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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혀가 뜨겁게 귓불을 감쌌다. 그것만으로도 괴롭고도 달콤한 이상야릇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상대의 이빨이 귓불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꽉 누른다. 세희가 깜짝 놀라 몸을 튕기듯 들어올리자, 마치 그런 그녀를 달래는 것처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아플 듯 하면서 아프지 않을 정도로 미묘하게 힘 조절을 해가며 씹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밀쳐내고 싶었지만, 손목을 꽉 붙들린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몸을 꿈틀거리며 ‘으…….’ 하고 신음하는 게 고작일 뿐. 그런 사이에도 남자의 입술은 이제 목덜미로 옮겨지고 혀끝으로 핥아 내려갔다.
“흑…….”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물기를 머금은 더운 혀가 연한 피부 위를 더듬을 때마다 수치감에 죽을 것만 같았다.
남자와 손도 잡아본 적 없는 세희로서는 이런 경험 자체도 그렇고, 자신이 그에 반응해 소리를 낸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사흘 동안 씻은 일 한번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더욱 그러했다. 그나마 하루에 한번 정도는 식후마다 윤정이 양치질을 시켜주는 배려를 보였지만, 목욕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냄새가 날 것 같은데, 남자는 전혀 거리낌 없는 듯 목덜미를 혀끝으로 찬찬히 더듬고 있었다. 하지만 더 내려가진 않고 다시 올라와 입술로 옮아왔다. 입술이, 혀가, 마치 ‘안심해.’ 하고 말하는 것처럼 가볍게 몇 번이나 와 닿는다.
그 다정한 동작에 왠지 안심이 되어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이 남잔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세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만일 두 손이 자유롭다면 남자의 등을 끌어안을 것 같은 자신 또한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며칠간 지칠 대로 지치고 긴장할 대로 긴장한 몸이었다. 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어디까지나 부드러웠다. 따뜻한 입술이 그녀를 보듬듯 뺨 위를 미끄러져 귀로 향한다. 귀를 부드럽게 핥고 깨물고 빨아올리는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 이번에는 또다시 입술로 옮아와 부드럽게 깨물었다. 세희가 흠칫 하며 뒤로 물러서려는 기색을 보이려는 순간, 그쪽은 마치 타이밍을 재듯 강하게 혀를 빨아들이다가 이내 떼어놓는다. 당황한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더욱 더 초조하게 만들려는 건지, 연결동작처럼 부드러운 입맞춤이 몇 번이고 와 닿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맥박이 세차게 요동친다. 숨결이 저도 모르게 거칠어진다. 현기증이 나는 건 긴장이 풀린 덕분일까. 너덜해진 몸속에 숨어 있는 마음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몸도 머릿속도 온통 열기로 메워져 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란 건 둘째 치고, 남자는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을 쏘아죽인 살인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렵지 않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저 눈동자, 날카롭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저 눈동자.
저런 눈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심연 그 자체 같은 깊은 눈.
저 눈이 말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세희는 눈을 감았다. 좋고, 싫고, 그런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감정이란, 그런 식의 이분화 된 척도로 잴 수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렷하게 느낀 적이 달리 있었던가. 그저 당하는 대로 내맡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눈을 감고 미묘한 감상에 잠겨 있을 때, 지운이 슬쩍 입술을 뗐다.
세희는 희미하게 눈을 뜨고, 상대를 멍하니 응시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
남자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아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미소라고까지 하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미소였지만.
“역시 좋은 눈을 하고 있어.”
남자의 손에 의해 브래지어가 완전히 벗겨져버렸다. 남자가 저편으로 던져버린 브래지어 위로, 블라우스가 떨어져 겹쳐진다. 세희가 완전한 상반신 알몸이 되어 드러난 몸에 한기를 느끼고 오싹 어깨를 움츠리자,
“그러니까 감지 마라.”
