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소설
- 완결소설
글 수 198
2.
호텔 커피숍 안으로 당당하게 또는 거침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어질 정도의 모습으로 인영이 나타났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차가워 보이게끔 유도했고, 빤히 그녀를 쳐다보던 원재는 말 한 마디 잘 못 건네는 순간 어쩌면 자신은 세상에 하직 인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뭐야, 너. 말도 없이 들어오구. 오면 온다, 가면 간다 말은 해 줘야 되는 거 아냐?"
"미안, 미안."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다짜고짜 성을 내는 인영을 보며 원재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 보자는 생각에 원재가 무조건 숙이고 들어갔다.
"또 대충 얼버무리는 거 봐. 너 늘 이런 식이야. 가서 예의란 놈 좀 배워서 와,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은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그런 건 안 배우고 대체 뭐했니?"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오히려 인영이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통에 정신이 쏙 빠져 버렸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라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에야 보려고 일부러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알았는지 당장 만나야 되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갑자기 나온 자리였다. 물론 진작에 인영이 이렇게 나오리라 짐작은 했기에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거 너무 어려워서 배우다가 중도 하차 해 버렸어. 어찌나 힘들던지, 중간에 호주로 도망까지 갔었다니까."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도 않지요. 호주에서 오는 길이란 말이지?"
간신히 댄 핑계에 인영이 잔뜩 눈을 흘겼다. 말을 아끼자는 생각에 원재는 그냥 고개만 까딱였다. 괜히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봉변당하기 십상일 듯 했다.
"암튼, 세상 혼자 바빠요."
잔뜩 이죽거리던 인영이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 덕분에 입놀림을 간신히 멈췄다. 아직 커피 한 잔 못 마셨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까페 라떼를 주문한 인영과 달리 여전히 잠이 부족해 이 갑작스런 만남을 후딱 해치운 뒤 당장 잠에 취해 버릴 작정으로 밀크티를 주문했다. 피식 웃으며 애들처럼 밀크티를 주문 하냐는 인영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또 언제 나갈 거냐? 미리 보고해라. 나중에 괜히 또 구박받지 말구."
주문한 밀크티를 한 모금 입에 담는데 인영의 빈정거림이 다시 시작됐고, 뜨끔한 원재가 밀크티를 식도가 아닌 기도로 약간 흘리는 바람에 사례가 들었다. 콜록거리며 멈추지 않는 기침에 괴로워하는 원재를 보며 인영이 싱글거렸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놓인 물을 건네주었고, 원재가 물을 벌컥 들이키느라 고개를 한껏 젖혔다. 병 주고 약 주는 고약한 심보라고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며 젖혔던 고개를 다시 내릴 때, 입구를 들어서는 깔끔한 차림의 여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아는 사람이라도 본 거야?”
저도 모르게 반가운 기색을 비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아니라고 둘러 댈 틈도 없이 상체를 길게 쭉 내밀며 출구 쪽을 살피던 인영이 뭔가 찜찜한 눈짓으로 입구에 들어선 여자를 가리켰다. 얼굴이 찌푸려진 모양을 보니 그닥 마음에 두고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닌 듯 했지만, 중요한 건 아는 사람인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너 저 여자……?"
원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리고 알면 안 되느냐는 물음은 입 밖으로 꺼내었다.
“어디서 봤는데?"
“어제 아버지한테 끌려갔다가."
“어이, 당신이 카사노바라는 건 잘 알지만 저 여자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서, 그냥 관심 끊지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인영이 제안했다.
“내가 뭘 어쨌다구 그르냐? 나 아직 암 짓두 안 했거든?”
“내 눈엔 니가 뭔 짓 벌일 것 같거든?”
조금 전 그녀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찌푸린 인상을 한 인영이 가늘게 뜬 눈으로 원재를 응시했다. 이놈의 자식,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인영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느낌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거였다.
“너 꽤나 경계한다?”
너 빨리 고백해. 인영은 원재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정확히 파악했다.
“너 외국물 먹더니 기억상실증 걸렸냐?
“응?”
