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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라는 제목의 만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글이건 그림이건 간에 <감각>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스타일리쉬한 물건을 딱히 좋아하는편이 아닙니다.
그림과 CF등, 말 그대로 전적으로 비쥬얼에 의존하는 장르를 빼고, 스토리가 있는 작품에서는, 흔히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창작자(감독)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원래 책을 읽을때도 스타일보다는 내용에 치중해서 읽기 때문에, 내용이 텅비고 스타일만 남는 작품은 잘 안 읽습니다.
(물론 내용도 있고 스타일도 갖춰져 있으면 아주 좋지요.)


저는 원래, 만화를 읽을때도 그림보다 내용에 치중해서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림은 형편없어도 스토리만 보장된다면 정말로 즐겁게 읽지만, 내용없는 맹탕의 그림만 연이은다면 금세 지쳐버리고 맙니다.
(특정 스토리는 없지만, 그림이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면 그것은 좋아합니다)


흔히 감각 이야기 할때 스타일 이야기도 많이들 하기 때문에 말을 꺼냈지만,
<스타일>과 <감각>은 다릅니다.
<스타일>은 그 창작자의 정립되어 있는 기술적인 형식이고,
<감각>은 심장에서 바로 건져내어 뿌려진 질서나 조화나 치고받고 달리기나 박자같은 겁니다. (말이 좀 ㅡㅡ;;; 아무튼 독자로서의 제 느낌으로는 그렇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일본만화처럼, 너무나, 너무나 <감각>이 없어버리는 물건을 만나면, -특히 다른 읽을거리가 없을때- 괴로워서 몸을 비비꼬다가 화까지 나게 됩니다. -,.-;;;

스타일이 다듬어져 정립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스타일과 감각은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데셍따위 다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감각>만큼은 갖춰줘야 하지 않을까요?
갖춰 주십시오. 독자로서 절규합니다. 갖춰주십시오.

그림, 연출, 스토리, 전개 모두 교과서적으로 "노력은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크게 흠잡을 점이 없다 치더라도", 감각의 씨가 말라버리는 만화는 읽기 벅찹니다.
물먹는 하마처럼 주위의 감각까지 싸그리 흡수해버리는 접근금지표시의 위험한 느낌이랄까요.

이유를 알수없지만 ㅡㅡ;;;;;;; 국내에 꽤 번역되어 있는 K***TO Y***I 라는 일본 만화가가 있습니다.
이 분의 만화는;; 평이하다면 평이한 그림체이지만, 발견즉시 경계경보 발동되면서 100m 후방으로 대피해 버립니다.
감각이, 괴로울만큼 독서 의욕을 사그러버릴만큼, 없거든요.

평이한 그림체에 평이한 펜선에 평이한 스크린톤에 평이한 컷나누기에 평이한 연출에 평이한 스토리라고 해서....... 한편의 만화가 이루어지는건 아니란 말입니다. 하아.......

이 분은 아무래도... 모범생이었을까요?
이 모범생은 학업 성취도가 뛰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어떤 규범을 어기지 않고 남들의 이목만을 신경쓰면서 적당히 적당히 줄맞춰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이 분은 차라리 성실한 생활인으로;; 활동하시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췌 만화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적당히 잘 한다고 해서... 칭찬받고.. 적당히 투고 하고.. 적당히 원고 채택되고.. 뭐 -_-; 이러신 분이었을지도요.

그림이든 스토리든, 아주 형편없는 실력은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나 평작 수준은 되거든요.
하지만 <열정>, <감각> 어느것도 느껴지지 않아서야, 왜 읽겠습니까?
제 취향엔 맞지 않습니다.

만화뿐 아니라 무엇을 봐도, 뭔가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열정과 감각의 소산입니다. 인내의 소산이기도 하지만요.
그냥 아무런 이유와 이끌림없이, 열심히 노력해왔다 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적당한 수준의 만화"를 읽고 싶은게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만화"를 읽고 싶습니다.
이런건 심하게 말해서 마네킹일 뿐입니다.

