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아니야!”

노엘은 당황해서 서둘러 부정했다.

다셀, 지금은 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야. 일단 머리를 식히고…….”

시끄러워! 입 닥쳐!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다셀!”

노엘은 분위기가 휩쓸리기 전에 그를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흥분한 그는 노엘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말을 멈출 줄 몰랐다.

약초나 치유술에 대해 잘 아는 것도 다 마술을 쓰는 거야. 그렇잖아, 숲 외딴 곳에 살면서 이번 습격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 마냥 다른 사람에게 충고해주는 척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타인을 습격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조종해! 그레고리도 저 여자가 잡아먹은 건지도 모르지. 원래 타지인이었으니까, 없애도.”

!

다셀은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노엘이 다셀의 뺨을 힘껏 갈겼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리는 다셀을 바라보며 노엘은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닥쳐!”

그때였다. 돌멩이 하나가 노엘의 이마를 강타한 것은.

내 아이가 죽었어…….”

그것은 처음에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당신의 아이는 상처 하나 없지.”

내 아이도 죽었어.”

시기도, 질투도 아니었다. 절망 속에 있는 새끼 잃은 어미의 한탄이었다.

왜 내 아이가?”

어째서?”

열에 들뜬 듯 광기에 휘말려 병자들 사이를 헤치고 오는 여자들에 노엘은 압도당했다.

아니야! 아니야! 제발!”

흐흐흐.”

그 자리의 광기에 취한 다셀이 미친놈처럼 웃었다.

죽여!”

다셀의 말이 방아쇠가 되어 군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녀는 금구이다. 마녀라는 말을 한번 입에 담으면 돌이킬 수 없다. 마녀를 두둔한 자도 마녀가 되고, 친하게 지낸 자도 마녀가 된다. 마녀사냥에 선의란 없다. 마녀를 시험하기 위한 방법도 결국 죽이기 위한 순번일 뿐이다. 물에 빠뜨려 살아남으면 마녀고 죽으면 순결하다. 그 어디에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그러기에 군중은 얼어붙었고, 순리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런 미친…….”

용병들은 광기에 휩싸인 주민들의 행동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각각은 속으로 각종 욕을 주어 삼켰지만, 수백, 수천명이 죽어간 미친 의식이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제지할 남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귀족나부랑이 주제에 미쳐 날뛰는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는 시메온을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녀재판을 주도할 자격도 이유도 없었다. 일종의 하나의 산업으로 전락된 마녀사냥은 거듭된 재해 속에서 교회의 돈을 배경으로 먹기 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여자들을 죽여 나가는 무의미한 학살이었다.

간만에 조용한 건 맡았다 했더니.”

차라리 영국이랑 싸우는 게 낫겠다.”

용병들은 우물 속에서 물고문을 받고 있는 노엘로부터 눈을 돌리고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마녀사냥의 전조에 불과했다.

 

안돼, 그러면 안돼.’

이건 누구의 목소리일까. 앨리슨의 몸은 고통 속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으윽!”

앨리슨은 한동안은 고통에 익숙해지느라 움직이지 못했다. 그 고통에 익숙해져 일어서려던 그녀는 오른팔이 힘없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반항하는 동안 오른팔이 부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얻어맞아서 피투성이인 얼굴과 잔혹하게 유린당한 하반신보다 기묘하게 부러져 이질감을 자아내는 팔의 모습에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앨리슨은 눈물을 뚝뚝 떨어지며 자연스럽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엉엉, 아파, 엄마, 엄마…….”

앨리슨은 숲의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러나 마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을 쪽에서는 이미 환하게 불덩이가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저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오른팔을 붙들고 앨리슨은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

앨리슨은 그것이 마치 무슨 치유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되풀이 중얼거렸다. 힘겹게 마을로 들어섰을 때, 앨리슨은 자신이 잔혹한 꿈속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늑대의 습격 따윈 없었고, 자신이 폭행당했던 일도,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도 마치 악몽처럼 그냥 깨어나면 사라지는 환상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

시체로 넘쳐나던 마을처럼, 이해할 수 없는 폭행처럼, 매일 마주하던 사람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엄마의 모습처럼, 비현실적인 일은 없었다.

