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1.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쉼 없이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백화점 지하 식품관까지 한산하다.
“오늘은 매장이 억수 조용하다. 그쵸?”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막내 지연이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매니저 영희의 눈치를 살폈다. 손님이 없는 날에 매니저 언니의 눈치를 살피던 매장 막내 시절이 생각이 나서, 영희는 내심 안쓰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빠릿빠릿한 데는 없어도 성품이 순하고 느긋해서 손님을 편하게 응대할 줄 아는 지연이 영희는 내심 마음에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접객의 기본이지만 타고난 성격이 강한 사람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도 천성적으로 뿜어 나오는 기운 같은 건, 막아낼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 날은 차라리 조용한 게 낫다.”
“왜요?”
“꼭 날씨 요상시러븐 날 환불 하러 나오신다 아이가 아까 핑크색 니트 입어보셨던 손님 있잖아. 들어오실 때 보니까 우리 쇼핑백을 들고 계시는데, 아이고, 야. 이 와중에 환불 손님까지 오셨구나, 싶어서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너스레를 곧이곧대로 믿고 지연이 반달처럼 눈을 휘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근데 아까 그 손님 들어오셨을 때요, 매니저님 표정 장난 아니었어요.”
“와? 또 표정 관리가 안 되드나?”
뭔가 실수를 저지른 건가 싶으니, 영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늘 여유 만만한 매니저 언니가 당황하는 게 재미있는지, 지연이 신이 나서 직접 표정연기를 해 보였다. 
“이래이래, 눈에 힘 팍 주셨어요.”
도둑 감시하는 경비견처럼 매섭게 부릅뜬 눈과 마주한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엄마야, 니 지금 그걸 내라고 연기하는 거가?”
“네, 매니저님. 진짜 그랬어요.”
“거짓말 하는 것 좀 보래이. 환불 하러 오는 손님이 귀신이라도 되나? 내가 그래 질겁하고 쳐다보게.”
“솔직히 말하면 귀신보다 더 무섭다 아니에요? 전요, 저쪽에서부터 우리 쇼핑백 들고 걸어오시는 손님 보이잖아요. 그럼 그때부터 제발 들어오지 마라 그냥 가라, 마음속으로 막 빌어요.”
귀신보다 무서운 환불이라. 매일매일 매상 경쟁을 치러야 하는 백화점 여성복 매장 매니저로서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환불이 오전이면 마이너스 매상으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메꾸다 끝나기도 하고, 오후에는 힘들게 올려놓은 매상이 한 방에 푹 꺾이게 되니, 들고 있는 쇼핑백의 크기에 비례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전날 엄청난 금액을 긁고 간 손님의 얼굴이 확실하다 싶은 경우에는 선고를 앞둔 피고인처럼 바짝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매상을 책임지는 매니저로서는 당연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지만 이제 겨우 1년 조금 지난 경력의 막내가 이토록 속 깊은 주인 의식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과장 조금 보태서 감동의 눈물이 찔끔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솟구쳐 올라오는 깊은 감동을 그대로 전해 보이는 것은 멋쩍은 일이라, 대신 애정이 듬뿍 담긴 장난을 걸었다.
“들어오지 마라, 그냥 가라 빌었다고! 오냐, 매장에 왜 이래 손님이 없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진범을 찾아낸 형사처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본인을 가리키자 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울한 비명을 질렀다.
“매니저님, 제가 은제요! 우리 쇼핑백 들고 다니는 손님한테 했다 캤잖아요. 우리 쇼핑백 가 오는 손님한테만이요.”
예상보다 격한 반응에 영희가 깜짝 놀라 얼른 주변을 살폈다. 성실하게 일 할 때는 어디 숨어 있다가 꼭 이럴 때만 나타나서 근무 태도를 지적하는 게 3층 담당 과장이 아니던가.
