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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의 우려에도 다니엘은 마을 사람들을 부추겨 늑대사냥을 시작했다. 귀족을 호위하는 용병들이 나서주니 더 용기를 얻은 마을청년들은 사냥용 활을 둘러메고 그들을 따랐다. 처음에는 몇 마리를 잡기도 했지만, 늑대 무리는 약을 올리듯 감질나게 몇 마리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뿐, 숲 깊숙이 들어가 나오려하지 않았다. 아무리 용병들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청년들이었지만, 좀처럼 들어가 본 적 없는 숲 안쪽까지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리를 잘 모르는 용병들 또한 섣불리 행동 할 수 없었다. 이에 청년들은 노엘에게 숲의 안내를 부탁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도리어 그녀는 용병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 어쩔거냐며 청년들에게 훈계를 했지만, 그들의 화를 돋운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쳇, 그 여자! 치료사라고 잘난 척 하기는.”
다셀은 단검을 빼어들며 말했다. 옆의 코지모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살짝 겁에 질려 중얼거렸다.
“그래도, 좀처럼 틀린 말을 하는 여자는 아니잖아. 그 집안은 오래전부터 치료사를 하고 있었고…….”
“그래, 옛날부터 치료사 집안이긴 했지…….”
다셀은 생각할 거리라도 있는 듯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풋풋하게 수염이 난 다셀은 이제 열여덟 살이 되어간다. 다셀도 노엘의 죽은 남편인 그레고리를 기억하고 있다. 어리긴 했지만 아버지가 사냥기술을 배울 때, 옆에서 놀면서 눈동냥으로 배우기도 했다.
“거기, 시끄러워! 입 다물고 따라와.”
다니엘이 귀찮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니엘을 주축으로 꺼리는 용병 몇을 설득해 늑대사냥을 나온 차였다. 코지모는 다니엘의 큰소리에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지만, 다셀은 그런 건 신경 안 쓰이는 듯 생각에 잠겼다.
아우우~.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인간보다 코가 발달한 짐승을 상대로 이렇게 사냥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코지모의 뇌리를 스쳤지만, 그는 다셀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었다. 다니엘이 손짓을 하며 일단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3명이 한 조로 흩어지라는 신호도 보냈다. 다셀과 코지모,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용병 한명과 함께 그들은 다니엘의 명령대로 뭉쳐 흩어진다. 그러나 정작 다니엘은 홀로 움직여 숲 깊숙이 사라진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제지하거나 한마디 하지도 않는다. 코지모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용병들 사이에서 그가 대장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탁!
다셀이 조용히 코지모의 뒤통수를 쳤다. 그들과 함께 하는 용병은 다셀과 코지모가 따라오든 말든 앞장서 걷고 있었다. 코지모는 다니엘로부터 시선을 돌려 용병의 뒤를 따라 불길하기 짝이 없는 숲의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편, 늑대들은 두려움에 질려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한쪽은 공격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한쪽은 하나 둘씩 동료를 물어죽이며 영역표시를 하고 있었다. 늑대들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짐승이 표시해놓은 선을 넘어가지 못했고, 겉은 인간이지만 뭔지 알 수 없는 압박감과 따라야 할 것 같은 강제성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존재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몰려있었다.
아우우~.
대장늑대는 결론을 내렸다. 이래도 무섭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짐승에게 덤비기로……. 차라리 동료들을 물어 죽인 적에 대한 복수심을 무기로 덤비는 게 그들에게는 더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유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로 향했다.
하데스는 늑대무리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로써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치료사의 오두막 근처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경계하고 있었다. 늑대무리는 그가 경계하는 오두막을 피해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와 세뇌의 압박감에 미친 늑대들은 아무이유 없이 사람을 물어 죽였다. 그들은 굶주림에 그들을 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차별하게 사람을 습격해 죽이고, 다음 대상을 죽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들에는 ‘먹는다’는 개념마저 사라져있었다.
“꺄아아!”
“으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노엘은 문을 단단히 잠그고 그 앞에 몽둥이를 들고 섰다.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오두막이지만, 사람들의 죽어가는 비명은 너무 처절해서 거리를 넘어 노엘과 앨리슨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앨리슨은 엄마의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떨고 싶었지만, 노엘은 앨리슨을 지키기 위해서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앨리슨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숨조차 쉬지 말라는 듯이 조용히 하라는 엄마의 몸짓에 입을 틀어막고 침대 위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쾅쾅쾅!
