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운영은 속으로 경악하며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게 여의주에요.”

운영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온 푸른 빛깔의 오묘한 구슬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럼 내가 이제 신수라는 말인가?”

세상의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구슬 여의주. 실제로 무언가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은 아니다. 다만, 흑룡이 신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마음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보옥이다. 그 여의주를 통해 흑룡은 신수로 승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영력과 영생을 얻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수아를 구할 수 있는 거지?”

이하는 지금 이 순간 여의주의 등장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안돼요. 여의주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흑룡!”

난 신수 같은 건 안 되도 돼. 대신 수아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당신이 신수가 되냐 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에요. 당신의 목숨과 결부된 문제에요. 지금 당신은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라고요!”

정확히는 죽지 않아.”

이하는 미소 지으며 운영을 올려다봤다. 그제서야 이하는 운영의 눈물을 보았다.

나 때문에 우는 거야?”

운영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자신의 얼굴을 어둠 속에 감췄다.

영원한 잠에 빠지겠지요.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잠에서 절대 깨어나지 못해요. 아무도 깨어나지 못했어요. 여의주를 잃은 신수는 모두 그렇게 잠든 채 죽어버려요.”

하지만 수아는 살겠지.”

이하는 다시 휘련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운영은 휘련을 끌어안은 이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한가지만, 하나만 들어줘요.”

수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지 않아요.”

운영은 그렇게 말하며 휘련의 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으로부터 냉기가 흘러나왔다.

무녀!”

세계는 끼긱거리며 비틀린 톱니바퀴 같은 소리를 내며 하얗게 얼어붙었다. 운영의 손으로부터 뻗어 나온 하얀 냉기는 서서히 세계를 멈췄다. 이하는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에 침착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경계의 무녀는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시간조차 멈출 수 있었던 거군.”

세계에서 역동하는 것은 이하, 운영, 하데스,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여의주와 붉게 고동치는 틈새의 문뿐이었다. 하데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운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는 걸 좋아하지 않죠.”

운영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이하를 바라보았다. 하데스는 그런 운영의 몸을 지지하듯 그녀의 곁에 앉아 어깨를 잡아주었다.

이게 내 살아있는 동안의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르니까. 들을게.”

이하는 순순하게 운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영은 고통과 슬픔이 뒤섞인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에겐 바꾸고 싶은 과거 있었습니다.”

이하는 흔들림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비극을 만든 사람을 벌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하데스의 몸이 굳었다.

그래서 소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했어?”

이하가 물었다. 운영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했죠. 그리고 자신이 벌하고 싶었던 사람도 벌을 주었습니다. 당신이 짐작하듯이 과거를 바꿔서 말이죠.”

잘 됐네.”

그러나 운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처절했죠.”

과거를 바꾼 대가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든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그녀는 자신을 구하고 그 자신을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과 만나게 해줬거든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는 두 사람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은 같은 세계에 살 수 없었어요.”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또 다른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양보하고 스스로는 벌을 주고 싶었던 사람들과 함께 그 모든 사람들을 가둘 수 있는 감옥에 함께 갇혔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아무도 해칠 수 없게 말이죠.”

과거를 바꾸면, 그 바꾼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이하.”

당신이 잠들면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어요. 당신을 잃은 그녀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겁니다.”

운영은 용궁에 살기를 품고 뛰어들었던 휘련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수아를 잃으면……, 난 어떻게 되지? 이게 과거의 분기점이면, 이미 일어났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되는 거지?”

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당신은 아무 일도 겪지 않았던 게 되겠죠. 휘련을 만났던 일도, 나를 만났던 일도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렇다면 난 수아를 믿겠어.”

이하…….”

당신이 전해줘.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다고.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그리고 날……, 날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 달라고.”

이하는 괴로운 듯이 휘련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가 죽었다고.”

…….”

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절망하기보다 사람을 믿겠어. 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지 않아. 난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난 수아를 살리고 싶어. 그 밖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어.”

운영은 눈을 감았다.

그렇겠죠. 그녀도 그랬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포기했으니까요.”

운영은 이하의 어깨에 올려놓은 손을 그의 뺨에 대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이하가 희미하게 웃었다.

하겠지,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 밖에 없어. 난 수아를 사랑해, 이 기억을 없애고 싶지도 않고, 그녀를 잃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그녀는 당신을 잃겠죠.’

운영은 포기했다. 그녀는 휘련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세계가 다시 소리와 냄새와 바람으로 채워졌을 때, 이하는 결심을 굳힌 듯 운영을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자신의 생명의 빛을 휘련을 향해 놓았다. 작은 여의주는 강렬한 빛을 반짝거리며 휘련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몸은 스며든 여의주와 같은 푸른빛으로 살짝 빛나더니 서서히 상처가 치유되고 핏자국이 사라졌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피부마저 진주처럼 빛났다.

대왕!”

운영은 갑자기 쓰러진 이하를 지탱하지 못하고 하데스를 불렀다. 하데스는 재빠르게 이하의 몸을 붙들었다가 천천히 뉘었다. 이하는 숨소리마저 희미해서 잠들었다기보다는 죽은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이미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무녀.”

하데스는 조용히 운영을 불렀다. 운영은 그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쓰러진 연인을 내버려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곁에 쓰러진 한 여인에게 다가갔다. 달래에게 다가가 주저앉은 운영은 그녀의 머리칼을 정리하고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해요.”

옆으로 누워 잠든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바닥 쪽을 향한 머리와 팔, 그리고 아마도 갈비뼈를 비롯한 잔뼈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내장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깨진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자갈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운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살려주지 못해서.”

