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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그가 내 앞을 막아서며 내 발걸음을 저지한다. 그러나 그는 유령이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통과한다.
“야!”
무력한 자신의 입장을 한탄하며 다시 내 뒤를 따라오는 그.
“지금 어디 가?”
“2반.”
평소보다 한 층 낮은 목소리로 대꾸한다. 내 옆에 귀를 기울이며 걷지 않는 한, 절대 들리지 않을 목소리다. 이상한 인물이 둘이나 있다. 더 조심스러워진다.
“아까 그 자식을 보고 바로 움직이는 건 위험해!”
“두고 봐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수영이는 무시해.”
“어떻게 무시해! 그 자식 분명히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았어!”
“그래봤자, 인간이야.”
“그게 뭐!”
“인간은 인간의 룰을 따라. 걔가 마음먹고 범죄자가 되겠다하지 않는 한 문제없어.”
“……유령보다 인간이 더 안전하다는 거야?”
“인간에서 벗어난 유령은 쉽게 자신의 껍질을 벗으니까.”
살아있을 때 자신을 속박한 여러 가지 제약을 벗어던진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위험해진다. 다만, 그들은 실제 살아있는 인간에게 해코지할 힘이 없을 뿐이다. 특히나, 볼 수 없는 인간들을……. 인간과 유령은 원래 이렇게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던 세계였다.
나는 열려있는 문을 지나 아무렇지 않게 2반 아이들 속에 섞여 2반을 둘러본다. 어차피 점심시간은 거의 다 끝나간다. 애초부터 짧은 시간 동안 대화에 녹아들 생각은 없었다. 2반 아이들 중 아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고, 나와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것뿐이었다. 그는 그런 내 생각은 읽지 못한 채, 안절부절하고 있다.
툭!
“여기서 뭐하는 거야?”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온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중학교 동창 이수현이다. 나는 살짝 얼었다.
“아, 그래. 너 2반이었구나.”
이 학교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 한 중 하나는 내가 나온 백화중학교 출신 아이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 드문 동창 중 하나가 이 남자아이다. 같은 중학교 여자애들이라면 불편하지만, 다행히 얘는 남자애라서 그보다는 덜 불편하다.
“차라리 잘 됐다. 너 혹시 강우진이라고 전학 간 애 알아?”
속전속결이라고, 나는 그냥 묻기로 했다.
“강우진? 아, 1학기만 다니고 전학 간 애? 글쎄, 나 보다는…….”
수현은 반을 둘러보며 사람을 찾는다.
“정훈아! 너 우진이 알지?”
큰 소리로 다른 아이에게 묻는다. 나는 아차 싶었다. 얘는 중학생 시절에도 눈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나랑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고 있겠지만. 아무튼, 다른 반이라는 이질적인 나에게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우진이 왜?”
“왜?”
수현이 나를 보며 반복해서 묻는다. 이 자식, 나중에 눈치라는 걸 좀 배워라. 지금 다른 애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혹시 최근에 연락 해 본 적 있어?”
지금만 참자, 지금만 참자, 지금만……. 난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며 참을 인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엊그제도 문자했지. 무슨?”
“그럼 됐어.”
“왜?”
“아무것도 아냐.”
나는 서둘러 2반을 뛰쳐나왔다. 그러자, 그런 내 뒤를 수현이 쫓아 나온다. 그 아이의 눈빛은 제법 진지했다.
“혹시 이번에 죽은 애…….”
“그런 거 아니니까, 너 입 다물고 있어.”
난 눈을 부라리며 수현을 위협했다.
“하긴 연락이 됐으면 살아있는 거겠지.”
그랬다. 내가 같은 중학교 애들을 꺼리는 이유는 그 아이들은 내가 유령을 보는 미친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알고 있고, 반신반의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난 그런 걸 자랑하는 성격도 아니고, 자랑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난 정말 어렸다. 진짜 친한 친구라 생각했던 단 한사람에게만 솔직하게 말한다는 게 사람일이 늘 그렇듯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여자애들 사이에는 본격적으로 소문이 났고, 남자애들은 여자애들만의 입소문이라고 별로 믿지 않았다. 얘도 반신반의로 그냥 확인해보는 차원이겠지만. 남자애들은 다 안다. 내가 그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러니 나의 과잉반응에 수현도 수긍하고 있는 거겠지만.