“지연아, 니도 아까 우리 쇼핑백 가 온 손님이 니트 사 가시는 거 봤제?”
영희가 부드러운 어조로 조곤조곤 따져 물었다.
“아이, 매니저님. 그거는 거의 없는 일이잖아요.”
지연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발만 동동 굴렀다.
“됐다, 이제 그만 인정해라. 니 때문이다 카는 거.”
“아니요. 절대로 몬 해요.”
영희가 지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려먹고 있을 때 간식 먹으러 나갔던 둘째 선미가 매장 안으로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 8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는 백화점 매장에서는 4시에서 5시 사이에 30분가량 간식 시간을 따로 준다. 저녁 식사 시간을 따로 줄 수는 없으니 나름의 궁여지책인 셈이다.
“대박. 완전 대박 뉴스예요.”들뜬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그럴싸한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발이 넓고 남 얘기에 관심이 많은 선미는 매장 내의 소식통이다.
“뭔데요, 언니? 무슨 일 있었대요?”
방금까지 울상을 짓고 있던 지연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반짝 거리며 선미 옆에 바싹 붙어 섰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공중파 3사의 아침 드라마를 모조리 섭렵하고 있는 지연이 막장 스토리의 낌새를 느끼고 잔뜩 기대에 부푼 것이다.
“요번에 새로 오시는 점장님이 미래 그룹 신인철 회장 막내아들이래. 사무실 직원들 죄다 불려가서 단단히 주의 받고, 교육 받느라 지금 난리 났대.”
“아, 맞아요?”
매장에 근무하는 누군가가 유부남하고 몰래 사귀다 매장으로 쳐들어온 부인한테 머리끄덩이 잡히는 치정극을 예상하고 있다가 완전히 생뚱맞은 장르의 얘기가 나오자 지연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회장님 아들이 와 대구까지 내려오는데?”
혼자 들떠 있는 선미가 무안하지 않도록 영희가 관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혹여나 손님이 들어오면 당장 수다를 멈추고 접객 모드로 전환해야 되기 때문에 시선은 통로 쪽으로 고정한 채였다.
“그건 모르죠.”
아는 척 하길 좋아하는 선미가 모르는 걸 물으니 당장에 시무룩해졌다.
“근데 그게 그렇게 놀라 달려올 일이가?”
잠자코 있던 지연이 영희를 향해 동조의 눈빛을 보내며 은근슬쩍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일 얼굴 봐야 하는 3층 여성복 담당 과장도 아니고, 지점장이면 백화점 전체 회식할 때나 한번 씩 마주 하는 다른 세계 사람인데, 누구 아들이던 그게 무슨 그렇게 큰일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매니저님, 지금 지점장 카니까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 상상하고 계시죠?”
뜨뜻미지근한 분위기 속에서 선미의 표정에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여유가 흘렀다.
“그럼. 아이가?”
자고로 지점장이라면 중년을 넘긴 나이에 걸맞게 친근한 복부 라인과 황량한 헤어라인은 필수 옵션이 아니던가. 최소한 영희가 지금까지 거쳐 온 지점장은 그랬다. 황당하게 쳐다보는 영희를 향해 선미가 도도하게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매니저님보다도 한 살 어려요.”
“그람 그게 몇 살이지?”
예상을 초월하는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제 나이에서 1만 빼면 되는 간단한 계산조차 쉽게 되지 않아 시선을 사선으로 향한 채 계산에 골몰하는 영희를 대신해서 지연이 버럭 소리를 쳤다.
“엄마야, 서른두 살이네요!”
“맞다.”
깜짝 놀라 눈이 똥그래진 두 사람을 쳐다보는 선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완전 멋지다! 잘 생기셨대요?”
지연이 스타를 영접하는 열성팬 모양 황홀하게 양손을 마주 모으며 선미의 얘기를 기다렸다.
“당연하지. 안 그랬으면 내가 이래 흥분했겠나! 본점에서 매장 순찰 한 바퀴 도는 날이면 여직원들 다 쓰러졌다 카더라.”
기대에 부응하고도 넘치는 발언이 나오자 지연이 기어이 들뜬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야, 완전 시크릿 가든에 현빈이다, 아니에요?”
“맞다. 시크릿 가든! 현빈! 지연이 니, 완전 천잰데?”
