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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조선 최고의 무녀
운영의 신경은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에게 쏠려있었다. 때문에 경계의 땅에서 돌아오고도 자신의 초가집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다.
‘주인님!’
‘…….’
‘주인님!!’
‘…….’
‘주인님!!!’
“……깜짝이야.”
‘……제가 더 놀랬습니다. 지상으로 돌아오고도 대답이 없으셔서 큰일 난 줄 알았잖아요.’
세오의 염파(念波)였다. 운영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아…….”
‘…….’
“미안, 미안. 좀 딴 일이 있어서 깜박했네. 지금 갈게요.”
용궁으로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보낸 세오였는데, 본인이 깜박하고 잊어버렸으니 운영은 이쪽일도 급해 보였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 서두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응? 화난 건가요? 아냐, 정말…….”
‘아니에요, 주인님. 이 쪽, 용궁 쪽이 안 급한 것 같다고요. 아니 이번만은 현무 말에 동의합니다. 오실 필요 없어 보여요.’
“에?”
운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아니, 무슨 수로 콩깍지가 씐 애를 떨어뜨려놓는답니까?’
“응?”
운영은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닫아 문단속을 하고 마당을 나섰다. 거무스름한 돌들로 쌓아올린 담벼락을 따라 마을 밖과 안을 향하는 큰 길이 나 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던지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검은 담벼락과 골목길이 마을 구석구석 나 있고 큰 길을 따라 가면 관아와 마을 유력 집안의 대갓집이 나온다. 관아를 지나면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장터가 나오는데, 서낭당과 운영의 집이 있는 쪽과 달리 이쪽은 나루터가 있어 장사꾼들이 자주 오가 인파가 많은 곳이다.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니 운영의 집이 있는 마을 경계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운영은 담을 돌아 집을 나섰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사람 따라 날 길에 잡초가 기다랗게 자랐다. 왼쪽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낮은 구릉이 뒤이어 산맥을 향해 솟아있었다. 운영은 낮은 구릉을 따라 깊은 산 속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콩깍지가 씌다니? 누가 사랑에 빠졌다 라는 의미인가요?”
세오의 염파에 꼭 소리를 내서 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운영은 주변 눈을 상관없이 소리 내어 말했다. 이런 행동이 마을 사람들에게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꼭 미친여자처럼 보이게 하는 걸 알면서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신수 생활 몇 년 안 되었지만, 그래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 원래 태생이 고귀한 애들은 뇌가 없답니까? 그리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도 구분을 못하게요.’
운영은 머리, 꼬리 다 잘라먹은 세오의 말투에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난 신수가 아니라서.”
운영은 세오가 주인님 주인님 부르는 것도 귀여웠지만, 자신과 다르게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얼토당토하지 않아도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꼬박꼬박 세오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었다.
‘아, 죄송해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세오는 호흡을 가다듬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선 건국 이래 유교의 도입으로 불교 및 타 종교들은 탄압을 받는다. 그것을 배경으로 무녀를 신딸로 숭배하는 신교는 밀교가 되어 지하로 숨어든다. 체제를 위해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에 밀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이미 밝은 곳에서 떨어져 나와 있던 밀교는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도 정치와 종교는 떨어질 수 없었고, 뿌리깊이 박혀있던 정신 신앙은 여전히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때문에 밀교에는 돈과 세력이 모여들었다. 표면적으로 유교나 불교 등으로 감추어 있었으나 밀교는 그 풍요로움을 이용해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월하연(月下蓮)’이라 불리는 교단이 있었다. 대대로 강한 신기를 가진 무녀를 수장으로 삼고 물러나거나 오랜 기간 영향력을 발휘한 전 무녀들의 모임 원로원으로 교단을 운영하는 조직이었다. 그 월하연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이 여자아이는 10세의 어린 나이에 월하연의 수장으로 오르게 되는데, 그 이유인 즉 전무후무한 예언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교단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뒷면이 있기 마련, 급속도로 성장하며 정치에 영향을 주던 월하연은 결국 왕의 눈에 띠게 되고 토벌 당한다. 물론, 조정에 발이 넓었던 교단과 예언의 힘으로 그들 수뇌부 모두가 집터만 남기고 사라졌으니 그것을 토벌이라 할 수는 없었겠지만, 경계 당하던 월하연은 그 활동을 대부분 접고 지하로 들어간다. 사실상 매미의 잠과 다를 바 없었다. 세상에서 잊혀 지기를 기다리며 강한 자금력으로 그늘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리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수뇌부들은 오랜 시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기를 갈망한다. 그러던 중 수장인 무녀가 능력을 잃게 된다. 촛불의 마지막처럼 타오르던 강한 힘은 그 강렬한 힘의 대가인지 짧은 기간 발휘하고 능력을 서서히 잃어갔던 것이다. 그것이 신녀 ‘휘련(輝蓮)’, 16세의 일이었다.
