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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3일 ~ 2004년 3월 23일
비애(悲愛)
새벽나절부터 비가 퍼붓고 있었다.
빗소리에 단잠을 깼다. 잠시 멍하니 왜 잠에서 깼을까 생각에 잠겼지만 곧 바닥을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었다.
한동안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의식은 서서히 그 흐름을 되찾고 자신은 현재 이 자리, 방안 좁은 싱글베드에 누워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어지럽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 내던져진 것 마냥 싱글베드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몸이 흔들리고 있는 건가? 창문을 부술 듯 사나운 빗소리에 마음이 엉클어지기만 했다.
천천히 엄지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까딱. 까딱까딱. 오른쪽, 그리고 왼쪽. 푸웃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전히 창문을 부술 듯한 사나운 기세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혜연은 일어나 조심스레 다리를 움직였다. 조금 비틀거리긴 하지만 자신의 다리로 설 수 있다는 게 꼭 꿈만 같았다. 창문으로 다가간 그녀의 두 손이 닫혀 있던 유리를 활짝 열었다.
쏴아ㅡ
열린 창 사이로 마치 팽창하는 것처럼 빗소리가 더욱 크게 몰아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빗소리 속에서 희미하니 누군가가 귀가 아닌 마음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넌 살아 있어. 살아서 스스로의 다리로 지면을 딛고 서 있어. 살아서 이렇게 생생하게 빗소리를 듣고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젠 괜찮아.
창에 바싹 얼굴을 가져대 대보았다. 창 밖은 막막한 비의 숲. 그러나 그 풍경은 잠들기 전처럼 그저 어둡기 만한 것은 아니었다. 흐리지만, 햇빛은 비의 구름 그 너머에 있다.
이마를 가져다 댄 유리에, 투명한 것이 흘러내렸다. 빗물? 아니면……?
손을 올려 눈가를 만져보았다. 젖어있었다. 가만가만 훔쳐내는데, 손가락 사이로 뭔가, 아니 누군가가 보였다.
젖은 가로등 아래 긴 그림자가 놓여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흐릿해 누군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아는 그 모습 같아 두 눈을 깜빡였다. 흠뻑 젖은 게 아마도 밤새도록 그렇게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마 낯설지 못한 그 그림자에 그리움이 몽실거리며 치솟아 올랐다.
탁 소리를 내고 창문을 닫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어디에도 하나의 점으로도 기억되지 않으리라 아니 기억시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다짐했는데. 마치 기억이라는 곳 저편에서 늘 있었던 것처럼 자그마한 자극에 스프링 튕기듯 튕겨져 나와, 내 앞을 바윗돌처럼 막아서는 저것은…….
혜연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다시 침대의 안락함과 따뜻함을 찾아 떨리는 몸과 마음을 뉘려 비칠비칠거리며 갔다.
그때였다. 비가 창문에 부딪히는 규칙적인 리듬을 깨고 낯익은 튠이 들려온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입력되어진 그녀의 핸드폰이 어두운 방안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혜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한 채 지겹게 울리는 전화벨을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그……인가?’
달콤하게 녹아내리듯 하던 노래가, 빗소리가 가득한 방안에서는 슬픈 흐름으로 고였다. 마침내 그녀는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떨리는 마음이, 핸드폰에 가 닿았다.
천천히 폴더를 열고, 그보다 천천히 핸드폰을 귀에 댔다. 한쪽 귀로는 창문을 두드리는 맑은 빗소리가, 한쪽 귀로는 전파를 타고 온 둔탁한 빗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가 있는 곳에도 비가 오나보다.’
멍청하게 생각했다.
빠앙ㅡ하고 창밖에서 경적 음이 울렸다. 핸드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약간 엇갈린 박자로.
혜연은 웃었다.
그와는 늘 엇갈릴 뿐이다. 사랑의 깊이가 그리움의 깊이에 비례한다면, 신은 두 사람에게 최고의 사랑을 선사한 셈이다. 어긋나고, 엇갈리고, 찾았나 싶으면 다시 잃어버리고…….
이윽고 핸드폰 너머로 그가 낮은 음성을 흘렸다.
“……살아있구나.”
“……응. 살아있어.”
그는 침묵했다.