그러자 달래의 혼이 그녀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운영은 그녀의 혼만을 잡고 달래를 일으켜주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달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검은색 도포의 하데스를 보고, 또 바닥에 누워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휘련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음 생은 부디 행복하길…….”

운영의 축복을 받고 달래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하데스가 다가와 그녀의 다른 쪽 손을 잡았다. 그러자 달래는 빛의 입자가 되어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실은 그녀를 살릴 수도 있었다……, 절대로 그에게 말하지 않았겠죠.”

그게 분기점의 가능성……이죠.”

운영은 세계에 녹아드는 여인의 혼을 바라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그만 돌아갑시다.”

하데스는 이하를 안아들었다. 운영은 멍하니 그녀의 혼이 마지막까지 소멸하는 것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붉게 고동치는 틈새를 향해 걸어갔고 그렇게 그들은 사라졌다.

…….”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고 틈새가 메워진 직후였다. 마치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휘련이 깨어났다. 휘련, 선우자양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잠시 아무생각없이 그냥 주저앉아있었다. 차가운 자갈의 감촉을 느꼈을 때, 드디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억을 꺼냈다. 자양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아프지 않아.”

자양은 너무 아픈데 내가 못 느끼는 건가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바로 곁에 있는 달래를 발견하고 그녀를 건드려보았다. 이미 숨이 끊어진 달래는 아무반응도 하지 않았다.

죽었나?”

자양의 눈은 차가웠다.

…….”

그녀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달래를 바라보았다. 달래가 자신을 보호해서 자신이 살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가슴 속에서 시원한 기운이 밀려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기(神氣)였다.

?’

예전과는 다르게 많은 장면들, 수많은 선택지가 그녀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피로 물드는 장면.

여기……?’

여기다!”

저 멀리서 횃불을 흔드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자양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을 부르고 있었다. 자양은 고요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올 때까지. 소식이 전해지고, 그녀들 중 한명이 자신의 앞에 나타날 때까지. 자양은 오히려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서 느긋하게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앉아 쉬었다.

 

신녀님을 찾았습니다.”

소녀가 장로원에 알린다. 소녀는 들어 온 지 얼마 안 된 무녀다. 신기는 가지고 있지 않아 그냥 심부름만 하는 몸종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현재 월하연에 제대로 된 신기를 가진 자는 거의 없다. 특히나 원로원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들의 모임이다. 그 중 한명, 백두가 일어섰다.

어쩌실 거요.”

백두는 다른 원로들의 채근에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아무말 없이 방을 떠난다. 또 다른 자가 일어선다. 석죽이다. 백두는 자신을 쫓아오는 석죽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냥 놓아줄 셈이라면 그냥 둘 수 없지.”

둘은 50대에 접어드는 동년배다. 백두는 자양의 바로 전의 장, ‘휘련이었다. 그녀는 현재의 월하연의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권력을 추구한 나머지 금기를 어긴 현재의 월하연. 그러나 석죽은 언제나 백두의 곁에서 그녀를 보좌하던 2인자였다. 그녀에게는 아직 신기가 남아있었고, 어린 나이에 깨어난 자양이 아니었다면 다음의 휘련이 되었을 여자였다. 그 분풀이라도 하듯이 석죽은 자양의 힘을 이용해 권력을 추구했다. 처음에는 자양이 장이 된 것이 한스러웠지만, 지금은 힘을 잃은 자양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의 월하연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번성했고, 막강한 힘을 가졌던 것이었다.

…….”

백두는 자신의 동기에게 뭔가 충고하고자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둘은 어린 무녀의 안내를 받아 자양이 있는 계곡에 도착했다. 횃불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들 사이에 두려움이 있었다.

뭐냐!”

석죽이 소리쳤다. 그녀는 아이들을 헤치고 자양 앞에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자양이 느긋하게 바위 위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네 이년! 그렇게 도망치고도 반성의 기색도 없다더냐!”

이전이라면 턱도 없는 불경이었다. 그러나 석죽은 힘도 잃어 쓸모가 없어진 자양이 미웠고, 기회를 잡자 여지없이 분풀이를 할 수 있었다.

킥킥킥.”

자양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구나.”

석죽은 당황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화무쌍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다시 욕을 하려고 했지만 자양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네 년이냐? 나에게 신수를 잡아 달인 약을 먹인 년이?”

…….”

겁먹을 거 없어. 아니, 잘했어. 근데 이거 좀 피곤하구나.”

이미 본 장면을 다시 보자니 자양에게 실제 상황은 그냥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예전의 예지는 이렇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예지, 거기에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장면은 예지할 수 없었다. 보이는 건 상대방의 삶 중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인 장면만이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자양의 예지는 거의 자문자답 수준이었다. 의문이 생기면 실제로 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달래년이 알려 줬나본데 그래도 소용없다.”

자양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잔소리하는 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석죽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네 년을 이대로 끌고 가서…….”

백두.”

석죽이 씩씩거리며 자양에게 다가서는 순간, 자양이 백두를 불렀다.

그 동안 수고했어. 당신에게 잘못은 없어. 다만, 당신이 살아있으면 내가 귀찮아지니까, 그냥 혀를 깨물도록 해.”

자양은 마치 배고파서 밥을 먹고 싶다라는 식으로 가볍게 중얼거렸다.

!”

그러나 백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가 자신의 혀를 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제어할 수 없는 공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찢고 씹어서 잘라내.”

우지직우지직.

주변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계곡에는 횃불이 타는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살덩이를 거칠게 도려내는 소리만이 울렸다.

, .”

잘라진 혀뿌리에 질식하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침내 백두의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흘러내렸고 숨이 멈춘 백두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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