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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상자. 은색 리본이 눈부시다. 뭔사 싶어서 녀석을 바라보지만 녀석은 파인주스만 마시고 있다. 옆에 빼
놓은 보라색 스트로우가 예쁜지 어쩐지 만지작 거리며. 긴장했구나.
흡, 숨을 들이 마시고 상자를 연다.
오~오~~오~~~놀랐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몸에 무언가를 달고 다니기 귀찮아 하는 성격이라 목걸이나 반지는 커녕 시계도 없는 녀석이다. 핸드폰은
가방 안에 들어있고, 귀찮으면 벨소리가 울려도 전화를 안 받는 녀석이다. 그러니 몇 달 전 커플링을 하자는
내 제안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린 녀석인데.
까만 상자안에는 까만 벨벳위에 큐빅 하나 달랑 박힌 심플한 커플링이 놓여있다. 민자에 그저 큐빅 하나 박
혀 있는 것 뿐인데, 나는 기분이 좋아져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반지 옆에는 노오란 쪽지가 하나 놓여있다. 펴 보니 양쪽으로 동그마한 나비 모양이 된다. 피식, 웃고 만다.
녀석을 보니 날 보며 쑥쓰러운 듯 웃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반지를 넷째 손가락에 껴본다. 딱 맞다. 큐빅이 방긋, 빛난다. 예쁘다. 마음에 든다. 커다란 반지를 테이블
위에서 놀고 있던 녀석의 손에 끼워 준다. 역시 딱 맞다.
신기하다. 저 녀석이 어떻게 내 손가락 사이즈를 알았을까.
[너랑이라면 낄 수 있을 것 같다. 잃어버리지 마. -환유-]
쪽지는 길지 않다. 무심한 말투가 찡, 해서 괜시리 눈물이 핑돈다. 이런 기쁜 일로 울고 싶지 않다. 나는 눈
에 힘을 준다.
"고마워."
녀석은 내 떨리는 말투를 모르는 척 해준다. 가끔 착한 녀석이다.
"그런데 무슨 날이야, 오늘?"
무슨 날인데 이런 황송한 선물인가 싶어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무심코
무슨 날이냐고 묻는다. 처음 만난 날은 아직 몇 일 남았고, 사귀자고 한 날도 아니며, 첫키스한 날은 더더구
나 아니다. 만족한 듯 웃고 있던 녀석이 입술을 비튼다. 그러면 그렇지 이여자가, 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어린이날이다."
녀석은 퉁퉁 부은 목소리로 말한다. 뭐, 내가 어린이냐, 하고 성을 내려다가 아, 하고 나는 입을 다문다.
"이 바보 여자야."
라고 녀석이 구박을 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5월 5일. 법정휴무일은 오늘은 바로 나, 윤나비의 생일이다.
몇 일 전까지 근사한 선물 내놓으라고 협박해댄 주제에,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난 그때서야 가방
에 쳐박아두었던 핸드폰을 꺼낸다. 어제 친구들이 만나자는 말에 왠일이냐 했던 나다. 핸드폰을 보니 역시
나.
[이제는 그나마 제 생일도 못 챙겨먹는구나. 쯧. 왜 태어났냐. -진영-]
[생일 축하해!! 설마 올해도 제 생일도 못 챙겨먹는 바보는 아니었겠지? 이따 보자. -선진]
등등 몇 개의 문자들이 나의 건망증을 비웃고 있다. 녀석은 이제야 알겠냐는 얼굴이다. 손가락에 껴있는
반지가 어색한 듯 녀석은 다른 손으로 연신 반지를 비틀고 있다. 바보 윤나비. 까먹은 것보다 분한 것은
녀석의 표정. 역시 까먹었군, 하는 그런 표정이어서.
"이리 와 봐."
툭툭, 자기 옆자리를 치며 나를 부른다. 네가 와라, 라고 평소처럼 쏘아주고 싶지만 그냥 옆으로 가 앉는
다. 심술이 나서 볼이 빵빵하게 부어오른 채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은 지들이니까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지들이다. 그런데 내 생일 내가 좀 까먹었기로서니 이리 바보취급이라니. 왠지 억울한 기분이다.
"볼 터지겠다, 윤나비."
빵,하고 터지길 바라기라도 하는지 녀석은 나의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쿡, 누른다. 순간 봇물이라도 터지 듯
나는 울고 만다. 녀석이 얼굴은 금새 심했나, 하는 표정이 된다. 금방 커플링을 받고 느꼈던 기쁨 따위는
구름 너머 저 멀리 확 날아가고 억울한 마음만 들어서 정말이지 엉엉, 목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 잔뜩 있었던 것 마냥. 녀석이 나를 제 품으로 끌어안아 어깨를 토닥이자 내 울음은 더욱 가속
된다. 나 자신조차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녀석은 품안은 따뜻하다. 넓고 포근해서 처음 안겼을 때 나보다 어린 남자의 몸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이 놈은 그 때 미성년자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십 분이 넘게 우는데 울다 보니 머리가 너무 아파진다. 귀는 멍하고 눈은 퉁퉁 부어 괴롭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또 운다. 늘 울다보면 그렇게 된다. 왜 우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운 게 서럽고 부어버린 눈과
쿵쿵 울리는 머리가 아파서 계속 울게 된다.
