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채희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픔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닫아버린 문의 손잡이를 놓아버리지도 못한 채 채희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도시락을 꼭 쥐었다. ‘김희주.’호명하던 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었다. 그래서 살짝 열려져 있던 사무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채희가 머뭇거렸다. 그건 단지 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었기 때문인 지, 아니면 그와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아직도 그의 마음을 쥐고 흔들고 있는 ‘김희주.’이기 때문인 지 헛갈렸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채희가 머뭇거리는 동안 그, 유서준은 채희의 마음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채희는 조용히 문을 닫아버렸다. 자동반응이었지만 채희가 한 일은 아니었다. 대답을 들어버리기가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그녀, 자신의 손이 움직인 것이었다.


아, 이제 어쩌지. 채희는 갈등 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야 하나, 아니면 잠시 자리를 피해줄까. 채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손잡이 문만 잡고 발만 동동 구르는 데 문득 슬금슬금 일어나기 시작한 궁금증이 일순 해일처럼 밀려왔다. 대답…… 들었을까? 채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땅이 흔들려 그 안으로 꺼져버렸으면, 세상이 무너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채희는 문득 버겁다 느껴졌다.


조금만 늦게 올걸. 복잡한 생각은 결국 자신을 탓하게 만들었다. 문 괜히 닫아버렸나? 그러더니 자신의 행동까지 후회하게 만들어 버린다. 마치 영겁의 시간이 흘러버린 듯 했지만 지나버린 건 그저 찰나였을 뿐이다. 채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대답을 들을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됐을 거야. 채희가 떨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올렸다. 나도…… 물어야 할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채희를 순간 아찔하게 한다.


찰칵, 소리와 함께 들어 올린 채희의 손이 민망하게도 갑자기 문이 열렸다.


“기다리다 못해 나오는 길이예요?”


채희가 웃는 낯으로 장난스럽게 던진 농담에 서준의 표정이 잠깐 이지러진다. 당황한 기색이 스쳐지나가는 서준의 얼굴은 못 본 척 채희가 눈을 감아주며 스스로에게는 가증스럽다는 형용사를 갖다 붙였다.


“무겁겠다, 이리 줘.”


대답은 없었다. 단지 어딘지 모르게 허둥지둥한 모양의 유서준만 있을 뿐. 채희가 불안한 눈빛은 숨긴 채 순순히 도시락 가방을 건네는데, 여전히 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유서준의 등 뒤로 가냘픈 인영이 채희의 힐끔거리는 시선에 잡혔다.


“손님 계셨나 봐요. 미리 연락 주셨으면 좀 더 늦게 오거나 했을 텐데…….”


일부러 채희가 말끝을 흐렸다.


“아, 지금 막 가시려던 길이야.”


‘손님’을 채희에게 소개시켜줄 의사가 그에게는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안에서 나누었던 밀담도 결국은 채희에게는 얘기해 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었고. 하긴 그 엄청난 핵폭탄을 듣자마자 터트릴 수는 없겠지. 채희가 씁쓸한 생각을 묻으며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그럼……, 가 볼게요.”


여자의 청아한 목소리가 채희의 귀를 간질인다. 이윽고 또각, 또각 발소리가 점차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채희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저 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씩 명확하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상대가 선명히 보이기를 기다리는 채희의 기분이 묘해졌다. 허공에서 그녀 ‘김희주’와 한채희의 시선이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예의를 갖추는 상대에게 채희도 기계적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스쳐지나가는 여자에게서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설렘과 같은 은은한 향이 풍긴다. 생김도 풍기는 분위기도 모두 은은하게 빛이 나는 여자였다.


흔들림 없이 꼿꼿한 자세로 단정하게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에 넋을 잃은 채희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긴 건 서준이었다. 채희가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자 그가 멋쩍은 듯 웃는다.


“들어가자.”


앞장 선 그를 따라 채희가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 탓일까? 사무실 전경에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배고프죠?”


생각을 털어내며 채희가 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물 가져올게.”


서준이 사무실을 나서는 걸 본 채희가 테이블에 가져온 찬합을 늘어놓았다. 서두른 탓에 밥은 아직 따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수저까지 가지런히 놓는데, 그가 돌아왔다.


“손님 오셨는데, 차 한 잔 대접 안 했어요?”


가볍게 던진 질문에 서준이 꽤나 당황했다.


“어? 어, 괜찮다고 해서.”
“누구였는지 물어도 돼요?”
“거래처 사람.”


서준이 주저 없이 대꾸하며 채희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그 회사 미인계 쓰나 봐요. 꽤 예쁘던데요?”


장난 섞인 말을 건네며 채희가 수저를 서준에게 건넸다.


“그래?”


무감각한 서준의 대꾸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례했어요, 당신. 거절했어도 대접했어야죠.”
“이걸 다 만든 거야? 오늘 아침부터 바빴겠다.”
“그래서 일은 잘 됐어요?”
“민어찜 맛있네?”
“같이 점심 드시고 가라고 그럴 걸.”
“매작과는 이따 비서실 직원들도 나눠주면 좋아하겠다.”


하지만 채희는 모르는 척 계속 물고 늘어졌고, 서준은 말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겉돌기만 하는 대화에 서준도 채희도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점심은 엉망이 되었다.


*


‘거래처 사람.’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유서준은 거짓말을 입에 담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채희는 순간 멀미가 났다. ‘김희주.’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했다. ‘그아이…… 내 아이야?’묻던 그의 조심스러움이 채희에게는 닿지 않았다. 가벼워야 할 도시락의 무게가 천근이고 만근이었다.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채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택시를 타기 위해 차도 가까이에 다가서는 데 떠올랐던 물음은 끈질기게 쫓아와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 떨어져버려.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다가 멈춘 시선 끝.


명원재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
짧게 한 편...^^
너무 짧은가요?-_-a

+
뭐, 내일도 있으니까아-

+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으음, 암튼 뭐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아, 얼음이랑 사랑합니다+_+
으힛>.< 같이 고고씡 쭈욱 해주세요오..ㅎㅎ


댓글 '8'

ssuny

2009.01.13 19:17:16

오 내일 꼭이죠?

mehee

2009.01.13 20:43:30

그래도 명원재랑은 안돼요.

Junk

2009.01.13 23:47:23

mehee/ 동감~

손님

2009.01.14 01:11:55

내일 꼭이죠?222
서준이도 마음고생(?)시켜주실거죠? ㅠ 힘내, 채희씨!

위니

2009.01.14 04:10:50

저도 명원재는 싫어요..ㅎ;;;건필하세요 기다릴께요

황연경

2009.01.14 09:21:29

짧아도 내일 오신다기에 기다리겠습니다.

핑키

2009.06.29 23:50:28

한마디로 서준이도 미워요ㅠㅠ

하늘지기

2009.07.05 17:09:25

원재는 또 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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