‘이번만은 절대로 유령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살겠다고 맹세했건만…….’
그 놈의 맹세는 반년도 못가는 구나. 나는 한숨을 쉬며 수현을 뒤로 하고 3반으로 돌아왔다.
1-2 김미영 → 학기 시작부터 오늘까지 결석
1-2 강우진 → 전학
1-4 나지혜 → 제적
1-5 장민호 → 최근 일주일 결석
1-6 정유미 → 띄엄띄엄 결석
※전원 해당 사항 없음.
나는 수첩에 붉은 글씨로 메모하고 톡톡 볼펜으로 메모를 건드린다.
‘이거 본격적으로 다른 학교 학생이라는 전제를 생각해봐야겠는데.’
하교길, 내일은 놀토, 이틀은 아무 일없다. 때문에 특히 카페에 상주하는 나다.
‘어떡하지.’
유령을 방치하고 카페에 간다는 선택지는 물론 있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이다. 요새 며칠 이상했던 나를 추궁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힐끔 그를 바라본다. 그는 뭔가 안절부절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묻지 마.”
나는 원한을 가득 담아 내뱉는다. 그는 움찔 몸을 굳히더니 어깨를 늘어뜨린다. 2반에서 수현을 만나고 나온 뒤부터 뭔가 묻고 싶은 표정으로 계속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가 뭘 묻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 화제에 대해선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다. 다시 되새김할 이유는 없다.
‘괜찮아, 요즘 시대에 말이 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짧은 평화였구나.’
나는 한숨을 쉬며 어깨에서 힘을 뺐다. 고민해도 소용없다. 그리고 중학생 때와는 다르다. 이제는 힘으로 반격할 자신도 있었다.
‘뭐, 그러다 퇴학당하면 안 되니까, 적당히 피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나는 고민을 다 털어버리고 등을 폈다. 그때 였다.
“꼬맹아.”
“헉!”
나는 너무 놀라서 숨을 순간 멈췄다.
“연우…아저씨?”
연우 아저씨가 동네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 전봇대에 등을 대고 기대서 있었다.
“설마 오늘도 그냥 갈 건 아니지?”
“아하하.”
“역시 이상하다고 연하가 끌고 오랜다.”
“윽…….”
나는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연우 아저씨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에게 시선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도는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절대 카페로 따라 들어오면 안 돼.’
연하 언니는 시원한 복숭아 티를 내게 내어주면서 말했다.
“자, 뭘 숨기는 지 털어놔.”
영업용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사실 연하언니는 화나면 지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못 말리는…, 한 성질 하는 사람이다.
“아, 덥다.”
나는 연하언니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애꿎은 얼음을 빨대로 찔러댔다. 살짝 살기를 품은 연하언니의 기세에 연우아저씨마저 움찔 어깨를 움츠린다. 뭐, 이 인간은 원래 연하언니한테 제일 약한 인간이니까.
“걱정 마, 무슨 문제든, 저기서 한가하게 잠이나 처 자는 놈한테 맡기면 되니까.”
연우 아저씨는 뭔가 찔리는 지 야금야금 물컵만 문다.
“저기 눈치 없이 밥만 처 먹는 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헉! 연…, 연하야….”
내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다닌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신경 쓰지 마, 저 비(非)인간적인 놈한테 손톱만큼도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막 부려먹어.”
“네?”
“연하야…….”
연우 아저씨는 애절한 눈빛으로 연하언니를 바라본다. 그러나 연하언니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본다.
“왜, 비(非)인간씨? 감히 인간들 일에 뭐 하러 상관하려고? 그냥 닥치고 물이나 처 먹어!”
“어,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신경 쓰지 마, 그냥 어느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일 뿐이니까.”
마구 신경이 쓰입니다. 나는 살기등등한 언니의 눈을 피해 복숭아티를 마신다.
“자, 그러니까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무지 다정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흑…….
“저기, 일단 일이 있긴 한데…….”
“그래!”
