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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달  in  스페이스 로모-7


 


로비는 거대했다. 높은 천장과 바닥은 같은 금속성의 재질로 방금 닦은 듯 반짝거렸다. 그 공간에 스페이스 로모-7에 배속된 300여명의 직원과 50명의 코스모폴리스들이 정열해 있었다. 그 뒤로는 직원이나 코스모 폴리스의 가족들이 무질서하게 서 있어, 직원들의 모습이 더욱 절도 있게 느껴졌다. 스페이스 로모를 운영하고 있는 ST사는 직원들의 가족 중 2인까지 부양할 수 있는 자격을 주어 우주에서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생들이나 부인, 혹은 남편도 스페이스 로모에 계약기간 3년 동안 함께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달은 코스모폴리스 속에서 가슴팍에 잔뜩 훈장을 단 채 정자세로 서 있는 엄마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우주에서의 근무는 처음인지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긴 자신만 해도 우주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 때문에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지금도 그랬다. 로비 한 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우주의 모습에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지금 창이 있는 쪽은 지구의 반대 방향으로 지구가 보일 수 없는 상항인데도 떡하니 떠 있는 지구 때문에 가짜란 걸 알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몇 주간의 저중력 훈련만 받으면 언제든지 저중력실 끝에 위치한 해치로 달려가 마음껏 우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짱. 파이팅.”


그녀는 작게 중얼거린다고 그런 건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컸는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았고 엄마는 창피한 듯 그녀의 얼굴을 피했다.


“피이. 엄마는 참.”


달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단상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우주선과 어울리지 않게 급조한 티가 나는 단상은 조금 허술해 보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며칠 전에 열렸던 고사도 썩 어울리는 일은 아니었다. 스페이스 로모-7의 부함장은 50세의 아저씨였는데 대대로 시무식에는 언제나 돼지머리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이 시대가 언젠데, 투덜거리면서도 달은 머리고기를 먹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기라면 언제 어디에서도 마다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와.”


높지 않은 단상에 누군가 올라선 순간, 넓은 공간에는 알 수 없는 탄성 이후 정적이 흘렀다. 너나할 것 없이 사람들은 단상위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었다. 꽤 먼 거리임에 서 있던 달 마저 후욱, 숨을 들이마셨을 정도였다.


“지그무트 로우입니다. 우주 스테이션 스페이스 로모-7의 함장을 맡게 됐습니다. 기존의 로모 시리즈와 달리 로모 7에서는 인간의 생활 영역에 완벽한 지구의 중력을 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스페이스 로모 시리즈가 시작된 후 최고의 함선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페이스 로모에서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들의 맡을 일은 우주 쓰레기 수거와 화성과 목성을 잇는 우주 로드의 치안을 담당하는 일입니다.......”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그윽했다. 그래서 로비의 모든 사람들은 순간 귀가 번쩍 뜨였지만, 여태 들었던 귀빈들의 축사와 다를 것 없는 지루한 내용에 모두들 눈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달 역시 재미없는 내용에 하품이 죽죽 나왔지만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 머리를 느슨히 묶고, 검은색 제복을 입은 지그무트 로우 함장의 모습을 보며 이겨내는 참이었다. 훤칠한 이마, 짙은 눈썹과, 곧게 뻗은 콧날과 각진 턱은 그녀가 여태껏 우주선에서 본 중 가장 매력적인 마스크였다.


“몸도 저만큼 잘 빚어졌으려나.”


변태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그녀는 사람들을 밀치고 점점 앞으로 나섰다. 그때까지 잠자코 그녀 곁에 있던 사무주임의 아들인 랑고가 그녀를 쫓아왔다.


“달, 설마 함장님을 두고 한 말은 아니겠지?”


22살인 그녀보다 3살은 어린 녀석이면서도 볼 때마다 반말에 시큰둥한 어조로 면박 주는 게 취미인 녀석이었다.


