, 신체강탈 사건일 거야.”

나는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 그럼, 50일 간격으로……?”

정확히 49일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5명이 사망 및 실종, 연관성을 파악했어.”

연관성이라면?”

모두 연라고등학교 근처에서 목격되었어. 같은 연령에 같은 성별, 그리고…….”

……같은 사람과 함께 있었겠군요.”

유령은 인간에게 집착한다. 집착하고, 집착해서 발목을 붙들고 함께 같은 세계로 끌어당긴다. 이번엔 반대다. 인간에게 집착하다 못해 주변에서 시체의 산을 쌓아가며 그의 곁에 머문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몸을 강탈하는 건 무의미하다. 자신의 몸이 아닌 몸에 들어가면 원래 혼은 쫓겨난다. 그리고 혼을 잃은 몸은 49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타인의 몸에 들어간다고 그 몸이 자신의 것이 되는 건 절대 아니다.

마지막……, 마지막은 누구예요!”

나는 아저씨의 팔을 붙들었다.

지금 현재 파악하고 있는 건 실종신고가 들어와 있는 소년이야. 이름은…….”

아저씨는 자신이 들고 있는 파일을 뒤적이더니 그 이름을 말했다.

강도훈.”

찾아야 되요.”

나는 그 이름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잠깐, 가영아, 왜 그래? 지금 누굴 찾는다고.”

아저씨가 골목으로 나가려는 내 팔을 붙들었다.

강도훈! 그 아이를 찾아야 되요.”

그 아인 지금 그 여자애 옆에 있어. 찾을 필요…….”

나는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몸이 아니라, 혼이요! 그 아인 아직 안 죽었어요. 그러니까 카페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야! 죽지 않았으니까, 생령이었으니까!”

나는 아저씨의 팔을 뿌리치고 집을 향해 뛰었다. 내가 나올 때도 없었던 그였지만, 짚이는 건 그곳뿐이었다.

어디 간 거야! 넌 아직 안 죽었어! 이 바보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그 아이를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의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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