연하언니는 거봐!라는 눈빛으로 연우아저씨를 힐끔 째려본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 곧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더 이야기하라는 눈빛이 된다. 그러니까, 그게 더 무섭다고요, 언니!
“일단, 제 선에서 해결을 해보고…….”
“거봐, 그러니까 난 일단 가영이가 스스로 해결…….”
“닥쳐. 넌 그냥 귀찮았던 거잖아.”
낮으면서 목소리에서 서리가 돋아날 듯 차가운 목소리가 연우아저씨의 입을 닥치게 한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인데…….”
말투는 점점 기어들어가고 있다. 상황은 대충 알겠다. 그리고……, 연우아저씨 성격상 귀차니즘 90퍼센트였을 거라는 건 나도 부정은 못하겠다.
“축! 당첨이야, 오늘은 노숙이네, 이하씨.”
“헉! 잠깐, 연하야. 그건 아니잖아!”
연하언니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덧붙인다.
“어머, 업그레이드도 원하시나요, 고객님?”
“…….”
연우아저씨는 입을 다물었다.
“자자, 진정하시고요.”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둘을 중재했다. 물론, 연우아저씨가 귀차니즘 90퍼센트긴 하지만, 그 근본에는 연하언니 외에는 눈에 안 들어온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뭐, 10퍼센트 정도 레드 플라워 식구들을 신경 쓰는 사람이고. 나는 킥킥 웃으며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냥 같은 동갑내기 유령이 자기 이름만 찾아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간단한 부탁이고, 유령이 된지 얼마 안 되서 기억도 없고, 전후사정도 잘 몰라 이것저것 가르쳐주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정말 이름만 가르쳐달라는 거 맞아?”
연하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 일단은요.”
난 살짝 시선을 피했다.
“정말?”
순순히 성불 안하고 이름만 알고 싶다고 한 그다. 사실 이름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되면 또 뭘 해달랄지 모르긴 하다.
“걱정마요, 저도 딱 잘라낼 때 정도는 알아요.”
“…….”
연하언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자인씨한테는 말할 거야.”
“아!”
“나나 이하는 유령을 볼 수가 없어. 대처가 불가능해. 자인씨와 다인씨한테는 말해야 돼.”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혼나는 거 싫은데.”
나는 웅얼거리며 어리광을 피운다. 나를 위해 험한 일을 하는 언니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문제를 알고 늘 지켜봐와 준 레드 플라워 식구들에게는 어리광을 피울 수 있다.
“으윽.”
연하언니는 내 어리광에 살짝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봐 줄 일과 봐주면 안 되는 일은 구분해야지, 연하.”
갑자기, 바 밑에서 풍성한 몸체가 튀어나온다.
“아, 아줌마……. 계셨어요?”
연적화, 레드 플라워 상호의 근원이자, 이 집의 사장님이자 엄마나 마찬가지인 존재. 적화 아줌마는 키가 작고 살짝 몸집이 있는 귀여운 분이시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이 이상하기 이를 때 없는 경계의 주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아줌마는 작은 안경을 쓰고 바 안 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 저 살짝 밝은 갈색 칼라가 들어간 웨이브를 눈치 못 채다니…….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건 좋아. 기대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지. 하지만, 그 문제는 너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해. 다른 사람한테 알리고 움직여야지.”
“네…….”
“자, 그럼 그 유령의 신상을 털어.”
“네…….”
나는 결국 그와의 만남 이후 쭉 일어난 모든 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적화 아줌마의 눈이 험악해졌다.
“조금 이상한 부분이 부분부분 너무 많은데.”
“으음…….”
짚이는 데가 너무 많아서 반박할 수가 없다.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리라 의심스러운 인물이 둘이나 있어. 유령이 난리 치는 시점에 둘이나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야.”
“우웅…….”
완전 질책 당하는 기분이다. 아줌마는 나를 험악하게 부라리더니 짧은 팔을 뻗어 딱밤을 먹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걸 간과했잖아.”
“아야, 아, 뭘요!”
나는 머리에 울리는 아픔과 함께 열이 올라 반항한다.
“이 유령이 죽은 학생과 동인인물인지 알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