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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사랑느낌
번호 : 99 / 작성일 : 2004-01-23 [19:20]
작성자 : 수룡
'과일들'은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사과, 배, 바나나, 귤, 포도, 레몬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맛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하나하나의 맛과 색깔이 '과일들'을 이루는 토대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토대는 로맨스 소설도 마찬가지다.
항상 칼있으마~하는 남자와 청순가련형에 눈물만 뚝뚝 흘리는 여자가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남자는 어리버리할 수 있고 대신 여자가 용기있고 당찰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칼있으마~하는 남자와 청순가련의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저 남주와 여주는 너무도 많이 나온 패턴으로, 가끔 그런 글만 읽다보면 작품마다 구분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다. (원래 구분 잘 못하지 않았느냐는 딴지는 무시;) 또한 반드시 남주와 여주의 사랑이 단 한 번에 불꽃같이 타올라야 하는 것도 아니며 처절한 피비린내(?)가 풍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작품마다 반드시 임펙트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기호에 따른 문제일뿐.)
김희진 작가의 '사랑느낌'은 칼있으마~있는 남주와 청순가련형의 여주가 주인공인 소설에 지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를 더 깨달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읽은 글로, 나는 이 글이 참 마음에 든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과일들'은 한 가지 종류의 과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레몬처럼 강렬하고도 피튀기는(?) 글이 있다면 사과처럼 시원하게 아삭아삭한 맛을 자아내는 글도 있다. '사랑느낌'은 바로 사과같은 글로 (사실 '사과'말고 다른 과일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억이 안 난다....; '배'가 더 나을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플롯과 두 주인공 캐릭터는 언뜻 평범해보이는, 바로 그점이 매력적으로 생각되는 글이다.
여주와 남주는 재벌가지만, 우리의 고정관념(?)대로 처절하게 냉정한 그런 재벌가가 아니다. 남주의 집안이 약간 그렇지만, 연수의 결혼을 기점으로 남주의 집안 이야기는 사라진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작가가 제대로 생략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여주의 집안은 소박하고도 평범한 중산층과 같은 분위기로 작가는 여주의 집안이 '재벌가'라는 것을 '예절바름'과 '은근히 은해 결혼 밑어붙이기'를 내세웠다. (* 이건 정말 개인적인 생각인데, 난 아직 결혼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재벌가'라서 결혼을 저렇게 밀어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 조건이 좋으면 일반집도; 저렇게 밀어붙일까?;;;)
두 캐릭터도 평범하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남주는 칼있으마~ 이러면서 여주를 압박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미끌거리는 말도 종종 내뱉곤 하는 (읽는데 닭살이..;) 순진하고 성실한 남자이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뜻.) 여주는 재벌가면서도 그런 환경에 구애되지 않는, 흔히 볼 수 있는 발랄하고 평범한 캐릭터다. 그리고 플롯도 성실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남주와 여주는 천천히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안정적이면서, 아주 조금씩. 급작스런 변화없는 이런 플롯의 진행은 독자들에게 편안함을 심어준다.
이 작품의 가치는, 바로 그 '안정적인 평범함'에 있다. 이런 캐릭터들과 물 흐르듯 진행되는 차분한 플롯은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을 심어주고 흐뭇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그 특징은 큰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평범한 것 vs 강렬한 것. 사람들은 어느 것을 더 선호할까? 사람들은 왜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일까?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사랑느낌"처럼 안정적인 편안한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메두사"처럼 다소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사랑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도 있다. 강력한 것과 평범한 것 가운데 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인가? 기호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만, 대체적으로 평범한 것은 기억 속에서 오래지 않아 소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호에 따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사랑느낌"일지 모른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물론 강력한 것도 나름대로 단점이 있다.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 "사랑느낌"은 평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쏙 들며, 이 글이 칼있으마~ 있는 남주가 지겹게된 지금, 적기에 제대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도 적기에 접했고. (사실 잘 판단을 못 하겠다. 아예 초창기에 나왔다면 이런 평범하고 안정적인 글이 굳건하게 하나의 줄기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더 호평받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안정감을 음미하며, 훗날에도 읽고 싶은 글. 좀더 좋은 평을 받기를, 더 나은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글. 나는 언젠가 이 작가가 좀더 단문을 써서 (대체적으로 문장이 길다. 그래서 속도감을 느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약간의 속도감을 넣는 것도 좋을 듯.) 그리고 감동을 넣어서, 우리나라의 라빌 스펜서가 되길 바란다. ^_^; 다음 책도 기대.
덧 1. 오타 하나와 편집오류(들어가지 않아야될 단어가 들어갔다) 하나 발견. 위치는 모르겠음;
덧 2. 은해는 왜 까페를 운영하려는 걸까? '까페의 안정감이 좋아서' 이런 문장을 하나 넣었으면 좋았을걸.
덧 3. ...아무래도 평이 안 좋은 게 표지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 이 리뷰는 로맨스 소설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작성된 것으로 대상이 되는 로맨스 소설의 작가분께 해를 끼칠 의도는 조금도 없습니다.
정크 저도 어제 읽었는데 느낌이 좋은 책이더군요. 뭐랄까, 재료의 맛을 잘 살린 오리엔탈 샐러드 같다고 해야 하나. 리뷰해 주신 분이 벌써 세 분이나 되니까 저는 그냥 잘 읽었다는 짧은 댓글로 마무리 지으렵니다. 그리고 그 표지는 저보다 저희 신랑이 더 한심(?)해 하더군요. 종이가 이게 뭐냐고... 그래서 이 종이 비싼 수입지일 걸? 그랬더니... 싸구려로 보이면 실제 비싼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더군요. 열심히 표지를 만드신 분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2004-01-26 X
정크 그리고 확실히 느낀 건데ㅡ 라리싸 님과 수룡 님은 취향이 틀리세요. 굳이 따져본다면 라리싸 님 쪽이 보다 보편적인 시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나 읽을 때, 이 글이 반응이 있을 지 없을 지는 라리싸 님께 슬쩍 여쭤보고, 전개가 매끄럽고 분위기가 개성적인가 그런 문제는 수룡 님께 여쭤보면 될 듯^-^ 두 자매님을 알게 되서 정말 영광이야요. 2004-01-26 X
larissa 그것이 작가와 독자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ㅋㅋ 그래서 전 끝까지 작가 옆에 빌붙어 글받아 먹는 독자가 되고 싶네요. 2004-01-26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