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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상처과 고통은 결국 외로움으로 귀결된다. 외로움은 사실 떨쳐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그 내면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다. 사람이 너무 쉽게 위로받고 장해를 너무 간단하게 뛰어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을 수록 깊이를 쌓을 수 있는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원하는 것을 쉽게 쟁취할 수 있는 방법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세상. 마음만 먹으면 얄팍하게나마 쉽고 간편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 욕망을 빠르게 이뤄내는 방법일 수록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로서 대접을 받는다. 정도는 언제나 어렵고 돌아가야 하는 좁은 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약삭빠르고 얄팍하게 재주를 부려 금세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만가지의 방법을 삶의 진리라고 소개하는 세상이다.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한 체리피커(Cherry Picker)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외로움을 은유하는 판타지다. 욕망에 너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는 세상은 편하고 자유롭지만 이기적이다. 그건 삶을 얄팍하고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은 해로움이다. 내 욕망이 솔직해지면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내가 너무 편하면 상대방의 고통에 쉽게 공감할 수 없어지고 당장 소중한 것들을 아끼지 못한채 흘려보내고 만다. 후회한들 이미 지나간 이야기일 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만 남고 법칙과 규범과 윤리만 남아버리는 서구의 사회 방식이 당장은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 그건 그런 규범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미래의 개인화된 우울한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아무리 혼자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할지언정 그러한 자신을 만들어준 부모와 가정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무한의 세계를 거니는 체리피커로서 살아갈지언정 이제부터 그가 선택하여 거니는 세계는 한때 어머니였고 소요자였던 숲지기 마녀가 흩어진 파편들이 뿌려진 곳들이다.
모든 세월이 흐른 뒤 혼자만 남아 있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뒤늦게 발견하게 될 수도 있고, 그때서야 후회한들 그 외로움은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숲지기만큼의 세월을 살았을 때 소요자로서 세계를 거닐 수 있었던 것은 한때 소요자였던 숲지기의 희생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숲지기가 뿌린 삶의 파편을 찾아가서 그 삶이 온전히 행복하고 평범한지 확인하고 떠나는 모습에서 나는 진산마님이 만들어가는 삼라만상식 해피엔딩을 또 한번 엿볼 수 있어 행복했다. 삶을 은유하고 현실을 꿰뚫는 놀랍고 근사한 단편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불 꺼진 방에 잠들었을 그녀가 자신이 말한대로 평범한 정착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과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다가, 하지만 조금쯤 감정적 보상도 받으며 늙어가다가, 병들고 죽게 될 거라는 걸. 모든 파편들의 삶이 원형을 닮은, 하지만 훨씬 온화한 궤적을 그리며 무한의 세계에서 반짝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진산, <체리피커> 중에서)
어쩌면 사람은 무한을 욕망하다가 결국 다시 외로워지면서 단단해지는 것이 숙명일런지도 모른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소요자의 운명을 타고 태어나는 존재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관용적 문구로서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 소요자로서의 운명은 부모의 희생 때문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소요자는 자라면서 체리 피커가 되어 숲지기들을 괴롭힌다. 그들이 진정한 소요자가 되는 시기는 결국 그 자신도 영원불멸의 소요자가 아닌 숲지기가 되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을 때가 온다는 것을 깨닫는 그 때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