사실, 저는 비평을 할때 심각하게 혹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태껏 아무리 제가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비추를 날렸다 해도,
저 자신이 골라서 리뷰를 쓴 것은, 리뷰를 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 뿐이었습니다.
최근에 어느 님이 말하신것처럼, 저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만 읽는 편이거든요.
이 가치라 함은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K님의 만화는, 보통으로는 그냥 안 읽어버리고 마는 만화입니다.
예전에 대여점들에서 읽을만한 만화책이 떨어지면(집 근처에는 좁디좁은 대여점밖에;;), 어쩔수 없이 몇번 시도해 보았다가 (말씀드렸다시피 은근히 번역이 많이 되어 있거든요. 꽤나 부지런하신 분 같습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습니다.
이 분은 원망을 듣거나 비판받기 싫으신 탓인지, 자기가 진짜 원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시는 분 같더군요.
말하자면 작가가 담겨있지를 않습니다. -- 단지 재능의 한계라는 말을 떠나서, 그 창작업에서의 재능의 한계란 것이, 기본적으로 자기가 영혼을 깎아서 구겨넣을줄 아는가(노출증 환자인가)라는 독자에 대한 노출을 감수할수 있는 기본 자세;가 필요한 것인데, 이분은 흠.. 문제집의 요약노트같은 만화네요.
(* 딴말이지만, 이 노출증은 작가 자신만의 마스터베이션적인 글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남들 눈에 안 거슬리는 모범생 만화'면 충분하다고 여기는건지..
그럼 카타르시스 따위는 국물도 못 느끼면서 만화를 그리실텐데 어떻게 그 고된 작업을 견디시는 건지.. 참 대단한 인내이지만(빈정거리는 것 아님. 창작도 즐거움을 맛볼수 있어야 그 작업이 기쁘지 않습니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말 평이한 학창물이라도,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보여야 할듯한, 보여도 될듯한 생각"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생각"이 들어간 학창물은 우리를 언제든지 기쁘게 합니다.



<감각>이란 뭘까요?
오히려 방금 이 만화(감각이 씨가 마른)를 읽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건진 유익한 점?)
감각이란, 글의 만화의 맥동 같은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심장에서 시작되어 책에 남겨진 맥동.

그것(감각)은 책에 찍힙니다.
(옛날 환쟁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최종적으로 날인하듯이) 작가의 관인으로서.
이 작가의 작품으로서, 관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는 "그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기 때문에, 하고 많은 글을 만화를 뒤지는 겁니다.
아니라면 왜 늘상 읽고 또 읽은 평이한 스토리들을 뒤지겠습니까?

똑같은 스토리, 똑같은 인물들일지라도, 맥박이 다른글은 분명히 살아있는 글입니다.
(천편일률이란 뜻이지, 표절 -_-++ 이란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감각>은 작가의 지문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업물이다 보니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무쌍해 질수도 있는 지문이겠지요.


때로, <감각>이 스파크처럼 팍팍 튀는 글도 있습니다.
그런 글은 인정사정없이 독자를 휘몰아채가버립니다.
아무리 취향과 전혀 다르고 오타 비문 투성이고 개연성 전무에 허섭쓰레기같은 글이래도, 감각이 우레를 치면 심장이 벌렁벌렁하여 그만 항복해버리고 맙니다. (위대하십니다- 하고)

그래도 모든 글에서 감각이 팍팍 튀어줄 필요까지는 없죠. ^^;
그냥 보통은 희미하게나마 작가의 맥동이 스쳐 지나가주기만 하면 만족입니다.



거칠어도 좋으니
기술적으로 형편없어도 좋으니
스타일따위 없어도 좋으니
...
제발 <감각> 한숟갈만 은수저로 떠서 뿌려주세요.



아무튼
어떤 선생님들은 창작 지망생들의 습작을 보고 대번에 이 길 가도 좋다/넌 글쓰면 안돼, 하고 말씀하신다지요.
다른건 모르겠으나, 확실히 창작이란것은, 자기 맥박이 없고서야 창작자가 아니라 기술자가 될 뿐인것 같습니다.

창작을 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면, 대체 왜 창작을 하는지,
어쩌면 길을 잘못들거나, 자신의 본심을 오해하고 있는(창작을 본래 좋아하지 않는데 남들의 칭찬에 떠밀리듯 흘러와 버렸다던지), 아니면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불씨는 자신감 부족으로 모두 숨어버려서 전혀 작품에 반영되지 않는다던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져 버렸습니다.
제가 바다건너;; 만화가의 작업 생활을 복잡하게 고민해봤자 ^^;;;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은.


<감각>이란건 타고나는 거라고들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감각도 개발하기 나름이라고 봅니다. 다만 각자가 어떤 감각에 끌리어 어떤 재능으로 흘러가 버리는가는 천차만별이겠지만요.

혹시나 읽을만 할지도 하고 펼쳤다가 역시나 심란해지는 (제 정서를 고갈시키는) 만화였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아주 응축된 감각의 음흉한 소설이(^^; 항복이라니까요.) 따라와줬습니다.
조금 흐트러진 정서를 리필하고도 넘칩니다. 후훗.. 아.. 당신(소설)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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