"윤나비."
낮지만 굳은 목소리에 힘이 실려 이어서 나는 웃다가 고개를 든다. 눈물도 재빨리 훔친다. 녀석은 내가 울면
짜증을 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이 녀석 앞에서는 안 울고 싶다. 처음엔 녀석이 짜증내는 것이 속상해서
더 울었는데 사실은 속상해 한다는 걸 알고는 그 다음엔 미안해졌다.
"이거 봐봐."
하며 내 손에 있던 반지를 빼더니 내 눈 앞에 갖다 댄다. 동그랗게 빛나는 금빛 반지.
"뭐, 뭘 봐아."
울음이 잔뜩 묻어나는 내 목소리에 녀석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미소짓는다. 짜증을 낼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여기, 반지 안에 뭐가 써 있는데 안 보여서 말이야."
녀석의 말은 뻥이다. 양 쪽 모두 시력이 2.0인 녀석의 눈은 거의 소머즈수준이다. 어쨌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조그마한 반지 안을 바라본다. 무언가 새겨진 듯 반짝반짝이고 있다. 나는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고
동그랗게 햇빛이 쏟아지는 반지안을 바라본다.
[결혼하자.]
내 손을 잡고 있던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니 네 집에서 너 노처녀 취급한다고 그랬잖아. 얼마 전에 울 엄마가 그러더라 더 늦으면 너 도망간다고.
너네 엄마는 더 늦게 사위되면 씨암탉이고 뭐고 구박만 할거래."
햇빛에 반짝이는 글자들이 눈부시다. 툭, 미쳐 닦아내지 못했던 눈물이 남았는지 볼을 타고 떨어진다. 내가
오늘 생일이라는 거 잊고 싶었던 이유, 이 녀석은 어쩌면 알고 있었나보다. 사실은 그랬구나, 나 자신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던 감정이었는데 녀석은 알아주었다.
녀석이 내 귀에 속삭인다.
"요번 년에는 아홉 수라 안된다더라. 내년에 내가 너 예쁜 아줌마 만들어줄께."
놓은 보라색 스트로우가 예쁜지 어쩐지 만지작 거리며. 긴장했구나.
흡, 숨을 들이 마시고 상자를 연다.
오~오~~오~~~놀랐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몸에 무언가를 달고 다니기 귀찮아 하는 성격이라 목걸이나 반지는 커녕 시계도 없는 녀석이다. 핸드폰은
가방 안에 들어있고, 귀찮으면 벨소리가 울려도 전화를 안 받는 녀석이다. 그러니 몇 달 전 커플링을 하자는
내 제안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린 녀석인데.
까만 상자안에는 까만 벨벳위에 큐빅 하나 달랑 박힌 심플한 커플링이 놓여있다. 민자에 그저 큐빅 하나 박
혀 있는 것 뿐인데, 나는 기분이 좋아져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반지 옆에는 노오란 쪽지가 하나 놓여있다. 펴 보니 양쪽으로 동그마한 나비 모양이 된다. 피식, 웃고 만다.
녀석을 보니 날 보며 쑥쓰러운 듯 웃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반지를 넷째 손가락에 껴본다. 딱 맞다. 큐빅이 방긋, 빛난다. 예쁘다. 마음에 든다. 커다란 반지를 테이블
위에서 놀고 있던 녀석의 손에 끼워 준다. 역시 딱 맞다.
신기하다. 저 녀석이 어떻게 내 손가락 사이즈를 알았을까.
[너랑이라면 낄 수 있을 것 같다. 잃어버리지 마. -환유-]
쪽지는 길지 않다. 무심한 말투가 찡, 해서 괜시리 눈물이 핑돈다. 이런 기쁜 일로 울고 싶지 않다. 나는 눈
에 힘을 준다.
"고마워."
녀석은 내 떨리는 말투를 모르는 척 해준다. 가끔 착한 녀석이다.
"그런데 무슨 날이야, 오늘?"
무슨 날인데 이런 황송한 선물인가 싶어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무심코
무슨 날이냐고 묻는다. 처음 만난 날은 아직 몇 일 남았고, 사귀자고 한 날도 아니며, 첫키스한 날은 더더구
나 아니다. 만족한 듯 웃고 있던 녀석이 입술을 비튼다. 그러면 그렇지 이여자가, 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어린이날이다."
