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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을씨년스러웠다. 가볍게 몰아치는 바람이 몸 이곳저곳에 스며들었다. 참을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에 쓸려 여운이 진하게 남는 추위에 어깨가 절로 움츠려졌다. 극도의 허기짐에 대충 끼워 입은 점퍼를 여며 팔짱을 낀 남자는 툭툭 떨어지는 빗줄기를 피하려 얼굴을 약간 숙인 채 빠르게 걸었다. 빨간 굴절 버스가 그의 옆을 스쳐 멈추자, 네댓 명의 사람들이 내렸다. 집으로 귀가하는 무리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자 남자의 목이 더 아래로 푹 고꾸라졌다.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빗소리와 어둑함이 어우러진 런던의 겨울밤을 뚫고 길 끝의 모퉁이를 돌자, 유일하게 주홍 불빛을 부시는 곳이 나타났다. '더 프린스 암스(The Prince's Arms)'. 런던 템즈강 아래 배터시(Battersea)의 조용한 동네에 유일한 그럭저럭 괜찮은 펍이었다. 배가 고파 무작정 나왔다가 야릇한 이름에 문을 두드렸던 곳이다. 발이 외운 데로 따라가며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던 남자는 낯선 형체에 흠칫 상체를 뒤로 뺐다. 펍 앞 테라스 차양 아래 오도카니 서 있는 사람은 트렁크 손잡이를 꽉 붙잡고 처연하게 서 있었다. 남자는 예상치 못한 인물에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기운이 나는 펍에는 작은 텔레비전 아래 높은 탁자에 팔을 괴고 파인트 잔을 기울이는 무리만 서 있었다. 무리의 시선을 느릿하게 따라가던 남자의 고개가 빠르게 숙여졌다. 무리의 시선은 버킹엄궁을 배경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이 나온 텔레비전 뉴스에 향해있었다. 남자는 몸을 비스듬히 해 무리를 등지고 바(bar)로 다가가 스툴에 걸터앉았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암갈색 단발머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동양 여자가 손목시계를 흘긋 보며 바 위에 올려져있던 메뉴판을 스르륵 밀었다. 남자는 뒤집어 쓴 후드를 젖히며 짧게 메뉴를 훑었다. 몇 가지 없는 메뉴는 이미 머릿속에 꿰고 있는 터라 불필요한 행동이었지만 부담스럽게 그의 앞에 서 있는 종업원 때문에 엉겁결에 시선이 쏠렸다.


"미트볼 파스타. 그리고…,"


"런던 프라이드 파인트"


종업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공교하게 쳐다보았다. 남자는 초콜릿색 짙은 눈썹을 오므렸다. 그리고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여자를 응시하며 희미하게 턱을 당겼다. 여자는 역시, 라고 중얼거리며 주방에 주문을 넣고 의기양양하게 생맥주 펌프 손잡이로 다가갔다. 투박한 곡선이 잔 아래에서 교묘하게 빠진 파인트 잔에 아주 진한 붉은색의 액체가 가득 담겼다. 가장 위에 균일하게 일어난 거품이 맥주를 한껏 맛있어 보이게 장식해주었다. 은근한 과일향이 후각을 자극하는 런던 프라이드를 남자에게 넘겼다. 남자는 투명하게 붉은 맥주를 바라보다 빗방울이 달려있는 검은 앞머리를 가볍게 넘기고, 파인트 잔에 엷은 입술을 대었다. 몰트(맥아)의 달달한 맛이 혀에 달라붙고, 과일의 향긋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미지근한 맥주가 목 뒤로 쓴 맛을 끌고 넘어갔다. 홉의 쌉쌀함이 물씬 느껴지는 이 순간 때문에 남자는 런던 프라이드를 사랑했다. 혀에 맴도는 과일향에 그는 파인트 잔을 다시 기울였다. 맥주가 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미트볼 파스타가 나왔다.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이 펍에서는 나름대로 상위권에 랭크된 맛이었다. 남자가 포크를 들어 검지 두 마디만한 파스타를 찍으려 할 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헤이! 안나."