“부탁이야, 살려줘! 노엘! 문 열어줘! 루카가!”
노엘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굳어져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지만, 사람 목소리에 머뭇거리며 밖을 살피며 슬며시 문을 열었다. 상처투성이의 질이 아이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있었다.
“질!”
“질 아줌마!”
앨리슨도 놀라서 침대에서 튀어나왔다. 노엘은 그런 앨리슨을 제지하면서 재빠르게 두 사람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노엘, 살려줘! 제발 루카 좀…….”
노엘은 질의 품속에서 루카를 끌어내 아이의 눈을 뒤집었다.
“루카…….”
7살 남짓 된 남자아이 루카는 목이 물어 뜯겨있었다. 초심자에 불과한 앨리슨이라도, 아니 문외한이 봐도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질은 아이를 보호하느라 팔과 다리에 잇자국이 나 있었다. 노엘은 루카에게서 손을 떼고 질의 팔을 살폈다.
“나는 됐어! 됐다니까! 내 아이를 살려줘.”
자신에게 손을 대는 노엘을 밀어내며 아이에게 손을 뻗는 질에게 노엘은 그녀의 두 팔을 붙잡아 그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루카는 이미 죽었어.”
“빨리 그 아이를 봐줘! 피가 나잖아! 상처가……, 상처가…….”
“벌써 오래전에 피는 멈췄어. 알고 있잖아. 보이잖아, 질.”
“루카를 치료하라고!”
짝!
노엘은 힘껏 질의 뺨을 때렸다.
“…….”
“가만있어, 네 팔과 다리도 작은 상처는 아니야.”
노엘은 깨끗한 천으로 질의 상처를 닦아냈다. 몸의 고통인지 마음의 고통인지 알 수 없는 흐느낌이 질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앨리슨, 붕대를 더 가져와! 연고랑 약초도 잔뜩! 이제부터 바빠질 거야.”
노엘은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씁쓸하게 외쳤다. 싸움은 끝났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촌장의 집에 있던 시메온을 위시한 남아있던 적은 수의 용병은 촌장의 집을 방어막으로 자신의 고용인을 보호하느라 급급했고, 그 와중에 촌장 파올로와 부인 한나는 덕분에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늑대무리를 물리치고 마을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용병의 반수가 늑대사냥으로 나가있었고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수적으로 너무 불리했다. 다행히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집을 방어로 살아남았지만, 결코 집 안에만 있지 않는 존재들이 있었다. 아이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죽었다. 곳곳마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노엘은 밀려드는 부상자들로 오두막을 떠날 수조차 없었다.
“엄마, 지혈할 약초가…….”
노엘은 밤새도록 살아남은 아이들과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지쳐서 환자들 사이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모자란데…….”
앨리슨은 엄마를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숲의 약초를 혼자 따라간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익모초라면 나도 마을에서 베어올 수 있을 거야.”
앨리슨은 오두막 밖에 걸려있는 약초가방에 낫을 조심스럽게 넣고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탁!
“어디 가는 거니, 앨리슨.”
노엘을 도와 환자를 돌보던 한나가 집을 나서는 앨리슨을 보고 그 팔을 붙잡았다.
“지금은 위험하니까, 밖에 나가면 안돼.”
“괜찮아요. 그냥 마을에 가서 약초만 베어올게요. 지혈제로 쓸 약초가 떨어져가서…….”
“안돼, 그럼 노엘을 깨우마. 지금 시체도 간신히 수습한 상태인데…….”
“괜찮아요, 그냥 빨리 가서 빨리 베어올게요.”
“앨리슨!”
앨리슨은 만류하는 한나의 손을 뿌리치고 마을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한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반복해 중얼거렸다. 한나는 망설이다가 노엘을 흔들어 깨웠다.
“으음, 내가 잤나요, 한나?”
노엘은 졸음에 겨운 표정으로 무거운 눈을 떴다.
“노엘, 저기…….”
“왜요, 급한 환자예요?”
노엘은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되물었다.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앨리슨이…….”
“앨리슨이 왜요?!”
깜짝 놀란 노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앨리슨이 혼자 마을로 갔어. 약초를 베어온다며…….”
“그 아이가 정말!”
