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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호텔 문을 나서는 순간 찬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쳤다. 치마와 머리칼이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휘날렸고 그 예기치 못한 상황에 살짝 당황한 채희의 얼굴이 약간 찌푸려졌지만,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갑자기 웬 바람이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휘날리는 치맛자락을 살짝 부여잡은 채 아무래도 택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순간 빠앙 하고 길게 울리는 경적 소리가 주변을 살피는 채희의 주의를 끌었다. 잠시 후 은색의 날렵하게 잘빠진 모양의 차 한 대가 채희의 앞에 미끄러지듯 세워졌다. 쓰윽 지나치는 시선으로 쳐다보던 채희는 자신이 모르는 차량이라는 결론을 재빨리 내린 뒤 그 차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관심을 돌렸다. 바람에 흩날리며 얼굴을 자꾸 때리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는데 빵하고 짧게 다시 한 번 경적이 울렸다. 절로 돌아간 시선이 꽤 사나운 눈초리로 차량을 노려보았다. 지나가지는 않고 왜 호들갑스럽게 경적은 자꾸 울리고 난리,
“또 뵙네요?”
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 말을 툭 건넸다. 채희가 허리를 숙여 차안을 들여다보며 말을 건넨 이를 확인했다. 자신을 쳐다보며 반갑게 미소 짓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딱히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 하기로 하고 아무 대꾸 없이 다시 똑바로 섰다.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채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한 번 차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시는 분은 절 아세요?”
“어제…….”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짧게 내뱉은 감탄사에는 분명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그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반갑다는 인사 따위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냥 안녕하세요, 라는 짧은 인사 한 번이면 족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큰 기대였던 것 같다. 원재는 채희가 짧게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로 빳빳이 허리를 피는 모양을 지켜본 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즉시 차에서 내렸다.
“타세요, 가시는 데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채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거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제안이란 얘기였다. 문득 원재의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그녀는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아직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타시죠?”
평소의 그라면 그럼 이만, 이라는 인사로 정중한 거절을 받아들이고 퇴장을 했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갑자기 못된 성질이 그러기 싫다는 까닭으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뇨, 가시던 길…….”
채희가 말을 꺼내는 데 또 한 번의 경적이 울렸다. 남자의 차 뒤에 또 다른 차가 어느새 멈춰 서 있었다. 빨리 차를 빼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다시 한 번 경적이 울렸다.
“가세요.”
“타셔야 가죠.”
경적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채희가 다시 한 번 거절을 했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하지 않은 상황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채희는 애써 감정을 억제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싱글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자신을 쳐다보며 빨리 차에 올라타라고 재촉을 하는 그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또 한 번 경적이 울렸고 채희가 바라본 그는 여전히 경적을 울리는 차는 뒷전이었다. 무슨 심보인지 몰라도 그는 자신이 차에 타기 전에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채희가 체념이라도 한 듯 작게 한숨을 토해 내고는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세요?”
그제야 운전석에 몸을 들이밀며 남자가 물었다.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죠.”
여기서 일단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차를 세워 달라고 한 뒤 아무데서나 내리면 된다. 이렇게 된 거 집까지는 택시를 타면 되니까. 그러자 문득 왜 이 차를 타고 집까지 가면 안 되냐는 심술궂은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물론 까짓 것 못 할 이유는 없었다. 시댁에 책잡힐 목적이라면 말이다. 웃기지도 않았다. 어쨌건 모르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건 마찬가지인데 하나는 택시라는 이유로 괜찮고, 다른 하나는 택시가 아니라서 안 된다니…….
“무슨 생각하세요?”
“아, 아뇨, 아무것도.”
채희가 고개를 내저었다. 입가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웃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하신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어느 방향으로 모실까요?”
“그냥 아무데나 세워 주세요.”
채희가 앞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집에 가기는 싫으신 거 같고,”
채희를 한 번 힐끔거리며 대꾸하던 남자가 시간을 확인하느라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사이 채희가 시선을 남자에게로 돌렸다.
“점심 식사했어요?”
“혼자 집에 갈 생각이니 아무데나 세워 달라구요.”
딴소리만 꺼내는 남자를 향해 채희가 아주 친절하게 덧붙여 설명했다.
“뭐, 그럼 아무데나 가서 밥만 먹죠.”
남자가 막무가내로 나왔다.
“이보세요, 제 말…….”
“명 원재.”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제 이름, ‘이보세요.’가 아니라 명 원재라구요. 원재 씨도 좋고, 보기에 제가 나이 좀 더 먹은 듯 하니 오빠라고 해도 좋고, 것도 싫으면 그냥 이름 불러도 봐줄게요.”
채희는 그제야 어제 들었던 남자의 이름을 기억했다. 남자가 채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채희는 인상을 쓰며 남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하신 거 알고 있습니다.”
“전혀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요?”
“밥 먹자는 데 그게 결혼 여부하고 무슨 상관이랍니까? 결혼 한 사람은 밥 먹지 말라는 법이라도 생겼습니까?”