190센티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바에 배를 기대고 외쳤다. 파스타를 주문한 남자를 곁눈질하며 카운터를 정리하던 여종업원이 자신을 부른 이를 알아차리고 환하게 웃었다.


"막스! 살아있었구나."


"후. 죽었다 살아났지. 우리 팀장은 정말 너무 완벽해."


"그래도 두바이에 막스가 참여한 쇼핑몰이 지어지는 거잖아. 얼마나 뿌듯한 일이야!"


안나의 칭찬에 처져있던 막스의 어깨가 기쁘게 묵직해졌다. 독일에서 대학을 마치고 온 막스는 3년차 설계사로 펍의 단골이었다. 펍 앞길을 따라가면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설계가, 노먼 포스터의 본사가 있었다. 전형적인 런던의 주거구역인 배터시에서 '더 프린스 암스' 펍이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노먼 포스터사의 직원들이 퇴근 후, 자주 찾아주기 때문이었다.


"부락은 아직도 퇴근 전이야?"


안나는 막스가 오면 항상 찾는 벡스 펌프로 다가가며 물었다. 부락은 안나의 하우스 메이트였기 때문에 궁금했다.


"그렇지. 아마 다음 주 주말까지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 갈 거야."


"아아. 하지만 불쌍하지 않아. 나처럼 파트타임 인생은 아니니까. 큭큭."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파인트 잔을 막스에게 건네며 안나가 익살스럽게 표정을 찡그렸다. 막스가 풍부한 안나의 표정에 배를 잡고 웃었다.


"참, 안나. 앞에 친구가 서 있는 거야?"


격렬한 웃음에 호흡이 부족한 막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냈다.


"친구?"


"응. 안나 같은 동양 여자가 밖에 서 있던 걸."


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두운 공간을 넘어 펍 입구를 더듬었다.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하지. 비 맞은 고양이마냥 축 늘어져서 와들와들 떨고 있던걸."


나가보라는 눈짓을 하는 막스에게 눈썹을 꿈틀거리다 안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밖으로 나갔다.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냉랭한 바람소리에 묻혔다. 가벼운 셔츠에 에이프런만 두른 터라 안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나마 온기가 남아있는 손바닥으로 양 어깨를 보듬으며 어둠이 내려앉은 밖을 살폈다. 이 쪽 저 쪽 고개를 돌리던 안나는 테라스 구석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칙칙한 외투와 검정색 트렁크 덕분에 어둠 속에서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분명 사람이었다. 막스가 말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미동이 없었다. 안나의 눈빛이 조심스러워졌다.


"실례합니다."


다시 한 번 말했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조금 더 다가간 안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불렀다.


"이봐요."


아래로 고꾸라져 있던 목이 홱 뒤로 꺾였다. 물기에 젖은 머리칼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갑작스런 행동에 상체를 뒤로 뺐던 안나는 검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에 눈을 크게 뜨고 좀 더 다가갔다.


-한국인이시죠?


한국어에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던 여자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한국인이 분명했다. 안나는 입을 벌려 놀라운 감탄사를 뱉었다.


-길 잃었어요?


안나는 여자의 트렁크를 보고 여행객이라 생각했다.


-어디 가시는 길이었어요? 아는 곳이면 도와줄게요.


런던 생활 3년차인 안나는 관광객들이 가는 곳은 죄다 꿰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이 가는 코스들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미간을 좁히며 슬몃슬몃 고개를 저었다. 안나는 요상한 느낌에 여자를 훑었다. 젖은 머리를 더듬어 내려가자 좁은 어깨가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 트렁크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등은 푸르스름했다.


-흠. 일단 좀 들어와요. 영국의 겨울도 한국의 겨울 못지않게 추워졌어요. 들어와서 몸 좀 녹이고 가세요.


한 오지랖하는 안나는 같은 한국인이라 더 마음이 쓰였다. 안나의 권유에도 여자는 마른 입술을 앙 다물었다.


-여기 건전한 펍이에요.


혹시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가 싶어 안나는 손사래를 치며 여자의 팔을 지긋이 당겼다. 여자의 눈이 팟 커졌다.


-괘, 괜찮아요.