그녀가 힘을 잃었나. 운영은 홀로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지상이자 인간들의 일이였죠. 그러니 ‘우리들’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되더군요.’
월하연의 장로들은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하나는 수장을 결혼시켜 강한 힘을 가진 아이를 낳아 잇는 것, 둘째는 신기를 되돌리는 방법을 찾는 것. 장로들은 첫 번째 방법은 무기한 보류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무녀라도 낳은 아이가 똑같이 예언의 힘을 가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것이었다. 애초부터 휘련의 존재 자체가 천에 하나의 기재였기에 만일 같은 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바로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기를 강화시키는 길을 선택한다.
“설마…….”
‘웃기는 일이죠. 그래도 정도를 걷던 무녀들이 권력의 맛을 보더니 바로 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
‘내가 생각한 설마는 그 설마가 아니지만, 휘련이 그렇게 행동했을 리가 없는데.’
‘원래 이전부터 알고지낸 신수들이나 신령들이 많던 교단이라 많은 수가 희생당했습니다. 게다가 용왕과도 알고 지낸 곳이라 의심이 늦었답니다.’
“휘련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 무녀를 아시나요?’
“만난 적 있어요. 순수하고 강한 사람이에요. 자존심도 강하고……. 그녀가 스스로 원해서 그런 것을 할 리 없어요.”
‘들은 말로는 무녀를 속이고 먹였다고 하더군요.’
“…….”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데, 많이 괴로웠겠군.’
운영은 놀라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사실을 알게 된 용궁에서도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을 즈음, 한 흑룡(이무기, 이룡의 다른 말)이 잡혀있었답니다.’
“……그와 신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건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무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 콩깍지가 씌었다면서요.”
‘아하, 그랬죠. 암튼, 그 무녀도 사실을 알고 흑룡을 풀어주었고 둘이 함께 달아났다가 눈이 맞았다는 뭐 흔한 전개죠.’
“풋.”
이야기와 소문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세오는 사실 동물에서 신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산 시간도 운영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시간을 살았다. 그래서 유독 이야기하는 걸 좋아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이것저것 들은 소문들을 운영에게 쉴 새 없이 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였다. 운영은 들은 얘기는 많지만 정작 경험은 일천한 세오가 흔한 일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우스웠다.
‘으흠, 웃을 일이 아니지.’
“사정은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용왕은 둘을 떼어놓는데 경계의 땅을 사용하고 싶은 거군요.”
‘그러니까 오실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지 스스로 음식이 되겠다는데 뭘 말려요.’
“세오~.”
운영은 비난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운영도 생각했다. 물론 다른 이유로.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부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흑룡은 경험을 통해 성년, 즉 신수가 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경계의 땅은 시간의 흐름도 개인마다 다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경험을 쌓는 과정을 보낸다. 그것이 어린 흑룡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수천년을 사는 신수들에게 몇백년쯤 감수할 수 있는 시간이며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일생을 몇 번이나 반복할 시간이다. 그네들을 떼어놓는다면 신녀는 죽을 때까지 흑룡을 만날 수 없다. 운영은 그런 잔인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운영의 발이 중턱에 이르렀다. 낮은 경사도에 펼쳐진 빽빽한 나무 사이로 슬그머니 비어있는 곳이 있다. 공터에서는 다시 정상을 향한 오솔길이 나 있지만 무녀의 발걸음은 그곳에서 멈췄다. 찌그러진 반죽처럼 생긴 공터지만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의 그 곳은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운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러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같은 모양의 나무들로 둘러싸여있는 공터에 그녀는 서 있었지만 땅의 질이 달라져 있었다. 무녀가 눈을 들어 나무들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쏴아아―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슷한 하지만 확연히 다른 그 소리는 바닷물이 밀려오는 소리였다. 운영은 자신의 마을의 산과 다른 곱고 부드러운 땅을 지나 하얀 모래가 펼쳐진 바닷가로 걸어갔다. 운영은 자신을 맞을 사자가 오기 전에 익숙한 그 곳을 둘러보았다. 그 곳은 바다 한 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이었다. 바닷가에 서서 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상상이 될 정도로 작은 섬이었지만, 주변에 섬도 가까운 육지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직은 사람 눈에 띠지 않은 섬이었다. 그러나 산호가 부서져 백사장을 이루고 옥빛을 내는 물빛은 너무 아름다워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운영은 예전에 스승이 말했던 지중해의 물빛이 이런 빛일 거라 생각했다. 생경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운영은 깊고 파란 동해바다의 물빛을 더 좋아했다. 차가운 색이지만 깊어 보여 끝이 없을 것 같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탈하셨나요, 무녀.”
