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프롤로그





윤주는 들고 있던 쟁반을 천천히 카운터 바(bar)에 올려두고 동그란 원목의자에 앉았다. 낮게 등받이가 있지만 키가 높아서 앉으면 윤주의 두 발이 공중에서 달랑 흔들리는 회전의자였다. 카운터에 등을 돌리고 앞을 보니 키 높은 의자 덕분에 사람들의 머리 정수리가 내려다보였고, 가장 멀리 그 남자의 얼굴도 약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원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명이 어둡고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윤주는 피크를 쥐고 기타 줄을 퉁기는 원의 손등위로 도드라진 핏줄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음에 섞여 나오는 가는 떨림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데워놓는 그런 목소리였다.



테이블을 조금씩 뒤로 물리고 마련한 무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았다. 양쪽에 앰프를 하나씩 거느리고 가운데에 원이 기타를 들고 회전의자에 앉았고, 맨 앞줄은 테이블 없이 의자를 한 줄로 쭉 놓았다. 뒤로는 테이블과 의자가 간격 좁게 모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아로마 향초가 원의 기타 소리에 반응하듯 일렁이고 있었다. 빈 의자 없이 사람들이 가득 찼고, 미처 앉지 못한 사람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불평인 사람은 없었다. 벽에 기대고 두 무릎을 껴안고 있는 모습이 의자에 앉은 사람만큼이나 편안해 보였다.



윤주에게 원이 이상하게 보였다. 낯설었다. 원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생경하게 아름다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소리가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원이 박수소리 속에서 웃으며 여전히 기타를 품에 안고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멘트를 하기 위해 마이크 가까이로 고개를 숙였다.



“원이오빠! 멋져요!”


관객 중 장난스러운 누군가가 불쑥 외치자 다른 관객들이 동의한다는 듯이 웃으면서 박수를 쳤고 원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멋있어요?”



“예!”



쑥스러운 듯이 조금 어눌하게 묻자 관객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윤주는 관객에 섞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원과 관객들의 대화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만났어요. 너무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음……. 음악 얘기를 할까요? 조금 전에 들으셨던 곡은 저의 이번 솔로 앨범에 들어있는 곡인데요, 제목은 [tea party]."



원이 몸을 숙이고 바닥에 놓아두었던 머그잔을 들어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관객들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다가 그가 차를 마시는 동안 조용하게 기다렸다.



“원래 솔로로 나오며 밴드 때의 노래를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거든요. 그치만 저는 이제 1집 가수라서 오늘, 카피곡도 좀 하고 밴드 때의 노래도 좀 할 거예요. 제가 밴드 했었던 건 다 아시죠?”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원이 밴드를 했던 것은 윤주도 알고 있다. 22살 때부터 밴드 활동을 했었고, 작은 레이블에서 2장의 앨범을 발매했던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원이 속했던 밴드가 없어진지 3년이 지났다는 것도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빠, 더 어려지신 것 같아요.”



원이 밴드 때 이야기를 꺼내자 같이 추억에 젖어 있던 오랜 팬이 작게 말했다.



“회춘의 비결이라도?”



뒤이어 조금 장난스러운 질문에 원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아침에 미용실에 갔다 와서 그런 것 같은데…….”



원과 관객들은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해보였다. 윤주는 그 동안 그에게 무엇을 보아왔는지 문득 의문감이 들었다. 이 공연장 안에서 자신만이 유일한 타인처럼 느껴졌다.



“연애하니까 그렇죠!”



약간 분하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관객들이 와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누구예요? 팬들은 솔로로 늙어 가는데.”



“음악이랑 연애해야지!”



한마디 말이 더 해질 때마다 웃음소리가 커졌고, 원도 대답대신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



“다음 곡은…….”



원이 겨우 꺼낸 한 마디에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다.



“어쩌라구?”



원이 다시 웃었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웃고 있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원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윤주의 얼굴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그녀가 씩 웃어주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곡은 조금 신나는 곡인데, 역시 이번 솔로 앨범에 있는 곡이예요. [반했어]할게요.”



관객들이 다시 한 번 더 크게 야유를 보냈고, 원이 기타를 연주하자 그제야 조용해졌다.



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윤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눈 감고, 숨 들이마시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도 벗어날 수 없어. 잠시도 눈 돌릴 수 없어. 매일 매일 생각해. 어쩜 너는 그렇게 예쁘니?…….”



가사가 너무 귀여웠다. 화려한 미사어구 없이 솔직하고 간결했다.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가 부르고 있는 노래가 그와 꼭 닮아 있었다.



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윤주를 바라보았다.



“……. 네 말투, 네 걸음걸이, 너의 웃음소리. 반했어. 인정할게. 그래, 반했어. 반했어…….”



간질간질한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래서 윤주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윤주의 웃음과 반했다고 노래하는 원의 목소리가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댓글 '2'

하늘지기

2006.08.06 17:14:50

나를 보며 그렇게 불러주면 안되겠니?ㅋㅋ

하미

2006.08.07 00:41:06


하늘지기님의 댓글에 절대공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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