생뚱맞게 무슨 얘기냐는 되물음에 인영이 원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너 어제 너희 아버지 연회장에 가서 봤다며. 거기서 울 오빠 유서준은 못 봤니? 저 여자 남편인?”
“요새는 좀 어떠니?”
꽤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물어 보기도 겁나는 질문을 던지기라도 한 듯 말을 건넨 여자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죄스러워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벌써 5년째 대하는 이런 태도도 더 이상은 봐주기 힘들었다. 사지를 향한 것도 아니고, 뭔가 결함이 있는 곳으로 간 것도 아니고, 싫은데 억지로 등 떠밀려 간 것도 아니건만, 왜 당당하게 예전처럼 자신을 대하지 못하는 지. 채희는 마주 보고 있는 여자의 태도에 문득 짜증이 치밀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직전까지는 보고 싶고, 그립고,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었는데…….
“그건 제가 물어야 옳아요, 엄마. 요즘 어때요?"
“덕분에.”
어머니인 진 은영 여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제야 내 걸렸지만, 채희의 속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진 여사의 미소는 저렇듯 희미한 적이 결코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밝고 크게 소리 내어 웃음을 짓던 사람이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크게 웃을 것을 권하던 사람이었다.
“제가 뭘 해 드렸다고 덕분이래요. 아버지도 괜찮으시죠?”
“그럼. 너 한 번 보고 싶다 하시던데…….”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채희의 말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던 신 여사가 결국 말끝을 흐렸다. 집에 한 번 오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못 하는 신 여사의 배려에 채희의 속이 또 한 번 뒤틀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 5년 동안 친정에는 발길을 뚝 끊었더랬다. 못 갈 이유는 없었다. 지척이라 가고자 하면 언제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채희의 입장에서는 시댁에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었고, 혹여 친정에서 강하게 집에 오라는 강요를 했더라면 한 번 정도는 갔을지도 몰랐겠지만 친정에서는 그저 왔으면 좋겠다는 요청만을 할 뿐이었다. 게다가 하나뿐인 남편이라는 작자는 매일 다른 여자의 치마폭에 감싸여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친정을 가자고 하거나, 왜 가보지 않느냐는 언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채희는 가지 않았고, 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정이란 채희에게 잊혀 진 장소였고, 아마 이런 생활이 계속 되는 한은 영영 발길을 돌릴 수 없는 곳이 될 지도 몰랐다. 뭐, 이렇게 가끔이나마 어머니라도 만나게 해 주는 처사를 황공하게 여겨야지.
“아시잖아요, 제 사정. 좀 나아지면 찾아 뵐 게요.”
채희가 잔뜩 비틀어진 생각을 하다가 차마 찾아 뵐 거란 기대는 하지 말라는 모진 소리는 못 하고 또 나중으로 미루었다. 어쩌면 벌써 몇 년 째 미루고 있는 저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 봤자 달라질 건 없지만.
“유 서방은 어떠니?”
염려가 가득 담긴 눈을 하고 물어 온 말이었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 인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빤히 알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테고, 좁은 바닥이니 한 다리만 건너도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라 듣기야 들었겠지만, 소문의 진실 여부를 차마 대놓고 정말 그러냐 묻지 못 해 부드럽게 돌려 묻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채희가 웃을 듯 말 듯 입가를 살짝 씰룩였다.
“뭐, 늘 똑같죠.”
그런 뒤 내 뱉은 자신의 대답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가가 굳었고,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고, 말끝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맞은편의 신 여사도 그런 기색을 느낀 건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의 일이라면 대충 잘 될 거라는 인사로 위로를 했겠지만 자신의 딸에게 벌어진 일이라 뭐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저 무거운 마음에 채희의 손을 끌어다 쓰다듬었지만, 이내 채희가 자신의 손을 빼는 바람에 그마저도 관둬야 했다. 집안 살리자고 자식 하나 팔아 치운 듯한 껄끄러운 느낌에 그녀를 대하는 게 예전 같지 못 했다. 미안한 마음에 말 한 마디 건넬 때조차 조심스러워진 까닭에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이런 침묵조차 꽤 불편해진지 오래였다. 그 때 채희를 그렇게 시집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집안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그러지 말 것을, 이란 후회도 그 시간이 5년도 더 지난 지금 이제와 해 봤자 너무 늦어 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아직은 참을만 해요, 그렇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적어도 괴물들과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채희가 안심이라도 시킬 목적으로 살짝 미소까지 첨가해 보이며 말했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전혀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았다.