화들짝 놀란 목소리지만 전혀 거칠지 않았다. 가녀린 음성이었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감기 걸려요. 혼자 여행할 때, 아프면 얼마나 서러운데요. 아, 혼자 여행하시는 거 맞으시죠? 저도 혼자 왔어요. 혼자 런던에 온 한국인 처지끼리 서로 도와야죠.


말하다보니 눈앞의 여자를 꼭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사로잡힌 안나는 적극적으로 여자의 팔을 당겼다.


-아니요. 저기….


-에이. 괜찮아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여기서 일해요. 이름은 김안나고요. 자아, 개의치 말고 들어와요.


추위에 기력을 상실한 여자는 머뭇거렸지만 안나의 악력에 가게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펍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갑작스런 훈훈한 기운에 여자의 어깨가 소스라쳤다. 어느 새 안나는 여자의 트렁크를 제 것 인양 바 앞까지 끌고 갔다.


-이리 와요. 히터 있어서 따뜻해요.


안나는 히터 가까이에 있는 스툴을 툭툭 치며 여자를 향해 생긋 웃었다. 주춤거리던 여자는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스툴로 다가왔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차게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안나는 바 안으로 들어갔다.


"헤이. 네 친구가 맞군."


스툴에 느긋하게 앉아있던 막스는 안나와 여자 사이에 오고가는 낯선 언어에 확신을 한 듯 머리를 살랑살랑 끄덕였다.


"아니. 아무래도 길 잃은 여행객 같아. 뭐, 그래도 같은 한국 사람이니 친구라고 해 두지."


3년 타향살이에 한국인이 그리운 안나는 여자에게 다시 고개를 까딱했다. 안나의 눈치를 살피던 여자가 황급히 눈을 내렸다. 밖에 오래 서 있었는지 '강'으로 틀어놓은 히터의 열기에도 여자의 바들거림이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르던 안나는 생각을 바꿨다. 제일 마일드한 맥주를 가득 따라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금방 따뜻해질 거에요.


여자는 안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파인트 잔 가득 채워진 적갈색 맥주를 바라보았다. 맞잡은 양손이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급격한 해동에 손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했다.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죠?


안나는 농담처럼 물었지만, 여자가 등을 꼿꼿이 세우며 눈두덩이에 힘을 주었다.


-에이. 농담이에요.


안나가 배시시 웃으며 맥주잔을 가리켰다. 한번 마셔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윗입술을 물었다 아랫입술을 접었다를 반복하던 여자가 머뭇머뭇 맥주잔을 들었다.


"맛 괜찮아요. 캬아."


여자의 행동을 관찰하던 막스가 자신의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 아주 맛있는 환호를 질렀다. 친근한 태도에 여자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 후룩, 파인트 잔 맨 위에 퍼져있는 거품을 머금었다. 밍밍했지만, 무언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어수선한 마음이 스륵스륵 차분해졌다.


-괜찮죠? 근데 어쩌다 길을 잃었어요? 이 근방은 관광지가 아닌데.


안나가 바 안쪽 테이블에 양팔을 괴어 상체를 여자 쪽으로 기울였다. 긴 호흡을 내쉬던 여자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눈동자 속에 격랑이 몰아쳤다. 한 모금 마시기까지 뜸을 오래 들이던 것과는 다르게 꿀꺽꿀꺽 맥주를 삼켰다. 안나가 엇. 하고 단발마를 질렀다. 막스는 와우, 감탄하며 파인트 잔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천천히 마셔요. 급하게 먹으면 물도 체한다잖아요. 뭐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설마 지갑이나 여권 잃어버렸어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추운데도 들어올 생각은 안 하고 밖에서 비만 피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말이 되는 이유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어는 잘 못하는 것 같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나 보다. 안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영국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이 나, 여자에게 한껏 감정이 이입되었다.


-정말 그런 거에요? 이를 어째. 어디서 그랬어요? 경찰에 연락해요. 여권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대사관으로 연락해요. 분명 도와줄 거에요.


-아! 아니요!


열시가 넘은 시각이라 대사관에 연결되지 않을 게 뻔 한 데도 감정이 심하게 이입된 안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여자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안나가 여자의 기세에 눌려 한 걸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저기, 이런 건 신고해야 또 다른 피해자가 안 나와요.