“당연히 함장님을 두고 한 말이지. 저 제복 봐라. 다른 사람들은 헐렁하다 못해 옷이 사람을 먹고 있는데 비해, 함장님은 옷이 터질 것처럼 보이잖아. 저게 근육이 아니면 뭐겠니? 한 번 만져보고 싶다. 진짜 단단할까?”


“변태 같으니라구.”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번에 의료국의 스케라 언니의 다리 보고 침흘린 게 누구더라. 또 누구야. 코스모폴리스 중에 유일한 미혼인 제흰 보고 예쁘다고 사귀고 싶댔잖아.”


“거야 남자의 본능이고.”


“그럼 난 여자의 본능이야.”


달은 본능적으로 대꾸하며 남들 몰래 손목을 들어 지그무트 로우 함장에게 조준했다. 거리가 멀었지만 제대로만 조준한다면 꽤 그럴 듯한 사진이 찍힐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녀의 손에 장착되어 있는 핸드폰은 SM사가 자신 있게 내놓은 기종으로써 손에 달려있으므로 영상통화는 당연히 가능한데다 1500만 화소를 자랑하고, 더욱이 멀리 있는 물체의 줌인 기능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진짜 장은 장인가 봐. 무슨 연설을 여태 하냐.”


옆에서 랑고가 꿍시렁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촬영 버튼을 눌렀다. 얼굴의 각도가 황금비율인 순간, 그녀의 손이 황급히 움직였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순간 울리는 경보음에 로비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리는 경보음에 달이도 그 와중에 사진을 저장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설마, 첫날에 우주해적이 들이닥친 건 아니겠지?’


그녀가 중얼거리는 사이에 벌써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정렬해 있던 코스모폴리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비와 다른 공간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촤르르르 투명한 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엄마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이크에서 차갑고 단정한 목소리가 그들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알려드립니다. 외부의 침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지금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니 모두들 진정하고 조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경찰들이 상황을 알아보고 있으니 진정하고 조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카리스마 있는 함장의 말을 듣는 순간, 달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우주해적이라도 막아줄 것만 같은 든든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주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우주 해적의 무서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너였구나.”


갑자기 들리는 텁텁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의 손목을 힘껏 쥐었다.


“왜, 왜 이러세요. 난 아니에요. 우주 해적같은 거 아니라구요.”


겁에 질린 달이 손목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손은 빠지지 않았고 달은 공포감에 휩쌰였다. 가냘픈 몸매가 휘청하면서 그녀의 동그란 머리칼이 찰랑였다.


“써니, 여기야. 이 꼬맹이가 여기서 사진을 찍은 모양이야. 꼬맹이, 여긴 사진 촬영은 물론이거니와 핸드폰과 같은 전자기기 반입금지 구역이야. 매뉴얼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나보지. 로비 및 민간인 통제구역에선 민간인의 전자기기는 반입이 안 된다구. 그리고 지금 꼬맹이 넌 로비에 있는 거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위협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쩌렁쩌렁 울렸다.


“롭. 무슨 소릴 그렇게 줄줄이 늘어놓는 거야. 일단 함장님께 알리라구. 놀란 사람들 진정 좀 시켜야 할 거 아니야.”


“일단 자네가 보고해. 꼬맹이 보호자 이름과 네 스페이스 여권 번호 대 봐. 이름이랑.”


수염을 덕덕 긁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잡은 채 심드렁하게 말하는 중년의 남자 때문에 달은 잔뜩 겁을 먹은 상태라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저씨, 달이 누나 도망 안 갈테니까 이 손 좀 놔주세요. 이 핸드폰이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 1600 우주화(우주의 새로운 지폐. 1우주화는 지구의 통합화폐 지구와 500원과 같다. 화폐물량의 급증으로 전체적인 물가상승이 나타났다.)나 한다구요. 아저씨가 물어줄 거 아니면 얼른 놔주세요.”


랑고가 달의 한 쪽 팔을 잡은 채 안간힘을 썼다. 달은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아프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얼른 말해야 놔줄 거란 생각에 겨우 입을 열었다.