녀석은 퉁퉁 부은 목소리로 말한다. 뭐, 내가 어린이냐, 하고 성을 내려다가 아, 하고 나는 입을 다문다.
"이 바보 여자야."
라고 녀석이 구박을 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5월 5일. 법정휴무일은 오늘은 바로 나, 윤나비의 생일이다.
몇 일 전까지 근사한 선물 내놓으라고 협박해댄 주제에,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난 그때서야 가방
에 쳐박아두었던 핸드폰을 꺼낸다. 어제 친구들이 만나자는 말에 왠일이냐 했던 나다. 핸드폰을 보니 역시
나.
[이제는 그나마 제 생일도 못 챙겨먹는구나. 쯧. 왜 태어났냐. -진영-]
[생일 축하해!! 설마 올해도 제 생일도 못 챙겨먹는 바보는 아니었겠지? 이따 보자. -선진]
등등 몇 개의 문자들이 나의 건망증을 비웃고 있다. 녀석은 이제야 알겠냐는 얼굴이다. 손가락에 껴있는
반지가 어색한 듯 녀석은 다른 손으로 연신 반지를 비틀고 있다. 바보 윤나비. 까먹은 것보다 분한 것은
녀석의 표정. 역시 까먹었군, 하는 그런 표정이어서.
"이리 와 봐."
툭툭, 자기 옆자리를 치며 나를 부른다. 네가 와라, 라고 평소처럼 쏘아주고 싶지만 그냥 옆으로 가 앉는
다. 심술이 나서 볼이 빵빵하게 부어오른 채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은 지들이니까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지들이다. 그런데 내 생일 내가 좀 까먹었기로서니 이리 바보취급이라니. 왠지 억울한 기분이다.
"볼 터지겠다, 윤나비."
빵,하고 터지길 바라기라도 하는지 녀석은 나의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쿡, 누른다. 순간 봇물이라도 터지 듯
나는 울고 만다. 녀석이 얼굴은 금새 심했나, 하는 표정이 된다. 금방 커플링을 받고 느꼈던 기쁨 따위는
구름 너머 저 멀리 확 날아가고 억울한 마음만 들어서 정말이지 엉엉, 목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 잔뜩 있었던 것 마냥. 녀석이 나를 제 품으로 끌어안아 어깨를 토닥이자 내 울음은 더욱 가속
된다. 나 자신조차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녀석은 품안은 따뜻하다. 넓고 포근해서 처음 안겼을 때 나보다 어린 남자의 몸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이 놈은 그 때 미성년자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십 분이 넘게 우는데 울다 보니 머리가 너무 아파진다. 귀는 멍하고 눈은 퉁퉁 부어 괴롭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또 운다. 늘 울다보면 그렇게 된다. 왜 우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운 게 서럽고 부어버린 눈과
쿵쿵 울리는 머리가 아파서 계속 울게 된다.
"윤나비."
낮지만 굳은 목소리에 힘이 실려 이어서 나는 웃다가 고개를 든다. 눈물도 재빨리 훔친다. 녀석은 내가 울면
짜증을 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이 녀석 앞에서는 안 울고 싶다. 처음엔 녀석이 짜증내는 것이 속상해서
더 울었는데 사실은 속상해 한다는 걸 알고는 그 다음엔 미안해졌다.
"이거 봐봐."
하며 내 손에 있던 반지를 빼더니 내 눈 앞에 갖다 댄다. 동그랗게 빛나는 금빛 반지.
"뭐, 뭘 봐아."
울음이 잔뜩 묻어나는 내 목소리에 녀석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미소짓는다. 짜증을 낼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여기, 반지 안에 뭐가 써 있는데 안 보여서 말이야."
녀석의 말은 뻥이다. 양 쪽 모두 시력이 2.0인 녀석의 눈은 거의 소머즈수준이다. 어쨌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조그마한 반지 안을 바라본다. 무언가 새겨진 듯 반짝반짝이고 있다. 나는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고
동그랗게 햇빛이 쏟아지는 반지안을 바라본다.
[결혼하자.]
내 손을 잡고 있던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니 네 집에서 너 노처녀 취급한다고 그랬잖아. 얼마 전에 울 엄마가 그러더라 더 늦으면 너 도망간다고.
너네 엄마는 더 늦게 사위되면 씨암탉이고 뭐고 구박만 할거래."
햇빛에 반짝이는 글자들이 눈부시다. 툭, 미쳐 닦아내지 못했던 눈물이 남았는지 볼을 타고 떨어진다. 내가
오늘 생일이라는 거 잊고 싶었던 이유, 이 녀석은 어쩌면 알고 있었나보다. 사실은 그랬구나, 나 자신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던 감정이었는데 녀석은 알아주었다.
녀석이 내 귀에 속삭인다.
"요번 년에는 아홉 수라 안된다더라. 내년에 내가 너 예쁜 아줌마 만들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