“너한테 정말 몹쓸 짓을 한 것 같구나.”
“제가 원해서 한 거라고 적어도 백 번은 말했을 거예요.”
“니가 원했다기 보다는, 상황이 널 그렇게 몰아갔다는 게 맞는 말 일거야.”
늘상 나오는 한탄에 채희가 지겹다는 투로 자책은 그만해도 된다는 의미의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꾸를 보니 쓸데없는 짓이었던 것 같았다. 채희는 복잡한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신 여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 섞인 웃음을 지어버렸다.
"서희는 학교 잘 다니죠?"
아직 나이 어린 막내 동생을 생각하자 절로 미소다운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그 아이도 결혼을 한 뒤로는 본 적이 없으니 꽤 많이 컸을 것이다. 그 때가 그 아이 열다섯 되던 해니, 이제 벌써 스무 살?
“다음에 데리고 나올까?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채희는 피식 웃었다.
“시집보내도 될 정도로 컸죠?”
그리고 대답 대신 말을 돌렸다. 아마 아직은 아니라는 속내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자신을 쳐다보던 서희의 물기 어린 눈망울이 아른거렸다.
‘언니, 자주 보러 올 거지?’
눈물 흠뻑 젖은 그 물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게 아마도 그녀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였던 것 같았다. 그 물음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긴 했지만, 어쨌건 지키지 못 한 약속이었다. 어쩌면 그게 미안해서 이렇게 만나기를 주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으음.
사실, 메인화면 보면,
쫌 쫌 쫌,
마아아아니,
민망해요;;;ㅋ
*
앞부분은 나중에 많이 많이 수정할거예요 ㅜ.ㅠ
대폭 대폭 ㅜ.ㅠ
호텔 커피숍 안으로 당당하게 또는 거침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어질 정도의 모습으로 인영이 나타났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차가워 보이게끔 유도했고, 빤히 그녀를 쳐다보던 원재는 말 한 마디 잘 못 건네는 순간 어쩌면 자신은 세상에 하직 인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뭐야, 너. 말도 없이 들어오구. 오면 온다, 가면 간다 말은 해 줘야 되는 거 아냐?"
"미안, 미안."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다짜고짜 성을 내는 인영을 보며 원재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 보자는 생각에 원재가 무조건 숙이고 들어갔다.
"또 대충 얼버무리는 거 봐. 너 늘 이런 식이야. 가서 예의란 놈 좀 배워서 와,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은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그런 건 안 배우고 대체 뭐했니?"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오히려 인영이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통에 정신이 쏙 빠져 버렸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라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에야 보려고 일부러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알았는지 당장 만나야 되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갑자기 나온 자리였다. 물론 진작에 인영이 이렇게 나오리라 짐작은 했기에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거 너무 어려워서 배우다가 중도 하차 해 버렸어. 어찌나 힘들던지, 중간에 호주로 도망까지 갔었다니까."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도 않지요. 호주에서 오는 길이란 말이지?"
간신히 댄 핑계에 인영이 잔뜩 눈을 흘겼다. 말을 아끼자는 생각에 원재는 그냥 고개만 까딱였다. 괜히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봉변당하기 십상일 듯 했다.
"암튼, 세상 혼자 바빠요."
잔뜩 이죽거리던 인영이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 덕분에 입놀림을 간신히 멈췄다. 아직 커피 한 잔 못 마셨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까페 라떼를 주문한 인영과 달리 여전히 잠이 부족해 이 갑작스런 만남을 후딱 해치운 뒤 당장 잠에 취해 버릴 작정으로 밀크티를 주문했다. 피식 웃으며 애들처럼 밀크티를 주문 하냐는 인영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또 언제 나갈 거냐? 미리 보고해라. 나중에 괜히 또 구박받지 말구."