안나가 살살 부연 설명을 했지만, 여자는 온기가 돌아온 손바닥을 들어 과격하게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요…,


여자의 눈썹이 팔(八)자를 그렸다. 참 애처로워 보였다.


-그게 아니라, 뭔데요?


안나는 여자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안나의 재촉에 여자는 한층 우울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맥주를 꿀떡꿀떡 마셨다.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막스는 안나에게 눈짓으로 물었지만, 안나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막스가 기대선 곳에서 약간 떨어진 바에서 파스타를 먹던 남자는 다 비워진 파인트 잔을 한 번 바라보다, 안나를 바라보다 입술을 빼쭉 내밀고는 다시 파스타를 먹었다.


-사…기…당…했어…요.


띄엄띄엄 말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울먹거렸다. 안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런던에서요?


-…네. 흐윽.


여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안나, 대체 무슨 일이래?"


여자의 울음에 놀란 막스가 안나를 다그쳤다.


"이 여자, 사기 당했대."


"뭐? 어쩌다?"


막스는 파인트 한 잔을 비우면 집에 가 바로 침대에 고꾸라질 생각이었지만 의외의 상황에 자세를 바로 잡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러니까…그게….


울먹울먹하는 여자는 안나가 건네준 티슈로 눈물을 닦다 목이 메는지 다시 맥주를 벌컥 마셨다.


-런던에 오기 전에…한국에서 집 계약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 와 보니까…흐윽.


여자가 다시 입술을 물고 눈물을 삼켰다. 여자의 설명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안나는 한 큐에 어떤 연유인지 정리가 되었다.


-계약하고 입금까지 다 하고 왔는데 계약한 사람이 없는 거군요. 그렇죠?


여자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후, 숨을 뱉었다. 그리고 안타깝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비일비재해요. 요즘 가난한 유학생들을 등쳐먹는 그런 경우가 많아졌어요. 관광객이 아니라 런던에 공부하러 온 거군요?


런던에는 아니지만 여자는 대강 맞는 말이라 눈을 깜빡였다.


-아마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집을 구하고 이메일이나 뭐 그런 걸 통해서 계약을 했고요. 대개 2주치 정도 입금하는데, 그런 거죠?


눈물을 닦던 여자가 동작을 멈추고 얼굴을 무지막지하게 구겼다. 안나의 얼굴도 점점 굳어졌다.


-설마 2주치 정도가 아닌 거에요? 얼마나 입금한 거에요?


-…두 달만…그렇게만 머물 거라고 하니까…단기간이라 두 달 치를 …다 넣으라고. 그래서….


여자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흐느낌이 손가락 마디 사이로 새어나왔다.


-뭐라고요? 허. 하. 아.


안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여자, 아주 제대로 사기 당했다.


-얼마였어요? 보통 주당 120파운드 정도니까 거의 천 파운드나 되나요?


여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안나의 입이 휑하게 벌어졌다. 천 파운드면 한국 돈으로 이백 만원 정도, 큰돈이었다. 안나와 같은 고학생에게는 정말 끔찍하게 큰돈이었다. 아마 이 여자도 안나와 비슷할 처지일 것이다. 넋이 나가 비를 쫄딱 맞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만큼 그 돈이 중요했을 것이다. 안나는 공부하러 혈혈단신 바다 건너 왔는데 오자마자 사기를 당한 여자가 너무 불쌍했다.


-주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벌써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고. 아마 그 전에 살던 사람이…돈을 가지고 나간 것…같다고.


-연락처 뭐 이런 거 없대요?


여자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러시아로 돌아갔대요.


안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사기 친 놈을 잡는 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격이었다. 경찰서나 대사관을 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기 친 놈이 죽일 놈이었지만, 덜컥 천 파운드를 입금한 여자도 참 할 말이 없었다.


"안나, 어떻게 된 일이래?"


"천 파운드나 사기 당했대. 한국에서 플랏 계약을 했는데 와보니 주인은 이미 다른 사람이랑 계약을 한 거지. 전에 살던 러시아인이 그 돈을 가지고 지네 나라로 튀었대."