“보호자 이름은 룬느 리. 우주여권 번호는 20670228-02-305272이에요.”


“달 리. 맞니, 네 이름?”


“이 달이에요.”


“어쨌든 맞구나. 매뉴얼에 나온 대로라면 함장님과의 면담 후에 벌칙이 정해지겠구나. 다행히 미성년은 아니니 ‘해롱든이 알려주는 20개의 과학 비밀-스페이스 로모 매뉴얼’ 통독이나 ‘저중력 체험과 우주 쓰레기 수거’ 같은 쉬운 벌칙이겠는 걸.”


롭, 이라고 불린 아저씨는 심술 맞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핸드폰에 함장면접권, 이라고 조잡하게 적힌 칩을 인식시켜 주었다.


“알려드립니다. 다행히 우주선에 어떤 침입도 없었습니다. 다만 기술적인 이유로 로비에 핸드폰 사용을 금한 매뉴얼을 어긴 ‘다-알 리’씨의 실수로 방어 체제가 작동한 거였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우주선엔 어떤 침입도 없고 여러분들은 안전합니다. ‘다-알 리’씨는 행사가 끝난 후 함장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그윽한 목소리여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길게 늘여부르는 지그무트 로우 함장의 만행에 그녀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저런 철없는 아가씨 같으니라구. 우주 해적이라도 쳐들어온 지 알고 놀랐잖아. 이것 참, 신성한 개관식에 웬 횡액이야.”


지긋이 들어보이는 할머니의 말에 달은 입을 삐죽였다. 엄마가 보라고 아우성을 치던 매뉴얼 북을 침대 아래 쳐박은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이렇게 됐으니 엄마에게 당장 지구로 돌아가라는 잔소리나 듣게 된 참이었다.


‘오오, 정말 이게 뭐야.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흑.’


“요즘 애들이란. 우리 땐 이러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버크 부인.”


고릿적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을 피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헤이, 드-아-알 누나. 너무 상심하지 말라구.”


랑고의 위로 같지 않은 위로에 그녀가 눈을 치켜 뜬 순간 그녀는 랑고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녀가 그 ‘다-알 리’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당황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랑고는 깔깔댔고,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기할 로우 함장, 망할 랑고 스타. 둘 다 죽었어.”


달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복수를 다짐했다.


 


“레가 할머니.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이 나만 보면 다알리~라고 부른다고. 내 이름은 달이야 달. 다알 리, 가 아니라 이 달이란 말이야. 달. moon이라구.”


하얀섬 매점. 스페이스 로모 1, 2에는 없던 매점은 그 후 직원들의 요구에 생겨났고 함선에 계류하는 직원의 가족들 중 자격이 되는 사람들의 경매에 의해 결정됐다. 그 중 하얀섬 매점의 운영자가 된 건 레가 할런 할머니였다. 하얀 머리의 레가 할머니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은 그런 할머니의 어깨를 꾹꾹 눌러주며 투덜거렸다.


지구에서 오는 물품을 검수하는 건 물류부에서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은 수월했다.


달은 인공위성을 통한 인터넷으로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 학기는 우주선에 대한 적응을 위해 3개의 강의만을 신청했다. 때문에 그녀는 딱히 스페이스 로모에서 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스포츠 센터를 어슬렁, 저중력실로 가기 위해 저중력 훈련실에 어슬렁이었다. 아니, 제길할 로우 함장 때문에 최근에는 우주선 곳곳의 청결요원이 되어 3시간씩 뛰고 있었다. 덕분에 우주선의 위치 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사람들을 샅샅이 알게 되었는데, 레가 할머니는 그때 친해지게 되었다. 하긴 그렇지 않더라도 주전부리를 좋아하는 그녀가 유일하게 지구산 뻥튀기를 들여놓는 매점을 놓치긴 힘든 일이었다.


“그래, 이 달. 이것 좀 먹어 봐라. 신상품인데 너한테 처음 맛보여주는 게야. 틀림없이 기분이 풀릴 게야.”


