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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장처럼 묵혀뒀던 이야기입니다. 구상과 시놉 수정만 한 10번 한 것 같은데. 이제는 계속 묵혀두자니 머리가 아파서요.
로맨스...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남자주인공이나 여자주인공이나 성격이 좀 제멋대로이고 쓸데없이 세계관만 줄줄 늘어서 아무래도.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결심하고 올립니다.
세계관이 궁금하신 분은 댓글을 남겨주시면 갈무리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개인 사정상 성실 연재는 어렵겠습니다... ㅡㅜ
Prologe - 붉은 달이 뜬 밤
"하아. 하아."
밭은, 그러나 맺힌 숨이 학학 대는 소리가 들린 것은 고속도로와 가까운 길 가였다. 어두컴컴한 밤의 고속도로의 길 가에는 한 새카만 인영이 질질 끌 듯 몸을 고속도로로 끌어내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힘겹다. 숨은 턱턱 막혀오고, 몸은 생각보다 더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인영은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그 곳에는 야위고 긴 그림자 하나가 말뚝 같이 서 있었다. 그 그림자 위에 비치는 것은 피 같이 붉은 달이었고.
"누구?"
"너야말로. 뭐지?"
그림자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은근한 힘이 담긴,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억지로 힘을 짜내어 고속도로로 나서던 인영은 피식 웃었다.
"자살 하려는 사람 처음 봐?"
"자살이라."
남자는 한참동안 그 말을 곱씹는 듯 고개를 숙이고 인영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힘겨운 숨을 내뱉던 인영은 놀란 듯 몸을 움직이려 했다.
"전신마비인가?"
"뭐, 비슷해.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뭐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 말인가? 집에 가는 중이지."
그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웃는 거야?"
"아니. 숙녀를 비웃는 버릇은 가지고 있지 않아."
진지하게 남자가 말하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여자가 피식 웃었다.
"하."
"왜 죽으려 하지?"
남자가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남자의 뒤로 핏빛의 달이 비쳤다.
잘 어울려...
여자의 뇌리에 스친 것은 그것이었다. 그 검고 나른한 목소리를 지닌 낯선 남자와 핏빛의 달은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왜냐고. 물었어."
남자의 진지하고 힘이 실린 질문에,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좀 더 뒤로 빼려 애썼다.
"통속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전개지. 하반신 마비에,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의붓 딸. 하지만 죽은 남편은 딸에게 전 재산을 남기고 재산을 신탁으로 남겼지.
자. 보통의 돈 보고 들어온 계모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흠. 좋다고는 못하겠군."
"그렇지? 게다가 딸 신탁금으로 나오는 돈을 포기하진 못 하겠어. 1년에 한 두 번 있는 정기적인 수술 비용과 일체의 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고라도 자신에게 오는 돈은 꽤 짭짤하거든. 그리고 수술이야, 안 할 수도 있고, 비용은 줄일 수도 있으니까."
"흠."
"내 돈이야. 정확히 말하면 우리 외가의 돈이야. 그 여자가 날 믿고 그렇게 쓰는 것은 못 보겠어. 게다가."
여자는 훅 하고 한숨을 짧게 내쉰다.
"변녀야. 내가 꼼짝 못하는 것을 알면서 그 앞에서 자기 남자 친구들과 일을 벌이거든. 솔직히 말하면 우리집안 돈 긁어 쓰는 것 보다 그게 기분 나빠."
"그래서. 죽으려는 건가?"
남자가 나른하지만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하반신 마비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야. 어딘가 끊어진 신경을 잘 이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던데, 뭐 그런 것은 상관없어. 하지만 이제는 지치고 힘들어."
"뭐가?"
"건강한 사람이 뭘 알겠어? 1년에 몇 번씩 원인을 알아본답시고 내 등을 째지, 게다가 그나마 마사지를 해 주면 나아질 지 모른다는 낭설을 믿고 날 막 주무르지, 뭐 평소에도 딸에게 별 관심 없던 아버지는 죽어버렸지, 변녀인 계모는 마사지사에게 날 겁탈하라고 지시를 내리지."
"뭐?"
"못 들었어?"
"그래서?"
"도망 나왔어. 내가 탔던 휠체어, 이래뵈도 전기로 움직이고 있거든."
남자가 잠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어디있는데?"
"사실 여기까지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튕겨나왔어. 그래도 어떻게 고속도로까지 나오면, 지나가는 차가 치고 갈 것 같았어."
"태평한 아가씨로군."
"그렇지?"
여자가 킬킬거리고 웃었다. 남자는 잠시 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죽고 싶다 라.
적월 (赤月) 은 자신의 시선 아래에서 밭은 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옷은 이미 엉망이 된 지 오래고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만은 생기있게 빛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다고?