안나의 단어 하나하나에 막스의 눈이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오, 마이 갓!'을 외쳤다. 파스타를 거의 비워가던 남자는 오른쪽 눈썹을 세우며 날카롭게 눈매를 세웠다.


-왜 천 파운드나 되는 돈을 아무 의심 없이 입금한 거에요?


안타까움이 가시자 안나는 여자의 바보 같은 행동을 추궁했다. 여자도 자신이 얼마나 멍청이 같은 짓을 했는지 아는지 자괴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눈앞에 놓인 맥주를 한 번에 해치웠다. 몸은 이미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눈물이 말라붙은 양 뺨이 붉게 물들어갔다. 옥스퍼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꼬박꼬박 용돈을 모았다. 그 돈의 대부분이 두 달간의 집세였다. 옥스퍼드에서 살던 십년동안 하지 못한 런던 관광을 두 달 동안 알차게 하고 학교를 갈 생각이었다. 런던여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돈을 모았다. 카드는 쓸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두둑한 통장도 손 댈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돈이 빠져나가는지 김비서가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런던에 온 첫 날, 두 달 동안 머물 숙소도 남모르게 모은 돈도 훠이 날아갔다.


-바보에요. 진짜 …바보에요.


여자의 자조적인 대답에 안나는 더 이상 추궁할 수 없었다. 당한 사람이 제일 속상할 테니. 안나는 한탄이 담긴 무거운 숨을 내쉬며 빈 파인트 잔에 맥주를 가득 담아 여자의 앞에 놓았다. 처음의 조심스러움은 어디 가고, 여자가 맥주를 거침없이 마셨다. 안나가 쯧쯧 혀를 찼다.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는데…, 이제 어떡하죠?


카드나 통장의 돈을 썼다가는 금방 거짓말 한 게 들통 나서 한달음에 경호팀이 날아올 것이다. 아빠는 불같이 화낼 것이다. 엄마는 혼자 못 두겠다며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애걸할 것이다. 한국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 이대로 옥스퍼드로 갈까? 하지만 방학인 옥스퍼드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거기서도 머물 곳은 전혀 없는 데…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모은 돈이 하루 만에 날아갔다. 다시 영국에 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물거품 되었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자신이 너무 싫었다. 자신은 부모님의 보호 아래가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인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과는 결국 이건가.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이런 경우가 다 있군."


다시 울기 시작한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막스가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그걸 말이라고 해. 내 룸메이트, 제시도 당했잖아."


"정말?"


"응. 내 룸메이트는 직접 만나서 집도 둘러보고 그러고 사람이 아주 성실해 봬서 2주치 계약금 주고, 다음 날 짐 옮기기로 했대. 그런데 다음 날, 가보니 날은 거야. 그 사람은 영국인이었는데, 그래도 찾을 수가 없었대. 정말 너무 하지 않아? 내 동기들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요즘에는 더 심해진 것 같고. 그런데 더 열 받는 건, 영국 경찰도 별 수 없다는 태도란 거야. 외국인끼리 서로 사기치고, 당하는 거라. 자기 나라로 가 버리면 정말 찾을 수 없다는 거지. 정말 너무 하지 않아? 그러면 누가 영국 오고 싶겠어? 안 그래?"


안나가 열변을 토하자 막스는 의외의 이야기에 놀라했다. 파스타 접시를 비운 남자는 턱을 괴고 안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거 남 일이 아니다. 나도 조심해야겠어."


"에휴. 저 여자는 정말 벼락 맞은 거지. 아무래도 나 같은 고학생 같은데, 꽤 타격이 클 거야. 돈 없어서 그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안나는 맥주를 연거푸 마시는 여자를 쳐다보며 한숨을 폭 내셨다.


"여기."


고개를 돌리던 안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파인트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여자에 빠져 잠시 종업원의 역할을 잊었던 안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파인트 잔에 맥주를 채웠다. 남자는 파인트 잔을 받으며 곁눈질로 눈물바람인 여자를 흘긋했다. 까만 긴 머리가 비에 젖어 가닥가닥 엉켜 늘어져있었고, 그 앞으로 절망에 빠진 아담한 옆얼굴이 보였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이 … 사백 파운드 정도인데, 이걸로는….


