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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마지막
“휴우…….”
세희는 막 이륙하기 시작한 비행기 안에서 눌러 죽인 한숨을 연하게 내쉬었다.
어째서 여기 온 걸까.
이 여행에 별 의미는 없다는 걸 안다. 윤정의 편지가 안에 동봉돼 있었으므로. 편지라고도 하기 힘든 짤막한 메모에는, 지운이 죽기 전에 세희를 제주도에 보내주고 싶다며 농담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 비행기를 탄단 사실조차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가야 할 듯한 기분이 든다.
혼자만의 여행이지만, 상관없었다.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무섭기도 했지만,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온통 구름 뿐, 그녀를 무섭게 만드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두려운 건, 옆 사람이 울고 있는 그녀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얼굴을 한껏 돌린 채 세희는 열심히 창밖을 보는 척 했다. 그게 그녀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력이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 어떻게 하지. 꼴이 이게 뭐야. 옆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눈물을 훔쳐냈다. 다행스럽게도 1시간이 조금 지나서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했다. 세희는 부산하게 가방을 챙겨들고 입구로 나섰다. 커다란 가방 하나에 무겁게 짐을 챙겨온 그녀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입구를 나서면서 누군가와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세희는 사과했다. 중년의 아줌마가 어이없단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을 때.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양복에 가려진 등이 보였다. 저 등,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짐을 내던진 채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의식하기도 전에 검은 양복의 팔을 팍 잡아챈 세희를,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체구가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사람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희는 당황할 정신도 없이 사과를 하고는 힘없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언제나의 일인데, 그런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가 죽어버렸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마음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제 인정해야 해.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그래, 이젠 받아들여야 해.
몇 번이고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여기 오면 꼭 먹어보리라 다짐했던 갈치 요리도, 물 좋고 싱싱한 회도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파로 온통 북적이는 해수욕장도 외로움만을 가중시킬 뿐, 혼자 지내는 밤은 아무리 휴가라도 외로웠다.
친구나 동생이랑 같이 올걸 그랬어.
짐을 챙겨 호텔방을 나서면서 세희는 허무하게 웃었다. 일주일동안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가는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눈물도 더 이상은 흐르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다 정리된 건가 봐. 그녀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표를 챙겨 게이트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가방과 함께 쥐고 있던 비행기표가 손에서 떨어졌다.
“저기요, 떨어졌는데요.”
뒤에서 들어오던 사람이 알려주었다. 세희는 고맙다고 말하고 게이트 입구 쪽에 돌아가 떨어진 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구부렸던 몸을 세우다가 멀리 저편에 보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또 환각을 보는 걸까?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픽 웃으면서 한심한 자신을 질책하며 돌아섰다. 하지만 짐 가방을 들고 게이트를 빠져나가려던 세희는 몸이 붙들린 듯한 감각에 문득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머릿속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세희는 짐 가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렸다. 그리고 아까 들어온 입구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공항 직원이 붙잡으려 했지만 뿌리치다시피 해 빠져나왔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몰린 것도 몰랐다. 그런데는 전혀 신경이 미치지 않는다. 그저 두리번거리며 뛰고 또 뛰어 아까 본 사람의 작은 이미지를 찾았다.
“……안돼…….”
하지만…… 없었다.
“……안……돼……. 안…….”
정신없이 중얼거리면서 눈물이 고여 흐릿해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 찾는 사람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바보, 바보. 속으로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겨우 붙들어 둘렸을 때였다.
“……눈.”
정면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고막을 침범해 들어왔다.
세희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시야를 막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려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보였다. 그것은 역광 때문에 그야말로 진짜 ‘환각’처럼 보였다. 세희는 일순 숨을 삼켰다.
꿈이 아니다. 환각도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2억!”
숨을 삼키고서 처음 외친 말이었다.
“누가 그런 거 필요하댔어요?”
남자는 가슴에 매달리는 그녀를 보고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연 그 자체 같은 깊은 눈. 알고 있다. 절대 잊을 수가 없었어! 세희는 다시 한번 눈물이 눈에 고이는 것을 느꼈다.
“서울로 가요! 돌려줄 테니까! 전부 은행에서 뽑아서 다 돌려줄 테니까!”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하나도 변치 않았다. 아니, 아주 조금은 변했는지도. 하지만 여전해……. 이렇게나…… 이렇게나 멀쩡한데!
이렇게나!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사람을……, 사람을…… 이렇게 속이고……! 속이고!”
“……여전히 좋은 눈을 하고 있군.”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희는 공항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도 아랑곳 않고 흐느껴 울면서 중얼거렸다.
“뭐예요, 대체…….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하고 이렇게 울게 만드는 건 대체 뭐야……, 대체…….”
“난 죽었으니까.”
“그게 무슨…….”
4년 전보다 약간 수척해진 지운은 찬찬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의 나는 죽었어. 죽었다고 모두들 알고 있어. 죽음으로밖에는 내 과거는 청산되지 않아. 그러니까 죽었다고 했어. 그리고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나는 며칠 뒤면 여기를 완전히 뜰 거다. 녹용파의 성지운은 이제 없어.”
무슨 말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멍하니 서 있는 세희를 잡고 공항 입구 근처로 지운은 이끌었다. 사람이 없는 부근으로.
“무슨 말인가요? 뜬다니요? 어디로? 혹시…….”
“호주로 가.”
지운이 조용히 말했다.
“난 여기선 죽은 걸로 돼 있고, 내 여권은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어. 드디어 형님께서 놓아주셨다. 모든 게 끝났어.”
세희는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잘된 일인 거죠……, 그렇죠? 이제 다 끝났다면…….”
“글쎄…….”