운영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다가와 있던 여자가 인사를 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운영은 짐짓 놀랐다가 반가워하며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입니다. 린.”
“그런가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운영은 쾌활하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 기우는 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성년인 흑룡들도 그렇지만, 성년인 신수들은 특히나 더 시간관념이 없었다. 운영은 그것이 조금은 서운했다. 다음 순간 자신은 죽어서 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신수들은 워낙 시간관념이 없어서 본인이 죽은 지 살아있는 지도 알 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린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긴 머리카락의 여자는 운영의 말에 눈을 빛내며 활기차게 말했다. 그 내용은 불온하기 그지없었건만.
“흑룡들이 너무 많이 죽어나가서 갑자기 알 낳으라고 부르더라고요.”
“네, 하아…….”
“하나만 낳으면 맘대로 돌아다녀도 된다고 약속해 놓고, 이건 용왕한테 두고두고 뽑아낼 거예요.”
“…….”
린은 ‘일각수’라고 불리는 일족의 신수다. 일각수는 기본적으로 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늘을 날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방랑벽이 있는 일족이다. 그래도 여성은 천년에 한번 꼴로 알을 낳도록 용궁에 돌아가게 의무지어 있지만, 린은 그 일족 중에서도 심한 방랑벽의 소유자로 알은 커녕 몇천년 동안 한 곳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족의 장도 하나만 낳으면 평생 안 돌아와도 책하지 않을 테니 하나만 낳으라고 종용했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대를 골라 하나를 낳고 희희낙락 용궁을 떠났다는 전설을 남겼다.
“그래도 용케 돌아왔네요. 장(長)께서 책하지 않는다 했으니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러자, 린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근데 정말 이하가 경계의 땅에 가는 건가요?”
“…….”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분이니, 아무 연유 없이 돌아올 리 없겠죠. 그게 목적이군요, 린.’
운영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하, 이번 사건의 흑룡의 이름이다. 운영은 그렇게 추측했다.
“이야기를 해봐야죠.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어요.”
“그야, 용왕이 결정하면 무녀는 언제나 거절하지 않았잖아요. 이번 건에 대해서 용왕은 완고하니까요.”
“용왕께서는 언제나 완고하시지요.”
운영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다, 용왕이 청하면 그녀는 늘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용왕이 청하면 운영은 거절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이하는 경계의 땅에 갇히게 되겠군요.”
린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갇힌다고요?”
“지금도 그 무녀를 찾아가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는데, 경계의 땅에서도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어야겠지요.”
“둘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아……, 기가 더럽혀진 인간을 궁에 들일 수는 없다며 용왕이 이하만 잡아왔어요.”
“그럼 신녀는?”
“다시 월하연에서 데려갔겠죠.”
“음, 안 좋은 전개네요.”
운영은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조금 초조했고, 생각에 잠겼다.
“자, 이거!”
린은 팔을 움직여 손바닥을 내밀었다. 린의 손바닥에는 새빨갛고 열매처럼 반질반질해 보이는 환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3일분이래요.”
운영은 빨간 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혹시 모르니까 3일분……. 용왕도 망설이는 것인가.’
이 빨간 환은 물속에서도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호흡환’이다. 보통은 1일분으로 크기가 이것보다 작다. 이 보다 오래 머물 경우에는 용궁 소속의 주술사에게 인장을 받는다. 운영은 환을 집어 삼켰다. 환을 삼키자 가슴 속에 공기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가죠, 린.”
“실례할게요, 무녀.”
린은 그렇게 말하고 운영의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그녀를 껴안았다.
“내 목을 잡아요. 좀 빨리 갈게요.”
운영은 그녀의 목에 팔을 감으며 말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그러자 린은 운영을 한쪽 어깨로 껴안은 채 바다 속으로 걸어갔다. 운영은 환을 먹었음에도 반사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