지운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고는 쭉 아래로 머리를 내려 가슴을 마치 흡수하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입안에 머금다가 혀끝으로 슬슬 핥았다. 오싹하고 전율이 인다. 핑크색 봉우리가 빳빳이 고개를 든 걸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이를 꽉 깨물며 소리가 나오려는 걸 버텼다. 안타깝고 몽롱하고 달콤한 통증에 당혹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알 수 없었다. 아까는 애써 흉내 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던 신음소리가 지금은 저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한다. 힘을 빼면 아마 그대로 나와 버릴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몸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상대는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버리기 직전에 갖고 노는 장난감 취급일까. 그걸 알고도, 아니, 아니까 더 제어하기 힘들었다. 이것이 쾌감인지조차 아리송한데, 어이없게도 그 해답을 몸이 먼저 말해주고 있다.
“차라리……,”
부끄럽다.
“차라리……, 죽이지 그래요…….”
부끄럽다. 한심하다. 아랫배로부터 느껴지는 더운 감각을 참을 수 없다.
“아까 그 사람들이 날 죽이게 놔두지…….”
이제 우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적어도 손목이라도 놓아준다면 눈을 가려서 한심하도록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춰보련만. 이제 정말 지겨웠다.
지겨워…….
그 때였다.
몸을 누르던 무게가 느슨해진 감각에 세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보자, 지운이 숙였던 상체를 들어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물로 촉촉하게 메워진 시야 사이로 비친 남자의 눈이 약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그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죽으면 안 된다고 했지?”
“…….”
세희는 질문의 요지를 알 수 없어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살짝 고여 있던 눈물이 마지막으로 흘러내렸다. 지운은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더니 말을 이었다.
“보통은 살려달란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넌 ‘난 죽으면 안 된다’고 했어. 죽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가?”
세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요.”
그래요. 난 죽으면 안돼요. 나 없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데!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 세희는 입술을 깨문 채로 강하게 지운을 노려보았다. 지운은 그런 그녀를 잠자코 마주보더니, 풋 하고 웃었다. 날카로운 시선 끝에 재미있단 듯 눈 꼬리에 살짝 내걸린 웃음은 순간적으로 남자를 소년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서늘한 느낌의 웃음을 짓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 가지만 말해두지.”
담담하고,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널 죽일 권한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죽게 놔두지 않아. 그 점만은 알아둬.”
“……권한?”
세희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데 권한 같은 게 있다고?”
견딜 수 없이 분했다.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나쁜 놈이었다. 가장 나쁜 인간은 저 놈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묶어놓고서 공포와 절망감으로 시들어가는 자신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음에도.
“지옥에나 가버려!”
세희는 툇, 하고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얼굴에 날아든 침을 손으로 슥 닦아내더니 다시 한번 쿡, 하고 웃었다.
“색기라곤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자극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지?”
“무슨……!”
눈동자에 입술이 내려와 엉겁결에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에 입술이 꾹 하고 눌리더니, 스치듯 아래로 내려가 가슴에 입술을 누르고 혀끝으로 애무했다. 세희는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꽉 눌린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에는 어차피 저항할 체력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 밧줄에 묶여 있던 팔다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와, 세희는 악문 입술 틈으로 신음을 흘렸다.
남자는 한손으로만 그녀를 누른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셔츠 외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몸이 드러난다.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단련되어 있는 상체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단순히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걸로 다져진 몸이 아니라, 정확히 필요한 근육만 남아 있는 지극히 실전적인 몸이었다. 그 단련된 몸을 보자 벗어나고자 하는 마지막 오기도 사라져버렸다.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싫어……!”
남자의 상체가 드러난 것도 충분히 당혹스러웠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치마가 벗겨질 차례였다. 스커트와 밴드 스타킹이 벗겨지자 남아 있는 건, 팬티 뿐. 그것도 결국 벗겨질 거란 사실을 깨닫고, 세희는 악을 쓰려고 했지만 힘이 남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건 무리였다. 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항의를 표시했다.
“마, 말이 다르잖아……!”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말없이 그녀의 드러난 알몸을 입술로 훑어 내려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목덜미부터 시작하여 아래, 아래로.
계속.
기침 때문에 뭘 해도 집중이 안됩니다. 다들 절대! 감기 조심하세요.
실은 전 69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선 바보 여주 땜에 무리야요.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2-20 11:52)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