원재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와 행동에 채희의 말문이 막힌 것도 잠시였다.
“물론 결혼한 사람도 밥은 먹고살기야 하지만, 결혼한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밥을 먹는다는 건 도리가 아니죠.”
“절 남자로 봐주셨다니, 영광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원재가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
기가 막혀서 나오는 건 코웃음뿐이었다. 채희는 길게 내려뜨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 뒤 원재를 다시 한 번 노려봤다.
“이보세요, 저 댁이랑 말장난 할 처지가 못 되거든요?”
“죽어도 원재 씨란 호칭도 못 듣겠군.”
원재가 냉소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문득 눈앞의 사거리 너머에 지하철역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택시 정류장도 있었다. 원재는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성함이?”
“뭐 더 이상 만날 일 없을 텐데 아실 필요 없잖아요?”
“더 이상 만날 일 없다면 알려줘도 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만?”
채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말씀해 주신다면 저 앞에서 세워 드리죠.”
원재의 제안에 채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지하철역과 택시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꽤 솔깃한 제안에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이름 정도야 알려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이름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 채희. 약속 지키세요, 저 앞.”
채희가 자신의 이름을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그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힐끗 채희를 쳐다본 원재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핸드폰 있으면 잠깐 빌려 주실래요?”
“그건 왜요?”
“제 핸드폰이 안 보여서요, 벨 좀 한 번 울려서 찾아보려구요.”
얼굴을 찌푸리며 이 남자 왜 이런 생뚱맞은 요구를 하냐며 경계했던 채희는 원재의 설명에 경계심을 풀고 의심 없이 핸드백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피식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원재의 모습에 채희는 순간 매끈했던 아미를 찌푸렸지만 괜한 억측은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밝고 경쾌한 벨 소리가 차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원재가 말하던 저 앞에 도착했다.
“아, 여기에 두고 한참을 찾았네.”
채희가 벨트를 푸는데 원재가 멋쩍은 듯 중얼거리며 입고 있던 재킷 속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그 모양에 채희가 픽하고 실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조심해서 가세요. 여기까지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성의 없게 판에 박힌 인사말을 중얼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뭐, 별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채희의 인사를 받아넘기던 원재가 차에서 내리는 채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택시 잡아 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그러더니 택시 정류장으로 뛰어 가 버렸고, 그만 두라고 말리려던 채희가 생각을 바꿔 그만뒀다. 아무리 정류장이라 해도 달리는 택시를 잡기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채희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택시를 잡으려는 원재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 남자에게 사랑 받을 여자,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문득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
좋은 한 주 되세요^^
그 순간 빠앙 하고 길게 울리는 경적 소리가 주변을 살피는 채희의 주의를 끌었다. 잠시 후 은색의 날렵하게 잘빠진 모양의 차 한 대가 채희의 앞에 미끄러지듯 세워졌다. 쓰윽 지나치는 시선으로 쳐다보던 채희는 자신이 모르는 차량이라는 결론을 재빨리 내린 뒤 그 차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관심을 돌렸다. 바람에 흩날리며 얼굴을 자꾸 때리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는데 빵하고 짧게 다시 한 번 경적이 울렸다. 절로 돌아간 시선이 꽤 사나운 눈초리로 차량을 노려보았다. 지나가지는 않고 왜 호들갑스럽게 경적은 자꾸 울리고 난리,
“또 뵙네요?”
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 말을 툭 건넸다. 채희가 허리를 숙여 차안을 들여다보며 말을 건넨 이를 확인했다. 자신을 쳐다보며 반갑게 미소 짓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딱히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 하기로 하고 아무 대꾸 없이 다시 똑바로 섰다.
“저 기억 안 나십니까?”
채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한 번 차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시는 분은 절 아세요?”
“어제…….”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짧게 내뱉은 감탄사에는 분명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그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반갑다는 인사 따위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냥 안녕하세요, 라는 짧은 인사 한 번이면 족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큰 기대였던 것 같다. 원재는 채희가 짧게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로 빳빳이 허리를 피는 모양을 지켜본 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즉시 차에서 내렸다.
“타세요, 가시는 데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채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거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제안이란 얘기였다. 문득 원재의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그녀는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아직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타시죠?”
평소의 그라면 그럼 이만, 이라는 인사로 정중한 거절을 받아들이고 퇴장을 했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갑자기 못된 성질이 그러기 싫다는 까닭으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뇨, 가시던 길…….”
채희가 말을 꺼내는 데 또 한 번의 경적이 울렸다. 남자의 차 뒤에 또 다른 차가 어느새 멈춰 서 있었다. 빨리 차를 빼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다시 한 번 경적이 울렸다.
“가세요.”
“타셔야 가죠.”