혜연은 그와 침묵을 공유하며 멍청히 생각했다.
할 말이 많은데.
죽음과 맞닿은 그 시간에 그에게 해야 했던 말들을 다 생각해 놨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딱 한 가지만 빼고.
갑자기 목이 메었다.
“미안해. 살아있어서.”
“혹시 네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면……, 그런다면 난 너에게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하지만 ……,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그는 그렇게 한참을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빗소리는 그의 촉촉한 목소리와 함께 혜연의 가슴속을 적시고 있었다.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멈춰있는데,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맺힌 눈물은 허공을 날아, 날아……, 사라져버린다.
“늘 이런 식이야…….”
한숨처럼, 입안에 맴돌던 말이 스며 나왔다. 손가락 끝에 와 닿는 습기. 유리에 낀 성에를 그의 이름으로 지워가며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버리고, 버려지고 싶어 해. 간절하게 그래.”
그의 이름 위에 후, 입김을 불어 새긴 이름을 다시 지웠다. 기억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손안에 꽉 쥔 채로 버린다고 그래. 늘, 우린 이런 식이야. 어리석지……?”
어리석음…….
언젠가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린 서로에게 영원한 어리석음일 뿐일까? 그런 걸까?”
그 때 그녀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렇게 부르지 마. 난……, 난 아니야."
자신은 그를 똑바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었지.
“우리가 서로에게 보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냐. 가장 순결한 밑바닥이지. 오빤 그렇지 않아?”
그리고 그에게 입 맞추었었다.
그 서늘하던 입술이 일으키던 뜨거운 불꽃…….
혜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 등 돌리고 있는 것은 그녀다. 결코 그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던 사고의 소식…….
그는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을까. 어떻게 저 아래에 와서 그녀에게 모습을 보인 것일까. 아니 무엇보다도, 도대체 얼마나 저 아래에 서 있었던 것일까.
그 때, 노크 소리가 났다.
생각의 그늘에 갇혀 있을 때 들리는 노크소리가 마음의 잡념을 걷어냈다. 어리석게도 그의 기억에 갇혀 버린 내가 싫었지만, 타인에 의해 그가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싫었다.
“혜연아, 깨어 있니?”
같이 사는 친구 향미의 목소리였다. 혜연은 순간적이나마 친구의 노크소리를 방해처럼 느낀 자신을 책망하면서 몸을 돌려 대답했다.
“아……. 으응. 들어와.”
들어서는 향미를 어쩌면 조금은 멍한 눈으로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의식을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어색함이 싫어 향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안 자고 왜?”
혜연 나름으론 제법 능숙하게 태연을 가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2년 친구의 감은 속일 수가 없는 법인 모양이다. 향미는 잠자코 시선을 내려 그녀의 손에 쥐여진 핸드폰을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더니 똑바로 시선을 부딪쳐 온다.
“누구랑 통화하고 있었니?”
노크소리에 당황해, 그에게 통고도 없이 후다닥 끊어버린 핸드폰. 기계를 쥔 손이 움찔 떨려왔다.
“어……, 아니……. 통화는 무슨……. 전화할 사람이 어디 있어…….”
혜연은 분명 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향미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있었다. 숨겨진 아픔이 향미의 마음에 부딪쳤다.
“너, 좀 앉아라. 다리 나았다고 방심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댔어. 일루 와. 일루 와서 좀 앉아 봐.”
향미는 침대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요즘은 통증도 별로 없는 걸. 다 나았다구. 그러니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혜연 자신으로선 한껏 다정한 말투였다. 그러나 향미는 화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또 그렇게 숨기는구나. 내가 염려하는 건……. 아냐, 그만두자.”
한숨을 훅 쉬었던 친구는, 고개를 돌려 비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혜연은 말없이 침대에 앉았다. 향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너는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게 있을 지 몰라두, 나는 너한테 솔직하고 싶어. 그러니까 얘기할게. 어제……,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더랬어.”
혜연의 몸이 일순 시체처럼 굳어졌다.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그녀는 겨우 자신을 추스리고 물었다.
“뭐라셔?”