안나에게 애절하게 묻던 여자가 다시 맥주를 마셨다. 안나의 안타까운 표정에 답이 다 나와 있었다.


"있는 돈이 사백 파운드가 전부래. 진짜 뭐라고 해야 할지…."


"워킹 비자 이런 거 있지 않나? 안나, 너도 워킹 비자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거잖아."


"아무리 워킹 비자라도 당장 지낼 곳이 없잖아. 영어 공부하러 온 거 같은데, 그럼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야. 휴우."


막스도 답답한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는 어느 새 파인트 잔을 다 비우고 있었다. 안나는 다시 파인트 잔을 채워줄까를 고민하는데 막스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거기 있을 거야. 없다고? 내가 그 폴더에 저장해 놓는 다고 했잖아. 잘 찾아봐. 아, 정말. 알겠어. 젠장.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 안나, 저 여자 좀 잘 달래주라고."


막스는 양 손을 두어 번 흔들고는 뛰어나갔다. 안나는 막스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여자의 빈 잔을 들었다. 넉넉지 못한 유학생인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맥주 한 잔 더 사주는 일 뿐이었다. 안나가 막 맥주통 손잡이를 잡을 때,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바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꽤 묵직한 소리였는데, 여자는 아파서 온 몸을 요동치지 않았다. 미동 없이 불편한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설마! 안나가 다가가 몸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봐요! 이봐요!


귀청이 터질 정도로 소리를 높여봤지만 여자의 감긴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아. 어떡해.


안나는 울상을 지었다. 콧숨은 나왔다. 죽은 게 아니었다. 이 여자는 맥주 파인트 두 잔에 뻗은 거다.


-일어나요! 이대로 뻗으면 안 돼요. 이제 문 닫아야 하는데. 어떡해.


여자를 더 깨우다 안나는 포기하고 스툴에 축 늘어졌다. 오지랖 넓은 자신에게 한숨 한 번,런던에 오자마자 사기 당하고 맥주 두 잔에 뻗은 여자에게 한 숨 두 번, 그리고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 한 숨 세 번. 안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다 여자를 조심스레 내려 놓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열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제시, 나야. 안나. 혹시 주인아저씨, 아줌마 아직 안 주무셔?"


일반 가정집 빈 방에 살고 있는 안나는 룸메이트 제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디 주인부부가 자고 있다는 대답이 들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거실에서 떡하니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단다. 이러면 몰래 데려가 재울 수가 없었다.


"응. 알겠어. 고마워. 응. 곧 들어가."


누구를 데려올 때는 삼일 전에 허락을 받길 원하는 주인부부에게 여자의 이야기는 씨알도 안 먹힐 거다. 안나는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근방에는 숙박시설이 없었다. 주거지역이라 비슷한 구조에 지붕 색만 다른 주택이 즐비할 뿐이었다. 늦은 시간에 잠이 든 여자를 데리고 어딜 갈 수도 없었다. 가게에서 몰래 재울까 하는 생각에 까지 미쳤지만, 누울 곳도 마땅치 않고, 주방에 있는 주인아저씨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으악!"


안나는 짧은 머리칼을 부여잡고 낮은 괴성을 질렀다. 구석에 모여 있던 한 무리가 이상하게 쳐다보며 펍을 나갔다. 잠자코 맥주를 비우던 남자는 엘리자베스 2세가 그려진 지폐를 테이블 위에 놓고 일어났다. 안나는 인기척에 남자를 쳐다보다 돌아서려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남자의 표정에 움찔 당황한 빛이 지나갔다. 하지만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남자는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문으로 향하는 발걸음과는 다르게 눈은 바 테이블에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 닿았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건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재능이란다.]


영롱하게 빛나던 눈과 다정했던 음성이 떠올랐다. 남자는 입술 끝을 지그시 깨물며 여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단호하게 호흡을 끊으며 펍을 가로질렀다.


[머리가 차가운 사람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가 바라는 건 그거 밖에 없어.]