선미가 물개박수를 치며 지연의 센스를 격찬하였고, 이건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엄마야, 엄마야. 웬일이래요, 이게. 살다 보이 별 일이 다 있네요. 우예 이런 일이 다 생긴단 말이에요?”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두 사람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영희가 침착한 한 마디를 남겼다.
“야들아, 양심이 좀 있어라.”
“왜요?”
황당하게 쳐다보는 선미를 향해 영희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일갈했다.
“백화점 회장님 아들이 다 현빈이면,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니들은 다 하지원이겠다이?”
시원하게 웃어버리는 지연과는 달리 선미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사족을 덧붙였다.
“시크릿 가든에서 하지원은 백화점 근무 안 했어요. 유인나였지.”
“니 지금 유인나는 된다는 소리네.”
“아니요. 드라마 내용이 그렇다구요.”
웃자고 한 소리에 선미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워버리고 정색했다.
“맞나.”
더 이상 농담을 주고받을 상황이 아니라 얼른 발을 뺐다. 솔직하게 감정을 내보이는 막내보다는 자존심이 강해 속내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선미 쪽이 대하기가 훨씬 조심스럽다.
“어어, 저거 최 대리님 맞죠?”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막내 지연의 놀란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3층 여성복 코너 담당 대리 최국현이 어깨에 천사 날개를 짊어지고 목으로는 다트 판을 건 채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와 저러고 돌아다니지? 고객님들 놀래그로.”
“고객 이벤트 하시는 중인가 봐요. 어차피 오늘 손님도 별로 없는데.”
그저 희희낙락 즐거워 보이는 지연과 달리 최 대리를 바라보는 선미의 눈에 안쓰러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영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미를 바라보았다. 최 대리 앞에만 서면 볼부터 발개지는 지연과 달리 제 감정을 숨기려 드는 선미는 혹여나 최 대리가 백화점의 누군가와 연애라도 한다면 고스란히 상처 받을 것이다.
“근데 자세히 보니까 날개 단 건 좀 귀엽다 아니에요?”
지연의 편파적인 감상에 새삼스레 최 대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날개를 매단 끈이 짧아서 어깨에 꽉 끼어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지연아, 양심이 좀 있어 봐라. 초등학생 가방 매고 있는 변태처럼 보이거든. 저걸 보고 감히 귀엽다는 말이 나오나?”
다소 과격하지만 최 대리의 복장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는 한 마디에 가만 듣고 있던 선미와 지연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최 대리가 매장 안으로 들어와 휑한 매장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손님도 없는데 웃음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대리님, 여기 서서 거울 좀 보세요. 웃음이 안 터지겠는가.”
배시시 웃기 바쁜 지연과 관심 없는 척 옷걸이를 정리하고 있는 선미를 대신해서 이번에도 최 대리를 상대하는 것은 영희의 몫이었다.
“웃기긴 웃기네.”
최 대리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향해 시원한 웃음을 날렸다. 센스 있는 패션 감각과 세련된 서울 매너가 최 대리의 인기 비결이라고 하지만 영희가 봤을 때 그건 요리로 따지면 스테이크를 폼 나게 해주는 파슬리나 치즈가루에 불과하다. 자신감을 기본으로 한 느긋한 성품이야말로 최 대리가 가진 최대 매력이었다.
“근데요, 대리님. 요번에 새로 오시는 지점장님이 우리 백화점 회장님 아들이라는데 맞아요?”
“그 얘긴 누구한테 들었어요?”
최 대리가 당황스러운 듯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는 척 하면 안 되는 얘기인가 싶어 질문을 한 지연은 물론이고, 말을 전 한 선미까지도 일순 긴장 태세였다. 영희도 순간 당황은 했지만 새로 오시는 지점장에 대해 한 마디 물어 본 게 무슨 기밀문서라도 들춘 것인 양 몰아가는 분위기가 어이없었다.