젠장! , 어서 여기서 도망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용병이 있었다. 용병은 앨리슨의 모습을 발견하고 일목요연했다. 그 추잡한 시메온이 옛날버릇을 못 버리고 또 하나의 아이를 망쳐놨던 것이다. 거기에 저기서 광기에 불태워지는 여자는 소녀의 엄마였다. 소녀에게는 너무 벅찬 현실이다. 여기에 소녀마저 마녀로 함께 태워지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

아악!”

그러나 용병은 소녀의 부러진 팔을 붙들고 말았다. 아픔과 함께 앨리슨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노엘이 죽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들은 앨리슨의 비명과 함께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앨리슨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의 앨리슨, 그리고 그 눈 속에 머금은 눈물과 혼돈, 그리고 서서히 변하는 절망을 본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고요했던 사위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눈물을 머금은 말간 눈동자가 물었다. 그제서야 쳐들은 죄책감이 슬금슬금 퍼져나가려는 찰나, 그 추잡한 남자가 외쳤다.

마녀의 딸이다! 죽여!”

 

정말 알기 쉬운 인간이라니까!

 

누군가가 비웃듯이 머리 속을 울린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전혀신경 쓰지 않았다. 간신히 선의를 가졌던 용병조차 앨리슨의 손을 놓고 도망치고 말았다.

어째서?”

순수하고 어린 소녀의 물음은 사람들의 요란한 걸음소리에 묻혔다.

그러면 안 돼, 앨리슨.’

앨리슨은 다시 묻는다.

어째서?”

이번엔 미움과 증오가 담아있는 반문이다.

너의 힘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야.’

…….”

과거의 목소리와 현재의 속삭임이 교차된다.

사람을 해쳐선 안 돼.’

어째서?”

네가 그걸 견디지 못 할 테니까. 후회하게 될 테니까.’

…….”

앨리슨은 엄마의 목소리에 대답할 수 없었다. 엄마의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앨리슨의 마음을 태우는 증오는 이미 엄마를 태운 불씨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화르륵!

노엘이 타고 있는 불꽃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불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거대했다. 커다란 불티는 마치 자신의 의지를 가진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을 물었다. 그것은 앨리슨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랗고 무서운 짐승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데스가 변신한 늑대와 같은 크기와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눈치 챈 것은 그림자 속에 숨어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던 악마뿐이었다.

꺄아악!”

사람 살려!”

살려줘, 제발!”

, 주여!”

여러 마리의 불로 된 늑대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태웠다. 산채로 태워지는 사람들이 팔다리를 허둥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발, 잘못했어. 살려주렴, 앨리슨…….”

앨리슨의 발밑까지 기어와 목숨을 구걸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앨리슨의 눈은 이미 주검이 된 채 불 속에 있는 노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반응인 채의 앨리슨의 모습을 절망하며 죽어간 자도, 앨리슨의 시선을 따라가다 침묵하며 죽어간 자도 있었다. 앨리슨은 그 자리의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태우고 태웠다. 그것이 진정한 마녀의 사냥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왔다.

검은색 일색의 남자가 앨리슨에게 다가왔을 때, 앨리슨은 예감했다. 증오에 마음을 태우고 말았을 때, 부당하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그리고도 괴로워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하고, 앨리슨은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종하는 의미에서 눈을 감았다.

조금 이르지만 각오는 되었겠지.”

하데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피투성이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것은 시간이 멈추는 것과도 다른, 세계로부터 소녀의 존재가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모든 것이 불태워져 시체로 뒤덮힌 마을은 갑자기 공허하게 부서진 마을의 흔적만이 남고 사라져있었다. 땅에 불탄 흔적도 발자국도 생활감마저 남아있었지만 마치 그 순간 생명체는 모두 소실된 세상처럼 기묘한, 세계로부터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지요?’