할머니는 달의 기분을 풀어줄 심산으로 그녀의 손에 무언가 쥐어주었다. 손에 느껴지는 물체는 언제나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우주선에서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할머니 이게 뭐야? 과수원? 우와, 아이스크림이네.”


“이제 지구는 여름이잖니. 어제 처음 들어온 거야. 특별히 내가 달이 너한테 먼저 쏘는 거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믹스했다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구나.”


“우와, 맛있는데. 할머니, 땡큐. 정말 시원하다. 할머니 짱.”


달은 거의 반년 만에 맛보는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먹느라 누군가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레가 여사님.”


“안녕하세요, 로우 함장님. 오늘도 훤칠하시네요.”


흥. 맛있는 아이스크림 체하겠네. 그녀는 어른거리는 금발을 보고 함장이라는 걸 눈치 채고는 투덜댔다. 그리고는 못 본 듯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다-알리 양 아닌가. 오늘은 벌써 끝냈나 보군.”


아이스크림보다 더 서늘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달은 그제야 오만상을 찌푸리며 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요. 당연하죠. 확인 사인은 메일로 보내놓았으니, 확인해 보세요.”


“이런 어쩌지. 함장실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2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그럼 어쩌라구요.”


“글쎄. 함께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SHC(small hand computer)는요?”


“글쎄......어쨌더라.”


달은 함장의 얼굴이 무표정했지만 순간 그가 웃고 있다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하긴 함장에서 대면했을 때부터 자신을 비웃던 함장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분기를 자극하는 그였다.


 


‘매뉴얼은 어쩌셨습니까.’


‘음, 글쎄요. 어딘가에 있겠죠.’


‘그 어딘가가 어딥니까.’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민간인 보호구역과 민간이 접근 금지 구역과 민간이 생활 구역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십시오.’


‘.....’


‘우주 해적 침입 시 민간인의 대비활동에 대해 말해보십시오.’


‘......’


‘대체 어떻게 시험에 통과한 건 지 알 수 없군. 하루 주죠. 매뉴얼 숙지해서 다시 오십시오. 내일 테스트에 들어가겠습니다.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지 못한다면 지구로 귀환조치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도 안 돼요. 전 이미 한 번의 테스트를 거쳐 온 거라구요. 재심사는 당치 않아요.’


‘대리 테스트를 거쳤다는 의혹이 들 정도로 다-알 양의 실력은 형편없군요. 내일 봅시다. 지금부터 달달 외워야 귀환조치 되는 건 막을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얄미운 얼굴이었던지. 그땐 아무리 잘나고 멋진 얼굴이었데도 콱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더구나 지구귀환이란 조치를 아무렇게나 내뱉다니. 그녀는 100점 만점에 94점의 훌륭한 성적(보통 민간인의 우주 상식 평균 실력은 73점이었다. 더구나 과락인 55점을 넘지 못한 사람도 수두룩했다.)을 거두었다. 그런 그녀에게 재시험이라니. 더구나 문제는 그녀는 벼락치기였기 때문에 우주 상식이란 상식은 이미 전부 까먹은 후가 아닌가. 하지만 자신을 비웃는 함장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녀는 이를 득득 갈며 공부했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보니 밤을 샌 건가. 그에 비하면 79점이라. 알만하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함장의 말에 오히려 그녀는 열패감에 시달린 참이었다. 더구나 시험으로 끝나지 않은 채 우주선 내의 환경 요원으로 한 달간 봉사를 명령 받았다.


‘쳇. 재수없는 놈.’


그녀는 웃는 얼굴을 한 채로 속으로 오만 욕을 중얼거렸다. 차가운 눈에 야비한 말만 골라하는 함장은 산뜻하고 신나는 우주일과를 망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함장님, 전 잠시 후에 저중력실 훈련이 있어서요. 앞으로 딱 30분 후군요. 2시간 후에 제 이메일을 확인하시는 게 어떨까요?”


