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질 바넷(Jill Barnett)
출판사/현대문화센터

장난꾸러기 요정 같은 초록빛 눈동자의 조이.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 자부심 강하고 냉정한 벨모어 공작, 알렉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그를 매료시키고 그들은 순식간에 결혼해버린다. 생명력 가득한 조이는 웃음과 기묘한 사건들로 엄숙했던 벨모어 하우스를 뒤집어 놓지만 알렉이 조이의 매력에 빠져들 즈음 그녀가 마녀임을 알게 되는데...




원제는 "Bewitching"이며 1993년에 쓰여졌고, 번역 출판된 것은 2004년 5월이다.

이것 외에 출간된 것은 <헤더 에일의 전설>이다. 이것은 그리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들어 먼지만 잔뜩 얹혀두고 있는 중이라 작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그리 읽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서점에서 책을 발견했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아 덜컥 사버리고 말았다.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표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의 표지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신간서적들과 함께 놓였을 때 그리 눈에 띄지는 않지만, 따로 놓고 보면 내 마음에 쏙 든다. 판형도 그렇고.

요즘 들어 현대문화센터에서 출판되는 번역본들은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와 같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다. 페이퍼백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꽤 마음에 드는 판형이다. 속지도 약간은 재생용지같은 느낌이라 가볍고, 들고 다니며 읽기가 편하다. 또한 전체적으로 표지가 깔끔해서 좋다. 출판사에서 나름대로 신경쓴 티가 역력하다고 할까? 그리 큰 변형을 가져오지도 않으면서도 같은 장르의 타출판사와의 차별화를 두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란 소설을 이야기해보자.

때는 1813년 12월. 마녀의 피를 타고난 조이는 마법을 실행함에 있어 잦은 실수를 하는 귀여운 여자다. 그녀가 딱딱하고 냉철한 귀족 벨모어의 공작, 알렉 캐슬메인 무릎에 뚝 떨어진 것 역시 주문을 잘못 외운 탓이었다. 어쨌든 운명처럼 둘은 만났고, 알렉에게서 강한 끌림을 받게 된 조이는 그에게 조그만 마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알렉은 번개처럼 맞닿트린 그녀에게 자기 나름대로 계산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굉장히 충동적으로 청혼을 하고 이후 그녀가 마녀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혼란스러워진 자신의 상황에 적응하느라 혼쭐이 난다. 그러나 어쩌랴. 둘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미 결혼을 해버렸는 걸.

알렉이란 인물은 전형적인 귀족이다. 예의를 중시하고, 명예를 알고,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른바 따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조이란 실수만 하는 마녀의 등장은 가치관을 통째로 뒤흔드는 대대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전반은 이 알렉이 조이에게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쾌하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덕분인지 솔직히 알렉의 고뇌와 갈등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되려 조이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로 인해 알렉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 자체는 가볍고, 전개가 빠르다. 그런데 앞부분에서 알렉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까지가 좀 길고 온통 설명으로 도배되어 있어 본격적인 사건으로 뛰어들게 되기까지 지루함을 느낄 여지가 있다. 아쉽다.

물론 조이에 대한 알렉의 감정이 깊어지기도 전에 설정상 둘은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건 잘 알겠지만, 그럼에도 앞부분은 너무 길었다. 솔직히 전체 분량과의 비율을 따져서는 그렇게 긴 것은 아님에도 내가 길다고 느끼게 된 원인은 아마도 조이가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자주 되풀이해서는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이 또 있다면 반전이라고 할만한 뒷부분이다. 알렉과 조이는 실수로 인해 만난 우연으로 시작하지만 그 우연이 기가막힌 필연이었다는 식의 반전이다. 사실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러지 말고 알렉이 조이를 찾아나서며 고생하는 과정을 담는 게 더 짜릿했을 텐데. 쩝쩝.

참,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든 의문 한 가지.

1800년대면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 극렬한 전투를 벌이던 시기인데 이 소설에서 표현된 잉글랜드는 너무 고요해서 좀 의아하긴 하다. 특히 이 소설의 배경인 1813년. 같은 해 10월, 역사적인 전투인 라이프치히 전투(Battle of Leipzig)가 벌어졌었다.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동맹국으로 인해 크게 패하여 이후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1815년6월)에서 최후의 타격을 입고 완전히 패배하게 된다. 이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공작과 그 주변 사람들은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는 <모던걸의 귀향>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쓰여진 대부분의 소설(로맨스 소설도)은 반드시 나폴레옹을 소재로 잡는다. 주인공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든 아니면 단순히 배경으로 그치든 어쨌든 나폴레옹은 반드시 언급이 되곤 했다. 하지만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에서는 나폴레옹의 '나'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일제강정기를 배경으로 한 <모던걸의 귀향>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던걸의 귀향>과 같이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귀족 계급이다.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도 잠깐 등장하고 나중에 조지 4세가 되는 섭정왕자도 등장을 하니 결코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못하는 설정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공작이다, 공작. 친구들도 하나 같이 백작에 자작에 등등이다. 흠.

뭐 이런 의문이야 나중에 깨닫게 된 거고, 사실 <마녀, 사랑의 주문을 걸다>를 읽는 동안에는 당시 영국의 대내외적인 사정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재미있고 깔끔한 국외 소설을 읽게 되어 좋았다. 질 바넷의 다른 작품 <헤더 에일의 전설>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댓글 '4'

연경

2004.05.21 19:57:11

그래서 재미가 있다는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추천해주시면 함 읽어봅지요.
(단, 재미없으면 책임지시는걸로하고. ㅎㅎㅎ)

코코

2004.05.21 20:10:47

전에 나온 것까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건 재미있게 읽었단 소리 아니겠냐?
(책임은 절대 못져ㅡ,.ㅡ)

미루

2004.06.09 16:24:41

저도 처음 현대문화센타에서 나온 크리스마스 단편집('사랑의 노래'인가 '사랑의 기적'인가..)에서 봤던 '가브리엘의 천사'란 작품이 맘에 든 후로 새로나왔던 두 신간들 모두 나름대로 마음 흡족해하며 봤는데, 독자분들의 반응은 왠지 예상보다는 좀 다른 거 같아 의외였었더라는..^^;;

쟈넷

2004.08.14 13:31:06

질 바넷의 책을 2권을 페이퍼 북으로 가지고 있다가 이사 오면서 버렸답니다. 갑자기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요. 빌려서라도 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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