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6.


“여기가 집이었냐?”


훅, 밤하늘에 푸르게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로 강혜원이 느릿한 동작으로 다가오는 게 원재의 시야에 잡혔다. 차에 비스듬히 기대어 삐딱하게 선 원재가 다시 담배를 물었다.


“넌 나만 보면 시비 걸고 싶어 죽겠지?”


잘근 깨물어 버린 필터의 쓴 맛이 원재의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날 섰네. 그러다 잘하면 찌르겠다?”


빈정대는 혜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원재가 몸을 돌려 차 문을 열었다. 혜원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집에 가서 발 뻗고 자는 게 득,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한채희.”


하지만 혜원의 입에서 나온 이름 석 자에 원재가 멈칫했다. 원재의 시선에 다시 강혜원이 들어왔다. 역시……,라는 그녀의 표정이 원재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오자마자 유서준이랑 한 판 뜨더라. 누구 덕에.”


웃음기 가득한 말을 내뱉는 혜원은 진정으로 즐겁다는 표정을 얼굴에 담고 있었다. 누구 덕에, 라는 말이 원재의 귀에 거슬렸다.


“물론 한채희의 패. 불쌍한 한채희지, 뭐. 멍이나 안 들려나 몰라.”


‘마음에.’ 라는 단어는 혜원이 속으로만 덧붙이고 말았다.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원재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너 그 말이 무슨 소리야?”


얼음보다 더 차가울 것이 분명한 그의 음성이 혜원의 귓가를 울렸다.


“들은 대로.”
“씨알.”


원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욕설에 혜원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채희……, 괜찮아?”
“글쎄, 괜찮다고 말해준대도 믿을 수 있겠어?”


그는 대답대신 애꿎은 타이어를 뻥 찼다. 빌어먹을, 씨알 뭐 이런 소리를 연신 입에 담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혜원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명원재가 한채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말이다.


“답답해 죽겠지? 전화도 문자도 할 수 없으니 그럴 거야?”


싱글거리는 혜원을 한껏 노려보던 원재가 차에 올라탔다.


“가려구?”
“…….”


가타부타 대꾸도 없이 원재가 휙 가버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속에서 열불이 나니 괜스레 속도만 높였나보다 혼자 생각하며 혜원이 원재가 사라진 길을 바라봤다. 그러다 혜원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들 움직여주니 머리 굴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이번엔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에 혜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울지 마. 예쁜 숙녀는 우는 거 아니야.’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주었던 유서준. 쨍, 내리쬐던 햇빛에 눈이 부셨던 탓일까? 유서준은 강혜원에게 처음부터 눈이 부신 사람이었다. 그리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혜원이 서준의 손을 처음 잡았던 그 순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열두 살, 처음 그를 봤을 때부터 그는 강혜원에게 남자였다.


‘이 담에 내가 이만큼 크면 오빠한테 시집갈 거야!’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그에게 청혼을 했던 것도 혜원이었다.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귀엽다는 듯 볼을 살짝 비트는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은 그저 ‘귀여운 여동생’일 뿐이라는 걸 혜원은 알아챘다. 그래서 마치 어린아이가 사탕 달라고 떼를 쓰듯 울음을 터뜨렸다. 무조건 그의 약속을 받아낼 작정이었으니까 강혜원은 창피함 따위는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알았어, 알았어. 너 이만큼 크고 그 때 오빠가 결혼 안 했으면 하자.’
그렇게 결국 유서준이 백기를 들었고, 혜원은 그제야 눈물을 뚝 그치고 활짝 웃었다. 그게 그저 강혜원이 그만 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유서준의 ‘립서비스’라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녀였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강혜원이 유서준 곁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일종의 ‘허락’이었다.


이후 강혜원은 유서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았다. 친구들에게 친절했고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으며 말 한 마디 할 때도 모난 데 없이 누가 봐도 ‘강혜원은 착하다.’라고 칭찬 할 정도로 고운 말만 골라 썼다.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니 유서준에게 어울릴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강혜원이 배운 모든 것은 사실 ‘유서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서준이 결혼을 하겠다고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데 강혜원이 제정신일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서준이었으니까. 혜원은 유서준이 데리고 온 여자에 대해 세세하게 뒷조사를 했고 유인영의 이름을 팔아 그녀를 만났다. 유서준에게 어울릴 참한 신부인 강혜원은 그런 여자에 대해 눈 감고 모르는 척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집안이 너무 기울어 집에서 탐탁찮게 여긴다는 정보를 준 인영은 그 일에 그닥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렇게 간신히 김희주를 떼어 내고 한숨을 돌렸을 즈음, 이번에는 민 여사가 유서준의 결혼을 서둘렀다. 하지만 혜원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봐왔던 민 여사는 강혜원을 예뻐했고, 자신은 유서준이 말했던 것처럼 이만큼 이상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슬쩍 민 여사에게 자신을 들이밀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친이 복병이 될 거라는 계산을 미처 하지 못했다. 모르면 몰랐을까,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냐며 결사반대로도 모자라 단식까지 불사하며 유서준을 못 받아들이겠다는 모친과 네 엄마가 반대하시니 어쩔 수 없다는 민 여사. 그 사이에서 강혜원은 미칠 것 같았다. 죽어버리겠다는 혜원의 협박에 유서준과 결혼한다면 자기가 죽어버리겠다며 팽팽히 자신에게 맞서는 모친을 강혜원은 결국 꺾어내지 못했다.


‘평생 다른 여자 가슴에 품고 사는 남자랑 사는 건 엄마로 족해.’
유서준의 결혼식, 펑펑 울고 있는 강혜원을 붙잡고 같이 울어주던 모친이 했던 말을 혜원은 아직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혜원이 자신의 차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유서준을 지켜본 혜원은 서준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냈다. 조금 전 명원재를 빗대 ‘외간 남자’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채희가 유서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유서준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일이었다. 강혜원이 본 그의 반응은 지나치게 민감했고 격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김희주를 잃었을 당시의 유서준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혜원은 단정 지어 생각했다. 게다가 모든 게 알아서, 그게 자신이 계획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딱딱 아귀를 맞춰주고 있다. 이건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다. 유서준을 되찾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 그래서 그런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그게 운명이라고 혜원은 믿었다.


*
얍삽하게;;(아직은 수욜입니다아-ㅋ)

*
저는 낮에 책 받았>.<
근데 자다 깨신 울엄마 왈, 엄마도 책에 싸인 하나 해줘 -0- (엄마는, 저랑 같이 사시거든요?!!)

*
강혜원의 컨셉은 이간혜원입니다..ㅎㅎ
그리고 혜원에게 사랑은 다가 오는 게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거죠..
근데 정말 혜원이 캐릭이 더 강하심? 흐음..지못미 유서준, 지못미 한채희 이래야겠어요오 ㅜ.ㅠ


댓글 '6'

Junk

2009.01.22 01:08:48

미치게 우울한 야밤에 하누리님이 저를 위로해주시네요. 이간혜원... ㅜ0ㅜ

위니

2009.01.22 08:43:06

아, 사연없은 악역은 없으니...이해는 되지만...그래도 혜원이는 ..

ssuny

2009.01.22 20:48:10

이간혜원은 시로요ㅠ
채희 서준 보고파요*..*

손님

2009.01.23 03:57:22

오늘은 혜원이만 보고 가네요...ㅠㅠ
오늘은 예고도 없이 가시니...금빵 오실거죠?

핑키

2009.06.29 23:58:47

정말 혜원이가 주인공 같아요ㅠㅠ

하늘지기

2009.07.05 17:31:04

팍! 하고 한 대 때려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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