주문한 밀크티를 한 모금 입에 담는데 인영의 빈정거림이 다시 시작됐고, 뜨끔한 원재가 밀크티를 식도가 아닌 기도로 약간 흘리는 바람에 사례가 들었다. 콜록거리며 멈추지 않는 기침에 괴로워하는 원재를 보며 인영이 싱글거렸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놓인 물을 건네주었고, 원재가 물을 벌컥 들이키느라 고개를 한껏 젖혔다. 병 주고 약 주는 고약한 심보라고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며 젖혔던 고개를 다시 내릴 때, 입구를 들어서는 깔끔한 차림의 여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아는 사람이라도 본 거야?”
저도 모르게 반가운 기색을 비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아니라고 둘러 댈 틈도 없이 상체를 길게 쭉 내밀며 출구 쪽을 살피던 인영이 뭔가 찜찜한 눈짓으로 입구에 들어선 여자를 가리켰다. 얼굴이 찌푸려진 모양을 보니 그닥 마음에 두고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닌 듯 했지만, 중요한 건 아는 사람인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너 저 여자……?"
원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리고 알면 안 되느냐는 물음은 입 밖으로 꺼내었다.
“어디서 봤는데?"
“어제 아버지한테 끌려갔다가."
“어이, 당신이 카사노바라는 건 잘 알지만 저 여자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서, 그냥 관심 끊지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인영이 제안했다.
“내가 뭘 어쨌다구 그르냐? 나 아직 암 짓두 안 했거든?”
“내 눈엔 니가 뭔 짓 벌일 것 같거든?”
조금 전 그녀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찌푸린 인상을 한 인영이 가늘게 뜬 눈으로 원재를 응시했다. 이놈의 자식,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인영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느낌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거였다.
“너 꽤나 경계한다?”
너 빨리 고백해. 인영은 원재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정확히 파악했다.
“너 외국물 먹더니 기억상실증 걸렸냐?
“응?”
생뚱맞게 무슨 얘기냐는 되물음에 인영이 원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너 어제 너희 아버지 연회장에 가서 봤다며. 거기서 울 오빠 유서준은 못 봤니? 저 여자 남편인?”
“요새는 좀 어떠니?”
꽤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물어 보기도 겁나는 질문을 던지기라도 한 듯 말을 건넨 여자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죄스러워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벌써 5년째 대하는 이런 태도도 더 이상은 봐주기 힘들었다. 사지를 향한 것도 아니고, 뭔가 결함이 있는 곳으로 간 것도 아니고, 싫은데 억지로 등 떠밀려 간 것도 아니건만, 왜 당당하게 예전처럼 자신을 대하지 못하는 지. 채희는 마주 보고 있는 여자의 태도에 문득 짜증이 치밀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직전까지는 보고 싶고, 그립고,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었는데…….
“그건 제가 물어야 옳아요, 엄마. 요즘 어때요?"
“덕분에.”
어머니인 진 은영 여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제야 내 걸렸지만, 채희의 속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진 여사의 미소는 저렇듯 희미한 적이 결코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밝고 크게 소리 내어 웃음을 짓던 사람이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크게 웃을 것을 권하던 사람이었다.
“제가 뭘 해 드렸다고 덕분이래요. 아버지도 괜찮으시죠?”
“그럼. 너 한 번 보고 싶다 하시던데…….”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채희의 말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던 신 여사가 결국 말끝을 흐렸다. 집에 한 번 오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못 하는 신 여사의 배려에 채희의 속이 또 한 번 뒤틀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 5년 동안 친정에는 발길을 뚝 끊었더랬다. 못 갈 이유는 없었다. 지척이라 가고자 하면 언제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채희의 입장에서는 시댁에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었고, 혹여 친정에서 강하게 집에 오라는 강요를 했더라면 한 번 정도는 갔을지도 몰랐겠지만 친정에서는 그저 왔으면 좋겠다는 요청만을 할 뿐이었다. 게다가 하나뿐인 남편이라는 작자는 매일 다른 여자의 치마폭에 감싸여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친정을 가자고 하거나, 왜 가보지 않느냐는 언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채희는 가지 않았고, 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정이란 채희에게 잊혀 진 장소였고, 아마 이런 생활이 계속 되는 한은 영영 발길을 돌릴 수 없는 곳이 될 지도 몰랐다. 뭐, 이렇게 가끔이나마 어머니라도 만나게 해 주는 처사를 황공하게 여겨야지.