말은 소리가 되어 세계에 남겨지지 못했다. 세계는 그의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못한다는 듯이, 세계는 강경하게 그의 존재를 그녀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운영은 하데스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검은 안개 같은 존재로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도 운영은 그가 사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아인 아직 죽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것이 이 세상 최초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운영은 흙투성이에 정돈되지 않아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댕기머리, 그리고 목에 깊게 남은 멍자국을 가진 채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의 순간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인 자신과 만났던 것이다.

그 아인…….”

그 아인 당신을 죽게 만들 것이오.’

또 다시 말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하데스는 주먹이 하얗게 되도록 꽉 쥐었다.

그 애 때문에.”

그 애 때문에 당신이 죽소!’

이것이 세계의 섭리였다. 경계의 무녀의 진짜 인생에는 간섭해서는 안 되는 신들의 족쇄. 그것이 하데스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반신조차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세계의 섭리에 지배를 받은 순수한 신은 세계의 섭리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지켜줄 수 없었다.

그 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소. 그 애에게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가 그녀에게 물을 수 있는 건 그것이 최선이었다. 운영은 피투성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영은 슬픈 눈으로 소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죽음의 순간을 오락가락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운영의 손은 핏기하나 없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앨리슨은 죽음이 다가왔다 생각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 살아도 괜찮아.’

운영은 다른 누군가와 소녀를 겹쳐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그것을 후회하게 된다 해도?”

이 아이는, 무언가를 후회할 만큼 살지도 못했어요. 그 기회를 빼앗아가지 말아요, 죽음이시여.”

하데스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는 그때서야 운영의 진짜 인생과 만났다. 그녀가 경계의 무녀가 되는 순간의 생사의 경계, 바로 그곳에서. 때로는 쓸쓸해보였지만, 삼라만상을 초월한 듯한 경계의 무녀와는 다른 아주 어린 십대의 소녀가 거기 서 있었다. 목덜미는 죽음의 손길이 닿아 붉고 푸르른 자욱이 남아있었고, 상처와 절망이 그 눈에 깃들어 있었다. 상처투성이에 처절함마저 흘러나오는 슬픈 순간이었지만, 경계의 무녀가 아닌 운영은 살아있었다.’ 생사의 순간이기에 절망이 있어야 할 그 순간에 그녀는 오히려 생사와 싸우고 있었기에 더욱 살아있었다.

타닥, 타닥.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를 듣고 하데스는 정신을 차렸다. 망연하게 운영을 바라보던 어느 순간 세상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영과 에우리디케는 자신의 운명의 시간으로 사라져버렸다.

운영.”

그것이 어렴풋하게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던 연심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의미에서 첫눈에 반한다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그들을 처음 만나게 한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하데스는 처음으로 운영의 이름을 속삭이며 그런 생각을 되뇌었다.

이상한 여자다.”

하데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면서도 반응하고 말았다.

뭐였지, 그 여자는?”

뒤돌아본 그곳에서 기묘한 열기를 띄고 서 있는 다니엘이 있었다.

…….”

하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어떤 대답도 호기심의 악마에게는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한 팔을 피로 물들은 다니엘은 그런 하데스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이 피? 그 돼지 놈. 나는 공정한 사람이니까.”

다니엘은 하데스가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도발적으로 지껄여댔다.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의도적인 대화였다.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모든 일이 끝나면 같이 사라지는 게 좋잖아. 게임은 끝났으니까.”

…….”

하데스는 대꾸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다니엘은 조금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니엘은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했다. 하데스의 간절함이 섞인 눈동자,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에 나타나는 에우리디케, 그리고 세계를 일시적으로 박리시킬 정도의 존재.

그게 바로 경계의 무녀구나.”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호기심의 악마는 또 누구를 죽일까. 하데스는 세상에서 사라진 경계의 문을 통한 사건의 범인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에 신이 얽혀있다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이 저급신의 존재를 너무 얕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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