“어디서 듣기는요. 지금 백화점 내에 소문 파다하거든요. 지점장님이 뭐 암행어사도 아니고 신분을 와 감추는데요? 어차피 다음 주 되면 다 알게 될 텐데.”영희가 짐짓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항의 하자 최 대리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실수를 인정했다. 
“암행어사는 아니고, 회장님 막내 아드님이에요. 새 지점장님 모시는 것만으로도 보통 큰일이 아닌데 더군다나 본사 회장님 아들이 오신다고 하니, 사무실 분위기 어떨지 알죠? 인사 발령 이후부터 바싹 긴장 상태라 제가 지금 상당히 예민해 있어요.”
영희가 매니저로 근무하는 트래디셔널 여성복 햄튼에서도 작년 여름에 상무이사로 재직해 있는 본사 회장의 외동딸이 대구에 내려 온 적이 있다. 이지유 상무가 대구에 내려온다는 소식이 뜬 날부터 매일 사무실로 집합시키던 그때 일을 생각해 보니, 최 대리의 예민한 태도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작년 여름에 우리 본사에서 상무님 내려왔을 때하고 똑같다. 우리 상무님이 본사 회장님 외동딸 이지유잖아요. 여름 세일 기간이라 바빠 죽겠는데 매장 매니저들 죄다 사무실에 매일 집합해서 뭐 했는지 알아요? 예절교육.”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듯 최 대리의 표정이 시큰둥했다.
“하루 잠깐 점검 차 들르시는 거면 괜찮죠. 우린 앞으로 쭉 모셔야 되는데,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을까봐 매일이 비상이에요.”
그래, 사람이란 게 본디 제 일만 커 보이는 법이지. 영희가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살 어린 최 대리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타이르듯 말했다.
“최 대리님아, 니 사람 앞에다 두고 두 손 곱게 마주 잡으면서 아름다우십니다! 해 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마요.”
이야기의 내막을 알고 있는 두 동생들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하고 깔깔대자 최 대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지유 상무 앞에서 두 손 마주 잡고 상무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했다고요.”
“그 얘길 왜 했냐는 말이죠.”“시켰으니까 캤죠.”
“누가요?”“누구겠어요? 우리 과장님이지. 예절 교육 시킨다고 매니저들 죄다 불러놓고 그딴 얘기나 해쌌더라고. 아니, 여가 무슨 북한이가? 어디 사람 앞에 두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찬양을 한단 말이고? 내가 진짜 콧구멍이 두 개라 숨을 쉰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된 최 대리가 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날렸다.
“에이, 그냥 해 본 소리겠죠. 하여간에 매니저님 진짜 개성 강하다니까.”
개성이 강하다는 말인즉슨 네가 별나서 앞뒤 분간 못 하고 본사에서 온 귀빈 앞에서 또라이 짓 했다 이 말이 아니던가. 비록 말문이 트이던 세 살 적부터 동네 어른들한테 훈수 두며 맞장 뜨고 다니던 영희지만 철들고 나서는 분위기 파악 정도는 충분히 하고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두 살 어린 백화점 대리한테 천지 분간도 못 하는 못 한다 소리 들을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누굴 바본 줄 알아요? 그냥 해 본 소리 하나 구분 못 하구로. 그라고 내만 그칸 게 아니고, 대구 지역 삼화 모직 계열 매장 매니저들 죄다 아름다우십니다, 캤는데 우리가 단체로 말귀 몬 알아먹는 약이라도 먹었단 말이에요?”
“나 참. 기가 막힌다. 그걸 하란다고 했단 말이에요?”
이럴 수가. 동병상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꽁꽁 싸매둔 에피소드를 꺼낸 결과가 고작 이거였던 말인가.
“하란다고 했냐는 소리가 어디서 감히 나와요? 하라면 무조건 해야지. 대리님, 지금 비상사태라는 말 순 뻥이네, 뻥이야.”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최 대리가 목을 젖혀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지점장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 이런 교육은 안 받아요.”
지점장 소리에 영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드디어 최 대리를 놀릴 거리가 생각났다.