“아시잖아요, 제 사정. 좀 나아지면 찾아 뵐 게요.”
채희가 잔뜩 비틀어진 생각을 하다가 차마 찾아 뵐 거란 기대는 하지 말라는 모진 소리는 못 하고 또 나중으로 미루었다. 어쩌면 벌써 몇 년 째 미루고 있는 저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 봤자 달라질 건 없지만.
“유 서방은 어떠니?”
염려가 가득 담긴 눈을 하고 물어 온 말이었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 인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빤히 알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테고, 좁은 바닥이니 한 다리만 건너도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라 듣기야 들었겠지만, 소문의 진실 여부를 차마 대놓고 정말 그러냐 묻지 못 해 부드럽게 돌려 묻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채희가 웃을 듯 말 듯 입가를 살짝 씰룩였다.
“뭐, 늘 똑같죠.”
그런 뒤 내 뱉은 자신의 대답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가가 굳었고,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고, 말끝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맞은편의 신 여사도 그런 기색을 느낀 건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의 일이라면 대충 잘 될 거라는 인사로 위로를 했겠지만 자신의 딸에게 벌어진 일이라 뭐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저 무거운 마음에 채희의 손을 끌어다 쓰다듬었지만, 이내 채희가 자신의 손을 빼는 바람에 그마저도 관둬야 했다. 집안 살리자고 자식 하나 팔아 치운 듯한 껄끄러운 느낌에 그녀를 대하는 게 예전 같지 못 했다. 미안한 마음에 말 한 마디 건넬 때조차 조심스러워진 까닭에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이런 침묵조차 꽤 불편해진지 오래였다. 그 때 채희를 그렇게 시집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집안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그러지 말 것을, 이란 후회도 그 시간이 5년도 더 지난 지금 이제와 해 봤자 너무 늦어 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아직은 참을만 해요, 그렇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적어도 괴물들과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채희가 안심이라도 시킬 목적으로 살짝 미소까지 첨가해 보이며 말했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전혀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았다.
“너한테 정말 몹쓸 짓을 한 것 같구나.”
“제가 원해서 한 거라고 적어도 백 번은 말했을 거예요.”
“니가 원했다기 보다는, 상황이 널 그렇게 몰아갔다는 게 맞는 말 일거야.”
늘상 나오는 한탄에 채희가 지겹다는 투로 자책은 그만해도 된다는 의미의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꾸를 보니 쓸데없는 짓이었던 것 같았다. 채희는 복잡한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신 여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 섞인 웃음을 지어버렸다.
"서희는 학교 잘 다니죠?"
아직 나이 어린 막내 동생을 생각하자 절로 미소다운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그 아이도 결혼을 한 뒤로는 본 적이 없으니 꽤 많이 컸을 것이다. 그 때가 그 아이 열다섯 되던 해니, 이제 벌써 스무 살?
“다음에 데리고 나올까?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채희는 피식 웃었다.
“시집보내도 될 정도로 컸죠?”
그리고 대답 대신 말을 돌렸다. 아마 아직은 아니라는 속내를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자신을 쳐다보던 서희의 물기 어린 눈망울이 아른거렸다.
‘언니, 자주 보러 올 거지?’
눈물 흠뻑 젖은 그 물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게 아마도 그녀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였던 것 같았다. 그 물음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긴 했지만, 어쨌건 지키지 못 한 약속이었다. 어쩌면 그게 미안해서 이렇게 만나기를 주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으음.
사실, 메인화면 보면,
쫌 쫌 쫌,
마아아아니,
민망해요;;;ㅋ
*
앞부분은 나중에 많이 많이 수정할거예요 ㅜ.ㅠ
대폭 대폭 ㅜ.ㅠ
하루 한 편도 감질나니...이거 원....하누리님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