정말 지치고 힘들었다면 그런 눈을 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지치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에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어쨌든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양보하지 않는 타고난 여왕의 말투를, 그의 발 밑에 누워있는 여자는 가지고 있었다.
이런 여자라면 그 누구의 발 밑에 누워있더라도 여왕일 것이다.
"그래서. 죽고 나면?"
"뭐 별 거 있겠어? 계모는 나 앉게 되는 거야. 내가 죽으면 재산은 전부 국가 단체에 기증하게 되어 있거든. 그게 계모가 날 못 놓아준 이유지."
"그래?"
"실은 계모는 날 못 견디게 싫어해. 말 만 안 할 뿐이지. 그리고 나도 그 여자가 썩 좋다고는 말 못 하겠고."
말투는 제멋대로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존심과 품위는 잃지 않았다. 이런 여자는 결코 비굴하지 않다.
"못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하려고 하잖아. 지겨운 여자야."
여자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밤하늘은 검고, 달은 붉었다.
"움직이게 되면, 좀 나아질 것 같나?"
"그럴 지도 모르지. 내가 계속 못 움직이고 있으면 난 계모의 영향 하에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건 못 해 먹겠어. 하지만 평생 못 움직일 가망이 높다고 빌어먹을 주치의들이 그러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남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은 죽는 것 보다 싫다는 이야기군.
"만일 널 움직이게 해 준다면?"
"뭐. 적당히 계모 밑에서 약올려 주다가, 성인이 되면 계모를 뻥 차주는 거지."
여자의 말에 담긴 건방짐이랄지, 솔직함이 그대로 그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넌 참 재미있군."
"당신도 참 재미있어."
두 사람은 붉은 달이 뜬 밤 하늘 아래에서 잠시 웃음을 교환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알아서. 대신에 조건이 하나 있어."
"뭐지?"
"묻고 싶은 것이 끝나고, 나랑 말 상대 하는 것이 지겨워지면 날 고속도로로 안아다 줘."
남자는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물며 물었다.
"내가 네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면 넌 나에게 뭘 줄 생각이지?"
여자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크게 웃었다.
"하핫. 당신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아니면 농담이야?
내 병은 왠만한 의사들은 다 두 손 들었어. 우리 엄마 살아계실 적에는 외국에서도 날아들 왔었단 말이야."
"어쨌든 만일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달라는 것을 주지. 단, 날 귀찮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둠 속에서, 남자의 눈이 번쩍였다.
"귀찮지는 않을 거다. 단지 가끔 날 만나주고 내가 달라는 것을 주면 돼."
남자의 말에는 묘한 힘과 믿음이 있어서, 여자의 눈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뭘 어쩔 셈이지?"
"흡혈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
"책은 읽었지."
여자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 순간, 붉게 빛나는 달빛에 그의 눈도 붉게 번득였다.
"당신."
"평생 나에게 마실 피를 제공해 준다면. 난 너에게 다리를 주지. 어때?"
"그건."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흡혈귀가 되는 거야?"
"불행히도 그 부분은 틀려. 파트너는 파트너일 뿐이다. 말하자면 살아 움직이는 혈액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평생 당신을 위한 혈액 제공자가 되라는 거야?"
"귀찮지는 않을 거다. 약속한다. 그리고 오라고 하지 않아. 내가 갈 테니까."
"어쨌든 계모에게 나와서 당신에게 매이라는 거잖아. 틀려?"
여자의 말은 정확했다. 남자는 움찔해 뒤로 물러났다.
"됐어. 야밤에 무슨 생 쇼야? 나 그냥 고속도로로 나갈래."
여자가 힘겹게 팔로 몸을 지탱해 조금씩 앞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밭은 숨을 내뱉으면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브 앤 테이크는 확실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말했지. 도박이라고. 만일 파트너의 계약이 실패하면 넌 그냥 죽어버려."
여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냥 피를 빨아먹어도 죽는 거 아니야?"
"미안하지만 내 경우 사냥은 50 여년 전에 그만 뒀어. 이도 많이 상했을거다."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 내뱉었다. 여자가 피식 웃었다.
"웃겼네 당신?"
여자가 몸을 다시 길에 눕혔다. 숨은 고르지 않았고, 팔은 피곤한 듯 경련을 일으키며 들석였다.
"간섭하지마. 알았지?"
"알았어."
"죽도록 배고프기 전 까지는 날 귀찮게 하지도 말고."
"그래."
적월은 반쯤 포기한 듯 헉헉거리며 자신을 필사적으로 가누는 여자를 무표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럼 어디 해 보라고."
"그 보다 먼저. 네 이름은 뭐지?"
"아. 말하지 않았던가?"
여자가 싱긋 웃었다.
"유안이라고 하지. 이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