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라운지
- 리뷰
글 수 762
제목 : [로맨스] 그림자의 사랑
번호 : 88 / 작성일 : 2004-01-11 [02:25]
작성자 : 수룡
난 글이라는 건 양이 얼마나 됐든,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죽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탄하느라 잠깐 쉬어줄 때말고.
연두 작가의 '그림자의 사랑'은, 다소 판단하기 애매한 (어려운 게 아니다) 글이다. 중간까지 읽었을 때 난 감탄이 아닌, 이렇게 저렇게 떠오른 다른 생각 때문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물론 끝까지 읽을 생각이었지만 (내가 끝까지 읽지 못 하는 글은 ㅡ적어도 내 기준으로ㅡ 진짜 안 좋은 글이다) 이 상태로 다 읽는다면 리뷰를 좋게 쓰지 못할 거란 사실은 확실했다. 하지만 중반, 여주가 이혼장을 남기고 떠났을 때부터는, 강렬한 힘을 느꼈다. 그래서 빠져들 수 있었다.
중반 전까지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손에 분명히 잡힐 정도로 많이 등장한 플롯ㅡ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주인공의 행동ㅡ이 펼쳐져있다. 여주를 협박(?)해 결혼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그 생각을 표현하는 몇 가지 행동이면 거의 다 ('모두 다'는 결코 아니다) 해결될텐데 육체를 강탈(또 강간이다; 정말 지겹다 -_-; 항상 생각하는 건데, 몇몇 로맨스 소설은 여주와의 관계를 제외한 남주의 많은 성관계과 강간을 너무 쉽게 등장시키고 용인한다. 언젠가 '존댓말'과 함께 다뤄보고 싶은 주제.)하는 것으로 해갈되지 않는 문제를 더욱 크게 벌리는 남주, 설명하면 될 것을 (얘기하지 말라고 안 하냐? 정말.. =_=) 입 꼭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는 여주. (사실 남주보다 여주가 더 답답하다) 중반까지는 전체적으로 축축하다. (아, 그러고보니 남주는 바람까지 피웠고 여주를 때리기도 했군 -_- 나쁜놈! +ㅁ+)
그렇게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은 건, 역전적인 구성 때문이다. 프롤로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주는 남주를 떠나갔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그림자는 길다"의 이세 작가님께 보낸 피드백 메일에 언급했듯이, 역전적 구성이란 건 중심이 되는 사건을 초반에 먼저 펼치는 방식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이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여주가 남주를 떠나갔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에 중반 이후부터는 쉽게 글을 접할 수 있었(던 것같)다.
중반부터는 많이 달라진다. 이제껏 아무 말하지 못 하고, 당하기만 했던 여주는 혼자 서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좋았다. 어머니와의 차이점을 다시 확인한 것과 시어머니의 한계를 느낀 것은 더 좋았다. 이 글은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의 사랑"이니까. 지나치게 현실적(혹은 냉정하게?)으로 보이는 내용이 "그림자의 사랑"에서는 딱 들어맞는 내용이 됐다. 남주와의 재결합은... 글쎄, 여러가지 것들 가운데 하나의 희망, 좋은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그게 성립되지 않았다면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결말이었다, 라는 생각보다는 혼자 서게된 여주가 스스로 사고해서 판단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밥먹듯이 강간하고 바람까지 피운데다가 여주를 때리기도 (이렇게 줄줄이 나열하니까 진짜 나쁜놈같다) 했지만 (=나쁜놈인 건 사실이지만) 중반에 여주를 놔준 건, 스스로도 '서로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스스로도 나쁜놈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결말은 제쳐두고, 어쩌면 그렇게 상처주고 헤어진 게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주가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결혼식 전 친구의 자살이 없었더라도 근본적으로 여주는 쌍둥이 남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해도 (윽) 그건 그리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시부모님의 존재도 있었고 (막강 시어머니) 태생적으로 이 글은 "모두 다 해피엔딩~* >_<"이러면서 끝날 수 있는 글이 결코 아니다.
이 "그림자의 사랑"은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고 답한다. 무거운 문체 때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난 만약 사랑이 전부라고 결말지어졌다면, 작가에게 실망했을 것같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말했고, 그래서 난 만족한다. 왠지... 남주가 (민철아, 자꾸 들먹거려서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네가 무자게 잘못한 건 사실이잖니?) 강간에 폭행을 일삼고 바람까지 피웠지만, 그리고 여주가 처음엔 수동적으로 행동했지만, 어쩐지 이 "그림자의 사랑"은 대단히 페미니즘적인(과격한 게 아니라 여성인권적인 측면에서)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사실, 이 글은 대단히 잘 쓰여진 글이 아닐까.
딱 그렇게 생각하기엔 앞부분이 축축한 데다가, 설명이 제대로 안 된 부분도 좀 있으며 생략된 부분도 있다. 더구나 마지막과 에필로그 부분은 꽤나 미진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실 이 글이 대단히 잘 쓰여진 글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뭐라고 해야하나, 작가의 무언가가 깃든 글같다고 할까. 으음... 아무래도, 이 작가의 세번째 글을 읽어야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을지. (세번째 글도 이렇게 판단하기 미묘하면 어쩌지? =_=;)
결론은, 한 번은 꼭 읽어볼만한 책. 그리고 생각해볼만한 책. (언니가 자고 있어서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참. 이 책은 여백이 많은데 편집을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 (양도 적은데 8페이판 인쇄라 페이지가 모자랐는 지도.) 중반 전까지는 "왜이래? -_-" <ㅡ이랬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여백의 미로군. 여운이 느껴진다. 괜찮네." <ㅡ 이랬다. -_-;
덧 1. 사실, 내용을 요약하다가 지워버렸다. 난 내가 열심히 쓴 글이 '단지' 몇 마디로 요약되는 게 싫기에, 다른 사람의 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왠지, 그 사람의 폭포같은 핏방울을 한 방울의 땀으로 축약하는 것 같다.
덧 2. 좀 웃기지만(?) 내용보다 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덧 3. 단지 설정상의 글이 아니라니... 무슨 뜻일까. (실화?)
덧 4. 음. 아무래도 다른 책들에 비해 음음신이 좀 많이 나오는 듯. (거기!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 +_+;) 하지만 테크닉이 다양하질 않아서... (헉;;;)
덧 5. 중반부터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갔다면... 캐릭터의 자유의지가 중반 넘어서부터 발동됐다는 건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작가의 의지보다는 캐릭터들의 의지가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도 그런 걸까?
덧 6. 이건 진짜 개인적인 생각인데, 민철이란 이름.. 촌스럽... (윽)
덧 7. '덧' 정말 길다... -_-;
* 이 리뷰는 로맨스 소설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작성된 것으로 대상이 되는 로맨스 소설의 작가분께 해를 끼칠 의도는 조금도 없습니다.
정크 두번째 문단에 버닝하고 덧 4에서 웃어버렸습니다. 초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2004-01-11 X
청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신 분. 얼어죽을 놈의 나무도 원츄원츄. 2004-01-12 X
'코코' 시원시원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덧이 죽음이었단!) 2004-01-12 X
Miney 수룡님의 리뷰는 읽기가 정말 즐겁습니다. 코코님의 리뷰와 더불어 수룡님께 정파에 글 올려주시는 것(=제가 읽을 수 있는...;)을 감사드려요. 2004-01-12 X
정크 마이니님 리뷰도 보고픈데... 근데 아마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상 '비평'은 힘드실 듯 합니다^-^; 2004-01-13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