물으면서도 친구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너 잘 지내냐구 물으시더라. 다리는 좀 어떠냐구. 많이 나아졌다 그랬지. 너 잘 부탁한다……. 함께 살 수 없는 거 이해해 달라구 하시구……. 그랬어.”
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한 때 자신이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20년을 딸로 키운 정이 애증의 감정으로 변했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를 책망할 수 없다. 줄곧 딸로 생각하려 애썼고 공들여 호적에까지 넣었건만, 결국 혜연 자신이 어머니에게 일깨워드린 건 그녀가 남편을 죽인 범죄자의 핏줄이란 사실, 그것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타인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 하물며 원수의 핏줄은 오죽하랴. 그녀를 친자식처럼 대해주던 어머니의 가슴에 자신은 대못을 박았다.
그녀의 한 아들을 사랑하고, 또 한 아들을 죽임으로써.
처연한 감정에 빠져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혜연의 손에서, 다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를 책망하는 것처럼. 혜연은 깜짝 놀랐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목숨 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그것을 그녀는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뭘 해? 빨리 받질 않고.”
옆에서 친구가 재촉을 했다. 그녀는 천천히 폴더를 열었다. 핸드폰을 얼굴에 가져다 대긴 했지만, 혜연은 숨을 죽이고 그것을 들고만 있었다. 그러나 의지와는 달리, 숨결은 송화기로 흘러들었나 보다. 수화기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음성이 들렸다.
“혜연……이니?”
아파서, 차마 아파서 그 이름도 부르지 못해 목이 메는 음성이었다.
“어, 엄마.”
수십 년 동안 엄마라 불러왔던 대상은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혜연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혜연아. 혜연아…….”
울지 말아요.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 미안해요. 미안하고 미안해요. 다 내 탓이야. 엄마를 슬프게 만든 건 내 탓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말아요.
“혜연아……. 내 새끼. 내 딸 혜연아…….”
울지 말아요. 제발 울지 말아요. 나 그럼 더 아파요.
“돌아와라. 돌아와. 엄마가 잘못했다. 엄마가 다 잘못했으니까 돌아와. 응?”
“엄마…….”
한없는 그 사랑을 한때는 이기적이라 욕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돌아오라는 말말만 되돌려주고 있었다.
“엄마, 나……, 안돼요.”
“안 되긴 뭐가 안돼. 돌아와, 같이 살자. 응? 제발 혜연아…….”
그 때도 엄마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온 마음, 온 몸은 더욱더 뭉개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 내가 사랑하는 그…… 모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사라지고 싶다. 저 빗줄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햇빛이 비출 때면 바짝 말라 거짓말처럼 없어질 게 분명한데, 하늘은 왜 날 이곳에 남겨 놓았을까……. 문득 궁금하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사랑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사람은 촌각이 아깝다는 듯이 금세 데려가 버리고, 죽어도 상관없는 아니 마땅히 죽어서 그 존재가 말끔히 사라져야할 사람은 모질게 살아남는다. 하늘은 늘 그렇게, 운명이란 이름으로 고약한 장난을 친다.
혜연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노란 우산 하나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비 오는 날 이렇게 혼자 방 안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향미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연후 선배……. 너 많이 걱정하고 있어.”
그러나 혜연은 말없이 카디건을 찾아 걸쳤다.
연후 선배가 그랬다. 어느 날 마주친 봄날의 아지랑이 같이 그렇게 혜연이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다고, 자신은 그날 기꺼이 그 봄 향기에 취해버렸다고 말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답지 않게 시적인 은유를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서슴없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릴 줄만 아는 그는 실은 같은 과 친구들에게 실루엣이 긴 다리와 허리에서부터 허벅지에 이르는 선의 매력으로 모델이 되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피조물인 그는, 내가 살아있어서 미안하게 만드는 그는 어머니의 아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이제는, 그는 나라는 여자 때문에 아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나 때문에 저리도 시리도록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연후 오빠마저 가져가 버린다면 엄마는 더 이상 나를 인간 취급도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 더 이상 추한 짓을 저지를 순 없는 거다. 귀하디귀한 아들, 하나만 잡아먹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이제 겨우 용서를 해 주셨는데 나더러 어떡하라고. 연후 오빠마저 내게 끌어 들일 수는 없는 거야. 인간의 두껍을 쓰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봄볕처럼 따뜻한 그이지만, 이미 그에게 취해 버렸지만 더 이상…….