경적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채희가 다시 한 번 거절을 했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하지 않은 상황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채희는 애써 감정을 억제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싱글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자신을 쳐다보며 빨리 차에 올라타라고 재촉을 하는 그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또 한 번 경적이 울렸고 채희가 바라본 그는 여전히 경적을 울리는 차는 뒷전이었다. 무슨 심보인지 몰라도 그는 자신이 차에 타기 전에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채희가 체념이라도 한 듯 작게 한숨을 토해 내고는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세요?”
그제야 운전석에 몸을 들이밀며 남자가 물었다.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죠.”
여기서 일단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차를 세워 달라고 한 뒤 아무데서나 내리면 된다. 이렇게 된 거 집까지는 택시를 타면 되니까. 그러자 문득 왜 이 차를 타고 집까지 가면 안 되냐는 심술궂은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물론 까짓 것 못 할 이유는 없었다. 시댁에 책잡힐 목적이라면 말이다. 웃기지도 않았다. 어쨌건 모르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건 마찬가지인데 하나는 택시라는 이유로 괜찮고, 다른 하나는 택시가 아니라서 안 된다니…….
“무슨 생각하세요?”
“아, 아뇨, 아무것도.”
채희가 고개를 내저었다. 입가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웃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하신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어느 방향으로 모실까요?”
“그냥 아무데나 세워 주세요.”
채희가 앞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집에 가기는 싫으신 거 같고,”
채희를 한 번 힐끔거리며 대꾸하던 남자가 시간을 확인하느라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사이 채희가 시선을 남자에게로 돌렸다.
“점심 식사했어요?”
“혼자 집에 갈 생각이니 아무데나 세워 달라구요.”
딴소리만 꺼내는 남자를 향해 채희가 아주 친절하게 덧붙여 설명했다.
“뭐, 그럼 아무데나 가서 밥만 먹죠.”
남자가 막무가내로 나왔다.
“이보세요, 제 말…….”
“명 원재.”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제 이름, ‘이보세요.’가 아니라 명 원재라구요. 원재 씨도 좋고, 보기에 제가 나이 좀 더 먹은 듯 하니 오빠라고 해도 좋고, 것도 싫으면 그냥 이름 불러도 봐줄게요.”
채희는 그제야 어제 들었던 남자의 이름을 기억했다. 남자가 채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채희는 인상을 쓰며 남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하신 거 알고 있습니다.”
“전혀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요?”
“밥 먹자는 데 그게 결혼 여부하고 무슨 상관이랍니까? 결혼 한 사람은 밥 먹지 말라는 법이라도 생겼습니까?”
원재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와 행동에 채희의 말문이 막힌 것도 잠시였다.
“물론 결혼한 사람도 밥은 먹고살기야 하지만, 결혼한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밥을 먹는다는 건 도리가 아니죠.”
“절 남자로 봐주셨다니, 영광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원재가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
기가 막혀서 나오는 건 코웃음뿐이었다. 채희는 길게 내려뜨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 뒤 원재를 다시 한 번 노려봤다.
“이보세요, 저 댁이랑 말장난 할 처지가 못 되거든요?”
“죽어도 원재 씨란 호칭도 못 듣겠군.”
원재가 냉소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문득 눈앞의 사거리 너머에 지하철역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택시 정류장도 있었다. 원재는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성함이?”
“뭐 더 이상 만날 일 없을 텐데 아실 필요 없잖아요?”
“더 이상 만날 일 없다면 알려줘도 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만?”
채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말씀해 주신다면 저 앞에서 세워 드리죠.”
원재의 제안에 채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지하철역과 택시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꽤 솔깃한 제안에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이름 정도야 알려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이름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 채희. 약속 지키세요, 저 앞.”
채희가 자신의 이름을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그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힐끗 채희를 쳐다본 원재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핸드폰 있으면 잠깐 빌려 주실래요?”
“그건 왜요?”
“제 핸드폰이 안 보여서요, 벨 좀 한 번 울려서 찾아보려구요.”
얼굴을 찌푸리며 이 남자 왜 이런 생뚱맞은 요구를 하냐며 경계했던 채희는 원재의 설명에 경계심을 풀고 의심 없이 핸드백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피식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원재의 모습에 채희는 순간 매끈했던 아미를 찌푸렸지만 괜한 억측은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밝고 경쾌한 벨 소리가 차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원재가 말하던 저 앞에 도착했다.
“아, 여기에 두고 한참을 찾았네.”
채희가 벨트를 푸는데 원재가 멋쩍은 듯 중얼거리며 입고 있던 재킷 속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그 모양에 채희가 픽하고 실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조심해서 가세요. 여기까지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성의 없게 판에 박힌 인사말을 중얼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뭐, 별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채희의 인사를 받아넘기던 원재가 차에서 내리는 채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택시 잡아 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그러더니 택시 정류장으로 뛰어 가 버렸고, 그만 두라고 말리려던 채희가 생각을 바꿔 그만뒀다. 아무리 정류장이라 해도 달리는 택시를 잡기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채희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택시를 잡으려는 원재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 남자에게 사랑 받을 여자,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문득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