남자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허공을 바라보던 눈을 꾹 감았다. 낮은 한숨과 함께 눈이 떠졌다. 검은 눈동자가 어두운 실내에 섞였다.


"하룻밤 지낼 곳을 제공할게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안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미간을 좁혔다.


"네? 손님?"


"이 여자분, 잘 곳이 있다고요."


남자가 턱 밑에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별 거 아니라는 눈빛과 약간 거만해 보이는 손짓이었지만, 콧소리가 강조된 정확한 영국식 억양이 무척 공손하게 들렸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단골손님의 목소리에 잠시 홀렸던 안나는 머리를 툭툭 쳐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디요?"


"내 집."


"네?"


안나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남자의 표정을 살폈지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잠이 든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잠, 잠깐! 잠깐만요."


남자의 눈동자가 즉각 안나에게 향했다. 똑바로 다가오는 아주 새까만 눈동자에 안나의 이마가 바싹 뒤로 당겨졌다. 청바지에 점퍼차림에도 어딘가 반듯한 영국 신사의 자태를 풍기던 남자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저 눈빛이 그 자태를 뽐내는데 한 몫 단단히 한 것 같다. 런던 생활 3년 동안, 이토록 어려운 느낌의 영국인을 만난 적이 없는 터라 쾌활한 안나도 기가 죽었다.


"지, 지금, 그러, 그러니까 손님 집에 데려가겠다는 말, 말씀이세요?"


대체 왜 말을 더듬는 거야! 이래 뵈도 3년차 토종 잉글랜드 영어실력인데. 안나는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재울 곳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내 집은 이 근처고, 하룻밤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군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영국식 영어 발음이었다. 정확하게 발음되는 단어들과 사이사이 자유자재로 변화되는 어조, 단어 첫음절에 강조되는 악센트.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이루어졌다. 랭귀지 스쿨의 전형적인 영국인 강사, 토니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환상적인 발음이었다. 남자의 영국식 영어에 흠뻑 빠져든 안나는 남자가 여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잠에 빠진 여자를 허리춤에 붙든 남자가 트렁크를 난감하게 쳐다보았다. 축 늘어진 여자와 트렁크를 번갈아 보던 남자가 안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여자는 업는 게 좋겠어요. 트렁크 옮기는 걸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안나가 끼어들기도 전에 남자는 가뿐하게 여자를 업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안나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남자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그게, 그러니까, 설마… 흠. 저기…."


안나는 한 달 전부터 단골인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펍을 오기 시작한 초창기, 갈색머리가 잘 어울리지만 옷차림은 난해했던 남자와 두 번 정도 동행했었다는 것 만 알았다. 불어나 스페인어를 써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저 여자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같은 한국인으로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사기까지 당했는데 더 몹쓸 일을 당한다면 안나는 두고두고 미안할 것이다. 안나는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남자를 잡았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요. 전 전혀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같이 하룻밤 묵으시죠."


남자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불쾌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저, 저도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거칠게 없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예상치 않은 상황에 얼이 빠진 안나는 트렁크를 끌고 남자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갔다.


댓글 '6'

dunglae

2010.03.14 20:15:41

흠......뭔가요..저 남자..
주인공 등장인거 같네요..

우연

2010.03.14 20:23:48

너무 과보호되어서 컸나봐요.. 어렸을때 유괴의 경험이 있었나요???
남자의 정체도 궁금하네요

큐리

2010.03.15 11:48:21

하하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정말 '아가씨'였군요.
왠지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햅번이 생각나네요.

하늘지기

2010.03.15 12:43:01

남주 등장이요~
포스가 느껴지는 남주에요.^^

베로베로

2010.03.21 15:03:04

dunglae님, 네 저 남자가 주인공입니다요~^^
우연님, 유괴는 아니고...여튼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남자의 정체는 흐흐흐흐. 조만간 곧.
큐리님, 술 처음 마셔본 거에요; 허허허허. 아, 오드리헵번이 생각날 듯도 하네요. 그럴 의도는 아닌데;
하늘지기님, 아. 네~ 앞으로 더 멋진 남주로 만들겠습니다.^^

핑키

2010.04.01 01:36:15

아주 흥미롭습니다^^ 다음편으로 당장 날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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