무엇이라고 그를 불러야 할까. 연후 씨, 연후 선배, 연후 오빠……. 그러다 끝내 내 안에서 그냥 하나의 남자가 되어 버린 사람. 나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
혜연은 향미에게 얼굴을 돌렸다.
“내가 모질다구? 그래, 난 연후 선배에게 모질어. 모질지 못할 이유가 뭐야?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너는 봤잖니?”
그 말에 향미가 움찔했다. 잠시 동안 말을 찾고 있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쉬고 침착하게 반문했다.
“그래서, 그래서 끝을 내겠다는 거니? 정말로? 혜연아? 너 그걸로 만족하니?”
“그는…… 우리 엄마의 아들이야.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그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전날, 연후 오빠가 물었다.
“우린 서로에게 영원한 어리석음일 뿐일까? 그런 걸까?”
그 때 그녀는 대답했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 난……, 난 아니야. 우리가 서로에게 보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냐. 가장 순결한 밑바닥이지. 오빤 그렇지 않아?”
결국, 그 날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감정을 고백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그녀가 그 말을 처음 꺼낸 건, 다름 아닌 지후 오빠였다. 그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연후 오빠보다도 먼저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동생인 연후 오빠라는 말을 하려고 불러낸 날. 매몰차게 자신을 거절한 혜연의 말에 이성을 잃어버린 지후 오빠는 그녀를 태운 채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다.
다리에 심각한 골절상을 입어 한동안 재활치료를 받아야만 했지만, 어쨌거나 조수석의 혜연은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석의 지후 오빠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죽어도 놓칠 수 없다고 그렇게 겨우 서로의 손을 잡은 순간, 순수하게 몸을 겹친 바로 그 날.
그 날은 바로 혜연이 그녀를 죽을 만큼 사랑한 남자와 그녀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남자를 동시에 잃는 날이 되어버렸다. 이제 연후 오빠와 함께할 수는 없다.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이란 감정 하나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후 오빠를 생각나게 하는 연후 오빠에게 안길 수가 없었다. 더는, 이제 더 이상은.
“그러니까, 이제 그만둘래. 향미야. 나, 이제 괜찮아. 고맙지만……, 나 그렇게 걱정할 상태 아니야. 조금만 시간을 주면 이겨낼 수 있어. 그래, 이길 수 있어.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연후 오빠도 이해해 줄 거야.”
혜연은 말하며 아주 조금 열려 있던 창문을 힘 주어 닫았다. 그가 있는지 없는지는 보지 않았다. 그가 남아 있든 아니든 자신의 결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과 사랑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와 사랑할 자신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제 그를 보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결말이 날 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는데, 왜 피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더 이상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창문이 완전히 닫히자, 빗소리가 제법 수그러들었다. 그래, 마음을 닫으면 아마 소리도 점점 줄어들고, 어지러움 그 자체 같은 비도 그치리라. 억수 같던 비가 그치고 세상이 고요속에 가라앉는 그 순간, 자신은 아프게나마 웃으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안녕, 이라고.
걱정 어린 눈을 하고 있는 향미를 두고 집을 나선 혜연은 그가 앞에 서 있지 않은 쪽인 후문으로 걸어 나갔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 비를 뚫고 걸어가다 보면, 그의 전화를 받고 떨리던 이 가슴도 진정되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그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똑똑히 말할 수 있겠지.
안녕, 이라고.
슬픈 사랑은 이제 완전히 끝이 났다고.
그러니 이제 정말 안녕, 이라고.
Fin.
중간 부분부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더니, 종국에는 도저히 수습할래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은 새드 엔딩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어쨌든 기념비적인 첫번째 석줄 릴레이가 끝났군요. 흐지부지 마무리 지은 정크를 너무 욕하지 마시옵고(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목을 멋대로 지은 것도 용서 바랍니다.
참여해 주신 코코, 설풍, overpass, Miney, 나그네, 석류, 제이리, Jewel, tj, arete, 꼬맹이, 미루, 푸시케(김선하), yoony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석줄 릴레이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중간에 전체 내용을 맞추기 위해 변경한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9-06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