“근데 최 대리님, 우야노. 지점장 오시면 인자 큰일 났다.”
“왜요?”
지점장 소리에 여유만만이던 최 대리의 입매가 긴장으로 살짝 굳었다.
“새로 지점장님 오시면 최 대리님 인기는 인자 여기서 끝이에요. 지금은 우리 백화점에 딱히 인물이 없어서 최 대리님이 이래 대접을 받고 있는 거지, 지점장님 오셔 봐요. 어느 누가 최 대리님 쳐다보겠는가.”
“에이, 설마.”
지연이 얍삽하게 나서며 방금 전과 전혀 판이한 멘트를 날렸다.
“아니라잖아요.”
최 대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연을 가리켰다. 영희가 코웃음을 픽 날리며 가감 없이 상황을 고해 바쳤다.
“쟈들을 믿어요? 오, 노노. 방금 전까지 지점장님 얘기하면서 시크릿 가든에 현빈이라꼬, 살다가 우예 이런 일이 다 있느냐고 둘이 부둥켜안고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옷걸이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선미가 불의의 일격에 사색이 되어 영희를 쳐다보았다. 가만있는 나는 왜 끌고 가느냐는 억울한 눈빛에 영희가 은근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미, 미안타. 니까지 끌고 드간 건 명백한 내 실수다. 한 번만 봐 도.
“진짜? 정말 그랬어요?”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매력적인 미소를 입매에 머금은 채 최 대리가 지연이 아닌, 선미 쪽을 향해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제 속을 홀랑 까 보이는 지연이면 몰라도 선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서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아니요. 제가 미쳤어요?”
미쳤다는 격한 단어까지 사용하며 부정을 할 줄이야. 최 대리를 향한 선미의 연심이 이리도 깊었단 말인가. 최 대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이자 선미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지연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다.
“지점장님이 시크릿 가든에 현빈이면 우린 다 하지원이게요?”
영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사해서 역공을 펼치는 현란한 기술에는 그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명이서 작당을 하니 한 명 바보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구나. 세 사람이서 만들어내는 단란한 웃음소리의 하모니를 쓰린 가슴으로 받아내며 영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콧구멍으로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는 것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현빈 지점장만 오면 최 대리는 거들떠도 안 볼 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이렇게 배신을 때릴 수가 있단 말인가. 저런 것들 때문에 여자의 마음이 갈대 같다고 폄하를 당하는 것이다. 과연 현빈 지점장 앞에서도 너희들이 감히 그럴 수 있는지, 최 대리 네가 감히 그렇게 여유만만 카사노바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사실은 영희도 알고 있다. 현실은 냉혹하다는 것을. 현빈은 개뿔. 탈모와 비만이 언제부터 나이를 가렸던가. 대머리에 배둘레햄만 아니어도 선방이다.


댓글 '4'

편애

2014.09.13 11:37:20

리앙님 너무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연재^^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편 기다릴게요~

Lian

2014.09.15 22:17:51

꺄아 편애님 오랜만이에욤 ^^

글을 올리니까 요롷게 정파에서 얘기도 나눌 수 있고, 좋네요.

자주 좀 봬요~


핑키

2014.11.28 16:56:44

제가 옷 매장에서 좀 일해봐서 아는데 매출 스트래스 엄청나지요. 그게 매니저급이상이면 ~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요^^

하늘지기

2014.12.04 21:59:17

읽으면서 저도 그 생각했어요.

씨가 현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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