“음, 내가 알기엔 저중력실 훈련은 오전 9시와 11시, 오후 3시와 5시로 알고 있는데.”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착각했나, 하고 재차 중얼거렸다. 너스레를 떨던 달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하하, 제가 착각했네요. 1시에 랑고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전 그럼 이만.”


젠장.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어. 금세 표정관리에 들어간 달은 아무렇지 웃은 듯 이야기를 하고는 함장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레가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함장을 만난 후로는 언제나 그를 피해 도망가는 일만 늘어나고 있었다. 달은 다시 한 번 조그마한 주먹을 움켜쥐었다가는 손에 든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믹스된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우와, 정말 맛있네.’


달은 금세 재수 없는 함장을 잊고 거의 다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다.


 


스페이스 로모-7의 규모는 직원 300여명과 코스모폴리스(그들은 ST사가 아닌 우주경찰국에 속해 있다)의 경찰 50여명, 그리고 그 가족들 100여명 외에도 로모 우주호텔과 로모 의료국등 200여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 규모이다. 때문에 함선을 한 번 정찰하려면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5시간은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달은 이제는 꼴도 보기 싫은 함장을 피해 다니는 일이 수월했다. 물론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지 않게 부른 것과 재시험을 보게 한 것에 대한 분노는 가득했고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일단은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저리 꺼져, 랑고.”


“아직도 화난 거야? 식당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삼계탕을 엎어 버렸는데도 분이 안 풀렸어?”


“전혀. 그건 고의가 아니라고 그랬지?”


물론 고의였다. 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함무라비 할아버지야 말로 짱이었다. 제 입으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계탕이라고 하는데 굳이 복수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그런 일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더구나 삼계탕은 1년에 대여섯번이나 나오는 (희귀)메뉴였고, 한 그릇에 20우주화 밖에 하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에 대한 댓가로 치기엔 너무 소소했다.


“그럼 누나가 새로 나온 우주복 지른 거 말한 것 때문에 그런 거야? 아줌마가 조금 화를 내시긴 했지만 설마 용돈을 삭감하거나 하시겠어?”


“랑고 스타아아!”


그녀는 경악하여 소리쳤다. 식당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자그마치 핑크였다. 언제나 똑같은 화이트톤의 지루한 우주복이 아니라 마젠타 색의 우주복이었다. 물론 달의 옷장엔 아직 입지 않은 화이트 톤의 우주복이 세 벌이나 있었지만, 마젠타 색만은 놓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우주복 쇼핑을 금했기 때문에 그녀는 엄마 몰래 사들인 참이었다. 그걸 알게 된 랑고가 우연처럼 엄마에게 일러바친 거였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랑고의 얼굴을 보니 삼계탕에 대한 복수가 분명했다.


치사한 자식.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접고 하얀섬 매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엄마의 근무시간이 시작될 11시까지는 돌아가지 않는 편이 좋으리란 계산이었다.


‘젠장, 다음번에는 라이트 골드색이 나온다고 그랬는데. 그건 못 사겠네. 엄마한테 은근슬쩍 사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할머니, 이런 무거운 걸 왜 할머니가 들고 그래.”


달은 멀리서 물건을 정리하는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는 레가 할머니를 보고서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런 건 놔뒀다가 자신을 시키라는데도 할머니는 늘 먼저 일을 정리해 버리고는 했다. 최근의 봉사활동으로 인해 우주선의 직원들을 돕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들으시질 않았다.


“할머니. 이런 건 하면 안 된다니까요. 나일 생각하세요.”


그 순간 지그무트 로우 함장이 나타나 할머니가 든 커다란 상자를 집어 들었다. 순간 로우 함장을 발견한 달은 매점 앞쪽의 프런트에 착 붙어서다가 엉덩방아를 크게 찧고 말았다.


“아야.”


그녀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섰는데, 레가 할머니와 로우함장이 무언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시 프런트를 벽 삼아 기대어 앉았다. 도란거리는 대화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귀를 쫑긋거렸다.


‘뭐가 저렇게 진지한 거야?’


“응,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늙긴 늙었나 봐.”


