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레이첼 깁슨
출판사/큰나무

조지앤은 할머니를 여의고 시애틀로 이주하여 독립하지만 뭘 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자 백화점의 향수 코너에서 일하다 만난 늙은 백만장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허나 그녀가 하는 일이 항상 엉망으로 꼬이듯이 이번에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파혼하려 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소리. 결국 생각다 못한 조지앤은 결혼식 당일 초미니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것도 신랑이 소유한 아이스하키 팀의 주전 선수인 존 코왈스키의 차를 얻어 타고서. 존 코왈스키는 결혼 전야 파티에서 떡이 되도록 퍼마신 통에 다음 날까지 정신을 못차리던 중 조지앤의 미모에 혹해 차에 태웠다가 그녀가 구단주의 신부임을 깨닫고 기겁한다. 그는 그녀의 관능미와 묘한 순진함에 처음부터 호감을 느끼지만 구단주에게 찍혀 소중한 경력을 망칠 생각이 눈곱만치고 없으므로 조지앤을 떼어 버리려고 하는데......



1998년 작이고 원제는 "Simply Irresistible"

레이첼 깁슨의 두 번째로 번역된 소설이지만, 첫 번째를 읽지 않았으므로 이 책이 그녀를 접하는 첫 번째라고 볼 수 있겠다. 결과는? 호오~괜찮은 걸~

먼저 뒷카피로 인한 오해를 조금 바로 잡아볼까 한다. 보시다시피 저 위의 뒷카피와 제목만 따지면 이야기의 흐름이 마치 '철부지' 조지앤과 존의 결혼 생활이야기같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도입부일 뿐이고, 실제로 내용의 주는 7년 뒤다.

우리의 조지앤(존은 죽어도 '조지'라 부른다)은 존을 만날 때만 해도 순수하고, 순진하고, 예쁜 걸 좋아하고, 책임감은 약간 결여되었으나 천성적으로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버질 더피와 결혼할 뻔한 이유는 생활고에 시달려서가 아니라, 외로워서였던 것 같다. 비록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읽다보면 그녀에게 동정이 간다고 할까? 그녀는 순진한 남부 아가씨라, 게다가 가슴과 엉덩이가 크지만 난독증을 갖고 있는 아가씨라 자신을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맥을 못추는 스타일이다. 그런 조지앤이니 힘들게 일하고 난 뒤 커다란 장미꽃과 롤스로이스를 대동하고 데이트를 청한 버질에게 그만 순순히 결혼을 허락하고만 것이다. 하지만 40년이나 연하인 신부에 대해 사람들은 그리 달가운 시선을 보내진 않을 터이고, 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구단주 버질의 신부란 걸 알고 나서 조지앤에 대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는 진짜 막나가는 녀석같기만 하다. 한대 때려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릴 정도로. 뭐 존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과거로 인한 피폐해진 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심히 곤란하지. 어쨌든 조지앤에게 혹한 존은 결국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에게 비행기 티켓을 쥐어준 다음 잊어버렸다. 잘 나가는 스타에 입이 걸지만 잘 생긴 외모 덕분에 그에게 붙는 여자는 쎄고 쎘으니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었던 거다. 바로 이 부분에서 감탄해마지 않았다.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에서는 여주와 남주가 만나면 육체적뿐만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관계를 맺게 된다. 그들이 헤어지더라도 몇 년간 그리워할 정도의 정신적 데미지를 입게 된다는 거다. 하물며 그리워 못하겠다면 증오라도 하면서. 그런데 <철부지 신부>에서는 다르다. 존은 말 그대로 잊었다.

이게 가능하냐고? 오, 물론 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읽는 로맨스에서는 주인공이 왜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그저 운명이니까, 주인공들이니까 사랑한다. 걔네가 도대체 왜 좋아하게 된 건데? 그 남자가 왜 그 여자를 잊지 못해야하는데? 그 여자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하는 건데? 라고 물으면 진짜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주인공이니까, 그게 로맨스야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연애란 혹은 사랑이란 어떤 부분에서 끌림이 있어야 시작되는 거다. 전에 읽었던 <뉴스룸과 주말연속극>에서보면 남자가 테이블을 닦는 손에 그녀의 시선이 머문다. 그때서야 마음이 열리고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이런 부분이 참 신선했다. 그저 주인공이니까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그의 어떤 몸짓 혹은 손짓 혹은 눈짓 등등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게 말이다.

로맨스 작가들은 대부분 로맨스를 접해보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할 거다. 로맨스에서는 그들이 '왜'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의 작가들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물적 넘어가는 게 버릇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로맨스를 읽어보라고 던져주면 이 여자 왜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란 질문이 되돌아오곤 했다(나름대로 설명하긴 했지만, 설명하는 도중에도 참 말 안 된다 싶었다-_-).

<철부지 신부>의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존의 이런 부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7년 뒤의 그는 다르다.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그도 어른이 되었으며 조지앤 역시 달라져 있어 둘은 서서히 서로에 대한 색다른 매력을 갖게 되는 거다. 근데 아쉬움이라면 나중에 존이 조지앤에게 빠지는 과정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소유욕이 치솟아 올랐다는 문구는 있으나, 그걸로는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 싶다. 그녀에게 끌릴 수밖에 없던 부분이나 자신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언급이 있었더라면 더 괜찮았을 텐데, 아쉽다.

참, 7년 뒤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그들 사이의 매개체다. 그가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7년 뒤 우연히 마주치고 나서 알게 되는 결정적인 비밀 하나. 그에게 아이가 있었다!

이로 인해 앞뒤 잴 것 없이 무조건 돌진하는 존. 그리고 그를 7년 전부터 사랑했던, 그리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조지앤은 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그리고 아이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며 그를 자꾸 밀어낸다. 비록 겉으로야 그를 싫어한다고 하고 있지만. 아이 때문에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던 둘. 동시에 서로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숨기고 싶던 과거사를 공유하고 오해를 풀고 또 상처를 치유하며 다가서게 된다.

설정상 몇 년간의 텀을 두고서도 막상 보면 세월의 갭이 느껴지지 않는 글이 참 많은데 이 글은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큰 장벽도 없고, 자잘한 오해를 푸는 과정이 약간 개연성이 없지만, 클라이막스가 없어 밋밋한 감도 느껴지긴 하지만, 둘 사이에 오가는 대사나 내용 전개가 톡톡 튀면서도 그럴싸해 나름대로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다 싶다. 전작인 <건달과 말괄량이>도 읽어봐야겠다.



수룡 건달과 말괄량이, 추천입니다. 철부지 신부라.. 수잔 엘리자베스 필립스 작품 덕분에 운동선수가 남주로 나오는 글은 바로 좋아하게 됐는데; 이 책도 꼭 읽고 싶네요. 언니가 안 빌려온 책도 있다니.. (저희 언니는 대여점의 큰손; 아, 물론 좋은 책은 산답니다^^)  2004-01-08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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