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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소설로만 받아 들이고, 소설에 대한 감상만을 적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나 정은궐 작가의 신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는 왠지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에는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느껴진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정은궐 작가의 전작인 ‘맞선보고서’나, ‘해를 품은 달’을 봤을 것이고, 독자의 기다림과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 작가라는 신뢰가 상당히 쌓였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그 기대를 갖고 연재도 하지 않은 정은궐 작가의 글을 기다렸을 테고 말이다.
사실, 이번 신작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전작 ‘해를..’에 비하면 그리 신선하거나 놀랄만한 소재는 아니다. 솔직히 남장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신작에서는 현재의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왕조였고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던 ‘조선’을 배경으로 남녀의 구별이 확실하고 폐쇄적이었던 시대에 남장여자라는 소재와 정조라는 실제 왕을 배경으로 내세우는 보기 힘든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평소의 로맨스에서는 자료조사에 대한 한계 때문에 실존인물을 내세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과감한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소재와 배경으로 쓴 소설 중에서 ‘비단속옷’-
‘성균관…’ 을 읽고, 전작 또한 읽어 본 독자라면 신작을 보고 무릎을 치며 ‘역시 정은궐 작가!’ 라며 감탄했을 것이다. 남장 여자는 흔히 할 수 있는 상상이며 소재이긴 하나, 재미를 뒷받쳐 주는 수많은 자료조사와 정은궐 작가 특유의 유머로 작품의 격을 확실히 높혔다. 이미 보여줬던 여러 가지 치밀한 자료조사와 구성으로 큐브를 끼워 맞추는 듯한 이야기 구조를 보였던 전작만큼이라고 볼 순 없지만 말이다.
전작 ‘해를..’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실력으로 각종 고서를 인용하여 성리학이 갖고 있는 만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물론이고, 자세한 성균관의 묘사로서 어쩌면 전작에서 살짝 성균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미 이번 이야기가 구상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것은 ‘해를..’에 비해서 (물론 이 것은 내가 전작을 더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가끔 심각한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유머러스함은 작품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려 감정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가끔 전지적 싯점에서 서술하는 경우만 제외하고 남자로 알고 있는 다른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윤희를 대상으로 서술하는 지문은 ‘윤식’이어야 하는데 서술형이 ‘윤희’인 것은 어색한 상황이며, 이야기 전개상 재신이 윤희가 여자임을 알고 나서 갖게 되는 이성적 감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느낌상 윤희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임을 알았던 용하가 중간중간 윤희의 정체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했는데 어느 싯점부터 여자임을 확신하게 된 것도 조금은 설명이 아쉽다.
책 자체로만 보자면 사방의 여백이 조금 부족한 것이 답답해 보이게 하는 레이아웃이라서 안타깝고, 연재를 하지 않았으면서 작가의 말 한 페이지 없는 것도 독자로서는 조금 섭섭하다. 충분히 재밌게 잘 읽었지만 작가의 의도도 조금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작을 연재할 때는 배경이라든가 역사적 사실, 해석, 작가적 상상력에 대해서 독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인터넷 상이었지만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정은궐 작가는 친절한 작가는 아닌 것이다! 여지껏 출간한 세 권의 책에는 단 한 번도 작가 후기 따위는 없었다. 쓸데 없이 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 보다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 정도는 독자로서 궁금했었으니까.)
정은궐 작가의 전작도 보면 가상의 왕을 세우긴 했지만, 영조/정조 시대의 모습을 많이 참고로 한 듯 하다. 전작의 주인공인 왕 ‘이훤’ 이 군주로써 갖고 있는 스타일은 영조와 많이 비슷했다고 느끼는데 이번 작에서도 실존 왕인 정조를 배경으로 내세우며, 정은궐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왕을 만들어 냈다. 일단 정은궐 작가의 책에는 강한 왕과 흔들리지 않는 왕권이 있으며, 개혁의지가 강한 왕이 나온다. 로맨스적인 해석이야 어쨌든 등장하는 조선의 왕의 모습을 아주 이상적으로 그린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조선시대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이 찡하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윤희와 선준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가 아니라, 정조가 혼자 했던 말인 ‘저들을 기다리기가 지겹다. 저 젊은 피들이 언제 내 옆으로 온단 말인가’ 라는 말이다. 당파 싸움에서, 백성들의 임금이 아닌 양반의, 당의 임금이었던 그 시대에 당의 파벌과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젊은 임금의 부르짖음이니까 말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세종대왕 이외에 ‘대왕’이라는 호칭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정조임금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찌됐을지… (그들의 뒷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규장각 스토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조임금의 승하가 역사적으로 걸쳐 질텐데, 그것에 대한 정은궐 작가의 이야기 구상도 기대가 된다.)
좀 쓰다 보니까 전혀 로맨스 감상답지 않은 이야기를 개인적인 사견을 넣어서 늘어 놨다. 어쨌든 이 책은 드라마 계약이 되었고 (굳이 엉뚱한 에피소드를 넣지 않아도 드라마 원작으로서의 모티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라인도 충분하다. 제발 이 이야기, 이 분위기 그대로 드라마화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즌 2 격인 그들의 성균관 졸업 후 규장각 스토리를 정은궐 작가가 집필 중이라 하니, 역시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겠다.
* 책 빌려준 파수꾼님 고마워요.
* 말복 정도에 초계탕 꼭 해 줄께요. -_-;;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날!)
댓글 '5'
드라마 계약은 언제 되었다요? 아 진짜 소식도 빠르셔라.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면 항상 실망이라 이젠 드라마 방영된다는 소식도 꼭 기쁘지만은 않아요.
그런데......대체 바쁘다면서 책읽고 리뷰 쓸 시간은 언제 내시는거에욧.
덧붙이자면 갠적으로 저는 비단속옷도 완소목록에 있답니다.(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꿋꿋하게 밝힌다) 이혜경님 작품중에 젤로 좋아하는 작품. 2번 읽고 2번다 끝부분은 울었던.....언해피는 절대!!! 구입안한다는 제 원칙을 깨준 책입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