“처음부터 무리한 결정이었어요. 외할머니의 우주행은 절대 찬성하는 게 아니었어요. 아무리 원하셔도 반대했어야 했어요.”


“그러지 마, 로우. 난 꼭 오고 싶었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와 보고 싶었어. 있는 거라고 검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들 밖에 없다지만 영감이 평생을 바쳐 지은 이 우주선을 타보는 게 내 소원이었는걸. 그러니 난 괜찮아. 이대로 죽는대도 여한은 없어.”


할머니라니. 레가 할머니가 로우 함장의 외할머니라니. 지금껏 할머니에게 나쁜 놈이라고 재수 없다고 얼마나 욕을 해댔는데. 맙소사.


놀란 달의 귓가로 나지막한 레가 할머니의 말은 계속 되었다. 할머니의 음성에는 뭔가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풍겨났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우주는 언제나 그들의 관심사였고 우주를 개척하게 된 후로 인류는 너나 할 것 없이 갈망하던 우주를 향해 진출했다. 하지만 레가 할머니는 단지 우주에 대한 동경이나 갈망이 아닌 남편이 갈망하던 우주의 확인인 것이었다. 그것이 생애 마지막 목적인 셈이었다.


“죽진 마세요. 다행히 심각한 건 아닙니다. 지구에 있는 최고의 병원에 예약해 드릴게요. 꼭 낫게 해드릴 겁니다.”


뭐, 죽어? 병원? 그녀는 생각지 못했던 얘기에 금방이라도 고함이 터질 것 같아 입을 막았다. 레가 할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디가 아플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순간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얀섬 매점은 어떻게 해야하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계약한 기간이 거진 2년이 남은 셈이잖아.”


“한 가지 방법은 할머니의 명의로 둔 채 임대를 하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계약을 끝내고 새로운 경매에 붙이는 겁니다. 첫 번째가 계약금 문제도 그렇고 훨씬 편할 겁니다. 마땅히 임대할 사람이 없다면 제가 경매 절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저요. 할머니 저요!”


달은 충동적으로, 자기가 훔쳐 듣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손을 들었다. 그녀를 확인한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엔 자신이 하얀섬 매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뭡니까?”


“저요, 하얀섬 매점,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응, 레가 할머니? 나한테 맡겨줘. 나 잘할 수 있어.”


“안 됩니다.”


“안 돼.”


레가 할머니와 로우 함장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구동성에 달의 얼굴이 와그작 찌푸러진다.


“왜, 할머니. 왜요, 함장님.”


“네가 혼자 하기엔 힘들어. 이게 쉬운 것 같아도 하루 10시간 꼬박 움직여야 해서 달이 너한테는 힘들 거야. 넌 수업도 들어야 하고 싶은 것도 재미난 일도 많을텐데 여기 묶여 있어서야 쓰겠어?”


레가할머니는 그녀가 갑작스레 나타난 거에 놀라지도 않은 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달은 그녀에게 손녀 같아 정이 들었기 때문에 달이 어려운 일을 하는 걸 원치 않았다.


“할머니 나 할 수 있는데. 나 일 잘해요. 지구에서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놀이공원 아르바이트 다 해봤어. 진짜야.”


“안 됩니다. 할머니,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 이만 근무시간이 되어 가봅니다.”


로우 함장은 그녀의 말을 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쌀쌀맞고 냉정한 모습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 싸......하하. 할머니 근데 어디 아파?”


싸가지, 를 혀끝으로 삼키며 달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할머니를 급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정수기에서 얼음물을 빼 와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으응? 아니야. 괜찮아.”


“진짜? 그럼 함장님 말은 뭐야. 병원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 많이 아픈 거야? 응?”


“향수병이야. 지구가 그리워서 생기는 병. 지구에서 70인생을 살았는데 갑자기 거길 떠나니 몸이 금세 적응이 되나. 우리 달이처럼 젊은 사람이야 괜찮지만 나 같은 노인네들은 적응 하기가 힘든 거야. 그래서 그러는 거지.”