노엘은 혼자 자기 힘으로 해보겠다며 달려나간 앨리슨이 걱정되어 한숨을 쉬었다. 숲으로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어수선할 마을을 혼자 가버리다니 그녀는 구겨진 옷을 펴며 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지혈제가 떨어져갔던가……. 숲은 위험하니까, 울타리 근처에 풀을 베러 간 거구나. 하지만, 그건…….”
노엘은 앨리슨의 행동패턴을 생각하며 신음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집 울타리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노엘!!!”
그녀는 분노에 찬 외침에 멈추고 만다. 새하얀 역광 속에서 눈물로 젖은 얼굴을 씩씩거리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셀이었다.
“당신 탓이야!”
‘끼익’하고 저급 신이 만들어 놓은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늑대의 모습을 한 하데스는 다짜고짜 노엘을 몰아세우는 다셀을 비롯한 함께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린 에우리디케, 아직은 앨리슨이라 불리는 여자아이의 궤적을 따라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이 맞기라도 한 듯이 그 저급 신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울타리에 돋아난 수풀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다가가는 앨리슨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 불길한 검은 그림자. 그녀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순수한 악의였다.
“그 아이는 짓밟혀야 해.”
[단순한 호기심 덩어리인 너에게 설명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겠지.]
하데스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신의 시대의 종말과 함께 하데스는 신으로의 대부분의 힘을 빼앗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가 변할수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갔다. 그러나 그의 본질이자 그 자신이기도 한 ‘죽음’을 부여하는 힘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앨리슨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지했다. 그렇다 해서 그 난폭한 행동에 반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입은 틀어 막혔고, 그 다음 순간에는 비명 외에는 지르지 못했다.
“소용없어, 멸망해가는 끄트머리 신의 힘으로 날 잡을 수 없을 테니까. 잡지 못하면 설사 신이라 해도 그 능력은 행사 할 수 없지. 무언으로, 끄덕임으로, 명령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어.”
하데스는 안개처럼 사락거리며 자신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는 다니엘이 화가 났다. 설사 거의 모든 힘을 잃은 신이라 할지라도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는 소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꾸며대며 벌어지게 만든 이 저급 신, 악마가 역겨웠다.
“당신 탓이야! 애초에 당신이 늑대사냥이 어떻다니 그런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늑대를 잡겠다고 숲 속에 들어갔을 일도 없었고, 우리들이 없는 사이에 늑대들한테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노엘은 다셀의 원망을 반박 한 마디 하지 않고 들었다. 누군가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화를 내고 싶기 마련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노엘은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에게 종종 원망을 들었다. 노엘이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원망할 다른 누군가를 찾았고, 치료사인 노엘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노엘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앨리슨이 걱정되었다.
“다셀, 미안! 지금은 앨리슨이 없어져서, 얘기는 다시 들을 테니까…….”
노엘은 다셀을 제치고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려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오히려 다셀의 화를 부채질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딜 도망가!”
다셀은 자신을 지나치려는 노엘의 팔을 붙잡아 뒤로 밀쳤다. 노엘은 불시에 당한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셀!”
한나가 그를 비난하는 말투로 불렀다. 한나 뿐이 아니었다. 노엘의 집에서 치료를 받던 연장자들 대부분이 다셀을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셀은 슬픔과 분노에 노엘만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자신만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겁에 질렸다. 그는 노엘이 짐작하듯이 비난할 상대가 필요했다. 괜히 자신이 충동질해 또래들을 끌고 가지 않았다면 희생은 적었을지도 몰랐다는 사실, 혹은 늑대들을 들쑤시지 않았다면 마을이 습격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 그런 일들이 모두 스스로를 책망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다셀은 견딜 수 없었고, 괜히 노엘을 비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한 것 같이 자신을 비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조금씩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 여자 때문이야!”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다셀은 자신의 긴장을 숨기기 위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이 여자가 불러들인 거야! 우리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 짐승을 조종해서 우리를 습격하게 만든 거야!”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나는 쓰러진 노엘을 부축하려 다가가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 다셀의 말에 코웃음치려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마녀야!”
순식간에 좌중이 얼어붙었다. 모두는 입을 다물고, 한나조차 노엘에게 다가가려다 얼어붙었다.
책으로 읽고 싶으네요. 인터넷에서 보기는 뭐랄까 아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