지운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사람을 죽였단 사실만은 변함없어. 내 손에 흐르는 피는 죽을 때까지 씻어지지 않아. 너와 나는 살아온 세계가 틀리고……, 그런 너를 다시 본다는 건…… 뻔뻔스런 일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한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한번 다시 보고 싶었어. 숨어서라도 다시 보고 싶었다. 그걸로 끝을 내자고, 완전히 정리하자고 생각했는데……, 절대 나서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네 눈에 띌 만한 위치에서 있었던 건…… 결국 제어가 안 되어서였겠지. 미안하다. 정말로…… 너한테는 할 말이 없어.”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운은 그쪽에서 먼저 몸을 돌리려했다.
“그럼…….”
“그럼 하지 말아요.”
그와 동시에 또렷한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지운은 숙인 고개를 약간 들어 세희를 보았다. 그리고 조금 놀라 움찔했다.
눈앞의 그녀는……, 웃고 있었다.
“굳이 할 필요 없잖아요? 네, 할 필요 없어요.”
따뜻한 손이 뻗어온다.
지운의 무심한 포커페이스가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어쩌겠다는 거지? 나는…….”
“됐어요.”
“아니, 아니야. 넌 도망쳐야해. 이렇게 하면 안돼. 이러면…….”
“도망 못 쳐요.”
손이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남자의 팔을 꼭 붙들었다.
“나 알아. 당신도 알잖아요? 나도, 당신도, 이제 도망 못 쳐요.”
“무슨…… 말이야?”
지운이 더듬거리자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알잖아요.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어요? 몰랐다면 이제라도…….”
그 말에 더는 피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팔이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고 강인하게 끌어당겼다. 인력처럼 힘없이 가슴 안으로 무너져 내리는 여자의 몸을 느끼고, 넓은 가슴으로 자신을 품어주는 남자의 따스한 팔을 느끼면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런 거였다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결말이었다고.
그로부터 수개월 후의 일이었다.
호주로 떠나는 대한항공편 비행기에 몸을 실은 연인들이 있었다.
큰 키에 과묵한 인상의 남자와 입가에 시종일관 엷은 미소를 띤 여자는 누가 봐도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런 그들을 들키지 않도록 몰래 배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은 화려한 화장을 한 여자와 그녀의 전속운전수로 일하는 듬직한 체구의 젊은 남자였는데, 그들은 게이트에 들어가는 연인들을 보며 약간은 흐뭇하고 약간은 씁쓸한……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데…….
물론 이것은 그리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그저 추측일 따름일 뿐.
대신 다른 확실한 정보가 남아 있다.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연인들의 손이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서로를 꽉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바로 이 짧은 이야기의 결말.
불가항력의 결말/ Fin
죄송합니다. 너무, 좀, 지나치게 허접하죠. 헉, 돌!
이 제목 참 심오하다, 고 처음에 생각하신 분들이 계셨을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심오한 제목이 아니었어요.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허접한 결말이 될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불가항력의 결말, 이라는 제목을 단 겁니다(불가항력으로 허접한 결말;).
하지만 막상 써놓고보니 이렇게까지 허접할 줄은(예상치를 한참 넘어섰;).
여하튼 끝냈습니다. 올해 안에 끝내겠다고 생각했는데, 훗. (-_-)v
조만간 다음 글을 가지고 19금방에 컴백하겠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학원 삐리리물이나 3P물 중 하나가 될 거 같은데,
아직도 정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뭐가 좋으십니까?).
여하튼 되도록 빨리 다시 찾아뵙죠. I'll be back!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13)
댓글 '35'
아우우우욱....
정크니임~~~ㅜ.ㅜ
겨우겨우 들어왔는데 드뎌 완결 올라왔군요!!!
너무너무 기뻐요~후후후
역시나 잘 되어 다행이예요;ㅁ;
지운과 세희는 어쩔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영원히! 함께하고야마는 결말이군요^^
ㅋㅋㅋ
그나저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학원삐리리 물♥과 ☆3P☆모두 너무너무 기대되요!!!
(매우 감정이 들어간 특수문자 입니당~ㅋㅋ)
정크님의 학원물에 삐리리까지 볼 수 있다니 이거 너무 거한거 아닌가요?^0^
글고 3P는 말이죠....
제가 요즘 엔도 미나리의 파천황 유희에 빠져 있는데 딱딱 좋아라하는 3P라 여성향은 물론이고 남성향의 동인까지 모으고 있답니다~~;;
브록히트와 알제이드를 섞어놓은 남자 어디 없을까요?;ㅁ;
수고하시었어요~!!♡
정크니임~~~ㅜ.ㅜ
겨우겨우 들어왔는데 드뎌 완결 올라왔군요!!!
너무너무 기뻐요~후후후
역시나 잘 되어 다행이예요;ㅁ;
지운과 세희는 어쩔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영원히! 함께하고야마는 결말이군요^^
ㅋㅋㅋ
그나저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학원삐리리 물♥과 ☆3P☆모두 너무너무 기대되요!!!
(매우 감정이 들어간 특수문자 입니당~ㅋㅋ)
정크님의 학원물에 삐리리까지 볼 수 있다니 이거 너무 거한거 아닌가요?^0^
글고 3P는 말이죠....
제가 요즘 엔도 미나리의 파천황 유희에 빠져 있는데 딱딱 좋아라하는 3P라 여성향은 물론이고 남성향의 동인까지 모으고 있답니다~~;;
브록히트와 알제이드를 섞어놓은 남자 어디 없을까요?;ㅁ;
수고하시었어요~!!♡
으아아아. 감동~
정말 고마운 정크님, 완결을 축하드리며, 저는 이제부터 읽으러 다시 위로..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