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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메두사  

번호 : 57     /    작성일 : 2003-12-02 [05:35]

작성자 : Junk    



지난 번에 서점에 갔다가 허탕친 후로, 당분간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보기로 했다. 이건 신간이라 아주머니가 빨리 가져오라고 하셔서 2시간에 걸쳐 속독한 후, 바람처럼 돌려 드렸다.

솔직히 거의 제대로 못 읽었지만(특히 하권은), 그래도 비연 님이 얼마나 열심히 쓰셨는 지는 감이 잡혔다. 그리고 이 작품이 하드하다거나 비난을 받을 만큼 나쁜 소설이라고는 절대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강아지를 죽인 부분은 사적인 취향으로 상당히 괴로웠지만(만인이 경악한 인두신은 막상 보니 별 느낌 없었다).

코코 님이 지적하신 기나긴 독백은 급한 탓에 제대로 읽지 못하고 넘겨야 했지만, 사실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부분이라는데는 동의한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긴 독백이 어울린단 생각이 드는 게, 주인공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더욱 갑갑하고 숨막히게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만일에 이게 작가님의 고유 스타일이라서, 다른 플롯에서까지도 이런 식의 문장을 구사하신다면 아주 약간은 문제가 있으리라 보지만 말이다.

독자에 따라 귀찮기도 했을 수많은 각주들은 아마 여성향 계열의 동인지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데(동인지, 특히 번역지에 각주가 엄청 많이 달린 걸 자주 볼 수 있는 듯), 문제는 그 각주 중에 틀린 설명이 꽤 자주 보인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내가 비연님의 메두사가 천동에 연재될 때 3회까지인가 읽다가 포기하고 그 뒤에 책으로 나온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던 이유는 초반의 틀리게 표기한 일본어가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재될 때는 솔직히 읽지 못했고 내용만 대강 추측했다. 책으로 나온 메두사를 보니, 내 짐작이 꽤 들어맞았더라. 아무튼 책으로 나온 메두사는 틀린 일본어 문장은 지워졌지만, 그 대신 틀린 일본어 표기가 눈에 띄었다.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 대해서는 출판사를 꼬집어 지적하고 싶다. 신영은 내가 알기로 유이카와 케이의 소설도 출간한 적이 있는 일본통 출판사다. 당연히 이런 부분을 매끄럽게 체크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작가님이 조사한 것만 믿고 전혀 체크 없이 넘어간 모양이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걸 골라보자면 대충 이러하다.



1. 류신의 직위

중간 오야붕ㅡ이라고 되어 있으나 나는 중간 오야붕이 뭔지 모르겠다. 보통 일본 야쿠자의 보스는 조장(組長 : 쿠미쵸우), 그 밑에 있는 중간 보스는 약두(若頭 : 와카가시라)라고 부른다. 아마 류신의 나이나 아래부터 시작한 출세과정을 볼 때 와카가시라가 어울린다 보지만, 어느 쪽이든 류신의 부하인 토오루는 그를 오야붕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쿠미쵸우나 와카가시라라고 부르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을 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젊은 야쿠자한테 오야붕이라니 조금; 오야붕(親分), 코붕(子分)은 우리나라 사이트에나 나오는 설명일 뿐, 내 상식 하에서 일본 사이트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일 없다(구식 용어다;).

그 외에도 내가 아는 일본이나 야쿠자에 대한 지식과는 너무나 다른 부분이 많아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또한 야마구치 구미의 류신회 정도로 하는 것이 야마구치 구미의 하나조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어떤 것은 구미(組)로 표기하고 어떤 것은 조(組)로 표기하니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회나 계로 표시했으면 훨씬 수월했을 것을. 실제의 야마구치 구미는 프런트 기업이 건설회사로 그 밑에 산하조직이 무지하게 많다. 실제 있는 조직을 끌어들이니, 내가 일본 영화 같은 데서 접한 야마구치 구미와의 갭이 커서 머리가 아팠다. 다시 말해, 한국인인 작가가 생각한 일본 야쿠자의 이미지인 메두사의 야쿠자들은 일본인들이 표현한 야쿠자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만일에 내가 연재시에 메두사를 제대로 읽었으면 비연님께 여쭤 보았으련만, 그 때 뭐가 그리 정신이 없었는지 거의 전혀랄 만치 읽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2. 류신의 한자 표기

龍神(용신)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인명이 실제 일본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명은 존재하므로(和歌山県 龍神村) 인명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류'진'으로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외에 후지노스케 히로미의 성인 후지노스케란 성은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다카하시(高橋)란 이름도(그건 성이다). 하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ㅡ 그 외에도 가끔 가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본어나 틀린 독음(예: 수미토모 은행을 수미모토 은행으로 표기한 것 등)을 볼 수 있었으나, 예전에 읽었던 모 소설에 비하면 너무나 별 거 아닌 오류였기 때문에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3. 정체불명의 일본인

검사 히로미에게 나는 많은 이질감을 느꼈다. 이왕이면 혼네와 다테마에가 확실히 구분된 일본인상을 써주셨으면 좀 더 설득력과 일본 색채를 강하게 불어넣으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히로미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이었지만, 절대 일본스런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일본인들은 선량하든 못됐든 가끔 섬뜩할 때가 있을 정도로 이중적인 구석이 있다. 히로미를 그렇게 표현했어도 굉장히 매력적이면서 일본적인 캐릭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히로미는 내게는 여주인 유채보다도 더 한국적인 캐릭터였다.



섭섭한 점 한 가지.

유채는 일본인이 다 되어 스시에 대하여 일본인인 히로미에게 설명하고 손수건을 네번 접어 경고할 정도로 일본에 대해서 많이 배웠는데, 류신을 휘두르는 여왕이 된 그녀는 류신 이하 하나조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전혀 알려주거나 토론하는 일이 없더라. 뭐랄까.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해 놓은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 그 뿐인 것에 조금 씁쓸했다. 마치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문화 잠식을 상징화하는 것 같아서. 아. 물론 이건 오버고, 처음 만나는 일본인 앞에서는 절대 일본어를 쓰지 않는 나란 사람의 지나친 자존심이다.

사실은 전에 디프네 님이 추천하신 모 여성향 소설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소설인데, 일본인이 공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수더라. '메두사'야 읽는 독자 대부분이 '한국 여자'고 여자가 깔리는 입장만은 아니지만, 여성향에서까지 우리가 '깔린다'는 건; 우리는 어느 새 정복 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가끔은 우리가 그들을 뭉개면 안 되는 걸까?



이 모든 오류와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메두사는 잘 쓰여진 소설이며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보이는 오류가 더욱 안타까운 지도 모르겠다.



'코코' 일본에 대해서는 난 전혀 깜깜이니깐 그런 세세한 부분은 못찾는단 말이지. 암튼 나도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데 동감~ 2003-12-03 X

'코코' 그리고 대부분 수에 감정 이입하지 않나? 물론 공에도 감정 이입이 되긴 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야. 그래서 수가 우리 나라 사람이 될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야오이에서 수란, 겉모습은 수지만 위치에 있어서는 여성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으니. 만일 일본인 수라면...여성이 절대 다수인 독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 뭐 이건 로맨스에 입각한 판단이고 남대남인 야오이는 조금 다르려나-_-; 2003-12-03 X

Junk 세계 조직범죄론인가? 그 책이 원흉입니다. 그 책의 틀린 표기를 그대로 보고 다 같이 틀리게 쓴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요; 그리고 수...에 감정이입이라... 제가 그런 스타일을 싫어해서요;;; 암튼 전부 한국인이 깔리니까 좀 그렇다 이거죠;  2003-12-12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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