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어디야.
원재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 중에 확인한 메시지였다. 망할 강혜원. 원재는 휴대폰을 닫으며 차창 밖으로만 시선을 던지고 있는 채희를 힐끗 쳐다봤다.


집.
올림픽도로를 타려고 신호를 기다리는 도중에 원재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여전히 한채희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네 손에 놀아나지 않아, 강혜원.


병신. 손에 떡을 쥐어줘도 못 먹냐.
팔당대교에 막 진입하려는 데 도착한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설핏 쓴웃음을 삼키며 원재가 양수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였다. 그리고 곧 두물머리로 가는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아예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유서준 회사 앞에서 한채희 넋 놓고 있을 예정’이라는 메시지에 원재는 화가 치밀었었다. 대체 강혜원이 무슨 짓을 어떻게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막아줄 수도 없었다. 원재가 그녀에게 그만하라고 해봤자 그녀는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딱 한 마디 할 것이다. 생각 없으면 손 떼. 아는 척도 말고.


그러니까 이렇게 조종당해 줄 수밖에 없지.
시니컬한 생각을 털어내며 원재가 채희를 다시 한 번 힐끔거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긴 침묵을 깨고 원재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잔뜩 맥이 빠진 목소리로 어딘지 핀트가 엇나간 대답을 한 채희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아, 그럼 진작 말이나 걸 걸 그랬어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원재의 말에 채희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이것저것 얘기하면 다른 생각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아.”
“그렇게 감탄사 하나만 툭 던지면 대화의 맥이 끊겨요.”
“네.”


채희의 짧은 대꾸에 원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또, 또. 아무래도 교습 비는 받아야겠어요. 얼마 낼래요? 내가 대화의 기술은 제대로 전수해줄게요.”


그가 차를 멈춰 세우며 던진 웃음기 섞인 농담에 채희가 빙긋 웃었다.


“어, 웃었다. 근데 내 말 웃겨요? 나는 진지했는데.”


중얼거리는 원재의 시선이 채희의 웃는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웃으니까 한결 예뻐요.”


그리고 부드러운 말로 채희의 얼굴을 붉혀놓은 채 차에서 내렸다. 채희의 시선이 그를 좇으며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해하는 사이 원준이 차를 돌아 채희가 앉은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내려요, 다 왔으니까.”


문득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채희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몇 번 보지도 않은 그의 차를 덥석 얻어 탄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뭐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무턱대고 쫓아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마구 뒤엉켜 채희의 머릿속을 잔뜩 헝클어놓았다.


“늦지 않게 다시 데려다 줄게요.”


그런 채희의 근심을 아는 듯 원재의 말은 상냥하기만 했다.


*


바람결을 따라 강물이 일렁거린다. 그리고 그 물결을 따라 닻이 내려진 돛배는 연신 춤을 췄고, 물가의 거대한 느티나무는 바람이 한차례 불어올 때마다 노오랗게 물든 잎사귀로 바닥을 곱게 장식하고 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에 온통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은 고왔고, 그 햇살을 한껏 머금은 강물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경은 보는 이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채희는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이 왠지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강가라 추울 거예요.”


그가 자신의 재킷을 채희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친절이 몸에 배인 듯 그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찬바람이 좋은데요.”


채희는 그의 친절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아니에요.’라며 한 번쯤 사양하는 게 예의 아닌가?”
“그러면 도로 받아 가실 건가요?”
“사나이 체면이 있지, 준 걸 어떻게 도로 가져와요.”
“그래서 사양 안 했어요.”


채희와 원재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착하게만 봤는데 의외로 쿨한 면도 있네요, 채희 씨.”
“착하게 봤다면 속으신 거예요,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거든요.”
“그건 차차 겪어보죠. 근데, 여기 어딘지 안 궁금해요?”
“두물머리잖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여기 와 봤어요?”
“아까 이정표 봤어요. 두물머리.”


채희의 당연히 안다는 식의 대꾸에 약간 놀란 듯 보인 원재가 그제야 아아, 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더니 고개만 까딱거린다.


“난 또 와 봤다고. 여기가 왜 두물머리인지 알아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고 해서.”
“그럼, 저 느티나무 전설은 알아요?”
“느티나무 아래를 말 타고 지나가면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서 뭐 걸어가야 했다는 전설이요?”


원재가 낭패라는 듯 매우 실망한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 보인다.


“모르는 척 해줄 걸 그랬죠?”


채희가 싱글거리며 원재를 놀렸다.


“여기 와 본 적 있죠? 에이, 뭐예요. 장난이나 치고.”
“하하, 아니에요. 저 여기 처음 맞아요.”
“그럼 그거 다 어떻게 알았어요?”
“저어기 표지판에 다 쓰여 있거든요?!” 
“아, 난 또. 저 표지판 떼어 버리던가 해야지 원.”


원재의 투덜거림에 채희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맑고 청아한 음색이 주변에 울려 퍼진다. 때마침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은 그들을 감쌌고, 고요한 강물은 떨어지는 해를 집어삼킨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문득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지를 바라보는 채희의 마음이 갑자기 심란해졌다.



+
또 짧게.
내일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실 줄이야;;;

+
원래는 좀 더 길게 쓸 작정이었는데,
엄마가 만두를 어마어마하게 하실 작정이시라,
지금 짧게라도 못 올리면 더 늦을 듯 해서..(변명도 가지가지;;)

+
아싸아,
편애님도 고고씡대열에 합세해 주셨고+_+ㅋ


댓글 '7'

Junk

2009.01.14 15:15:54

원재... 좋은 사람이네요. 그래도 원재는 안돼ㅜ_ㅜ;;;

위니

2009.01.14 16:17:49

마져요..원재는 다른이와함께...ㅎ;; 내일도 오신다니 기다릴꺼예요

손님

2009.01.14 17:24:14

저도 기다릴꺼얘요...

ssuny

2009.01.14 17:57:48

원재 채희? 그럼 안되쥐~
서준이 한테 기회를 좀 주렴
맛난 저녁 드시겠네요 부럽^^

황연경

2009.01.15 10:18:30

짧아도 내일 또 오실꺼죠?

핑키

2009.06.29 23:52:13

너무 짧아요ㅠㅠ

하늘지기

2009.07.05 17:15:55

진짜 넘 짧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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