“그럼 다행이지만. 할머니, 이리 어깨 대 봐. 내가 주물러줄게”


달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꾹꾹 레가 할머니의 등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도 알다시피 내가 간식비가 오죽 나가. 그게 다 엄마가 부서져라 일한 돈으로 쓰는 건데, 내가 하얀섬 매점에서 일하게 되면 간식비도 건지고 용돈도 벌고 1석 2조란 말이지. 그리고 할머니가 내 몸을 안 봐서 그러는데 내가 통뼈야. 엄마 닮아서 뼈가 옹골차단 말씀이지. 할머니 그런 의미루다가 하얀섬 매점 나에게 넘기면 안돼?”


“힘들다니까 그러네. 하아, 우리 달이 손 참 시원하다.”


“진짜, 지인짜 하고 싶어서 그래. 2년이면 계약기간도 딱 맞고 좋단 말이야. 대신 할머니, 5:5로 할게. 할머니가 날 못 믿겠으면 함장님께 꼬박꼬박 주면 되잖아. 응? 할머니. 나 시켜줘요.”


“명의만 내 걸로 되어 있지 결정권은 나한테 없어.”


“명의면 됐지 딴 게 뭐가 필요 있어?”


“그렇게 하고 싶어?”


“응, 응. 정말 하고 싶어.”


달은 레가 할머니의 어깨를 정성스레 꾹꾹 눌렀다. 엄마는 물론이거니와 레가 할머니의 어깨도 몇 번이나 주물렀던 달이기에 실력이 제법이었다.


“지그무트를 설득해 봐. 녀석이 좋다면 나도 좋으니까.”


“하지만 할머니, 그 싸, 아니 그 재수없는, 아니 그러니까 로우 함장님은 나를 싫어한단 말이야. 아까도 봐. 내가 하고 싶다는데 대꾸도 없이 그냥 돌아서는 거.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미워서라도 싫다고 할 거야. 응, 할머니? 할머니가 로우함장님 좀 설득해 주면 안 돼?”


“아무리 내 외손자지만 이겨본 적이 없는 걸. 이번 기회에 녀석이 고집 꺾는 것 좀 보게 달이 네가 한 번 설득해 보겠니? 그럼 5:5가 아니라 7:3이라도 해줄테니.”


우와, 7:3. 럭키. 역시 레가 할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야.


“레가 할머니 진짜지? 응?”


“그럼, 진짜다.”


“자, 약속. 도장 찍고 복사. 코팅. 오~ 예. 할머니, 일주일만 기다려. 내가 일주일 안에 허락 받아올게.”


달은 위풍당당당하게 코팅까지 하고서는 한 쪽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사라졌다. 그 모습 뒤로 레가 할머니의 수상한 미소가 이어졌다.








아마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보신 분이 계시다면! 떠올리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면 제가 그걸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그래 우주로 가자; 라고 생각해서 쓴 거걸랑요.
사실은 우주나 과학 같은 건 하나도 몰라서 제멋대로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까 우주함선이나 저중력실은 디오티마에서 이미지를 따왔다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최대한 다른 공간이 되게 만들어 볼 생각이구요;
어쨌든 모처럼만에 새로운 연재 시작해 보아요.
근데, 제목이 아무래도 궁해서 일단 가제입니다. 좋은 거 떠오르신다면 알려주셔도 좋겠어요^^



댓글 '4'

mahabi

2008.06.02 23:22:03

오 디오티마..ㅋㅋ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만화라는 ..
편애님 쭈욱 계속 이제 달리시는 거죠?? 돌아오셔서 기뻐요.!!

ssuny

2008.06.02 23:36:40

함선내의 로맨스라 ... 기대됩니다
달이란 이름도 예쁘네요

하늘지기

2008.06.03 11:14:15

이런 류의 로설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어서..
신선할 듯..^^

Lian

2008.06.21 21:22:56

제목 좋은데요?
그나저나 글 올리신지 거의 3주가 다 돼 가는데 왜 2편이 안 올라오고 있는 거죠?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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